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일요일은 날씨가 음산하게 흐리고 찌푸드했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비가 올지 모르니까 반 접어지는 우산을 백에 넣고, 많이 걸어야 할 것을 대비해 운동화를 찾아 놓고. 그리고 지갑에 돈이 넉넉히 있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나갈 준비는 완벽하게 한 것 같은데 막상 대문을 나서자니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나는 도로 방바닥에 주저 앉았다.

문을 나서지 못하고 밍기적거리는 나를 보고 성희가 말했다.

"왜 혼자 가려니 겁나니? 내가 같이 가 줄까?....."

"............."

나는 고개를 저었다. 초가을답지 않게 춥고 궂은 날씨 속으로 성희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었으니까.확실치도 않은 일을 하러 가면서.

나는 단단한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섰다. 어쨌든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었으니까.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길 모퉁이의 동네 구멍가게에 들렀다. 우유 한 병과 500원짜리 '가나 쵸코렛' 한 개를 사고나서 시외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을 확인했다. 구멍가게 주인여자가 서울에서 몇 년을 살았으면서 어떻게 시외버스정류장 가는 길도 모르냐면서 의아해했다.

"시외로 나갈 일이 있었어야죠......."

그렇다. 서울에 몇 년 살았지만 시외버스를 탈 일이 전혀 없었다. 특히 경기도 외곽 지방으로 가는 시외 버스는. 그러나 나는 그날, 그 초가을 아침, 누군가가 동네 공터에 심은 코스모스가 울긋불긋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던 그 가을 날 아침. 나는 I군으로 가기 위해 시외버스를 탔던 것이다. 다름 아닌 나의 생모 송은동, 그 여자를 찾기 위해.

내 나이 스물 중반 때 미국 영주권자인 남편과 결혼을 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들어오는 수속을 밟기 위해 나는 동분 서주하고 있던 어느 날 이민수속을 대행해 주던 업체로 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송은동이 아직도 아버지의 아내로 호적에 등록돼 있다는 연락을.

대행업체에서 요구했다. 그녀의 주민등록이 말소돼 있어 수속을 더 이상 진행 할 수 없으니 송은동을 아버지의 호적에서 빼던지(송은동의 동의 아래) 그렇지 않으면 송은동의 새 주민등록증 사본이 필요하다고.

나는 그 연락을 받고 사흘 밤잠을 못잤다. 아버지에 대한 치솟는 분노 때문에. 도대체가 아버지란 작자는 내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 아닌가. 유식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몇 십년이 지난 그때까지 호적 정리 하나를 제대로 못해 놓다니.

밤잠을 못자고 가슴을 끓였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가 빨리해야 할 일은 어서 송은동을 찾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을 호적에서 빼버리고 박옥이의 이름을 현재의 아버지 아내로 집어넣는 일이었다. 아버지와 몇 십년을 같이 살았으면서도 아내로 등재조차 못하고 있었던 박옥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엾음에 새삼 마음이 저렸다.

내가 집을 떠난 몇 년 후 아버지와 박옥이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것도 박옥이를 늘 불쌍하게 여기는 둘째 고모가 '식도 못올린 처녀 귀신으로 세상을 떠나게 할 순 없다'면서 서둘러서 올리게 한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이라고 할 것도 없다. 아버지 형제들만 모인 자리에서 간단하게 사진을 찍고 식사를 같이 한 것 뿐이다. 그래도 명색이 결혼식이니 아버지는 새 양복을, 그리고 박옥이는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나는 연락을 받지 못했기에 그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나중에 사진으로만 보았는데 나이 사십줄에 들어 입은 박옥이의 웨딩드레스가 유난히 어색하고 어설퍼서 마음이 찡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나는 송은동을 찾으러 나섰다. 하늘에 맹세코 송은동이 보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면 그녀는 나를 ,내 동생을 버리고 떠난 여자였으므로. 송은동이란 여자는, 걸핏하면 마누라나 패는 성질 더러운 아버지랑 살아보려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다 지쳐서 나가버린 것도 아니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힘들어서 나가버린 것도 아닌, 아버지가 피운 바람에 맞바람을 피우다 나간 여자 가아닌가 말이다. 젊은 군인과 정분이 나서 히히닥시시닥 거리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내가 그녀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할리가 있나. 자기 몸으로 낳은 자식을 둘이나 팽개치고 욕정에 눈이 멀어 떠난 여자를 그리워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엄마와 자식 관계는 천륜 아닌가. 말 그대로 하늘이 맺어준 관계. 늘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나는 눈물이 났고 가슴이 아렸다. 그것은 보고 싶다거나 그리운 감정과는 다른 것이었다.

