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지금 당신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는가. 사람 얼굴을 정면으로 바로 보지 못하고 비스듬히 쳐다보는 사람, 그리고 늘 곁눈질을 하는 사람.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고 말 뒤끝을 항상 흐리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는가.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나는 상대방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상대의 눈을 응시하지 못하는 사람중의 하나다.
혹자는 말한다. 사람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사람은 음흉한 기질이 있어서 그렇다고. 뭔가 솔직하지 못하고 숨기는 게 있어서 그렇다고. 그런 사람도 혹 가다가 있겠지.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사람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어릴 때 자라면서 나 처럼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은 사람이라고.
나는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저 사람은 부모로부터 어떤 학대를 받은 사람일까, 저 사람은 얼마나 슬프고 아픈 사연을 가진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사람으로부터 동병상련의 감정을 아련하게 느낀다. 할 수만 있다면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고 싶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같이 부여안고 밤새도록 우리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펑펑 울고 싶다.
낳았다고 부모가 아닌 것을, 밥만 먹였다고 부모가 아닌 것을. 나의 부모는, 그들의 부모는 우리들의 부모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리를 낳았을까. 이렇게 평생을 가도 지워지지 않는 지독한 상처들을 남기어 줄 거면서 무슨 생각으로 우리들을 낳았을까.
사랑 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의 특징은 자존감이 낮다는 것이다. 자신을 아주 쓰레기처럼,길가에 굴러다니는 개똥처럼 하챦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나 역시 그랬다. 어릴 때 나는 나 같은 것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찌감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렸어야 할 존재라는 생각이 늘 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내가 죽어버려야 아버지도 편하고 박옥이도 편하고 집안이 편할 것 같은, 나아가서는 온 세상이 편할 것 같은 생각,그런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머리로는 늘 하나가득 당장 죽어버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을 했지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만약 당시에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해 죽는 방법을 서로 공유할 수 있었다면, 인터넷까지는 아니더라도 죽는 방법을 적은 책이나 종이쪽 한 장이 그 때 내 옆에 있었다면 나는 그대로 실행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테지.
그 모진 시절을 견뎌내고 지금 내가 이렇게 미국까지 와서 살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아버지, 아버지. 차라리 날 맹글지 말고 맷방석이나 만들지. 모하러 날 낳아서 이 고생을 시키나....'하는 어느 지방의 민요가 딱 내마음을 표현한 것 같아서 남몰래 눈물을 흘렸던 나, 그런 내가 미국땅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리며 태어난 걸 감사하고 있다는 게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때 내가 겪었던 그 처참함이 이렇게 편하고 행복한 생활을 위한 초석이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아아, 그때 그 시절은 너무나 힘들었다.그리고 서러웠다.
내가 아버지랑 박옥이와 같이 살은 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부터,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딱 7,8년 남짓이다. 그러난 나는 그 7,8년동안 보통 사람은 평생을 겪어도 다 못겪을 일들을 겪었다. 평범한 아이라면 평생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할 욕설을, 그리고 보통 아이라면 평생 가도 한 번 맞아 보지 못할 매를 다 맞았다.
만약에 내가 중학교를 다니기 위해 그집에 머물렀으면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욕 듣고 매맞는 기간이 더 길어졌을테지. 아니다. 어쩌면 나는 매에 못이겨 어느 날 아버지의 손에 죽어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아버지는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대로 '죽은 개 시체 끌 듯이 나의 몸뚱이를 질질 끌어다가 뒷산 어느 곳에 묻어줄'지도 몰랐다.
아니다. 묻어 줄 아량이나 있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냥 쓰레기 버리듯 작고 마른 검불같은 내 몸뚱이를 둘둘 거적에다 말아다 어느 산등성이에 던져놓고 손을 털고 돌아갈 것이었다. 당시 내가 아는 아버지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중학교를 가지 않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 무시무시한 집을 나왔다. 내 자의로 걸어나온 건 아니고 둘째 고모의 손에 의해서이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서너달 전부터 선생님은 중학교에 진학할 학생들의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중학교도 의무교육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당시만 해도 중학교는 특히, 내가 살던 촌에서는 중학교에 가는 것은 일부 형편이 되는 아이들만이었다. 그때 우리반에는 일흔 두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는 오십명 정도 되었다. 선생님은 중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명단을 적고는 그들에게 입학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오라고 일렀다. 그리고 졸업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선생님은 조회시간에 다시 한번 누락된 아이들이 없는지를 재차 확인했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고 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아이중 상황이 변경된 사람이 있는지? 오늘 오후까지 서류를 가져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
중학교에 진할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얼굴을 나는 무덤덤하게 바라보았다. 중학교?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 건데?
