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생일이 지나갔다.

나도, 그리고 그도 생일이나 기념일을 챙겨서 선물 주고 받고 나가서 밥 사먹으며 수선 피우는 걸 썩 탐탁치않아 하기 때문에 별다른 이벤트 없이 그냥 덤덤하게 넘겼다.

한 살 더 먹은 남편의 나이를 따져보다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도대체 몇살인가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사십 일곱인가,여덟인가, 아니면 오십인가. 그저 오십 가까이 되었다는 것만 알았지 정확한 나이 따질 일이 별로 없었던, 그리고 해가 바뀌면,이 아니라 생일을 쇠면 한 살을 더 먹는 미국식 나이 방식이 아직도 헷갈리는 나는 손가락으로 셈을 해보고나서야 현재의 내 나이가 사십 일곱이란 걸 알았다.

휴, 놀래라. 아직도(!) 내가 사십 일곱이란 말이지.

사십 일곱이나 여덟이나 거기서 거긴데도 안도의 숨이 저절로 쉬어지는 것은 웬일인가.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나이 먹는 것에 크게 연연해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은 하루하루 날이 가는 게, 한 달이 가는 게, 그리고 일 년이 가는 게 아쉬워 죽겠다. 슬프고 안타깝다. 왜냐면 내가 노화하고 있다는 걸 말 그대로 피부로 느끼고 있기에 그렇다. 아침저녁으로 주름살 방지크림을 치덕치덕 떡칠 하듯 발라봐도 자고나면 눈가의 잔주름은 더 늘어 있는 것 같고 얼굴 선이 점점 탄력을 잃고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언제부터인가 볼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통통하던 볼이 훌쭉해지니 입가의 팔자주름은 더욱 깊어지고 어딘지 모르게 빈곤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나랑 동갑인 본국의 여성 연예인 하나는 별명이 '복어'란다. 나이들어 푹 꺼지기 시작한 볼에 하도 지방주사를 주입해 복어처럼 뽈록 양볼이 튀어나와서 그런 별명이 붙었단다. 그 누구도 흐르는 세월을 거스릴 수는 없는 법, 뭘 그렇게 극성을 떨까, 딱해 하다가도 가끔은 그녀와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낀다. 복어 아니라 고래란 별명이 붙어도 좋으니 무슨 짓을 해서든 예전의 통통한 볼살을 다시 갖고 싶다.

나보다 서너살 많은 L씨는 폐경이 되었다고 했다. 몇 달전부터 오락가락 하던 생리가 최근들어 완전히 끊어졌단다. 뒤늦게 막둥이 하나 들어선 것 같으니 병원에 가보지,하고 농담을 했더니 L씨가 눈을 홀겼다. 절대로 그럴 일은 없다면서.

"생리가 없으니 편해서 세상 좋긴 한데 좀 그러네....."

L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내 마음도 스산하고 쓸쓸했다. 나도 곧 몇 년안에 L씨처럼 폐경이 될 거라는 생각에. 폐경이 된 후에는 더욱 빠른 속도로 늙어가겠지. 주름살은 더 깊고 굵어질 것이고 머리도 쇠겠지. 물 주머니를 찬 것 처럼 배는 늘어질 것이고 허리도 굽겠지......

80년대를 한국에서 보낸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가수 유익종이 부른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하는 노래를.

내 이십대 초반에 발표된 노래인데 그 노래를 처음 듣고 정말이지 나는 미치는 줄 알았다. 이른 아침 호숫가에 깔린 안개처럼 잔잔하고 조용한 곡도 곡이지만 애잔한 가사가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서 말이다. 좋은 노래라도 많이 들으면 질리게 마련인데 그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에 사무쳤다.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수백 번을 듣고듣고 또 들었다. 그리고 미국에 왔고 미국에 와서는 먹고 사느라, 그야말로 먹고 사느라 바빠서 그 노래는 거의 20년을 나와 멀어져 있었다.

어쩌다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방에 가서도 그 노래를 몇 번 불러보지 못했다. 쿵작쿵작, 흥이 나는 노래들 틈 속에 이 노래는 항상 분위기 깨는 노래, 청승떠는 노래라고 사람들이 구박 했었기에.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 노래, '그저 바라볼 수 만 있어도'를 다시 듣게 되었다. 노래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결코 편안하고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꿈이 있던, 나의 푸르던 이십대 시절이 그 노래랑 겹쳐 떠올랐기에. 마흔 일곱의 나에게도 노래 한 곡으로 가슴이 시리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시절이 바람처럼 속절없이 흘러가 버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렇다.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고 나는 속수무책으로 늙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의 안타까움도 아랑곳 없이 이 해도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