I군으로 가는 시외버스안에서 나는 불안으로 저려오는 가슴을 감추고저 커다란 쵸코렛 한 개를 다 먹었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격도 아니고 이십년 전의 아득한 기억만 가지고 송은동을 찾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성희에게 손가락으로 브이 자까지 그려보이고 씩씩하게 집을 나서긴 했지만 불안하고 겁이 났던 것이다.

그랬다. 나는 20년전의 내 희미한 기억력만 믿고 길을 나선 것이었다.

어릴 때 송은동을 따라서 가 본 외갓집. 버스 정류장에 내려 산길과 들길을 한참 들어가야 하던 산골, 실개천이 졸졸 흐르던, 송은동이 걸음을 멈추고 나와 동생의 얼굴과 손을 씻겨주던 맑은 개울이 있던 꿈속처럼 아스라한 고장, I군의 한 동네. 넓은 대청 마루가 있고 창호지를 바른 방문이 있던 송은동의 옛날 집.

I군에 산길을 걸어 개울을 몇 개 건너면 위치해 있는 기와집이 한 두개일까. 더구나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십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 기와집이 아직도 있을리는 만무했다.나는 안개처럼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좀 더 뚜렷한 단서를 찾기위해 버스 안에서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나는 그날 운이 너무 좋았다.

그날 버스 안에서 송은동의 남동생, 그러니까 내겐 외삼촌이 되는 송은우를 안다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바로 내 옆 좌석에 앉은 늙은 아줌마에게 혹시 송은우를 아느냐고 물어본 것이었는데 그게 즉효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희한 것이 어쩌면 그렇게 쉽고 수월하게 송은동과 연락이 닿을 수 있냐하는 것이다. 거의 이십년을 인연이 끊어져 있던 사람들과 말이다.

내가 평소에 늘 원망해마지 않던 신이 그날만은 내 편이 되어 나를 도와준 것일까. 20년 전에 바람나 떠나버린 생모를 찾아나선 내가 불쌍해서?

혹시 송은동이나 송은동의 동생, 송은우를 아느냐고 묻자 촌로는 고개를 갸웃했다.

"송은우? 우리 이웃 사람이었제. 근데 아가씨가 그 사람을 왜 찾누?"

송은우가 내 외삼촌이라고, 그리고 내가 송은동의 딸이라고 말을 하면서 나는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말거나 나는 엉엉 울었다. 늙스구레한 촌로의 거친 손을 부여잡고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그때.그동안 한 번도 그리워 해보지 않았던 송은동, 박옥이나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할 때마다 당신이 나를 이렇게 버려두고 떠났기 때문이야, 하는 분노와 원망만 끓어오르던 송은동.그런데  송은동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났던 것이다. 홍수같이....

"그래. 네가 정말로 은동이의 딸이란 말이냐?내가 널 마지막으로 본 게 두서너살 때였는데 네가 이렇게 장성했단 말이냐?"

촌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내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그리고 눈물로 앞섶을 적시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래, 얼마나 네 엄마가 가슴에 그리움으로 사무쳤으면 그렇게 눈물이 난단 말이고.....가엾기도 해라"

촌로는 손을 뻗어 내 손을 꼭 쥐었다.

