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우리가 살던 집 앞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나와 동생이 두 팔을 벌려 안아도 서로의 손끝이 닿지 않을 만큼 굵은, 적어도 몇 백년은 묵었을 오래된 나무였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가리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나무라고 했다.

해마다 보름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나무에다 울긋불긋한 헝겊들을 갖다 달고 산에서 새로 파온 황토를 나무 주변에 깔았다. 그리고 떡이니 전들을 가져와서 진열하고는 마을의 안녕을 비는 고사를 지냈다.

식구중 누가 횡액을 당했거나 우환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나무 앞에다 촛불을 켜놓고 절을 하며 빌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 나무는 서낭당 나무였던 것이다. 그런 나무가 우리 집 마당 한 가운데 버티고 있었던 거였다. 아니다. 그 나무는 원래부터 그 자리, 그러니까 할머니 소유의 밭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거고 아버지는 나무를 베어버릴 수 없었으니까 나무있는 곳을 마당으로 삼아 집을 지었다고 해야 옳겠다.

그리고 우리 집 옆을 흐르는 개울 건너편 둔덕에는 제법 큰 무덤이 하나 있었다. 한 사람의 무덤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큰 그런 형태의 무덤. 일 년 열 두달이 가도 누구 하나 와서 소주 한 잔 부어 주지 않는, 잡초와 나무가 한테 뒤엉켜 자라 세월이 갈수록 무덤이란 형체를 잃어가는 그런.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가르켜 피난민들의 무덤이라 했다.피난민이 아니고 왜 피난민들이라 했을까. 거기 무덤에 묻혀 있는 사람이 하나가 아닌, 여러명인 까닭이다. 6.25 사변 때 인민군에 의해 몰살한 사람들의 시체를 거기 한 곳에다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는 것이다. 몇 명인지도 모를 사람들의 시체를 그냥 동물 시체 묻듯 그렇게 묻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른인지 아이인지 남자인지 여자인도 모를 수 많은 시체들이 그 속에 묻혀 있다는 것이다.

그 무덤은 우리집 마당에서 빤히 보였다. 햇볕이 좋은 날엔 동생들이 그 무덤을 타고 놀기도 했는데 나는 그 무덤을 볼때마다 생각했다. 저 무덤 속에 나 또래의 여자 아이도 묻혀 있을까, 하고.

우리 집 앞을 흐르는 강은 수심이 별로 깊지 않았다. 가장 깊은 곳이라봐야 어른 키로 겨우 한 배 반정도였다. 그러나 그 강물에 해마다 사람이 빠져 죽었다. 물에서 건져 올려 거적을 덮어 논 시체를 내 눈으로 직접 본 적도 몇 번 된다.

시체를 건져 올린 다음엔 혼을 건져올리는 의식이 늘 거행되었다.괭과리 소리가 뎅뎅뎅 울려퍼지는 가운데 무당은 대나무에 단 긴 실을 물에 드리우고 이리저리 훑었다. 실에 머리카락이라도 한 올 걸리면 그게 죽은 자의 혼이라 했다. 물속에 잠겨 있던 혼이 걸린 거라 했다.

한 해 여름 D시에 사는 고등학생들이 단체로 물놀이를 왔다가 그중 한 남자 학생이 물에 빠져 죽은 일이 있었다. 아주 큰 부잣집 7대 독자 외아들이라 했다. 시체를 건져올리고 혼 건지는 의식을 하는 날, 동네사람은 물론 근처 이웃동네 사람들까지 구경꾼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큰 부잣집답게 혼 건지는 의식을 하러 온 무당만도 다섯명이나 되었고 괭가리를 치는 악수만도 세명이나 되었다.죽은 자의 극랑왕생을 빌러 온 스님도 서너명 되었다.

다른 사람과는 비교도 안되는 화려하고 장엄한 그날의 의식이 사람들에게는 큰 볼거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 나는 죽을 똥을 싸야 했다. 무당들과 죽은 학생 식구들의 라면을 끊여야 했기 때문이다. 의식을 치른 후 점심은 먹어야 했는데 근처에 마땅한 식당이 없으니 라면이라도 먹어야 했는데 아버지가 라면을 끊여주겠다고 자청하며 나섰다.물론 수고비는 아버지가 받아 챙겼고 박옥이는 장사하러 가고 없는 그날 나 혼자 스무 명 서른 명 분의 라면을 혼자 끊였던 것이다. 그것도 불을 때서.

