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하고 아버지가 거칠게 문을 열었다.

 

밤이었다.

행길로 난 작은 들창문으로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 밤에 아버진 왜 우리들의 방 문을 열은 것일까. 나를 때리기 위해서이다. 아버지의 손에는 몽둥이가 들려 있다. 달빛에 비치는 거무튀튀한 색깔, 가시가 비쭉비쭉 솟은 몽둥이, 며칠 전 산에 가서 땔감으로 한 지게 해가지고 온 가시나무 중 가장 굵고 실한 몽둥이이다.

아버지는 그 무시무시한 것을 단단히 움켜쥐고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온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나는 아버지를 피하려고 사방을 둘러본다. 그러나 두평 남짓한 방안이다. 피할 데라곤 아무 데도 없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발버둥을 쳐본다. 그러다가 나는 벌떡 일어나서 방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빈다.

"아부지. 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제발 용서해 주세요...."

나는 무엇을 잘못한지도 모르고 그저 매를 피할 마음에 두손을 비벼댄다. 그러나 한번 화가나면 그 화를 풀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버지이다. 들고 있던 몽둥이가 곧바로 사정없이 내 머리 위로 몸 위로 소나기처럼 떨어진다.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나는 비명을 지른다.

아아악!

번쩍 눈을 뜨니 꿈이다. 나는 얼른 머리와 몸과 팔을 손바닥으로 쓸어 본다. 그리고 몸을 들쳐 이부자리도 쓸어본다. 꿈에서 피가 철철 났었으니까. 흥건하게 고여있던 피가 손바닥에 묻어 나올 것만 같아서. 그러나 피는 없다. 그저께 깨끗하게 빨아 말려서 새로 갈아입힌 시트는 보송보송하고 따뜻하다.

나는 일어나서 머리를 감싸쥔다. 꿈속에서 맞았지만 생시에서도 맞은 자리가 욱신욱신 아프고 쓰라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옆에서 자던 남편이 부스스 일어난다.

"또 아버지한테 맞는 꿈 꾸었어?"

단잠을 깨우게 한 남편한테 미안해서 얼른 자리에 도로 눕는다. 그리고 숨을 고르게 내쉬며 다시 잠에 빠져든 척 한다. 그러나 가슴이 뻐근하고 목이 메어와서 숨을 내쉴 수가 없다. 동시에 눈꼬리에서 소리없이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 내가 죄가 있다면 그저 당신의 자식으로 태어난 죄밖에 없습니다. 내가 죄가 있다면 당신 말대로 나가서 콱 뒈지지 않고 당신의 그 무시무시한 몽둥이 밑에서도 질기게 살아난 죄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아무렇게나 내뱉은 그 독하고 잔인한 말들은 독화살이 되어 지금까지 내 가슴속에 박혀있습니다.매일이다시피 나를 조준해 휘두르던 몽둥이는 커다란 바위산이 되어 나를 지금까지 짓누르고 있습니다.

왜 나를 그렇게 때렸나요.왜 내게 그렇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내뱉았나요. 열몇살짜리 어린아이가 도대체, 도대체 무엇을 그리 잘못했기에! 도대체 어떤 죽을 죄를 지었기에!

아버지, 당신으로 인해 내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악몽에 매일 시달리고 있는 걸 아시나요? 왜 내가 당신의 분풀이 대상이었나 했나요. 당신이 선택했던 척박한 인생인데 왜, 왜 내가 희생의 재물이 되었나 했나요!?

내일은 정신과에 꼭 가보리라 다짐해 본다. 그러나 의사가, 학문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는 의사가 내게 무엇을 해줄수 있을까.