"은동이가 어디 사는지는 난 모른단다. 그러나 네 삼촌은 가끔 왔다가고는 하니까 전화번호가 어디 있을 게다.그나저나 참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구나.나는 오늘 사촌 언니가 아프다고 해서 I군에 다니러 가는 길이었단다. 나 역시 몸이 좋지 않아 별로 오고 싶지 않았는데 아침부터 누군가가 나를 끌어당기더니 바로 너였구나. 너를 만나려고 그랬구나..."

그래, 버스안에서 그 촌로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송은동을 찾아내는데 참으로 많은 애를 먹었지도 모른다.

촌로를 따라 I군 사촌 언니 집이라는 곳을 갔을 때 나는 또 한번 눈물바람을 했다. 그곳에 마실을 와 있던 사람들, 내가 버스에서 만났던 촌로들과 비슷한 나이대의 서너명의 사람들이 내가 송은동의 딸이라는 말을 듣자 모두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고, 피는 못속이네. 어쩌면 그리 은동이랑 똑같이 닮았누?"

"진짜네. 정말로 빼다 박았구만"

송은동과 헤어진 이후 그 누구 입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들을 들으면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점심을 얻어 먹고 나는 촌로가 건네준 전화번호로 그 자리에서 송은동의 동생 송은우에게 전화를 했다.

"저, 저는 영순이라고....전화받으시는 분의 누님, 송은동의 딸인데요...저, 기억하세요?"

내가 영순이란 이름을 밝히자 전화기 속의 송은우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뭐라고? 네가, 네가 정말로 영순이란 말이냐?"

송은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허둥지둥하는 목소리로 몇 번이고 내가 영순이 임을 재확인했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그래, 네가 언젠가는 네 엄마를 찾을 줄 알았다. 그건 그렇고 이리로 당장 오너라, 아니구나. 일단은 네 엄마한테 연락을 해야지? 아, 아니다...지금 당장은 어렵겠고.....그래, 내일 우리집으로 오라고 하면 되겠다.. 내일 네 엄마를 우리집으로 오라고 할테니까 내일 너도 우리 집으로 오겠니?"

'네 엄마'라는 말이 누구를 가르키는 말인가 싶어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조금 생각을 해야 했다. 네 엄마라는 생경스런 단어. 그때까지 내가 엄마로 지칭하는 사람은 박옥이밖에 없었으니까.

"근데요.. 제가 지금 시간이 없어서....시간이 없으니 내일까지 기다릴 것 없이....그냥...그냥 어..엄... 엄, 엄마 집을 가르켜 주세요. 그럼 제가 찾아 갈께요...."

엄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나는 바보처럼 버벅거렸다. 내 말에 송은우는 전화기 속에서 한참을 주저하며 망설였다.

"그게 말이지..영순아....네가 찾아갈 만 곳이 아니라서.....그러니까 그냥 내일 우리 집으로 오는 게 어떻겠니?"

다음 날 나는 송은우의 집을 향했다. 송은우는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한 신도시에서 잡화점을 경영한다고 했다.세상이 넓고도 좁다고 우리 큰 고모집에서 걸어서 반 시간도 안되는 거리에 송은우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큰 고모와 송은우는 어쩌면 길에서 우연히 엇갈려 만났을지도 몰랐는데 말이다.

자취방에서 한 시간 걸리는 버스안에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송은동을 대면하면 처음에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송은동을 데리고 집에 나타나면 박옥이와 아버지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송은동을 대할지. 또한 박옥이가 엄연히 살아있는데 앞으로 송은동과 계속 연락을 해야 할지.

복잡한 머리와는 달리 가슴은 놀라울 정도도 담담했다. 흥분도 기대도 되지 않았다. 20년 만에 생모를 만나러 가는 길인데도 전혀 가슴이 설레이지 않는 내 자신이 신기했다.

송은우의 잡화점 가게 유리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먼저 내 눈에 뜨인 것은 방안에 앉아 이 쪽을 바라보고 있던 송은동이었다. 20년이 지났지만 나는 그녀가 송은동이라는 것을 한 눈에 단박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영순아아......!"