하여튼 그날 다섯 명의 유명한 무당들이 오랜 시간동안 안간힘을 쓰며 혼 건지는 의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혼이 잘 건져지지 않아서 죽은 학생 엄마가 땅을 두드리며 통곡을 하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어찌 그런 곳에다다, 귀신이 드글드글한 그런 곳에다가 집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직업도 없고 돈도 없는 아버지가 평생 할머니 그늘에서 살 수 없었기에 내린 차선책이었겠지만 웬만한 사람은 엄두조차 못 낼 일이었다. 그런 무서운 곳에다 집을 짓고 살 생각을 하다니.

어릴 때라서 귀신의 의미를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나도 아버지를 닮아 간이 큰 것일까. 그집에 살면서 단 한 번도 무섭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또한 서낭당 나무에 붙어 산다는 귀신이나 강에 산다는 물귀신 또한 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건데 우리 집안에 늘 머물러 있던 그 썰렁한 냉기와 어두운 기운은, 그리고 식구들 사이에 늘 떠돌던 그 지독한 불화는 귀신들의 영향때문이지 않았을까. 내가 이날 이때까지 50평생을 살면서 당시 우리집 식구들처럼 자주 심하게 싸웠다는 사람들을 나는 여지껏 보지를 못했으니까.

우리 집의 일과는 서로 욕하고 때리고 헐뜯고 물어뜯고 울고 악쓰고 저주하고 증오하는 것이었다.싸움으로 하루가 시작되었고 싸움으로 하루 해가 졌다.아버지와 박옥이가 싸운 것처럼 우리 형제들도 엄청 싸워댔던 것이다. 귀신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는, 온전한 사람들은 절대로 그럴 수 없었으리.

그리고 아버지의 그 광기는, 아버지의 그 무시무시한 광기는 절대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나를 때리거나 박옥이를 때릴 때 아버지는 절대로절대로 맨정신의 사람이 아니었다. 악한 귀신이 씌어있는 사람이었다.

그날은 방학을 하는 날이었다. 여름방학이었는지 겨울 방학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찍 학교를 마친 나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우리반 아이 서너명과 함께였다. 나는 반 아이들을 집에 잘 데려가지 않았다. 내가 늘 더러운 냄새를 풀풀 풍기며 지저분하게 하고 다녔므로 나랑 친한 아이도 없었을뿐더러 우리집에 가겠다는 아이도 없었다. 또한 집안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절대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은 방학을 했다는 해방감에서였을까. 나는 집안 분위기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니, 아이들 서너명이 우리집으로 가서 내가 그리는 만화를 끝까지 보겠다고 집요하게 성화를 부려댔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성화에 못이겨 할 수 없이 그네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저만치서 우리집 담이 보이기 시작하자 내 발걸음이 눈에 뜨이게 느려졌다.그리고 내 마음은 불안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버지와 박옥이가 싸우지 않고 있을까. 제발 제발 사이좋게 있어야 할텐데....

그러나 나는 알았다. 오늘도 둘이 싸우고 있을 거라는 것을. 왜냐면 박옥이와 아버지가 사이가 좋을 때가 거의 없었으니까. 서로 싸우기 위해 같이 사는 사람들같았으니까.둘이 사이가 좋을 때를 보기란 장마철에 어쩌다 보는 햇볕 한 줄기처럼 힘든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아이들을 데려간 것을 후회했다. 할 수만 있다면 발길을 돌려 집에서 얼른 멀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친구들은 점심시간, 쉬는 시간에 잠깐씩 감질나게 구경하던 나의 만화 그리는 솜씨를 마음놓고 보게됐다는 기대에 부풀어 마냥 재잘거리고 있었다. 나는 발에 천근 나가는 돌덩이를 매단 무거운 걸음걸이로 집에 도착했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나는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어서고 말았다. 박옥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대문 밖에까지 들려왔기 때문이다.

"야이, 썅놈의 개새끼야. 내가 가겠다는데 네가 왜 말려?왜 말리냐고?나는 가고 말거야. 죽어도 갈 거라니까?!"

"이런 개 같은 년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네. 너, 오늘 내 손에 죽어 볼래? 더 맞아 볼거냐구?"