박옥이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이고, 저 가시나가 중학교에 진학하고나면 이 지랄같은 생활이 3년이 더 늘어 나네.저 개같은 가시나의 얼굴을 3년이나 더 봐야 한단 말이니 이를 우짤꼬. 중학교고 지랄이고 공장에다 콱 집어넣어 더 이상 내 눈에 안띄게 해주지...저 가시나 얼굴 좀 안봤으면 내가 소원이 없겠는데, 내가 살이 팍팍 찌겠는데........"
버러지 같은 나 같은 인간을 그동안은 학교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있었으나 이제 학교도 졸업했겠다, 제발이지 어서 집을 나가 죽던지 말던지 자기 눈에 안뜨이게 좀 해달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할 때의 박옥이는 너무나 절박해보였다. 내가 그 앞에서 좀 더 얼씬거렸다간 당장 숨이라도 막혀 죽어버릴 것만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말을 아침저녁으로 들으면서 나는 고민했다. 내가 이 집에 더 있다간 나 때문에 박옥이가 죽겠다. 얼른 내가 없어져 주어야겠구나...내 모습을 감추어 주는 것만이 박옥이를 살려주는 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항상 박옥이를 우선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불쌍해서, 그녀의 척박한 삶이 가여워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박옥이를 살려주기 위해 중학교 진학을 위한 원서를 넣지 않았다. 그리고 나 또한 박옥이와 더 이상 같이 살 자신도 없었다.
나중에 철들고 나서 이 문제로 박옥이랑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 박옥이가 내게 그때 넌 중학교를 왜 안갔다니,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박옥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인간이 어쩌면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제가 나한테 했던 그 지독한 말들을, 그 비수같은 말들을 다 잊어버렸단말인가.그때 나는 박옥이가 해준 국수를 먹고 있었는데 국수그릇을 그녀 얼굴에 엎어 버리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뭐어?중학교를 왜 안갔냐고?
하긴 중학교를 못가므로 내 인생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지만 그때 박옥이의 얼굴,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는 듯 시침을 뚝 떼고 있는 얼굴은 천연덕스러웠다.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 가증스러보여 나는 국수그릇에 코를 박았다. 나를 중학교에 넣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박옥이,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때 아버지가 너를 중학교에 넣으려고 교육청으로 어디로 쫓아다니면서 얼마나 애를 쓴 지 아니?"
그랬지. 아버지는 나중에야, 중학교 원서마감이 다 끝난 후에야 동으로 서로 뛰어다녔었지.
졸업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아버지는 생각난다는 듯 퉁명스레 물었다.
"학교에서 니네들 중학교 원서 넣으란 소리 아직도 안해?졸업이 낼 모렌데?"
나는 말했다.원서접수 벌써 끝난 지가 옛날이라고.그리고 나는 원서를 넣지 않았다고.
아버지가 밥상에 숟가락을 소리나게 놓으면서 다그쳤다.
"야이, 병신같은 새끼야. 그걸 왜 이제와서야 말하는 거야?"
박옥이때문이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박옥이 앞에 더 얼씬거리다간 저 여자가 나 때문에 죽을 것 같아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나면 공장이든 술집이든 박옥이 눈앞에서 사라질 생각이어서 그랬다고 말하지 못했다. 나는 밥먹는 것도 잊은 채 언제 아버지의 주먹이 날라올까, 그리고 그 주먹을 어떻게 피할까를 궁리했다. 그리고 숨을 죽이고 곁눈질로 아버지의 기색을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애새끼가 어쩌면 저리 병신같을까....아이고, 쪼다 머저리 같은 새끼....말을 해야 알지, 말을......."
그때 나는 박옥이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내가 중학교에 못가게 됐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회심의 미소가 피어났는지 어쨌는지를 나는 보지 못했다. 나는 그때 아버지의 주먹이 날라올까봐 그게 너무 무서워서 박옥의 얼굴표정까지 살필 겨를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내가 중학교에 가지 못한 건 순전히 박옥이때문이다.나는 그녀를 살려야 했으니까. 나의 중학교보다 박옥이의 목숨이 더 중요했으니까.