내가 방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송은동은 짐승같은 울음을 터트리며 방바닥에 엎어졌다. 나는 천천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장승처럼 방 한가운데 우뚝 서서 울고 있는 나의 생모라는 여자를 냉정한 눈으로 내려다 보았다. 송은동은 죄책감인지 반가움인지에 복받쳐 울고 있는데 나는 눈물 한 방울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 자세대로 한참동안 송은동을 묵묵히 내려다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뭘 잘 했다고 우는데?"

내가 들어도 무서울 정도로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뭘 잘했다고 우냐구?그래도 울 양심은 있나 보네?"

칼로 얼음을 써는 듯한 나의 냉정한 태도에 송은동은 어깨를 훔찔 떨며 고개를 들었다. 송은우도 송은우의 부인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엄마를(당신을,이라고 불렀으면 좋았겠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보고 싶어서 찾은 줄 알아? 천만에! 나 단 한 순간도 엄마를 보고 싶어 한적이 없다구! 오늘 내가 여기 온 것은 엄마의 도움이 필요 해서야! 엄마를 아버지 호적에서 지우기 위해 온 거라구!"

송은우의 부인이 점심으로 만두국을 끓여 들여왔다. 나와 송은동, 송은우, 그리고 송은우의 부인은 모두 말 없이 만두국을 먹었다. 송은동이 바로 내 옆에 앉았는데 나는 일부러 몸을 다른 쪽으로 기울였다. 정말이지 그 여자와 털끝 한 가닥 닿는 것도 싫었다.

"박옥이가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지? 그래, 너하고 네 동생한텐 잘 해주었니?제 아이들하고 차별하진 않았어?"

말 한마디 없는 분위기가 아주 어색했는지 조심스럽게 송은우가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대답했다.

"그럼요. 아주 잘해주었어요. 차별을 할 리가 있나요. 박옥이가 얼마나 착하고 좋은 여잔데. 본인 아이들보다 오히려 저와 동생에게 더 잘해주었어요."

"그으래? 아이를 다섯이나 키우느라 박옥이가 힘들었겠다. 네 아버진하곤 어땠어? 내가 알기로 네 아버지 성질이 대단한 사람인데......"

송은동이 귀를 쫑긋세우고 우리 대화를 듣고 있는 걸 곁눈질로 눈치 챈 나는 다시 떠벌렸다.

"둘 사이도 아주 좋았지요. 아버지가 나이 어린 박옥이를 얼마나 끔찍히 챙겼는데요.지금까지 아주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 알콩달콩 사이좋게...남들이 부러워 할만큼요...."

송은우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네 엄마 너무 원망하지 말거라....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어.... 네 아버진 박옥이와 바람이 나 있고 너희 둘은 어렸지. 먹고 살 일이 캄캄했었거든......"

나는 숟가락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먹고 살 일이 캄캄했었다구요? 내가 바본줄 알아요? 어렸지만 나는 다 기억합니다. 삼촌을 몰라요. 엄마가, 우리를 버리고 나간 것은 아버지 때문이 아니예요. 젊은 군인과 바람이 나서 나간 거라구요! 젊은 군인이 우리가 귀찮으니 버리고 오라고 했기 때문이라구요! 할머니가 가지 말라고 돈까지 주면서 얼마나 타이르고 애원했었게요. 그러나 엄마는 욕정에 눈이 멀어 우리를 팽개치고 나가버렸어요!우리를 버리고요!......"

눈물이 마구 흘렀기 때문에 나는 꺽꺽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젊은 남자와 바람이 났더라도, 자기 속으로 낳은 아이들은 버리지 말았어야죠. 우리를 버리고 그동안 얼마나 잘 먹고 잘 살았던가요.겨우 세 살난 동생을, 젖도 안떨어진 어린 동생을 남의 집 처마 밑에 버리고 가서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고 밤에 잠이 오던가요!나는 엄마를 원망합니다. 아니, 저주하고 저주해요! 박옥이와 엄마가 물에 떠내려 간다면 나는 박옥이만 건질 거예요. 그리고 엄만 물에 떠내려가 죽던지 말던지 그냥 둘겁니다. 엄마가 우리를 그렇게 내팽겨쳤듯이 나도 엄마를 내팽개칠거라구요!"