우당탕 물건 깨지는 소리, 아아악,하는 비명 소리, 퍽퍽 뭔가를 내리치는 소리, 동생들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내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사태를 알아차리지 못한 아이들은 멀뚱히 서 있다가 내가 사색이 되는 걸 보자 뭔가 짐작한 모양이었다.

"야, 영순아. 지금 니네 아부지하고 엄마가 싸우는 모양이다......"

"그러게. 아주 겁나게 싸우는데?"

"오메, 저러다가 네 엄마 죽겠다야. 네 아부지가 화가 아주 많이 났나 봐"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굴렸다. 나는 창백한 얼굴로 그러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려 말했다.

"얘들아. 미안해. 오늘은 그냥 집으로 돌아 가........."

내 말에 아이들은 할 수 없다는 듯 하나 둘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내키지 않은 발걸음을 떼어 앞서거니 뒷서거니 멀어져 갔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대문을 밀었다.

거기엔 지옥의 현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제일 먼저 본 것은 마당에 나동그라져 박살이 난 라디오였다. 지 몸보다 큰 건전지를 등에 지고 고무줄로 친친 동여매 있던 라디오, 자나깨나 쉼없이 뉴스를 전하고 연속을 읊어대고 노래를 불러대던 라디오, 그것은 서너조각으로 처참하게 박살이 나 있었다.

점심을 먹다가 싸움이 났던 듯 구석에 처박힌 밥상은 부러진 다리를 드러내놓은 채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그 옆에 김치며 콩나물이 담겼던 사기 그릇들은 내용물을 묻힌채 서너조각으로 깨져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마당 한 가운데 널부려져 있는 드럼통. 처음 이사간 후 몇 년은 강물을 길어다 먹었다. 그러다가 펌프를 설치했는데 펌프물에 얼마나 쇳내가 나던지 그냥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마당 한 귀퉁이에 수도꼭지가 달린 드럼통을 설치했다. 물을 길어다 채웠다가 이틀 정도 정수시킨 후에 마시면 쇠냄새가 가셔지는 때문이었다. 물이 늘 반 이상이나 담겨 있던 그 무거운 드럼통이 마당 한가운데에 나동그라져 있는 것이다. 쏟아져 나온 물로 마당은 한강이 되어있었다. 도대체 그 무거운 드럼통은 어떻게 쓰러트렸을까.

깨지고 흩어지고 부러지고 나동그라지고 널부러지고. 방이고 마루고 마당이고 할 것 없이 온집안이 난장판이었다. 둘이 싸울 때마다 집안은 온통 전쟁터가 되었지만 그날 싸움의 현장은 전쟁터보다 더욱 처참했다.

그리고 박옥이의 얼굴, 얼마나 맞았던지 두 눈덩이는 방금 쪄낸 찐빵처럼 퉁퉁 부어 있었고 뺨이며 턱이며 할 것 없이 멍 투성이 상처투성이였다. 그리고 수세미처럼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 한 쪽이 큰 구멍이 났던지 그곳에서는 쉬임없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아버지의 흰 런닝 셔츠에 묻어 여기저기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아버지의 런닝셔츠는 이미 박옥이의 손톱에 의해 갈기갈기 넝마같이 찢어져 있어 셔츠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방과 마루,마당 어디고 할 것 없이 핏자국이 군데군데 흩뿌러져 있었다. 싸움은 얼마동안이나 오래 지속되었으며 그동안 박옥이는 얼마나 피를 많이 흘린 것일까.

나는 정말이지 땅 밑으로 꺼지고 싶었다. 공기가 되어 멀리로 날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집안을 치워야 했기에. 그 난장판을 치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네년이 그 똥고집을 부리는 이유가 뭔데?뭣 때문에 거길 죽어도 가야하겠단건데?

"네 몸으로 내가 가겠다는데 왜 그래?왜 못가게 하는거야?"

육탄전에 지친 것일까. 둘은 마루에서 마주 보고 앉아 악을 써대고 있었다. 피 터지고 부은 얼굴을 서로 마주보면서. 성난 짐승처럼 으르릉거리면서.

"네 년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구나? 내가 오늘 네 년 모가지를 비틀어놓고 말테다"

"그래, 내 모가지를 비틀던 칼로 짜르던 죽여라, 죽여! 이 개새끼야. 죽이라니까?!"

"이 개같은 년이?"

아버지의 손이 철썩, 하고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로 범벅을 하고 있는 박옥이의 얼굴을 쳤다.

