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격려해주신대로

아이의 사망신고는 잘 처리되었습니다.

일주일 후에 바로 “처리완료” 문자를 받았네요.

이제 아이는 한국 정부의 기록 상에서도존재하지 않는 국민이 되었습니다.

이제 매해 3-4월은 힘든 달이 되었습니다.

기나긴 겨울을 보낸 이곳 미드웨스트에서

날씨는 여전히 춥고 매서워도

길기만 하던 밤이 짧아지고 어느새 햇살이 오후 늦게까지 비추기 시작하니

서서히 진해지는 봄의 기운에 설레이기 시작하는 때이죠.

그러나

저녁 준비를 하다 문득 진한 노란색의 햇살이 부엌 창가까지 들어온 것을 발견하는 날이

저에게는

잔인한 봄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아이가 사고를 당하던 순간도 그렇게 부엌 창으로 햇살이 진하게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날의 햇살, 햇살사이로 떠다니던 먼지, 그때 들었던 소리등이

무성영화의 한장면처럼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렇게 달라진 햇살로 다가오는 봄을 지각한는 순간

잔인한 3-4월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매일매일이 그날의 기억을 일깨우고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상기시키는 것 같아요.

다행히 부부교사인 저희는

3-4월이 참 바쁩니다.

고등학교 운동부 코치를 하는 남편은 4-5월이면 매일 연습과 경기 참가로 일주일에 두세번은 늦게 오고요

큰아이도 올해는 5학년을 졸업하는 해라 유난이 더 바쁘게 지나가네요.

이젠 무뎌진건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올해 4월은 큰 감정의 동요없이 보낼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중의 하나는

올해는 마침 지난 3월초가 더 힘들었어서 일거에요.

아이는 3년 10개월여를 살았습니다.

일수를 계산해보니 1399일이더라고요.

지난 2월말-3월초 어느날이 아이가 세상을 떠난지 1399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아이가 우리와 함께 있었던 만큼의 시간을 이미 아이 없이 보냈더라고요.

아이와 함께 보냈던 시간만큼

이미 그 아이 없이 보냈다는 건

이제는 좀 덜 아파해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일까요?

다행히 아이는 세상의 부조리나 슬픔,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이나 혐오 같은 감정들을 알기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자아가 제일 비대한 시기에 세상을 떠났죠.

잔병치레도 하지 않고 잘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아이였습니다.

성격도 쾌활하고 자기 원하는 것이 분명한 아이였어요.

항상 같이 놀던 또래아이들 중에서 제일 어렸는데도

친구들이 다 땡깡부리고 울때에도

제일 마지막에 울던 아이였습니다.

노래를 아주 잘했을거에요.

노래를 곧잘 따라하고 음정이 정확했어요.

막 겨울왕국 엘사에 심취에 Let it go!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하던 때였어요.

사고 몇달전부터 댄스학원을 다녔었어요.

3-4세 여자아이들이 예쁜 발레복을 입고 다니는 곳이었어요.

중간에 시작한터라 다른 아이들은 이미 몇달 동안 연습한 안무를 따라 잡았어야 했는데

두어달이 지나서 우리 아이만 선생님을 보지 �方玆� 다음 동작이 뭔지 알고 있더라고요.

세살짜리가 말이에요.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또래들 중에 아싸가 되어있었을거에요.

물론 친구들 사이에 드라마도 많았겠고요.

아마 그런 아이를 핑계로 저도 지금쯤 룸맘 정도는 하고 있지 않을까 해요.

그런 꿈을 잠깐 꾼적도 있었거든요. 몇년 후에 로빈이네 반 룸맘을 해야지 하고요

둘째이기도 하고.

로빈이네 학교에서 룸맘을 한다면 진짜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 지는 걸꺼야 라고.

로빈이와 함께 사라져버린 저의 꿈들

저는 그래서 아파하고 있는건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