그런데 가증스럽게도 박옥이는 그걸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일은 그 뒤로도 한 번 더 있었다. 역시 철이들고 나서다. 아버지가 나를 개 패듯이 늘 팼다는 이야기를 박옥이 앞에서 한번 한 적 있다. 그런데 박옥이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놀라는 표정을 짓는 것이다. 자기는 전혀 모르겠다면서, 전혀 기억이 안난다면서.
"네 아버지가 나를 패긴 했지만 너를 패다니, 글쎄 난 전혀 기억이 없구나"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박옥이 한테 악을 썼다.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아버지가 나를 팼다! 그때, 아버지한테 내가 개처럼 맞을 때 옆에 박옥이 당신이 분명 있었다! 그런데 기억이 안난다니 말이 되느냐!
빤히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는 박옥이가 답답하고 미워서 나는 펄쩍펄쩍 뛰었다. 그러나 박옥이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하도 감쪽같이 시치미를 떼니까 혹시 어떠한 충격으로 박옥이가 옛날 기억을 일시적으로 잊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글쎄,다른 기억은 잘하면서 왜 나와 아버지와 관련된 기억만 못하는지 모르겠다.
지가 죽일 듯이 미워하고 죽일 듯이 구박했던 내가 성인이 되어 아무일 없었다는 듯 저한테 극진히 잘하니까, 옛날에 제가 나 한테 했던 그 끔찍한 일들을 다 용서한 듯 단 한 마디 입밖에 내지 않으니까 저도 차마 양심이 있어 그랬던 것일까.
어쨌든 나를 중학교에 집어넣기 위해 아버지는 박옥이 말대로 며칠을 이곳저곳으로 쫒아다녔다. 그러나 원서마감이 지나도 훨씬 지난 후였으므로 일년 꿀려 내년을 기약하라는 말을 듣고 올 뿐이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동분서주 뛰어다는 걸 보면서도 아, 아버지가 그래도 나를 위해 저렇게 노력을 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할 뿐이었다. 나중에 집을 나와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점차 회복되었지만 그때 나는 정상적인 사고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로 변해있었다. 부당함을 당해도 항의하지 못했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아름답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했다. 슬픈 것을 보아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아프다, 배고프다 같은 원초적인, 동물적인 본능뿐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희노애락의 감정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학대받고 자란 아이들의 전형적인 증상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이를테면 살인마가 사람을 죽일 때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와 같은 부류의 증상이라고 한다. 작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국의 강모도 어릴 때 부모의 학대를 받았다는 이웃과 친척의 증언이 있었다. 이처럼 부모의 학대는 한 인간의 감성을 철처히 파멸시키는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반아이로부터 도둑으로 몰린 일이 있다. 그때 나는 밤을 새워 만든 헝겊 인형을 학교에 가지고 가서 반 아이들에게 자랑을 했는데 B라는 성을 가진 아이하나가 자기 것인 그 헝겊 인형을 내가 훔쳐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인형의 배를 갈라보면 자기가 말한 색깔의 헝겊이 나올 것이라고 장담까지 하는 것이다. 나는 기가 찼다. 그때까지 변변한 장난감 한 개 가져보지 못하고 처음으로 내 손으로 밤새 만든 인형을 자기 것이라니. 그 아이가 하도 당당하게 말하니까 옆에 있는 아이들도 다 그 말을 믿는 눈치였고 나는 내 편이 한명도 없는 상태에 놓였다. 나는 주눅이 든 채 잔뜩 움츠려 있었다. 아니라고, 이 인형은 내가 만든 거라고 말 한마디 못하고 말이다. 그때 반장이 나섰다. 인형의 배를 가르기로 한 것이다. 반장은 백지에 B가 부르는대로 헝겊의 색깔을 썼다. 하얀 무명솜과 색동헝겊, 그리고 상아색 헝겊이라고 했다. 반장은 내게도 인형안의 내용물을 말 할 것을 종용했다.
"푸른색과 흰색의 줄무늬 헝겊이거든........"
나는 기어들어가는 듯이 대답했다.
