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사는 동네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여성들이 참 많이 산다. 영자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여섯명,영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네명,그리고 숙자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세명. 그중에는 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제일 많은데 자그마치 아홉명이나 된다. 물론 이들은 모두 오륙십대, 그리고 칠십대를 바라보는 여성들이다.요즘엔 아무리 무심한 부모도 그런 촌스런 이름들을 지어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한국인구 만명이 넘는 이곳에 같은 이름을 가진 여성들이 많아서, 그래서 그냥 부르면 헷갈려서인지 옛날 학창시절 같은 이름을 가진 반 아이들에게 그랬듯이 이곳 사람들도 이들 이름 앞에 별명들을 하나씩 부쳐 부르며 구별하고 있었다.무슨무슨 아무개하는 식으로. 물론 아홉명이나 되는 순이들 역시 이름 앞에 각자의 고유 별명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빨강머리 순이, 깻잎 순이,꺽다리 순이,목욕탕 순이, 석류 순이,전복 순이....

깻잎 순이는 미국 첨 오자마자 한국에서 농사짓던 실력을 발휘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자기 집 넓은 뒷뜰 마당에 들깨나무를 수도 없이 심어 거기서 수확한 깻잎을 내다 팔아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서. 그리고 석류 순이는 집 앞마당 뒷마당에 석류나무가 많이 있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고 전복 순이는 미국인 남편과 해마다 바다로 나가 전복을 따다가 판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전복 순이였다.

필자의 고개가 갸우뚱해진 것은 목욕탕 순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었였다. 옛날 한국에서 목욕탕을 운영했었나, 왜 하필이면 목욕탕 순이라는 별명이 붙었지?

나중에 목욕탕 순이라는 이름에 얽힌 사연을 전해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가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야기는 3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십대 초반이던 순이씨가 딸과 함께 두 번째 남편인 제임스씨와 재혼을 한 건 생활고에 한참 시달릴 때 였다.술주정뱅이에다 폭력자에다 노름꾼인 첫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몸이 된 순이씨는 살기위해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남의 집 쓰레기통 뒤져 쓸만한 물건 줏어다 벼룩 시장에 내다 팔기, 깡통 줏어다 팔기, 미국식당 부엌 설거지 등등.

딸만 아홉인 찢어지게 가난한 어촌의 막내딸로 태어났던 순이씨는 웬만한 사람이 일생을 통해 겪을 고생을 초년에 다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웃의 소개로 미국교포라는 남편을 만나 미국에를 오게되었는데 당시 순이씨가 살던 고향에선 물론이고 인근 동네에까지 시집 잘 간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고 한다.

60년대 후반,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 수둑하던 때 비행기를 타고 미국이라는 데로 시집을 간다니 그런 소문이 난 건 당연했다.

그러나 시집이라고 와보니 남편은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아파트 방 한 칸에 시부모. 시동생, 시누이까지 도합 일곱명이 드글드글 모여사는 가난뱅이중 장남이었다.

남편의 술주정과 무능, 그리고 시집식구의 학대 속에 몇 년 고초를 겪다 순이씨는 두살박이 딸 아이를 데리고 그 집을 나왔다. 이혼을 하면서 순이씨가 느낀 것은 내가 재수가 없는 여자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아홉 딸의 막내로 태어난 순이씨를 향해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재수없는 계집애' '콱 죽어버려도 아까울 게 없는 계집애'라는 욕을 퍼부었던 것이 머리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 쓸모없는 남편을 만난 것도, 그런 남편이나마 잘 건사하지 못하고 이혼이란 걸 하고 만 것은 자신이 재수없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럴 거라는 생각이 순이씨의 머리에 떠나지 않았다.