내 병은 내가 아는데. 나를 고칠 수 있는 방법, 그 방법을 내가 아는데. 그러나 너무 늦었다.내 병을 고쳐 줄 수 있는 아버지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아버지가 내 손을 부여잡고 미안하다고, 미친 듯이 때려서 미안하고 폭언을 퍼부어서 미안하고 그 추운 겨울 양말 한 켤레, 내복 한 벌 사 입히지 못해서 미안하고 주린 배에 음식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미안 한 것은 사랑과 관심을 주지 못한 것이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해준다면 돌처럼 단단하게 뭉쳐져 가슴에 자리잡고 있는 이 한이 풀릴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는 없다. 지금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전쟁에 참여했다 돌아온 병사들이나 큰 화재나 지진등 엄청난 천재지변을 겪은 사람만이 걸린다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外傷後－障碍 Post Traumatic Stress...)그 증세가 나한테도 있는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식은 땀이 흐르고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그리고 숨이 가빠지는 것이다. 아버지 생각만 하면, 아버지가 나에게 휘두르던 그 무지막지한 폭력을 생각하면 나는 머리가 빙 돌며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버지는 지금 땅 속에 백골이 진토 되어 누워있은지 오래이고 지금 현재 나의 털 끝 한 가닥 해칠 사람이 없는데도 아버지의 몽둥이가 마악 머리로 날아오는 것 같은 느낌에 몸을 떠는 것이다.

법보다 주먹이 먼저란 말도 있지만 아버지는 말보다 주먹과 몽둥이가 먼저 인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성질이 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손에 집히는 대로,닥치는대로 집어던지고 때리는 사람이었다. 아버지한테 내가 제일 많이 맞은 것 같고 그 다음에 박옥이였다.

사람이 따귀를 맞을 때 가장 모멸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어느 책인가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자라면서 아버지한테 맞은 따귀는 수백 번 수천 번이었다.

따귀 뿐인가. 아버지는 온갖 도구들을 이용해 나를 때렸다. 손바닥으로 주먹으로 때리다 몽둥이가 부러지거나 손이 아프면 벽에다 내 머리를 쿵쿵 찧기도 했다. 소낙비처럼 떨어지는 아버지의 발길과 몽둥이와 주먹세례를 일 주일이 멀다하고 당하면서 어린 나는 늘 생각했다.

하나님, 차라리 날 그냥 물처럼 연기처럼 스러지게 해주세요. 무서운 아버지가 더 이상 나를 때리지 못하게 물처럼 연기처럼 없어지게 해주세요.

맞는 것은 육체의 아픔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내 머리에 잔영으로 남아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버지의 입에서 나를 향해 터져나오던 무지막지한 욕설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욕을 잘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욕을 제일 많이 먹은 사람이 나와 박옥이이였다. 내게 퍼붓던 아버지의 욕설중 병신 새끼야, 호로 새끼야, 개새끼야는 기본이었고 걸핏하면 나가서 뒈지라고 저주와 악담을 했다.

"당장 나가서 뒈져버려라. 죽은 개 끌듯이 질질 끌어다가 묻어 줄께..."

"대가리를 부수어 버리기 전에....."

"손 모가지를 도끼로 잘라서 개를 던져주어야지...."

"패죽이기 전에......"

"얼른 차에 받혀 죽어버려라...."

이게 아버지가 자기 자식에게 하는 말일까. 혹시 우리 아버지는 미친 정신병자가 아니었을까. 세상에 어느 아버지가 자식에게, 그것도 어린 열 몇살짜리 자식에게 저런 엄청나고 잔인한 말을 할 수 있을까.

자라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아버지로부터 정상적인 말, 아버지가 자식에게 하는 말, 이를테면, 공부는 잘 하고 있니? 숙제는 다했니? 네 짝궁 이름은 뭐니? 같은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입만 열면 언제나 욕설이었고 비난의 말이었고 멸시의 말이었다.

내게 고모가 세 명이 있다. 나중에 다 이야기 하겠지만 이들 고모들은 내 인생에 아주 지대한 영양을 끼친 인물들이다. 당시 막내 고모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있는 시내의 몇 번째 가지 않은 부잣집에 시집 가 잘 살고 있었다. 가끔 학교를 오가다 길에서 고모를 만날 때가 있었다. 고모는 내 허름하고 비루한 차림새만 보고도 내 상황을 짐작하는 듯했다. 고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밥을 먹이고 내가 돌아갈 땐 손에 십원짜리 한닢을 쥐어주곤 했다. 언젠가 고모가 내게 물었다.