박옥이가 어느 날 자신의 한복을 뜯어서 당시 태어난 막내동생의 포대기를 만들었다. 포대기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얻어다가 나는 인형의 속을 채웠던 것이다. 호기심으로 빛나는 수십명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반장은 연필칼로 인형의 배를 부욱 그었다.
" ! "
물론 인형의 배에서 나온 건 내가 말했던 푸른색과 흰색의 줄무늬 헝겊이었다.
금방이라도 죽일 듯 하며 나를 도둑 취급하던 B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B가 내게 씌운 도둑누명 때문에 멀쩡한 내 인형이 망가졌지만 뭐라고 항의하고 따져야 하는지 나는 그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와 박옥이에 의해 나는 철저한 바보가 되어있었다.
60년대 초,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학교가 유일한 피난처였던 나는 갈 데가 없어졌다. 나는 집에 죽치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제나저제나 둘째 고모의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둘째고모의 시동생이 D시에서 큰 섬유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에 자리가 비면 나를 데려가기로 했던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박옥이의 희스테리와 구박은 날이 갈수록 더욱 극심해졌다. 누가 옆에 있거나 말거나 그녀는 '아유, 신경질 나'하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 이유는 모두 나 때문이었다. 내가 설거지를 늦게해서 신경질이 나고 밥물을 제대로 맞춰 붓지 않아 신경질이 나고 불 때는데 시간이 걸려 신경질이 나고 아침에 내가 늦잠을 자 신경질이 난다고 했다. 내가 무엇을 하던 간에 그녀는 신경질이 난다고 했다. 나의 얼굴만 봐도 신경질이 팍팍 치솟는다는 거다.
아버지가 가끔, 그러니까 내가 자신의 말을 안들었다거나 자기를 화나게 했을 때만 무시무시한 욕설과 나의 신체에 대한 저주로 나를 공격했다면 박옥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고 진짜 단 1분도 쉬지 않고 나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악담과 비난을 하루종일 퍼부었다.
"아이고 죽겠네. 내가 저 더러운 가시나 얼굴 꼴 뵈기 싫어 죽겠네. 저 가시나 얼굴 제발 단 하루만 안봤으면 내가 살겠는데..."
"저 가시나는 나를 말려 죽일려고 태어난 가시나가 틀림없는 거야...."
"어느 씹구멍에서 내질렀길래 저렇게 말을 안듣는지......"
"도대체 뭘들 쳐먹고 저 가시나를 만들었길래 저런 개같은 가시나가 태어났는지......."
그런 욕을 먹고도 나는 미치지 않았고 정신이 돌지 않았다. 왜냐면 그런 욕설은 나의 일상생활이었으니까.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일상생활. 지금 만약 누구로부터 그런 욕을 단 한 마디라도 듣는다면 나는 분하고 억울해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힘으로 못한다면 같이 욕을 해주기라도 하며 내 감정을 표출 할 것이다. 그러나 7,8년을 하루같이 그런 욕설을 매일 들은 나는 그게 욕인지도 몰랐다. 수치스럽지도 않았고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때 얻은 먹은 욕설들이 내 가슴속에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차곡차곡 쌓여 갈줄 몰랐다. 해일이 일면 떠오르는 모래알처럼 몇 십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떠올라서 나를 괴롭힐 줄은 몰랐다. 그때 얻어먹은 욕들이 지금도 내게 환청처럼 다가온다. 그 끔찍한 단어들이 나비처럼 나의 머릿속을 채우면서 날아다닌다.
그런 지옥같은 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봄을 얼마 앞둔 3월의 어느 날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박옥이의 잔소리와 욕설이 아침부터 폭탄처럼 퍼부어지던 그날, 그날 나는 그 무시무시한 지옥의 소굴을 탈출할 수 있었으니까. 박옥이의 소원대로, 아버지의 소원대로 그들 눈 앞에서 썩 꺼질 수 있었던 날이니까. 그리고 그집에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날 아버지는 마당에서 작은 손도끼로 땔감으로 쓸 장작을 패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 옆에서 뽀개진 장작을 줏어다가 마당 한켠에 쌓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오금이 저려서 벌벌 떨며 그일을 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부터 박옥이는 내게 잔소리와 고함을 질렀다. 때문에 아버지는 '기집년이 아침부터 아가리를 놀린다'며 박옥이와 한판 붙었고 잔뜩 화가 나 있었다. 화가 나면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사람이 아버지인지라 여차하면 장작을 뽀개던 도끼가 불시에 내 대갈통을 향해 날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질금질금 울면서, 아버지의 눈치를 보면서, 마당 여기저기 날아간 장작을 줏으러 다녔다.