눈물에 젖은 송은동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그녀의 얼굴을 노려보았다.그때의 내 눈은 증오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다음 날 서울역에서 나는 초조하게 송은동을 기다렸다. 거기서 만나 같이 아버지 집에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이 여자가 약속 장소에 나오지를 않은 것이다. 한 시간을 어둡고 추운 대합실에서 기다리다가 나는 송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송은우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대답이었다.

"글쎄, 꼭 나간다고 했는데.... 어디 몸이라도 아픈가....."

"집 주소를, 아니, 찾아 가는 길을 제게 가르쳐 줘보세요. 제가 찾아 가 볼께요......"

송은우는 주소를 달라는 내 말에 전화기 속에서 함참 망설였다.그러나 내가 급하다고 다그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영순아.....절대 실망하지 말고. 알았지?........"

거의 반나절을 헤매어 송은동이 산다는 곳, 움막촌을 찾아냈을 때 나는 송은우의 말을 이해했다. 절대 실망하지 말라는 말을.

하늘 아래, 저런 데도 있었나 싶을 만큼 혐오스럽고 거칠고 험악한 곳. 몇 년동안 청소안한 돼지우리처럼 더럽고 냄새나는 곳. 아, 도대체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곳은 한마디로 거지 소굴이었다. 비닐과 가마니로 얼기설기 지은, 6전쟁때 임시로 만든 거처같은 그런 곳이었다. 여기저기 함부로 내갈긴 오물과 음식지꺼기가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고 구석구석에서 쥐와 구더기와 바퀴벌레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그 곳. 나는 토악질을 하면서 코를 감싸쥐고 송은동의 집을 찾아 들어갔다.

빛 한줌 들어오지 않는 움막, 무덤 속 같이 축축하고 음습한 그곳에서 송은동은 짐승처럼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거적떼기로 만든 문을 열고 내가 들어서자 송은동은 부시시 일어났다.

"와..왔....왔니?......"

나는 쓰러지듯 송은동의 앞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머리를 수세미처럼 헝클인 채 누렇게 뜬 얼굴로 나를 외면한 채 앉아 있는 송은동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녀의 가슴을 쥐어 뜯으며 울부짖었다.

"기껏 이런 곳에서 이 따위로, 이 따위로 짐승처럼 살려고 나를 버리고, 동생을 버리고 갔었더랬어? 잘 살려고 갔었으면 좀 더 잘 살아야 할 것 아니야? 기껏 이따위로 살려고 우리를 버리고 갔었냐구! 좀 잘 살지, 아버지 보란 듯이 좀 잘 살아보지. 이 바보같은 여펜네야?!......."

다음날. 송은동과 나는 서울역에서 만났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고 서울역 공중전화로 집에다 전화를 했다. 송은동을 데리고 내려 갈 거라는 이야기를 해놓긴 했지만 그래도 재차 이야기를 해놓아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였다.

아버지,박옥이,송은동은 결코 두 번 다시 얼굴을 마주 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 아닌가.필요한 일만 끝마치고나서 금방 헤어지게끔 도장도 찾아놓고 미리 준비를 해놓으라고 나는 전화를 받은 박옥이에게 단단히 부탁했다.

그러나 아버지와 송은동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서로 어색해 하지 않고 차분히, 그리고 담담한 조우를 했다.

"잘 지냈나?"

"예...영순 아버지도 그동안 안녕하셨더랬어요?"

아버지와 송은동이 나눈 대화의 전부였다.

박옥이는 죽었던 친언니가 살아돌아온 것 처럼 반가와하면서 송은동의 손을 잡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박옥이의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려내렸다. 그녀는 입고 있던 앞치마로 눈물을 연신 찍어내었다. 그 눈물은 반가움의 눈물이었을까.

