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원에게 아침식사를 하루 제공한다는 안내문이 회사 곳곳에 나붙었다.

메뉴는 팬케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서양식 아침이다.

그동안 바베큐라던지 피자파티는 있었지만 팬케잌 아침은 처음이다.

당일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삼십분 일찍 서둘러 출근했다.

팬케익을 서브한다는 휴게실에 가니 벌써 수십명이 줄을 서 있다. 나도 얼른 줄을 섰다. 그리고 누가 새치기라도 할새라 앞사람에 딱 붙어 서서 기다려 팬케익 접시를 받았다.

한 사람 몫으로 할당된 양은 세 쪽이었다. 그리고 소세지 두 개, 오렌지 쥬스 한 잔.

나는 시럽을 듬뿍 뿌린 팬케잌을 십분도 안돼 다 먹어 치웠다.

내 몫을 다 먹었으면 그냥 미련없이 그 때 일어섰어야 했다. 그러나 영 양이 차지 않았던 나는 다시 줄을 서 또 한 사람 몫의 팬케잌을 받았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팬케잌을 좋아한다해도 한꺼번에 여섯 쪽은 무리였나보다. 다섯 개까지는 입에 짝짝 붙던 팬케잌이 여섯 쪽에서부터는 영 입에서 받지를 않았다.

할 수 없이 남은 팬케잌을 쓰레기 통에 버렸다. 아까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포만감으로 뿌듯해하며 내 자리로 돌아 와 근무를 시작했다.

한 이,삼십분 일을 했을까.

슈퍼바이저한테서 전자우편이 도착했다. 모두 하던 일을 중단하고 휴게실로 모이란다. 팀전원이 모여서 팬케잌을 먹자는 것이다.

그제서야 팀원들에게 물어보니 미리 팬케잌을 먹고 온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모두 늦게들 출근하느라 먹을 새가 없었다는 것이다.

미리 먹었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팀원들과 섞여 휴게실로 가서 또 한 접시의 팬케잌을 받았다. 받긴 했지만 도저히 먹을 엄두가 나지않아 내려다만 보고 있으니 캄보디아인 동료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먹는 거라면 제일 먼저 달려들던 네가 오늘은 웬일이냐?"

할 수 없이 또 한 쪽의 팬케잌을  입에 억지로 구겨 쳐넣었다. 그러나 죽인대도 나머지 두 장은 마저 먹을 수가 없어 또 쓰레통에 버렸다(음식 버리면 죄 받는다는데 나는 죄 엄청 받을 것이다!)

그 날 나는 하루종일 일을 하지 못했다. 팬케잌을 여섯장이나 집어넣은 배가 온전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샘플이라던지 물건에 끼워주는 사은품 같은 공짜에는 초연한 편인 내가 왜 유독 공짜 음식, 특히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마련된 음식에만은 이성을 잃고 마는지 나도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뷔페식당에는 웬만하면 잘 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화씨 110도의 뜨거운 날씨에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꼬박 한 시간을 걸을 정도로 다이어트에 지독한 편인 나지만 뷔페식당에 차려진 온갖 푸짐한 산해진미 앞에는 정신이 홀까닥 가고 만다. 도저히 절제가 안된다. 접시 치워주는 아가씨가 질릴 정도로 먹고 먹고 또 먹는다. 그렇게 배 부르게 먹고도 후식으로 마련된 아이스크림까지 빼놓지 않고 가져다 먹는다. 아이스크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본전을 빼야 한다는 생각에 가만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목구멍까지 차도록 먹고 식당을 나오면 남는 건 숨도 못 쉴 정도로 거북스런 배와 좀 적당히 먹을 걸, 하는 참담한 후회뿐이다.

식탐많기로 유명하기는 K씨도 나 못지 않다. 배가 잔뜩 불러도 누가 음식을 권하면 사양하지 않고 먹어젖히는 성격때문에 항상 위장병을 달고 산다.

지난 겨울엔가.

점심 때 부인이 만두국을 끓였더란다. 한 대접 맛나게 먹고는 이웃집에 놀러를 갔는데 마침 또 그 집에서는 떡국을 끓이고 있더란다. 한국사람 인정이 다 그렇듯 당연히 그 집에서는 K씨에게 한 그릇을 퍼서 권했다.

배가 잔뜩 불렀지만 K씨는 또 사양않고 떡국 한 그릇을 다 먹었다고 한다. 중간에 목구멍에서 더 이상 받지를 않아 음식이 도로 올라오는 것 같았지만 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끝까지 꾸역꾸역 떡국 한 그릇을 다 비웠다고 했다.

K씨는 그 날 억지로 먹은 떡국에 체해서 몇날 며칠을 고생했다. 그 후로도 속이 늘 좋지 않아 약을 달고 산다. 그렇게 혼이 나고도 음식만 보면 덤벼드는 K씨의 버릇은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K씨뿐만 아니라 유난히 식탐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위장병을 늘 달고 산다는 점이다. 채 소화가 되지 않은 뱃속에 또 음식을 채워넣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그런 것 같은데 나 또한 오래된 위장병이 있다.

K씨는 이런 자기의 못말리는 식탐을 못살던 시절에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며 자란데 대한 보상심리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나 역시 K씨의 의견에 동감한다.

먹을 것은 없고 식구는 많던 시절(없이 사는 집 일수록 형제는 왜 그리 많았는지 모르겠다)어쩌다 별식으로 고구마라도 찌는 날이면 상대를 제치고 한 개라도 더 입에다 넣겠다는 욕심에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남 보다 먼저 집어다가 입에 넣는 게 장땡이니 맛이고 뭐고 음미할 것도 없이 무조건 끌어다 넣고 보았다. 그런식으로 형성된 식탐이 나이가 들어도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나는 배가 무척 부르다. 오랫만에 만들어 본 장조림이 맛있어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그렇지만 지금 누가 먹으러 오라고 연락해 오면 나는 만사를 제치고 또 달려나갈 것이다.

팬케잌 여섯 쪽 먹고 탈난 배가 아직도 미처 낫지 않았지만 크게 문제 될 것 없다. 먹는 게 남는 거니까. 그리고 공짜로 먹는 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는 법이니까.

-이계숙의 더 많은 작품은 http://kyesook.com 로 오셔서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