아니나 다를까, 겁에 질려 걸음도 제대로 못걸어 비척대던 나는 다리가 꼬인 상태로 장작을 한아름 안고 마당에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아버지가 고함을 질렀다. 저,저런 병신같은 새끼! 저런 쪼다같은 새끼는 뭘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아버지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을 뿐 다행히 나를 때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장작을 패다간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겠단 생각이 들어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는지 도끼를 마당에 내던지면서 내게 명령했다. 집에서 4키로 정도 떨어진 산밭에 가서 아버지가 두고 온 연장을 가져 오라고. 아버지의 무서운 손아귀와 박옥이의 잔소리에서 해방되어 나는 나를 듯이 산밭으로 달려갔다. 당시 아버지는 야산의 일부를 사들여 감나무를 심었는데 그 밭을 우리 식구들은 산밭이라 불렀다.
산밭으로 가는 길은 동네 한복판을 지나야 했는데 동네를 지날때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3월이라곤 했지만 아직도 매서운 찬바람이 몰아치는 계절에 내복도 입지 않고 양말도 신지 않은 내 헐벗은 차림새가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동네의 내 동창들 거의 반 이상이 간 중학교를 가지 못한 나를 누가 알아볼까 부끄러웠던 것이다.
아버지가 말하는 연장을 줏어들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 골목 어귀에 여자 둘이가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한눈에도 그 두 여자가 둘째 고모와 박옥이임을 알아보았다.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아, 둘째 고모가 나를 데려가려고 왔구나! 나는 이제 곧 집을 떠날 수 있겠구나!
D시에 있는 공장일은 힘들다고 했다. 하루 열 두시간씩, 점심 시간 삼십분을 제외하고는 휴식시간도 없이 일을 해야 하며 일 주일씩 교대로 야근도 해야 한다고 했다. 열서너명이 자야 하는 기숙사 방은 좁아터졌으며 식사도 형편없이 부실하다고 했다. 그러나 내게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박옥이를 살려야 했으니까. 박옥이는 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콱 막혀 죽을 것 같다고 매일 말했으니 박옥이를 살리기 위해선 나는 그 어디라도 가야했다.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달려서 집에 도착했다.
"고모야!"
나는 고모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날 나는 아버지와 둘째고모, 그리고 박옥이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음식 솜씨가 꽤 괜찮았던 박옥이는 나물 두어가지와 생선, 찌개등 평소 때와는 다른 좋은 반찬으로 밥상을 차려왔다. 고모가 있었기에 더욱 신경을 쓴 밥상이었다. 나는 알았다. 내게 있어 그 식사는 그 집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식사였지만 결코 나를 위해 그렇게 신경써 밥상을 차릴 박옥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날 그 잘 차려진 밥상은 둘째고모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 없이 밥을 먹었다. 밥상 머리에서 일절 말을 하지 않는 아버지도 잠자코 밥을 다 먹었다. 둘째 고모와 박옥이만 시금치 나물 맛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밥을 다 먹고 숭늉까지 다 마신 아버지가 밥상을 물러나면서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썅년하고 이 개새끼 때문에 내가 딱 말라 죽을 것만 같다. 아무래도 이 두 인간들을 죽여버리든지 해야겠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말에 우리는 무척이나 놀랐다.
둘째고모는 찌개를 뜨던 숟가락질을 멈춘채 멍한 표정이었고 나는 입에 가득 문 음식을 씹을 생각도 못한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때 얼핏 본 박옥이. 박옥이는 눈을 내리깐 채 양순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둘째고모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벌써 앙칼지고 표독한 악다구니를 터트렸을 박옥이가 둘째고모가 있어선지 양순하고 순진한 표정을 짓고 얌전하게 입을 다물고 앉아 있는 것이다. 마치 자기는 여지껏 아버지한테 꽉 죽어 산 여자라는 듯이. 아버지의 말에 단 한마디 대꾸도 못해 본 여자같이. 그때 박옥이의 그 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인간의 얼굴 표정이 어쩌면 그렇게 손쉽게 두 개가 될 수 있을까.
