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우리 남편과 제가 뉴욕에서 처음으로 만난 날이랍니다. 12년전 메모리얼 데이 학교 캠퍼스에서 벌어졌던 대학원생들 바베큐 파티에서 생전 처음으로 서로 얼굴을 보게 된 날이죠.

그때 그순간에는 진짜 이남자가 장차 우리 두 아이들의 아빠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제 차가 없는 뉴욕 유학 생활에서 착하게 생긴 이 미국 남자를 잘 이용해서 영어도 연습하고 그 차도 얻어타야겠다고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렸었죠. 

그런데 그 이후, 도자기(도서관 자리 맡아주는 기사)로 부려먹고 자동차 기사로 부려 먹고 내가 하자는대로 착하게 이용만 당하는 이 파란 눈의 시골 총각(울남편은 그때 위스콘신 시골에서 뉴욕으로 공부하러 온거였거든요)이, 그 마론 인형처럼 기다란 속 눈썹이 너무너무 예쁘게 보이기 시작하는 거에요. 서울서 온 제가 진짜 못되고 까지고 그렇더라구요. 제 양심에 찔려서 이 순진한 미국 청년을 더 이상 이용해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결혼하기로 결정을 내렸지요.

그런데 이 수줍기 짝이 없는 파란눈은 내가 지마음 뻔히 아는데도 저한테 청혼을 못하는거에요. 어느날 제가 그랬습니다.

뻔뻔한 나: Hey, I'm going back to Korea after this semester since I'm almost done with my Master's degree.야, 난 이제 이번 학기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꺼야, 석사도 거의 다 끝나가니깐.

말할줄 모르는 파란 눈: No, you are not. 아니 너 안가.

뻔뻔한 나: What do you mean?......You mean...you want to marry me? 뭔소리야?...그럼....나랑 결혼하겠다는 뜻이야?

말할줄 모르는 파란 눈: Yea.....응...

뻔뻔한 나: OK, then let's go to the mall to get a diamond ring! 그래, 그럼 다이아 반지 사러 몰에 가자!

그길로 곧장 몰에 가서 $150짜리 점찍힌 다이아몬드 링 사서 우리는 약혼을 했답니다. ㅎㅎ ㅎ 이거 완전 실화에요. 다음 글은 제 책에 실린 12년전 메모리얼 데이 때,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의 리얼 스토리랍니다.

12년전 그날 있었던 일(완전실화)

12년전 미국에 도착한지 몇달 안되던 어느 봄날 뉴욕에서, 저는 공짜로 햄버거를 준다고해서 학교 캠퍼스에 있는 바베큐 파티를 갔습니다.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는데 늘 열심이던 화장도 그날따라 안하고 안감은 머리를 쫄라매고 선글래스 걸치고 진짜 거의 몸빼에 가까운 옷차림을 하고서 대학원생들이 모인다던 그 야외 파티에 갔습니다. 갔더니 미국 사람들은 거의 없고 전세계에서 온 인터내셔날 학생들이 공짜 음식을 바라고 우루루 나와 있더군요. 저는 영어를 열심히 연습하기 위해 이사람 저사람에게 말을 걸었고 어느던 제 주변으로 사람들(주로 남학생들)이 모이고 우리는 서로 틀리는 영어로 열심히 지껄이고 있었습니다. 역시 공짜 햄버거를 바라고 조금 늦게 등장한 파란 눈의 한 미국인 청년이 이렇게 보니까 웬 동양 여자를 하나 가운데 두고 사람들이 왁자지껄 재밌어 보이더랍니다. 제눈에 확 들어온 이 파란 눈의 유일한 미국 본토인과 그동안 갈고 닦은 영어를 연습하기 위해서 저는 주저 없이 다가가서 그이 이름을 물었습니다.

대찬 몸빼의 한국 노처녀:What’s your name?

수줍은 파란 눈의 미국인:Uh…..Jay.

