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하니 시어머니와 불편하게 하루종일 붙어있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다.

시동생 둘은 나를 따라서 그 둘을 통해서 말을 나누곤 했다.  퇴근을 하는 길로

시장을 가서 반찬거리를 사 와서 저녁을 준비하고 설거이를 끝내면 보통 9시가 넘었다.

큰 시동생은 몸이 약해서 집에서 놀고 있었고 둘째는 대학생이었다.

나와 이름이 같은 손아래 시누이완 결혼 전부터 무척 친해 있었고, 시어머니의

성품에 대해 미리 말해주고 다 알아주니, 무조건 참으라는 조언도 해주었었다.

 

집이 옛날식이라 방과 방사이에 마루가 있는 집이었다.  제일 불편한 것은 건넌방에 

시어머니가 기거하신다는 것이었다.  나는 매번 부부관계를 어머니가 듣는다고 

거부하기에 바빴고  그것이 신경이 쓰이니 좋은 것은 하나도 모른 채 겨우 

신혼생활을 했다.  어쩌다 남편요구에 응한 날  새벽에 일어나 마루에 나오면 

시어머니가 대청 끝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계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곤 했다.

 

시어머니는 생과부로 살고 계셨다. 어머니시대에 사람 치고는 키도 컸고 예쁘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시아버지라는 분은 오래전에 집을 나갔셨다고 하고 아무도 시아버지에 

대해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종갓집에 며느리로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자신이 집안에 제일 큰일이라고 

여기시는 것 같았다.

 

시집온 지 며칠이 지났는데 며칠있 으면  제사가 있다며 놋그릇 보따리를 몇 개나 

내게 주시며 닦으라 신다. 무슨 시커먼 가루를 주시며 짚푸라기에 묻혀 싹싹 문질러야 

된다고 한다. 마당에 수돗가에 앉아 혼자 그 많은 놋그릇을 닦으며 힘들고 서글퍼 

눈물이 난다. 임신초기인 나를 이렇게 시키는 것이 당연한 듯 시어머니는 방에 들어가

나오시질 않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시커먼 가루는 절터에서 부서진 기왓장을 주워서 깨끗이 씻어 

불에 달구었다가 식혀서 빻는데 가루로 아주 곱게 채로 쳐서 만든 가루라고 한다.

 

제사상 음식도 먹으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은 나는 내손으로 제사를 준비한다는 

사실이 한심스럽고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한편 이런 일을 매번 해온 시어머니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시절에 한번 만났던 손위시누이가 왔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뭔가 티를 잡으려는 듯 내게 보내는 눈길이 매섭다. 진해에서 고등학교 선생을 하고

있다는 그녀는 나를 앉혀놓고 종갓집 며느리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교육을 마치 내가 

그녀의 학생이라도 되듯 꼼꼼히 시켰다. 솔직히 맏며느리로 내가 마음에 안 든단다.

이유는 기독교 집안에 막내딸이라 믿을 구석이 하나도 없으며 예쁜 것도 얼굴 

뜯어먹고사는 것 아니라 마음에 안 들고 대기업 회사에 다니는 것조차도 내겐 흠이었다.

 

남편도 누나인 큰 시누이한테는 꼼작을 못하는 듯했다. 이유는 시아버지가 나가 계시니

큰누나로서 가정을 이끌고, 본인은 선생이며 그녀의 남편은 해군장교라는 것이 배경이 

되어 친청에 오면 다들 꼼작을 못하게 큰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제사준비를 해서 집안 어른들로 오시고 하여 제사를 잘 치렀는데,

큰 시누이가 나좀 보자고 한다.

“ 자넨 집에서 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그렇게 예의범절을 모르나? 

종갓집 맏며느리로서는 빵점이네 빵점이야”

처음 겪는 일이니 당연히 모르고 시키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내가 밉고 또 미웠나 보다.

방에 들어가서 울었더니 남편이 우리 누나가 원래 그런 사람이니 이해하라고 나를 위로해

주었지만 시집 잘못 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재산이 많은 집안도 아니고, 시어머니가 잘해주는 것도 아니고 너무 친청과는 

다른 생활방식이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회사동료들도 시집가더니 얼굴색이 안 좋아졌다고 말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교회도 못 다니게 하니 난 마음이 점점 우울해져 갔다.

그러면서 배는 점점 불러오고 시집살이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제사도 몇 번이나 치렀다.

 

남편은 경기를 나왔다는 자부심으로(대학은 알고 보니 중퇴)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자기외는 모든이들이 머리에 똥만 들었다고 생각하고 무시했다. 연애할때도 그런면이 

마음에 안들었지만 내가 잔소리를 하면 고치겠다고 해서 괜찮아 지리라 생각했지만 

착오였다. 그래서 회사생활도 원만치 않았다.

나는 한 회사를 10년이상 다녀 십년근속상 까지 받았는데 남편은 회사를 자주 옮겼다.

예전에는 여자와 남자가 월급이 차이가 많이 나는 때었다.

남편이 자주 회사를 쉬는 관계로 은행 모게지가 밀리기 시작했다.

 

내 월급으로 다섯 식구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모게지는 정말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집을 팔기로 남편과 의논했다. 시어머니는 뒤로 넘어가며 “왜 집을 파냐며”

난리를 쳤지만 은행에서 재촉이 오자 어쩔 수 없이 팔고 말았다.

 

참 운도 없는 것이 집을 팔자마자 78년도 부동산 붐이 일어서 우리가 판 집이

며칠사이에 몇 배로 오르고 있었다.

며칠만 참을걸… 하는 후회도 해 보았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었다.

내 복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을 어찌하리….시댁에서 누구하나라도 도와 주었다면

아마 팔지는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