아버지는 내게도, 송은동에게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앞장서 10여분 떨어진 읍사무소로 향했다. 송은동과 나는 묵묵히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앞장선 아버지는 계속 쿨쩍쿨쩍 울었다. 흐르는 눈물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아버지는 몇 번이나 다리를 헛디뎌 넘어질 뻔 했다. 아버지는 왜 우는 것일까. 후회때문에?죄책감 때문에?

아버지를 떠난 후의 송은동의 일생은 그렇게 썩 평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몇 번의 남자와 동거를 했지만 결국은 다 헤어지고 지금은 술주정뱅이에다 막노동으로 근근히 연명하는 남자와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송은동의 집에 갔을 때 그 남자는 없었다) 오래 전에 어디서 집 잃은 남자 아이 하나를 데려다 길렀지만 열너살이 되자 가출을 해버렸다고 했다.

흥, 그러니까 멀쩡한 지 자식은 나 몰라라 내 팽겨쳐 버리고 남의 자식을 길렀단 말이지.그러나 결국은 그 자식에게도 버림받았단 말이지.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냉소했었다.

아버지는 풍문으로, 그리고 그날 송은동의 차림새에서 그동안 살아온 그녀의 고단한 일생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눈물이 났을 것이다.

송은우의 집에서 송은동을 처음 봤을 때 내가 무엇보다 놀란 것은 송은동의 옷차림새였다. 지저분하다, 지저분하다 박옥이처럼 지저분하고 자기 몸 간수를 제대로 못하는 여자를 내가 평생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송은동은 한 수 더 떴던 것이다. 송은동이 그날 입은 옷은 내가 보기엔 적어도 석달 열흘은 빨지 않은 옷 같았다. 초가을이었지만 날씨가 꽤 쌀쌀했음에도 불구하고 송은동은 여름 옷을 입고 있었다. 온갖 음식자국이 흘러내린 얇은 나일론 셔츠와 얼룩덜룩한 몸뻬 바지였다. 보기만 해도 악취가 풍겨나오고 때가 줄줄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목부분이 늘어날 대로 늘어 난 나일론 양말을 발에 꿰고 있었고 나중에 헤어질 때 밖에서 보니 끈 한줄이 튿어져 나간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그렇지 이십년 전에 헤어진 딸자식을 보러 오는데 어쩌면 그런 행색으로 왔을까,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집, 짐승들이나 살 법한 움막에 가보고 왜 그녀가 그런 행색으로 나타났는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사는 곳엔 수도가, 하다못해 우물조차 없었던 것이다. 요즘 시대에 수돗물도,우물물도 길어다 먹을 수 없는 곳에서 사람이 살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의 차림새를 돌아 보고 생각할 만한 여유조차 없이 짐승처럼, 그야말로 밥만 먹고 숨만 쉬면서 짐승처럼 살고 있었던 것이다. 평생 어깨를 짓누른 빈곤이 그녀의 심성을 그렇게 황폐하게 만들었까.

그러나 나는 옛 남편과 한 때는 자신의 연적이었던 박옥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적어도 가지고 있는 옷 중 제일 쓸만한 옷으로 갈아 입고 올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서울 역앞에 서 있는 송은동을 보고 기절할만큼 놀랐다. 그녀는 며칠전 송은우의 집에서 보았을 때 입었던 그 옷을,내가 자신의 집에 찾아갔을 때도 입고 있던 그 똑같은 옷을 ,그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옷을 똑같이 입고 나왔던 것이다. 그녀의 행색은 거지보다 더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서울 역 바로 앞에 있는 남대문 시장에 데려가서 옷이라도 한 벌 사 입힐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만 같아도 그녀를 끌고 시장으로 향했을 텐데 내가 왜그랬는지 모르겠다.

서울 역에서 집까지는 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다섯 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가면서도 서너마디밖에 말을 나누지 않았다. 누가 보면 완전 생판 모르는 남처럼 우리는 냉랭하게 앉아 있었다.내가 말을 하지 않자 송은동도 내 눈치만 살피면서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이 여자는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궁금하지도 않을까. 내가 계모 밑에서 잘먹고 잘 컸는지, 아니면 콩쥐처럼 온갖 구박과 학대를 받으면서 컸는지 궁금하지도 않을까. 제가 엄마라면, 나를 낳아준 엄마라면. 그리고 저도 일말의 양심이 있는 여자라면 적어도 한 마디 정도는 물어봤어야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니. 많이 힘들었지, 하고.

