초등학교6학년때 전학왔던 친구 유미가 속초로 이사한지는 어언 3년 정도 된것같다.
유미가 결혼을 안하고 혼자 사는것도 자유롭게 사는 이유이겠지만 유미는 원래가 그누구와 비교해도 절대로 뒤지지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전세계 어디나 안가본데가 없고 전국 방방곡곡 모르는데가 없다.

속초에 아파트를 비워두고 제주도까지 가서 사업을 2년동안 하더니 그사업을 접고 이젠 속초로 다시 복귀해서 살고 있다한다.

지난주 유미가 차를 끌고 속초에서 부산까지 내려온이후 우리둘은 이틀정도 부산에서 어싱도 하고 맛집도 가고 충분히 쉬고난후 짐을 싸 전라도로 떠났다.

여수에서 그유명한 갓김치에 백반정식을 먹고는 국도를 타고 구례를 지나 지리산을 끼고 거슬러 올라가 전주 한옥마을에 이르렀다.

천년의 아침이라는 숙소를 찾아서 예약을 하면서 갔는데 숙소가 하룻밤에 2인실은 49.000원 4인실은 59.000원이었다.
편백나무로 벽이며 천장이 모조리 둘러싸인 방4개가 마루를 중심으로 게스트하우스형식이었는데 우리가 도착한 월요일밤은 모든방이 비어있어서 넓은 거실과 주방을 우리둘이 독차지 했다.
담날 아침에 먹을 식빵과 딸기쨈 버터 커피 바나나 그리고 냉장고에는 요거트가 플라스틱 일회용 스푼과함께 준비되있었고 방마다 딸린 화장실도 지극히 청결하여 만족도가 거의 별다섯개에 가까웠다.
방에 창문이 없어서 편백나무향에 취해 자야하는 행복한 비명을 질러댈 그런 단점외에는 모든게 완벽했다.
숙소위치도 너무나 훌륭해서 담에도 전주에 온다면 꼭 천년의 아침에서 묵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한번의 예약으로 이렇게 깔끔하고 싼 숙소를 찾다니 전라도 전주는 아니 전주의 한옥마을은 나에게 너무나 특별한 선물을 주는듯했다.

담날 아침 10시30분 체크아웃시간 이지만 우리는 하루더 묵기로 하고 짐을 두고 거리로 나왔다.
골프카트와도 같은 미니차가 4인,6인용 두종류 있었고 4인용이 한시간 대여비가 3만원이었으나 우리는 걷는쪽을 택했다.

마침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많아서 거리는 활기찼고 여자한복을 입고 우스꽝스럽게 걸어다니는 남학생들부터 왕 이나 사또 내지는 양반옷을 입은 학생들까지 매우 다양한 모습에 눈이 즐거웠다.

여학생들도 대부분 한복을 대여해서 입고다녔는데 우리도 한복을 입고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어리고 풋풋한 학생들과 비교될껄 생각하면 그들과 섞여 한복을 입는다는게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나중에 딸하고 딸의 남친과 함께라면 한번 시도해볼만할지도 모르겠다. 전동차를 한대 렌트해서 한복을 입고 조용히 뒷켠에 앉아 눈에 안띄게 거닐고싶은 작은꿈이 생겼다. ㅎㅎㅎ

곳곳에 낡고 거대한 정좌가 있고 졸졸졸 시냇물이 흐르며 겹겹이 즐비한 한옥들… 향교나 민속 소품전시관에서부터 여러 전통을 배우는 교육관 그리고 가죽공예나 붓글씨 그밖에 수도없이 많은 공방들이 존재했다.
문화적충격을 받은나는 진짜로 아니 참말로 전주에 살고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그도 그럴것이 왜그리 사람들이 친절한지 길을 물어도, 물건의 가격을 물어도, 누구하나 불친절하게 말하는사람이 없으니 퉁명스럽기짝이 없는 부산에 살다가 간 나로서는 전라도만큼 좋은데가 또 있을까 싶었다.

아침엔 콩나물 따로국밥… 점심엔 모듬전에 전라도 탁주… 그리고 저녁엔 도토리묵에 해물파전으로 하루세끼를 다 먹느라 소화제를 달고 다녔다.
전라도는 아무식당이나 들어가도 맛집이라고 들었던터라 큰기대를 안고 먹었으나 들어가는 식당마다 큰실망감을 안겨준건 사실이다.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법…
다만 사람들이 너무 친절해서 그 모든게 다 용서가 되었다고하면 내가 부산에 살면서 얼마나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큰지를 알수있을것이다.

진심이 통하길 바라지만 그진심이 어떤방식으로 전달되느냐도 중요하다는걸 부산에 살면서 배웠다.
아무리 아니라고… 원래 본연의 의도는 그게아닐거라고 생각을 거듭해봐도 내가 수도없이 많은 Busano들에게서 함부로 다뤄졌다고 생각하면 적잖히 슬퍼진다.
잠시라도 부산을 떠나고 싶은 충동으로 혼자 유람선에 올라탄적도 있다.
오륙도를 돌아 바다로부터 멀리 보이는 해운대 해수욕장을 뱃머리위에서 바라보며 그래… 원래 마음은 안그런데 말투가 그럴뿐이지… 그렇게 나를 다독거리고 나스스로를 위로하며 옆에서 꽥꽥 소리지르며 내눈높이에서 날아대는 여러마리의 갈매기떼를 벗삼아 부산을 떠나고 싶은 충동도 여러번 느꼈다.

그런데 전라도 사람들은 나중에 뒷통수를 칠지언정 지금당장은 입안에 혀처럼 내비위를 너무나도 잘 맞춰주는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속지말자… 사람들에게 속는일은 그만하자 다짐하며 난 전라도를 떠났다.
언젠가 꼭 다시 딸과 딸의 남친을 데리고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