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지만 나는 사람들의 인생상담을 종종 한다.

내 웹사이트를 통해, 미씨 유에스 에이의 내 칼럼을 통해 전자우편으로 연락을 해오는 사람들의 인생상담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를 구구절절 털어놓으면서 해결책을 강구해 달라는 요청을 해온다. 내가 다양한 군상들의 삶을 소설이나 픽션으로 풀어내는 재주가 있으니 그들의 고민도 이해하고 포용하여 답을 제시해 줄 것 같은 존재로 느껴지나 보다.

아시다시피 나는 남의 인생상담을 할 만한 주제가 못된다. 인생상담이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자신의 산경험을 바탕으로, 그리고 삶에서 오는 고뇌와 번민을 다 초월한 사람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나이 오십도 안 된 내가, 그리고 내게 처한 당면과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갈팡질팡 하면서 감히 누구의 인생을 논하고 상담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내게 연락을 취해오는 그들에게서는 벼랑 위에 선 것 같은 위기감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하는 절박감이 느껴진다. 오죽 답답하면 일면식도 없는 내게(오히려 그게 더 편해서일지도 모르지만)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해 오랴 싶어 나는 최선을 다해 진지하고 성실하게 상담에 임한다. 상담이라기 보다는 두세장씩 길게 쓴 그들의 하소연을 읽고는 간단하게 내 생각을 밝히는 일이다.

두어달 전에는 한국 이천에 사는 한 남자가 사연을 보내왔다. 네 아이의 아빠라는 그는 지금까지 매우 충실한 가장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얼굴을 들지 못할 일을 저질렀다며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일 주일 전에는 또 워싱턴 근방에 산다는 한 여성이 연락을 해왔다. 미국에 유학 왔다가 시민권자와 결혼을 해 현재 영주권 수속중이라는 여성이었다. 그런데 남편과 시어머니가 영주권을 빌미로 갖은 구박을 다한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지만 영주권이 아까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외에도 갓 결혼한 부부의 불화, 금지옥엽 키운 외동 딸의 비행과 사고, 무능한 남편의 외도 등 인간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온갖 갈등과 고민과 걱정거리들이 나의 전자우편함으로 들어 온다.

사람들의 이런저런 사연을 접하면서 내 자신을, 나의 미국생활 21년을 뒤돌아 볼 기회가 있었다. 나라고 상심될 때가 왜 없었으며 죽고 싶을 만큼 절망스러웠을 때가 왜 없었으랴.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항상 웃으며 밝게 살았다는 것이다. 처음 와서 청소일을 할 때, 자존감이 땅에 떨어져 있을 때도 나는 늘 웃었다.

나중에 청소일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 92년, 중앙일보 7천불고료 문예작품 모집에 우수작으로 당선되었을 때, 시상식장에서 비로소 눈물을 흘렸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것은 감사의 눈물이었다. 내가 청소일이라는 그런 비천하고 더러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영광스런 자리에 설 수 있었겠나, 하는. 어렵고 혹독한 시절을 잘 견디어 내고 그 경험을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내가 대견하고 기특해서 흘린 눈물이었다.

돌이켜 보건데 내 인생에 있어 가장 고독하고 힘 들었던 때가 미국와서 혼자 몇 년을 살던 때였던 것 같다. 변변한 직업도 없고 돈도 없이 그야말로 사방을 쓸어봐도 그 누구하나 나를 돌아보는 이 없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 혼자 살 때.

특히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같이 세상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즐거움에 들떠 있을 때 나는 작은 아파트 방에서 혼자 외로움에 몸을 떨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눈물이 나도록 궁상스럽고 구차한 삶이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내 팔자가 왜 이럴까,하고 비관을 하거나 한탄해 본 적이 없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 하고 늘 희망을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때 그 시절을 웃으며 반추할 수 있을 정도로 윤택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나의 긍정적인 사고가 내 삶을 변화시켰다고 믿는다. 나는 상담을 요청해 온 사람들에게 나를 늘 실례로 든다. 그리고 말한다. 삶이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희망이 있는 한 인생의 반전도 반드시 있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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