나는 내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다물고 앉아 있는 엄마라는 여자가, 나를 낳아준 생모라는 여자가 정말이지 소름끼치게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다음역에서 기차를 내려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다. 그러난 나는 그런 마음을 꾹 참고 다섯시간을 걸려 집에 도착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읍사무소에서 서류를 해주는 직원과 한바탕 멱살잡이를 했다. 서류를 들여다보던 직원이 아니, 20년이나 지난 이혼 신고를 지금에야 오십니까, 송은동이라는 여자의 주민등록은 이미 말소되었는데요, 하고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던 것이 아버지의 비위를 확 상하게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직원의 멱살을 잡고 펄펄 뛰었다.남이사 20년만에 이혼 서류를 하던 30년만에 하던 네까짓 놈이 무슨 상관이냐고!

높은 사람이 나와 말리고 직원이 사과를 하고서야 한바탕의 난리는 진정되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의 호적에서 송은동은 떨어져 나가고 박옥이가 아내로 정식등록되었다.

그날 저녁 박옥이는 있는 정성을 다해 저녁상을 차렸다. 아버지는 말없이, 말 한마디 없이 밥을 먹고 자기방으로 가고(당시 우리집 식구는 절벽위 집을 떠나 읍내로 이사를 나와 있었다. 박옥이는 번잡한 시장에서 잡화점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잡화점에서 조금 떨어진 살림 집에서 기거하고 있었다)송은동과 박옥이와, 그리고 늘 게을러터진 송은동이 미워서 죽을 뻔 했다던 둘째 고모,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은 밤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박옥이는 맛있는 것을 송은동의 앞에다 밀어주고 잔이 비면 연신 술을 치면서 옆에서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마치 딸을 생각하는 친정 엄마처럼.

그리고 모두 술이 거나하게 되었을 때, 고모가 우리 모두 이렇게 만난 김에 노래나 한 곡 씩 하자는 제언을 했다.

"날이 새면 모두 돌아 갈 거쟎아. 이제 우리는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테니까 노래로서 이 별을 준비하는 게 어떨까"

나는 소문으로만 듣던 송은동의 노래를 그날 밤 직접 듣게 되었다.

옛날에 할머니와 고모들이 송은동 이야기를 할 때면 그녀의 노래 실력에 대한 얘기를 늘 했었다. 사람의 애간장을 녹일 정도로 목소리가 청아했고 또한 창법이 뛰어났었다고. 한때는 그 노래실력을 바탕으로 가수로 나갈 생각까지 했었다고.

들은대로 송은동의 노래 실력은 대단했다. 그녀가 부른 노래는 모두 아주 옛날 노래였다. 좋은 일로 찾아간 것도 아닌, 호적정리를 하러간 옛날 남편 집에서, 자신이 버리고 간 장성한 딸과 옛날 시누이와, 그리고 자신의 옛 남편과 바람난 여자 앞에서 부르는 노래라서 그런지 아니면 그 노래의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지 무척이나 처연하고 구슬펐다.

송은동이 노랠 부르는 동안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안주거리만 마구 집어 먹었다.

아주 참담한 심정이었다. 송은동도 불쌍했고 박옥이도 불쌍했다. 송은동은 타고난 바람기가 있었다곤 하지만 처음부터 착하고 좋은 남편을 만났더라면 짐승들이나 사는 움막 신세가 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송은동도 그렇고 박옥이도 그렇고 우리 아버지란 인간을 잘못 만남으로 둘다 한 평생 기구하고 힘든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그날 밤 우리는 한 방에서 모두 잤다. 그리고 소변을 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을 때 나는 보았다. 박옥이의 손이 송은동의 손을 꼭 쥐고 있는 것을.

 

그 이후에 나는 두 번 다시 송은동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에 온지 몇 년 후 송은동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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