"네 아버지가 너 한테도 욕을 하고 매질을 하니?

나는 그때 고모가 차려준 밥상을 앞에 놓고 있었다. 집에서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갓 지은 쌀밥에 따뜻한 국이 놓인. 나는 밥 숟가락을 놓고 으허헝,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가 늘상 나한테 '당장 나가서 뒈져라. 죽은 개끌 듯이 질질 끌어다가 묻어 줄게' 하는 욕을 한다고 나는 울면서 말했다.

막내 고모가 이 세상에서 유일한 내편이라는 안도감 때문이어서였을까. 절대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박옥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가서 하지 않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그때 그 말을 고모한테 했다. 그리고 말을 하면서 나는 치받치는 통곡때문에 한참을 진정해야 했다. 내가 열 두살 때였는데 어린아이가 그냥 울음이 아닌 피맺힌 통곡을 한 것이다. 어른이나 하는 통곡을. 어린 가슴에 아버지의 그 말에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얼마나 서러웠으면 통곡을 다 쏟아놓았을까. 아, 그 순간을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이 난다. 고모가 차려준 밥상을 앞에 놓고 숟가락을 든채 으흐헉, 하고 통곡을 하던 어린 나를 떠올리니 눈물이 저절로 흐른다.

아연실색하던 고모의 얼굴. 그러나 그녀 또한 어쩔 수 없었다. 그녀 역시 아버지 폭력의 피해자였으니까. 어른이었고, 시집가서 한 지아비가 있는 몸이었지만 그녀 역시 우리 아버지가 눈만 한 번 부라려도 오금이 저린다는 사람이었으니 나를 위해 그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의 폭력성에 얘기할 기회가 됐을 때 고모는 혀를 차고 또 찼다.

"나야 동생이니 그렇다쳐도 자기 자식한테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너희 아버지는.... 너희 아버지는 참말로 여러 가지로 너무했던 사람이로구나.....몹쓸 사람이었구나....."

나는 발작하듯 외쳤다.

"아부지는 사람이 아니지! 나를, 자식을 이렇게 정신적 장애자로 만들어 놓았쟎아!"

그렇다. 나는 지금 정신적인 장애가 있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나는 사랑을 할 줄도, 줄 줄도 모른다. 누가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해주면 그게 고맙고 행복하기 보다 거북하고 어색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리고 나는 텔레비젼에서 보여주는 폭력장면이나 고함과 욕설에 지나치리만치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 그런 장면을 보면 가슴이 뛰고 손발이 벌벌 떨린다. 금방이라도 어딘선가 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튀어나올 것 만 같아서.

아버지가 화나면 나는 그저 벌벌 떨었다. 언제 어디서 바람처럼 날아올지 모르는 매를 생각하면 오금이 저리고 빤스에 오줌을 쌀 정도로 공포스러웠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못한채 그저 구석에서 벌벌 떨기만 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매를 고스란히 다 맞았다. 아무리 화가 난다지만 아무리 분노가 조절을 못할 정도로 머리꼭대기까지 치밀었다지만 자기 자식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때릴 수 있었을까.

아버지한테 맞은 건 이루 셀 수 없지만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나를 괴롭히는 기억들이 있다. 때는 가을이었고 나는 그때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여덟살 때.

가을 운동회를 하는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그날도 나는 지각을 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반 아이들은 다 운동장 안쪽에서 음악에 맞추어 율동을 하고 있었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것 같으면 선생님 몰래 뒤로 살짝 숨어들면 그만이었는데 수백명의 사람들이 에워싸고 운동장 안쪽으로 주시하고 있는데 몰래들어가 합류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구경꾼들과 같이 물끄러미 아이들의 몸짓을 구경하다가 슬그머니 운동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교문을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가을이긴 했지만 햇살은 따가왔고 바람은 무더웠다.나는 땀을 흘리며 집으로 걸어 갔다.