뺨을 맞은 박옥이가 아버지에게 달려드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개새끼야! 왜 때려, 왜 때려, 왜 때리냐구?!"

아버지가 다시 박옥이의 얼굴을 쳤다.이번에는 손바닥이 아닌 주먹으로. 박옥이는 그 자리에 푹 꼬꾸라졌다.

"이년아. 제발 죽어라, 죽어. 평생 다물어지지 않는 그놈의 요사스런 아가리 상대하기도 지쳤다. 오늘 제발 죽어버리라니까......."

이버지는 쓰러진 박옥이를 아예 질근질근 밟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미친 듯이, 숨이 넘어가게, 이 세상이 끝나는 것을 본 아이처럼 공포에 질려서.

그들이 싸울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을까. 어린 나는, 아무런 힘이 없던 나는 그저 목이 터져라 우는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싸움이 점점 격렬해지면, 아버지의 손에 박옥이가 죽을 것 같은 위기감이 들면, 나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둘의 싸움을 말렸다. 아버지의 허리를 붙잡아 박옥이의 몸에서 떨어지게 해보는 것과 엉켜있는 둘의 사이에 끼어들어 안간힘을 써보는 것(번번히 아버지의 우왁스런 손아귀와 뒷발질에 차여 저만치 나동그라졌지만)그리고 보이지 않는 신에게 정신 없이 비는 일밖에.

"저러다간 옴마가 죽고 말거예요. 옴마가 아부지 손에 죽어요.제발, 제에발 싸움을 빨리 끝나게 해주세요 제발요 제에발요........"

 

그리고.

나는 큰 유리병을 대하는 게 무섭다. 큰 유리병을 보면 가슴이 후덜덜 떨리는 증상이 있다. 박옥이의 머리통 위에서 수십 조각으로 박살이 나 흩어지던 유리병이 떠올라서.

그날의 싸움은 내가 본 싸움 중 가장 지독하고 처참한 것이었다.

아내의 머리통에 한 대짜리 유리 소주병을 내리치던 아버지, 그 충혈되어 번득이던 눈. 유리병을 머리에 정통으로 맞고, 팥죽같이 진한 피를 철철 흘리던 박옥이, 머리를 비롯하여 얼굴, 그리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아프지도 않은지 펄펄 악다구니를 쓰며 미친 듯이 아버지에게 달려들던 박옥이, 그것은 악마들의 형상이었다.

나는 죽어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아니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의 기억을 잊기위해 내가 얼마나 무진 애를 많이 썼던가. 혼자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갈수록 선명해지는 그날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최면술사를 찾아 갈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주위에서 최면술사를 찾는다는 것은 별로 녹록치 않은 일이고 과연 최면이 어제 칠한 페인트처럼 선명한 핏빛 기억을 깨끗하게 지워줄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아아, 잊고 싶은 기억만 지워주는 알약이 있다면. 한 알 입에 탁 털어넣으면 거짓말같이 까맣게 기억을 지워주는 알약이 있다면 가격이 얼마든 간에 나는 그 알약을 사겠다.

그날의 싸움은 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동네사람들이 우우,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워낙 아침저녁으로 싸워대는 집이라 별로 새로울 것도 없었는데 사람들이 너도나도 고개를 빼고 우리 집안을 기웃거렸던 걸 보니 그날의 싸움은 유난했나 보았다. 구경꾼 중에는 성희를 비롯해 내 친구들도 몇 명 있었다.

동네사람들이 구경을 하거나 말거나 둘은 마당에서 미친 짐승처럼 뒹굴고 싸웠다. 치고 박고 밟고 차고 꼬집고 할퀴고. 둘의 싸움은 겊핏하면 마당에서 일어났는데 콧구멍만한 방안이 마음대로 치고 박기에는 협소한 까닭도 있지만 생활터전이 늘 마당인 까닭이다. 고기는 밤에 잘 잡히므로 밤에는 강에 나갔고 낮동안에는 마당에서 그물을 손질해야 했으니까. 둘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그물을 만지다가 늘 싸움이 붙는 것이었다.