대찬 몸빼의 한국 노처녀:Really? My English name is J, too! We have the same name!

수줍은 파란 눈의 미국인:Oh….

대찬 몸빼의 한국 노처녀:You are wearing an earring. Are you gay?

수줍은 파란 눈의 미국인:What? (박장대소!!)….(웃음을 그치지 못함)…No, I’m not  gay.

대찬 몸빼의 한국 노처녀:오우! I’m glad you are not gay.

수줍은 파란 눈의 미국인: (완전 뒤집어져 정신을 못차리고 웃음)

영어는 배웠지만 상대방의 성취향(sexuality)에 대해서는 묻는게 아니라는 미국 문화를 배우지 못해서, 저는 대차게 파란 눈의 그청년이 ‘동성연애자(gay)’인지를 까놓고 물었던거죠. 한국에서는 남자가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한쪽에만 귀걸이를 하면 동성연애자라는 ‘썰’이 한때 있었거든요. 그때 그 청년은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아뭏든 이여자 너무 웃긴다 생각했답니다. 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상대방 말에 맞추느라고 “니가 게이가 아니라니 다행이다”라고 한 것 뿐인데, 파란 눈의 이 총각은 제가 지한테 마음이 있어서 “니가 게이가 아니라니 우리 한번 잘해보자(잘 시귀어보자)”라고 알아들은 것입니다.

물론 저도 나중에 들은 얘긴데 파란 눈의 이 수줍기 그지 없는 미국 총각은 그날 제게 홀딱 반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적극적인(?) 여자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영어도 잘 못하는 쪼끄만 동양 여자가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무식하게(?) 다 하는 것을 보고 소심한 이 미국 청년은 대단한 여자라고 느꼈답니다. 사람들을 그 주위로 모이게 하는 이 황당한 여자의 힘은 뭘까, 파란 눈의 제이는 그때부터 제게 코 꿰인 것입니다.

한국을 떠나기전 이선희씨의 “제이~스치는 바람에~제이~그대 모습 보이면~”노래가 대 유행이었기 때문에, 저는 미국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은정’이라는 이름을 ‘제이’ 라는 이니셜로 바꿔 이름으로 쓰기로 했었거든요.이름이 같은걸 빌미로 저는 이 총각을 친구로 삼아 영어를 연습해야겠다 머리를 굴렸습니다.

그날 모임이 끝나갈 무렵 저는 영어책에서 배운데로”Bye, Jay. See you later!(잘가. 나중에 보자)”했습니다. 근데 이 사람이 제가 배운데로 응답을 안하고 엉뚱하게

“When?” 이러는거에요. 저는 순간 당황이 되서 “엉?  Anytime!(아무때나!)” 그랬지요. 파란 눈의 이 총각은 당장 냅킨을 반 쭉 찢어서 자기 전화번호를 적어 제게 주고 저도 제것을 냅킨 반쪼각에 적어 주었습니다(저희는 아직도 이 냅킨 조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이후로 저는 영어를 연습하고, 차를 공짜로 얻어 타기 위해 이 파란 눈의 미국 청년을 열심히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그를 열심히 이용하며 “봉잡았다!” 하다가 이 사람이 너무 착하고 제가 너무 이용해 먹은 것이 맘에 찔려 점점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파란 눈의  순진하기 짝이 없는 청년이 제 남편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죠. 이제 우리가 결혼한지 내년이면 13주년이 됩니다.

여러분 영어를 적으로 삼지 않고 재미 삼으면 재밌는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 요는 영어 실력이 아니라, 즐기며 하는 의사소통이지요. 때로 불완전한 의사소통이 저처럼 웃기는 일이 되기도 하고, 좋은 마음은 부족한 말 속에서도 늘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는데 복잡한 일이 많습니다. 왜 영어까지 여러분을 괴롭히게 만드십니까? 그냥 영어로 재미를 보세요. 영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