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남편과 한바탕 했다. 발단은 앨범이었다. 버리기 선수인 내가 집 청소를 하면서 몇 권이나 되는 앨범을 쓰레기 통에 처넣었는데 그걸 남편이 발견한 것이다.

 

"우리 결혼생활에 무슨 문제 있어?"

쓰레기 차가 오는 전날 저녁, 바깥에 나갔다 들어온 남편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을 때 내가 내다버린 앨범때문이라곤 꿈에도 생각못한 나는 어리벙벙하게 남편을 쳐다보았었다.

아니, 이 인간이 저녁 잘 먹고 쓰레기 통 내놓으러 나갔다 오더니 갑자기 미쳐버렸나, 이 무슨 뜬금 없는 소리야?

남편이 재차 내게 물었다. 최근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냐고.

나는 생긴 것도 둔하지만 머리도 둔하고 눈치가 굼떠서 단순하고 직설적인 말이 아니면 잘 알아 듣지를 못한다. 빙 둘러대는 말, 심경을 떠 보기 위한 의뭉스러운 말의 진의를 잘 파악 못하는 것이다. 지금 내게 하고저 하는 말 뜻을 제발 좀 명확하게 해달라고 생난리를 치고나서야 남편은 내가 갖다버린 앨범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 아니라면 왜 갑자기 둘만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앨범을 몽땅 다 갖다버렸냐고. 그때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아하, 그것 때문이었구나!

"걱정 마셔. 약혼, 결혼 앨범은 아직 안버렸으니까"

사실은 그것도 다 갖다버렸으면 했다. 그러나 대형 앨범 서너권이랑 상패 열댓개가 들어가니 쓰레기 통이 꽉 차버렸다. 더 이상 넣을 자리가 없어서 다음으로 미뤘던 것이다.

나는 앨범을 내다버린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우리 죽고나서 앨범 들여다 보며 추억해 줄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 년 가야 한두 번 들춰 볼까 말까 한 것들을 뭣하러 장소만 차지하게 그냥 갖고 있냐, 그래서 버렸다고.

그러나 남편은 내 말에 수긍하지 않고 저녁 내내 화를 풀지 않았다. 아무리 정리정돈에 목숨을 건 여자라도 그렇지, 어떻게 앨범을 다 내다버릴 생각을 하냐고. 그렇게 버리는 걸 좋아하면서 왜 자기는 갖다버리지 않냐고. 나도 화가 나서 대꾸했다.

"늙고 병들어 힘 없어지면 그때 갖다 버릴께. 아직은 버리기가 좀 아까우니까....."

최근에 나랑 가깝게 지내는 지인도 최근에 남편과 이혼 얘기까지 들먹거려가며 크게 한판 싸웠단다. 둘이 기분좋게 외식을 하러 나갔다가 사소한 이유로 싸움이 시작된 것이란다. 늘 명랑 쾌활하고 밝은 성격의 그녀였는데 이번 싸움에 상심이 컸는지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그동안 크고 작은 싸움을 한 달에도 몇 번씩 했었지만 이번 같이 이혼 얘기까지 해가며, 재산 분배까지 구체적으로 해가며 싸운 경우는 첨이라 마음의 상처가 아주 깊단다.

부부 문제 전문가가 쓴 '부부싸움 잘 하는 법'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상대방을 크게 자극하지 않고 슬기롭게 싸우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진짜로 이혼할 생각이 아니라면 절대 이혼 이야기는 입밖에 내지 말 것. 둘째,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을 삼가할 것(이를 테면 '돈도 못 벌어오는 주제에', '당신같이 멍청한 여자가 뭘 안다고 그래?'등등...). 셋째, 상대방의 지나간 잘못이나 실책은 들추지 말고 현재의 이슈만 가지고 싸울 것이었다. 결혼생활에 도움이 될 현명한 조언이다 싶어 그것들을 기억해 두었다. 그리고 주위의 부부들에게도 이를 참고하라는 얘기를 해주었는데 그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말이야 쉽지, 화가 나 눈에 보이는 것 없이 치열하게 싸우는데 그까짓 조언 따위가 대수냐면서.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고 가능한 한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성격자체가 낙관주의(樂觀主義)이기도 하지만 잦은 부부싸움이 부부사이를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냉각시켜 끝내는 이혼에 이르게 하고 만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충격이 별로 크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잽(jab)도 연속적으로 많이 맞으면 결국은 권투선수가 쓰러지고 만다는 얘기다. 억겁의 세월을 통해 이루어진 부부의 인연,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지어다. 부디부디 싸우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