늘 그랬던 것 처럼 나는 발을 동동 굴리며 여름 날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자지러지게 울었고 동네사람들은 신나게 구경했다. 그때 동생들은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없이 박옥이를 차고 밟고 때리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났다. 발과 주먹으로 때리는 게 도저히 성에 차지 않은 까닭이다. 아버지는 마당을 쓰윽 훑어 보았다. 그때, 마루 구석에 세워져 있는 한 대짜리 빈 소주병이 아버지의 핏발 선 눈에 뜨였다. 아버지는 그 소주병을 손에 꼬나쥐었다. 그리고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때까지 입에 거품을 물고 발악을 하고 있는 박옥이의 머리통에, 그때까지 자신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버둥대고 있는 박옥이의 머리통에 그 소주병을, 유리로 된 소주병을 내리쳤다. 유리병은 퍼억, 소리를 내며 박옥이의 머리위에서 산산조각이 났고 박옥이는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 장면을 본 나도 쓰러졌다.

아버지와 박옥이의 잦은 싸움에 이골이 난 동네사람들, 그래서 왠만하면 둘의 싸움을 구경만 할 뿐 절대로 말리지 않는 동네사람들도 이번에는 심했다 싶었던지 모두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버둥대는 몸부림에 모두 겁을 먹고 물러났다. 그리고 잘못하다간 자기들도 박옥이 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주춤주춤 하더니 모두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앞에서 얘기한 서낭당 나무 귀신, 6.25 때 몰살한 피난민들 귀신, 그리고 강물에 빠져죽은 수십명의 원혼들이 우리집을 늘 음울하고 어두운 기운으로 에워싸고 있었지만 그날, 소주병을 내리칠 때 아버지에게는 아주 악독하고 질이 나쁜 귀신이 씌여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왜냐면 아무리 화가 난 상태라도, 아무리 박옥이를 죽이고 싶을 만큼 분노가 극에 달해 있는 상태라 하더라도 맨정신으로는 절대로 사람의 머리통에다 그 무겁고 두꺼운 소주병을 내리칠 생각을 할 수 없으니까.

소주병을 머리에 맞은 박옥이는 죽지 않았다. 충격을 받은 듯 쓰러져 잠시 잠잠한 것 같더니 다시 꿈틀꿈틀 일어났다. 그리고 얼굴 형체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피 칠갑을 한 상태로 다시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그 장면은 꿈에 볼까 겁날정도로 무서운 장면이었다.

며칠 후 박옥이는 그때까지 피가 마르지 않은 상태인 머리 위의 상처를 내게 내밀었다.

"거기 유리조각이 몇 개 박혀 있을 게야. 그 유리조각 때문에 상처가 되게 따끔거리고 아프네. 그걸 좀 꺼내 줄래?"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몇 번이나 통곡하고 울었다. 그러나 박옥이의 머리통에 박혀 있던 유리조각을, 서너갈래로 찢겨 있던 머리통 상처를, 피딱찌와 함께 꾸덕꾸덕 말라가던 상처 속에서 날카롭게 고개를 내밀고 있던 유리조각을 떠올리면서 나는 다시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고 울었다. 정말로정말로 피울음이 난다. 아버지에게 맞아 터진 계모의 머리통을 들여다 보고 있는 어린 나, 겨우 열살, 아니면 열 한살이었을 나. 왜 내겐 보통 아이들이라면 가지고 있을 평범한 기억이 없을까. 왜 내겐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어둡고 끔찍하고 칙칙한 기억밖에 없을까.

아버지는 그쯤에서 포기했어야 했다. 왜냐면 박옥이의 입은 절대로 절대로 다물어지지 않은 영원불멸한 것이었으니까. 아버지가 극도로 싫어한 게 박옥이의 끊임없는 잔소리와 고함소리였고 그리고 모든 싸움의 근원이 바로 거기에 있었지만 박옥이의 입은 아버지의 주먹과 발길질로 다물어질 것이 아니었다. 세상이 두 쪽 난다해도 다물어지지 않을 것이 있다면 박옥이의 입이 아니었을까.

그 전에도 그 뒤로도 둘의 극렬한 싸움은 그치지 않았다.내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싸움만도 수백 번이 더 된다. 내 눈으로 보지 않은 것, 그러니까 내가 집을 떠나고 난 후에 싸운 것 까지 보태면 아마 천 번은 족히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둘째 고모의 손에 이끌려 내가 그 지옥의 소굴같은 집을 떠나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들 싸움의 원흉이 보통 나 때문이었으니 내가 그들 눈앞에 사라짐으로 싸움은 없어질 걸로.