집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아버지랑 박옥이는 김밥을 싸가지고 학교에 간 것이다.나와 길이 엇갈리고 만 것이다.

나는 박옥이가 남기고 간 김밥 꼬랑지 몇 개를 주워 먹고는 무료하게 방안에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다. 눈을 뜬 것은 가게문이 드르륵 거칠게 열리는 소리때문이었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방안에 내가 있는 것을 알자 뭐라고 고함을 쳤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나는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가 방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몸을 피할 생각이었다. 도망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겁에 질린 나는 몇 발 걸음도 떼기 전에 아버지에게 멱살을 잡혔다. 아버지는 한손으로 나의 멱살을 잡고 한손을 잡고 있던 자전거를 마당에다 밀치더니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넙직하고 두툼한 손이 내 머리를 내 얼굴을 내 머리를 마구 강타하기 시작했다. 마구 때리다가 손이 아프니까 마당에 있는 나무가지를 집어 나의 몸을 타작하듯 마구 내리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정신없이 매를 맞았을까. 딱, 하고 매가 부러졌다. 동시에 아버지를 형님으로 부르는 동네 종태 아저씨가 얼굴을 보였다. 나는 달려가서 종태아저씨의 바지자락을 붙잡았다. 아, 이제 나는 살았구나, 아버지를 말려 줄 사람이 나타났으니까!

그러나 나는 곧 아버지의 손에 의해 뒷덜미가 잡혔고 곧 마당에 내동그라졌다. 매가 부러져 때릴 것이 없는 아버지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발로 나를 차기 시작했다. 나는 흙투성이 피투성이가 된채 아버지의 발 밑에서 이리저리 굴렀다. 종태아저씨는 내가 그렇게 맞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구경만 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피우면서, 얼굴엔 빙그레 웃음을 띄면서.

나는 그 후부터 길에서 종태 아저씨를 만나도, 종태 아저씨가 우리집에 놀러와도 싹 외면해버렸다. 인사를 일체 하지 않은 것이다.

어린 새 같은 여덟살짜리 아이가 자기 아버지한테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맞고 있는데도 말리는 척도 하지 않고 빙글빙글 웃으면서 바라보고만 있던 사람,"아이고 형님, 왜 그러십니까, 참으세요" 딱 한 마디만 해주었더라도 나는 그가 그리 밉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튼 그때가 아버지로부터 가장 많이 맞은 날인 것 같다. 쉴 새 없이 사십분 정도를 맞았으니까. 맞을 짓을 하긴 했다. 김밥을 싸들고 학교에 갔는데 정작 내가 없어져 버렸으니 나를 찾는다고 얼마나 해맸을까. 그리고 얼마나 화가 났을까. 그러나 인간이란 자기 잘못한 것은 늘 잊는 법이다. 내가 잘못한 건 까맣게 잊고 아버지가 그날 날 무지막지하게 때렸던 기억만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이다.

다음은 열 두살인가 열 세살 때였다. 그때 박옥이는 무슨 일로 아팠다. 짐작컨데 아이를 떼고 와서 몸조리를 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늘 그렇듯이 박옥이는 방안에 앉아서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예의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목소리 톤으로 고함을 지르면서 자기가 하라고 시킨 일을 하지 않았다고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부엌에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들이닥쳤다. 한 평도 되지 않은 작은 부엌안, 나는 독안의 든 쥐가 되었다. 아버지는 몽둥이가 없나 주위를 두리번 거렸고 마침 그때 부엌 한쪽 켠에는 땔감으로 쌓여있던 어른 팔뚝만한 장작이 있었는데 그게 아버지 눈에 띄었다. 아버지는 장작을 줏어서 꼬나쥐었다.

그날 내 몸과 팔에서는 뱀처럼 징그러운 피멍 자국이 여기저기에 났다. 그날 아버지는 자기 분이 다 풀릴 때까지 나를 정신없이 패고는 장작개비를 부엌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리고 방에 있는 박옥이에게 일갈했다.