영어도 할 줄 모르는 순이씨가 살기에 미국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새벽 서너씨까지 일을 하다 집에 돌아오면 어린 딸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울다울다 지쳐 혼자 잠들어 있기 일쑤였고 딸 아이 몸에 열이 올라 불덩이 같아도 병원 한번을 데리고 갈 수 없는 순이씨의 신세였다. 운전도 할 줄 모르고 병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첫째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순이씨가 제임스씨를 만난 건 깡통을 줍기 위해 사무실 빌딩 쓰레기통을 뒤지러 다니다가였다. 육군으로 한국전쟁 직후 한국파견 근무를 몇 년 했던 제임스씨는 몇 마디 한국말을 할 줄 알았을 뿐 아니라 한국 음식도 곧잘 먹었다. 제임스씨의 두번 째 부인 역시 한국에서 데리고 온 여자였다. 20년을 넘게 해로했는데 심장병으로 몇 년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나이는 순이씨보다 스무살이나 많았지만 말도 통하지 않았지만 순이씨는 곧 제임스씨를 믿고 기대게 되었고 얼마 후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첫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은 모두 장성해 집을 떠나는 바람에 혼자 적적한 생활을 했던 제임스씨는 순이씨는 물론 순이씨의 딸을 친딸처럼 사랑해 주었다.

순이씨는 병아리를 품는 암탉처럼 자신을 넉넉하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제임스씨의 팔안에서 몇 년동안 참 행복한 생활을 했다. 여기서 몇 년 동안이란 단서를 붙이는 것은 그 행복한 생활이 단 몇 년밖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몇 년 동안의 행복한 생활은 순이씨가 목격하게 될 끔찍하고, 어마어마하고, 처참한, 꿈에서도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사건을 위한 전주곡이었다.

한국의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순이씨를 꼭 보고 싶어한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여름이 마악 시작되던 70년대 중반의 5월이었다.

순이씨를 낳았을 때, 그리고 키울 때 아들이 딸로 잘못 태어난 재수없는 년이라고 무시하고 구박했던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거라고 늘 눈물을 흘린다는 어머니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순이는 사흘 밤낮을 고민했다.

다시는, 살아 생전에 다시는 대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심으로 살았던 순이씨였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가 너무 마음에 사무쳐 제임스씨가 넓은 포용력으로 자신을 품어줄 때에도 늘 한쪽 가슴이 시리던 순이씨였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남'인 제임스도 이렇게 날 아껴주고 사랑해주는데 어찌 부모라는 사람이 나를 그렇게 모질게 했을까.....

순이씨는 울고 또 울었다.

어쨌든 순이씨는 딸을 데리고 고향방문길에 올랐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결심으로 입술을 깨물고 떠나 온 지 십몇년 만이었다.

"아무 걱정말고 잘 다녀와. 알았지?"

빌딩경비일을 그만두고 뒷뜰에 만든 텃밭 가꾸는 일을 낙으로 여기며 순이씨와 함께 편안한 노년을 보내던 제임스씨는 한달 예정으로 한국방문길에 오른 순이씨 어깨를 인자하게 두드려 주었다.

고향의 어머니 상태는 생각보다 더 위중했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으며 하루에도 몇번씩 숨이 오락가락했다.

순이씨는 그동안 못했던 효도를 할 셈으로 언니들을 다 몰아내고 직접 팔을 걷어부치고 어머니의 병수발을 했다. 똥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고 밥을 떠 먹이고.

한국에 온지 사흘째 되는 날 순이씨는 어머니 곁에 누워 잠깐 낮잠에 빠졌다. 한 5분 정도의 낮잠. 그 짧은 낮잠을 자면서 순이씨는 꿈을 꾸었다. 제임스씨의 꿈이었다. 제임스씨가 꿈속에서 한국에 있는 순이씨의 집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제임스씨의 얼굴표정이었다. 우울하고 어두운 표정. 제임스씨는 순이씨에게 무언가 말을 할 것 같았지만 꾹 다문 입술을 끝내 열지 않고 몸을 돌렸다.

"제, 제..임스....."

