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니 참 별일이 다 있다.

 

한국에 사는 친한 친구 하나가 신내림을 받았단다. 하는 일마다 꼬이고 남편, 시집과도 항상 심한 불화가 끊이지 않더니 그게 다 '무병'때문이었다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신내림을 받고 최근 굿당인가 신당(神堂)인가를 차렸단다.

친구의 안부가 걱정되어 전화를 했더니 목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멀쩡한 것 같았다. 뭔가 으시시하고 음산한 기운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대뜸 친구가 말한다.

"남편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이제부터라도 얘교를 좀 부려야 되겠구만"

" ? "

그녀의 말인즉슨 남편과 나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할 만큼 천생연분의 인연이란다. 그런데 장작개비처럼 무뚝뚝하고 곰살맞지 않은 내 성격 때문에 앞으로 남편이 딴 마음을 먹을 가능성이 있단다. 그러니까 '깎아놓은 나주 배 같이 사근사근한 여자'랑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어이없어 하며 내가 허허 웃자 친구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지어내서 하는 말이 아니고 지금 내 어깨에 걸터 앉은 애기동자가 일러주는 말이니 새겨 들어!"

어깨에 걸터 앉은 애기동자라는 말에 소름이 쫙 끼쳐서 아이고, 무서워라, 나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별 거지같은 소릴 다 듣겠네, 흘려버리려고 애를 썼지만 찜찜한 마음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 나는 거실에 앉아 있는 남편을 옆눈으로 훔쳐보았다. 명색이 IT전문가인 남편은 바보처럼 낄낄거리며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 인간이 앞으로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있단 말이지? 단지 내가 무뚝뚝해서?내가 애교를 부리지 않아서?

지난 해 우리집에 왔었던 동생은 개가 집안에 있는 것에 대해 매우 못마땅해했다. 아무리 개를 가족 구성원으로 여길 만큼 사랑한다지만 어쨌든 개는 개, 사람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실내는 엄연히 사람들의 공간인 만큼 개가 사람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단다. 그리고 외출 때 마다 개를 동행하는 것도, 강아지의 건강을 생각해 닭고기를 줄 때 껍질과 기름을 떼내는 것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했다.

'주인이 외출했을 때 충실히 집을 지키는 게 개의 본분이거늘 어디 개가 감히 건방지게 주인과 외출을 함께 하며 사람이 먹다가 남은 음식을 먹어도 감지덕지할 신분인 개 주제에 껍질 벗긴 닭을 먹냐' 이거였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작은 동생이 말했다.

"아주 애교가 철철 넘치는 개구만. 사람들한테 사랑받는 이유를 알겠네. 아주 정이 흠뻑 들게 하네 그려......"

인형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착하고 얌전했던 전의 개와는 달리 현재 개는 성질도 고약하고 고집도 센 편이다. 지가 하기 싫은 건 절대로 안하고 하고 싶은 건 죽어도 해야 하는. 그런데 고약한 성질에 비해 애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야말로 그의 애교에 내가 살살 녹을 정도이다. 온갖 말썽을 다 피워도 여지껏 엉덩이 한 대를 맞지 않은 것은 개가 부리는 애교때문이다. 내가 인상이라도 팍 쓸라치면 발라당 뒤집어져서 네 다리를 마치 비는 것 처럼 싹싹 비비며 애교를 부려댄다. 작정하고 한 대 때리려 했다가도 웃음이 나와 슬그머니 손을 내려놓고 만다.

K씨는 말한다. 여자의 예쁜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우선으로 꼽을 때는 젊었을 때, 데이트할 때이고 결혼생활에서는 인물이고 뭐고 애교 많고 다정다감한 여자가 최고라고.

"한바탕 싸우고 난 후라도 마누라가 다가와서 여보옹, 어쩌고 애교를 떨면 금방 마음이 풀어지니 말이야. 그래서 그런 말도 있쟎아. 여우하곤 살아도 곰하고는 못산다고. 그런 옛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자주 하게 된다네......"

일년 열 두달 가도록 집안 일 한번 도와주지 않는 빵점짜리 남편이지만 아직까지는 그런대로 쓸만 한데 친구 말대로 바람을 피우면 큰일이긴 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애교라는 것을 나도 한 번 부려볼 거나. 닭살 돋을 각오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