"야이 썅년아. 이제 속이 시원하냐? 네가 원하는 게 이거였지? 네가 원하는대로 이 개호로새끼를 죽을 만큼 패주었으니 니 속이 시원하냐고? 이제 그 더러운 놈의 아가리 좀 닥치지 그러냐?!"

방안에 있던 박옥이가 뭐라고 대꾸를 한 것 같은데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부엌바닥에 두 다리를 뻗고 엉엉 울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엄마아~'를 부르며 울었던 것 같다. 엄마아, 하긴 했는데 그게 누구를 부르는 것이었는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박옥이가 아니었다는 건 확신한다. 박옥이의 잔소리가 아버지의 화를 돋우어 내가 그렇게 맞았는데 박옥이를 부를 리는 없었으니까.

참 신기한 것이 그렇게 많은 매를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시박힌 몽둥이에 온몸이 터져서 피가나고 멍이 들고 머리가 욱씬욱씬거리게 아픈데도 나는 죽지 않은 것이다.다음 날이면 거짓말 처럼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았다.

그 이후로도 그 전에도 나는 아버지로부터 수도 없이 얻어맞고 터졌다. 그리고 아버지가 내 책가방을 아궁이에 넣고 불살라 버린 적도 있다. 아버지가 사 준 것 아닌, 막내고모부가 사준 내 책가방을 말이다. 나를 얼마나 미워했으면 책가방을 다 불살랐을까. 아버지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나는 모르겠다. 아마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어쨌든 그 남자는 내 아버지였고 나는 그의 자식이었는데 그와 나 사이에 뭔가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 하나 쯤은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쓰기 위해 몇날 며칠을 머리를 쥐어 짜 옛날 기억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더니 딱 한가지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 나는 글짓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성희와 함께 늘 학교대표로 뽑히곤 했으니까. 어느 날 문예반 선생님이 낱장으로 원고지를 쓰지 말고 한 권으로 철을 해서 가져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원고지 한 권을(지금 생각해도 신기한게 그 원고지 뭉치가 어디서 났을까 하는 것이다. 원고지 한 권이면 꽤 비쌌을 텐데 말이다. 내가 돈이 어디서 나서 원고지를 한 권씩이나 샀을까.)한데로 묶기 위해 내가 애를 쓰고 있으니까 아버지가 송곳으로 구멍 두 개를 뚫어 철사로 묶어주었다. 그게 내게 있어서 아버지가 '나를 위해 무얼 해주었던' 유일한 기억이다.

남편과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첫 날을 친정에 머무를 때였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큰 어머니와 함께 안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박옥이도 옆에 있었다.

우리가 다녀왔던 행선지를 물어보고 이런저런 얘기를 묻더니 아버지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오른쪽 손으로 눈을 가리고 으흐흑, 하고 큰 소리를 내면서 아버지는 흐느꼈다.

"아이고, 이 좋은 날 왜 우십니까?"

큰 어머니가 아버지를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한참동안 그렇게 울었다.

아버지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 가슴에 한이 많은 사람이 눈물도 많다던가. 그러나 맨정신에는 눈물 한방을 흘리지 않는 독한 사람이었는데 술만 먹으면 그렇게 울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눈물을 많이 본 사람이다. 그래서 그때 아버지가 우는 것이 그렇게 썩 가슴에 와닿지 않았고 별다른 감흥도 없었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다. 남자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는 남편은 그때 아버지의 눈물이 아주 인상깊었나 보았다. 남편은 말한다. 그때 아버지가 흘린 눈물은 나에 대한 속죄의 뜻일 거라고. 정녕 그랬을까. 그 때 흘린 아버지의 눈물은 정녕 남편 말대로 나에 대한 참회와 회한의 눈물이었을까.

남편은 내게 타이른다.

"그 시절엔 당신 아버지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이제 그만 아버지를 용서해 드려....."