내겐 바늘 끝만큼의 사랑도 애정도 주지 않은 부모들이었지만, 늘 무시와 저주와 학대를 일삼은 부모였지만 그래도 어린 내게 기댈 곳은 그들 뿐이었다. 부모는 부모였다. 그래서 부모와 헤어지는 게 슬퍼서 눈물을 흘렸지만 한편으로 내가 다행으로 생각한게 있다면 둘이 더 이상 싸우지 않을 거라는 기대였다. 내가 없어지면 더 이상 안싸울 걸로 생각했다. 행복하게 살 걸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여전히 싸웠던 것이다.

일년에 한 두 번, 집에 다니러 갔을 때 싸움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박옥이의 얼굴과 몸에서 난 상처로 알 수도 있었고 부러지고 깨져서 집안 여기저기에 팽개쳐져 있는 살림살이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고 철 모르는 동생들의 입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아부지하고 옴마 요즘은 안싸우나?"

자나깨나 둘의 싸움질이 내겐 걱정거리였기에 나는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동생들한테 그것부터 물어보았다.

"안싸우기는. 일주일 전에도 한 판 했고 어제도 대판했다."

동생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늘 덤덤하게 대답했다.

종교단체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둘째 고모네 집에 다니러 간 적이 있다. 둘째고모부의 생일을 맞아 종교단체에서 반나절 시간을 내어 준 것이다.같은 하늘 아래, 별로 멀지 않은 지역에 살면서도 나는 일년에 두 번 그러니까 설과 추석에, 한 번에 한나절 정도밖에 집에 다니러 가지 못했다.

그런데 평일에 외출을 할 수 있다니.그것은 예외의 사건이었다. 그 종교의 독실한 신자인 고모가 부탁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날 나는 오랜만에 반나절의 외출을 허락 맡아 신바람이 나서 고모집에 갔다. 그런데 안방과 마루를 꽉 채운 손님중에 아버지와 박옥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내가 집안팍을 살피며 두리번 거리자 고모가 말했다.

"그렇게 두리번 거릴 것 없다. 네 아버지는 오지 않을 테니까......"

고모가 말했다. 며칠 전 아버지와 박옥이가 큰 싸움을 했다고. 싸움의 원인은 아버지의 바람이었다고. 얼마나 심하게 팼던지 박옥이가 기절을 해버렸을 정도라고. 그래서 그 소식을 들은 둘째 고모부가 '마누라 패는 인간같지 않은 인간은 내 생일에 올 자격도 없다'며 초대를 하지 않았다고.

나는 눈물을 흩뿌리며 일어섰다. 당장 집에 가볼 참이었다. 박옥이가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기절할 만큼 맞았다는 박옥이의 안부가 걱정이 되어서, 그리고 기절할 만큼 박옥이를 때린 아버지가 증오스러워서 그냥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한테 맞아 죽더라도 오늘은 기어코 한 마디 해야 하겠다고 나는 작심했다. 아부지, 제발 옴마 좀 그만 때리세요, 하고!

고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대문을 나서려는데 마침 박옥이가 들어왔다. 며칠이 지난 그때까지 아버지한테 맞은 상처가 낫지 않았던 듯 피딱지가 가득 앉은 퉁퉁 부은 얼굴을 해가지고.

나는 박옥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우리는 서로 부등켜 안았다. 나는 엉엉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남편이란 작자, 그 짐승같은 인간한테 기절하도록 맞고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박옥이가 고맙고도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박옥이 역시 자신의 불쌍하고 초라한 처지에 저절로 눈물이 났는지 흑흑 짐승같은 소리를 내며 흐느껴 울었다 .

생일상을 받아 먹으려고 온 손님들이 방과 마루에서 고개를 빼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통곡했다.

나는 박옥이에게 묻고 싶었다. 내가 없어 졌는데도 왜 행복하게 잘 살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싸움질이냐고 묻고 싶었다.

"싸움의 원인이 나 때문이라고 했쟎아? 내가 말을 안들어서 늘 싸운다고 했쟎아? 내가 없어져야만 행복할 거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쟎아? 엄마 소원대로 내가 없어져 주었는데 왜 싸웠어? 내가 없어지면 안 싸울 줄 알았는데 왜 싸웠어?왜 싸웠냐고?"

그러나 소심한 나는 그 말을 묻지 못했다. 그저 닭똥같은 굵은 눈물을 철철 흘리며 울고 또 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