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S씨가 놀러 왔다. 집안으로 들어서던 S씨가 소파에 파묻혀 있는 나를 보더니 혀를 쯔쯔 차며 말한다.

"참 혼자 보기 아깝습니다그려. 이 기자님이 (스물 몇살이나 어린 S씨는 나를 이 기자님이라 부른다)집에서 이런 모양새로 있는 걸 사람들이 좀 봐야 할 텐데. 그날로 완전히 환상 깨지는 거지 뭐....."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차려입고 있는 바깥에서의 내 모습만 보던 사람들은 집에서 내가 어떠한 모양새로 퍼져 있는지 아마 상상도 못할 거란 것이 S씨의 말이다.

내 모양새가 어때서, 하고 대꾸했지만 나는 속으로 웃었다.

S씨의 말대로 내 차림새는 내가 봐도 참 가관이었다. 그때가 오후 두시. 나는 그때까지 아침에 일어 난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부스스한 머리에 세수도 하지 않은(그래도 이는 닦았다!)얼굴과 잠옷 위에 가운을 동여맨 차림. S씨가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저녁 때까지 그러고 있을 참이었다.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하면 그때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을 나갔다가 목욕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일요일, 나갈 일이 없으면 또 잠옷 위에 가운을 걸친 채로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뒹굴한다.

만약 직장을 다니지 않았더라면 나는 많은 의상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잠옷에 발등까지 덮히는 긴 가운 몇 벌이면 족할 테니까 말이다.

토요일, 일요일. 선약이 없으면 나는 하루 온종일 문 밖 출입을 안한다. 금요일 저녁에 주차한 차를 월요일 아침에야 시동을 거는 것이다.

마냥 편안한 차림새로 집에 있는데 밥 먹자는, 커피 마시자는 전화가 올 때가 있다. 그러나 목욕하고 옷 챙겨 입고 찍어 바르는 게 귀찮아서 안 나갈 때도 많다.

지금도 연재가 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한동안 우리가 구독하던 미국 신문에 '블론디'라는 몇 컷짜리 만화가 있었다. 나는 그 만화를 보면서 늘 궁금한 게 있었다. 바로 주인공 블론디 여사의 옷차림이었다. 남편 대그우드는 직장인이고 블론디는 집에서 살림만 하는 전업주부이다. 그녀는 집에서도 항상 성장(盛裝)을 하고 있다. 무릎까지 오는 치마와 블라우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귀걸이 목걸이까지 완벽하게 갖춘. 핸드백만 들면 금방이라도 외출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차림새.

그런 옷을 입고 집안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남편과 아이들을 내보내고 난 후 소파에 편하게 눕고도 싶고 가끔은 낮잠도 잘 텐데 그럴 땐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어 놓고 속옷바람으로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서 옷을 주워 입는 것일까.

A씨로부터 아내가 집에서 귀엽고 여성스런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꽃무늬 원피스가 가장 좋겠지만 하다못해 색깔고운 스웨터에 청바지라도 입고 있으면 좋으련만 아내는 항상 자기가 입다버린 트렁크 팬티와 행주로 썼으면 딱 좋을 목 늘어진 런닝셔츠, 그리고 무릎 나온 츄리닝 차림이라는 것이다.

화장을 하지 않아 잡티가 그대로 노출된 피부와 쌍커풀 수술자국이 뚜렷한 얼굴의 아내를 보노라면 이 여편네가 긴장이 풀려도 너무 풀렸구나 싶단다.

그런데 그렇게 퍼져 있던 아내가 한국마켓이라도 갈라치면 공들여 차려입고는 팔색조처럼 변한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A씨는 배신감이 든다는 것이다.

"참 여자들은 이상해. 남편과 같이 집에 있을 땐 빈 자루처럼 푹 퍼질러 있다가 도대체 누구한테 잘 보일려고 나갈 때는 그렇게 예쁘게 꾸미느냐 이 말이야"

A씨의 말에 나도 양심이 찔렸다. 그렇다. 우리 여자들이 정작 예쁘게 보여야 할 사람은 남편이다.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할 사람이니까. 그러나 집에서, 남편과 같이 있을 때 예쁘고 고운 옷차림을 하고 있는 아내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만약 그런 여자가 있다면 필시 결혼한지 몇 개월 안되는 새댁일 게 뻔하다.

주 5일, 아니면 6일 죽으라고 일 해야 하는 우리 여자들. 집에서까지 꽃단장하고 있기에는 사는 게 너무 피곤하고 복잡하다. 또 굳이 그래야 할 이유는  뭔가. 여자는 집에서나마 좀 편안하게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