고모가 정신을 차리고 얼른 말했다.
"오빠! 그래서 제가 영순이를 데려가려고 여기 오늘 와 있는 것 아닙니까. 이번 기회는 영순이 장래를 위해서도 아주 최상의 기회예요......"
그날 고모는 나를 D시에 있는 공장에 데려가려고 온 게 아니었다. 둘째고모는 당시 마악 붐이 일기 시작하는 신흥 종교를 믿고 있었는데(지금은 한국의 6대 종교의 하나로 꼽히는)그 종교단체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공부를 매우 잘하는 아이 하나가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도 진학 못한채 집에서 부모의 온갖 구박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그 아이가 알고봤더니 우리 둘째고모의 조카라 얼른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원한다면 중학교는 물론이요,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다 마치게 해주겠다고. 둘째고모는 그 제의를 받자마자 가게문도 닫아 건채 한달음에 우리집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고모는 사실 오면서도 걱정을 했단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나를 내어줄지 말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내가 아버지와 박옥이한테 사랑과 관심을 받지못하며 자라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지독한 학대를 받으며 살고 있는지 모르고 있던 고모로서는 당연한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날 아버지는 십년 묵은 혹을 떼어내듯, 마치 고질병인 종기를 도려내듯 나를 떼어냈다. 내일까지 기다리지도 말고 당장 오늘, 이 시간에 저 새끼를 데려가버리라고.제발 자신의 눈에 안뜨이게 해달라고. 혹시라도 그 종교단체에서 마음이 변해 나를 안받아 주거든 절대 집으로 도로 데려오지 말고 아무 버스나 태워 저 멀리에 보내버리라고.
그날 나는 둘째고모를 따라 집을 나섰다. 넝마같은 옷가지 서너벌이 담긴 작은 보따리 한 개를 들고서. 아버지와 박옥이에게 내가 잘 있으란 인사를 했는지, 그들이 내게 잘 가란 인사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고모의 뒤를 따라 묵묵히 걸었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 예의 그 기차 건널목이 있는 언덕길, 송은동이 치맛자락을 흩날리며 사라져가던 그 작은 언덕길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떠나온 집은 커다란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스레이트 지붕 한 쪽만 햇볕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보따리를 가슴에 안은 채 그 하얀 스레이트 지붕을 쳐다 보면서 흑흑 울었다. 고개를 떨구고 서러웁게 울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지금도 나는 그때 그 장면을 떠올리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이글을 쓰면서 지금도 울고 있다. 눈물이 키보드로 마구마구 떨어질 정도로 나는 많이 운다. 그 아무리 척박한 인생을 산 사람이라도 그때의 나처럼 서러운 기억은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열네살의 아이가 부모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집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향하면서 그래도 그곳이 자기가 살던 집이었다고, 그곳에 사는 그 악마같은 두 인간들이 부모였다고 그들과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울고 있는 장면. 내 인생에 있어 그때가 제일 가슴아프고 서러운 때이다.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아이가 보따리를 가슴에 안고 울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그 불쌍한 아이가 바로 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눈물이 나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아버지와 박옥이에게서 벗어났다. 그 후 신흥종교 단체에서 학교를 다니며 내 사춘기를 보냈고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결혼을 해 미국에 왔다.
지금도 잠 안오는 밤에는 늘 어릴 때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는데 이런저런 기억 속에서 나를 늘 궁금하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날 내가 둘째고모를 따라 집을 떠나고 난후 아버지와 박옥이는 어떤 심경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단 일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당장 나를 데려가버리라고 했던 나의 아버지,그리고 파리꼬이고 냄새나는 똥무더기처럼 나를 못견뎌하며 내가 제 눈 앞에서 없어지는 것이 일생일대의 바램이라고 늘 노랠 불렀던 박옥이, 그들은 그날, 내가 떠나간 후 무얼했을까.
내가 없어진 그날, 아이구, 이제야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졌네요, 마주보며 회심의 미소를 씩, 지었을까. 우리 싸움의 원흉이었던 지긋지긋한 골치거리가 없어졌으니 이제 우리 서로 잘해봅시다, 하고 격려들을 했을까. 그날 이후, 내가 떠나간 이후 그들은, 그들은 정녕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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