남편 말이 맞다. 세상을 떠나고 없는 사람을 증오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찌보면 아버지도 참 불쌍한 인간이다. 온갖 거친 세상풍파를 혼자의 몸으로 막아내며 살아야 했으니. 아버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후 당시 집안을 책임 질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었다고 했다. 생활고를 한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마흔 두 살의 어머니는 다섯째(막내고모)를 임신 중이었고 두 여동생들은 어렸다. 형은 게을렀으며 무능력했고 장남으로서의 책임의식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날부터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뛰어다녀야했다고 한다. 구두닦이, 오징어 장사, 신문배달, 우산 장사,호떡 장사등.

그러나 아버지의 형은 집에서 엎드려 책을 보거나 낮잠만 잤다. 그리고 밤잠도 못자고 돈을 벌기 위해 뛰어 다니는 아버지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아버지의 장사 밑천인 오징어를 걸핏하면 홀랑 다 먹어치워버리곤 했단다. 형이니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고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하늘을 보고 허탈하게 웃었단다.

아무튼 아버지는 먹고살기 위해서는 별짓을 다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내가 아는 아버지도 늘 열심히 일 하는 사람이었다. 얼음이 꽝꽝 어는 겨울에도,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도, 장대비가 쏟아지는 장마철에도 아버지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그물질을 나간 걸로 기억한다.

70년대 중반, 읍내에 처음으로 삼계탕 집이 생겼다. 아버지는 치열한 경쟁자를 뚫고 몇 년동안 그 삼계탕 집에 닭 잡아 대는 일을 맡아하기도 했다. 일 주일에 한 번씩 그 삼계탕 집 주인의 농장에서 우리집으로 닭을 몇 십마리 가지고 왔다. 박옥이와 아버지는 집옆에 있는 개울에 곤로를 갖다놓고 물을 끊이며 하루종일 그 닭을 잡았다. 끊인 물에 데친 닭의 털을 뽑고 내장을 바르고 다리를 토막내고.

그렇게 손질한 닭은 박옥이가 읍내 삼계탕집으로 이고 나가서 넘겼다.

아버지가 할머니 밭에 집을 지어들어갔을 무렵엔 값 나가는 살림살이라곤 눈 씻고 봐도 없었다. 거의 다 부서져서 고무줄을 칭칭 동여맨 고물 라디오가 살림살이 중 가장 비싼 거라면 비싼 거였을까. 그런 빈곤한 살림살이가 아버지의 강인한 생활력 덕분으로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십 몇 년 후 도시계획으로 철거명령을 받아 그 집을 떠나야 했을 때 아버지는 읍내에다 그 고장에서 제일 돈많은 갑부가 살았다던 집을 살 수 있었을 만큼 많은 돈을 벌었던 것이다.

오직 돈을 벌어야 겠다는 신념하나로 어린 소년 시절부터 극악스럽고 억척스럽게 살기 시작한 것이 아버지의 성격을 그렇게 만들었던 것일까. 포악하고 난폭했던 아버지.

아버지 성격의 최대 피해자는 나였다. 박옥이는 악을 써가며 같이 대들고 싸우기라도 했지, 아버지한테 두 대 맞으면 한 대 같이 올려 치며 반항이라도 했지, 그러나 어린 나는 아프다는 말 한 마디 못하고 제발 때리지 말라는 말 한 마디 못하고 꼼짝없이 벌벌 떨며 그 엄청난 매를 고스란히 다 맞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딸의 도리상,예의상 울어보려고 했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나의 아버지를 증오했으니까.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앙다문 이빨 사이로 나를 향해 터져나오던 그 거칠고 상스럽던 욕설, 나를 조준해 날아오던 몽둥이와 주먹질, 그리고 발길 질, 그 무서운 기억들은 내 가슴 깊은 곳에 박혀서 빠질 줄을 모른다. 깡그리 잊어보려고 노력해도 안된다. 남편의 말대로 모두 잊고 아버지의 기억을 떠나보내려 노력하는 데도 잘 안된다.

머리로는 되는데 가슴으로는 안된다. 오히려 세월이 가면 갈수록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깊어지기만 한다.

아아, 나는 앞으로 어찌해야 할까.

-이계숙의 더 많은 작품은 http://kyesook.com 로 오셔서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