순이씨는 제임스씨의 옷자락이라도 잡으려고 대문 밖을 뛰쳐나갔다. 그러나 그는 아무데도 없었다. 잠에서 깨어난 순이씨는 꿈이 심상챦은 걸 알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무겁고 깊은 눈길로 쳐다보고는 몸을 돌려 삽시간에 없어져버린 제임스씨가 생각나 순이씨는 불안하고 무서웠다. 미국에 전화라도 해서 제임스씨의 안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곧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어머니의 상을 치르는 중에도 순이씨는 꿈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미국에 전화를 하려면 한 시간이나 걸리는 읍내 우체국으로 나가 국제전화를 신청해야 하는데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상중에 그럴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어머니의 상을 치르고 순이씨는 딸의 손을 이끌고 바삐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체류예정은 한달이었지만, 십년여만에 만난 언니 조카들이 더 있다가라고 순이씨를 붙잡았지만 순이씨는 그럴 수 없었다. 꿈에 나타난 제임스씨를 생각하면 단 1초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한시라도 빨리 집에 도착해 제임스씨의 생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뿐이었다.

열 몇 시간이나 걸리는 비행 끝에 공항에 도착했을 때, 순이씨는 짐을 찾는 둥 마는 둥 하고 얼른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웬일 일까.스물 몇 번의 신호가 울려도 그 누구도 전화를 받는 기척이 없는 것이다.

순이씨는 딸의 손을 낚아채어 쥐고 택시를 향해 뛰었다.

가슴이 마구 불안으로 두 방망이질 쳤다.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택시안에서의 삼십여분을 순이씨는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제발, 제에발 아무 일 없게 해주세요.신이 있다면 내 남편 제임스를 제발 지켜주세요.

골목 어귀에서 택시를 세우고 몸을 내렸을 때 순이씨의 눈의 들어온 건 멀쩡한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는 집이었다. 순이씨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순이씨의 가슴은 심하게 두근대기 시작했다.

잔디가,잔디가 손질되지 않은 채 마구 자라 있는 것이 눈에 뜨인 것이었다. 제임스씨가 집에 있다면 저렇게 잔디가 제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친 순이씨는 금방이라도 불안으로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두 팔로 누르며 집앞에 도착했다.

"일단 넌 여기 있어. 내가 먼저 집에 들어가 볼께....."

순이씨는 딸에게 일렀다. '아빠가 무사한지 보고 오겠다'는 말은 무서워서 차마 할 수 없었다.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순이씨는 느꼈다. 괴괴하고 불길하고 축축하고 무거운 공기가 집안을 에워싸고 있다는 것을. 안개가 덮힌 것 같은 눅눅하고 음산한 기운이, 6월의 화창한 햇볕이 내리쬐는 바깥하고는 다른 그런 기운이 집안에 가득차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어 순이씨의 얼굴을 훅, 하고 덮쳐온 것은 냄새였다. 그 냄새는 순이씨가 40평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맡아 본적이 없는 괴상한 냄새, 이 지상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음습하고 무서운 냄새였다.

"제,제...제..제임스..."

순이씨는 현관에 주저앉았다.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제임스씨에게 무슨 일이,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순이씨는 곧 벌떡 일어나 침침하고 어두운 집안을 미친 듯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제,제임스!내...내가 내가...돌...돌아 왔어요!..당...당신 어디,어디 있어요?"

그리고 안방에 달린 목욕탕 문을 열었을 때 순이씨는 보고야 말았다. 목욕탕 바닥에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제임스씨를, 그리고 마치 한여름 날 바깥에 내둔 생선이 썩어내리듯 썩어내려 문드러지고 흐물어진 그의 몸을. 강을 이루어 흘러나온 피와 피와 섞여 흘러내린 분비물 속에서 미친 듯이 날아 다니는 파리 떼와 바퀴벌레 떼와, 그리고 수천, 수만마리의 구더기 떼들을.

"아아아악!"

순이씨는 정신을 놓고 쓰러졌다.

참 잔인하기도 하지, 사람들은.

그날 이후 사람들은 그녀를 '목욕탕 순이'로 불렀다.

 

-이계숙의 더 많은 작품은 http://kyesook.com 로 오셔서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