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할 일은 산더민데 아침부터 내가 돌아버리겠네!"

월요일 아침.

옆 책상의 멕시코인 동료가 머리를 쥐어뜯는다.

수십여통의 전자우편이 도착해 있는데 그 중 반 너머는 또 잘못 보내져 온 거란다.

멕시코인인 그녀의 성과 이름은 마리아 로페즈이다.

그 나라 여자 이름중 굉장히 흔한 이름으로 멕시코인이 많은 우리직장 9백명 직원 중에 그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내가 알기만 해도 열댓명이 넘는다.

다른 회사도 그렇겠지만 우리 회사는 이름과 성을 전자우편 주소로 쓰는데 우리 회사가 캘리포니아에만 위치해 있는 게 아니라서 전 미국 방방곡곡에서 오는 전자우편을 다 받는 것이다. 일과 관계된 것이니 그냥 지워버릴 수도 없어 마리아는 일일이 잘못 보내진 것이라고 상대방에게 답장을 해주어야 한다.

전 미국의 우리회사를 통틀어 하나뿐인 이름을 가진 덕에 생전가야 잘못 온 우편물을 받을 일이 없는 나는 그런 그녀를 널널한 마음으로 구경하면서 내 전자우편함을 열어 본다.

예상대로 내 앞으로 온 우편은 달랑 한 개.

7년 근속 기념을 축하한다는 멧세지 하나뿐이다.

내 생긴 것과 걸맞게 지어진 촌스럽고 예쁘지 않은 이름때문에 그동안 부모원망도 많이 하며 속앓이를 한 게 얼마전이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내 이름이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

왜냐, 내 이름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릴적 친구를 찾아야겠다며 남편이 컴퓨터에 '사람찾기'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성과 이름을 입력하면 나이랑 주소까지 찾아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얼른 내 이름을 검색해 본 건 물론이었다. 이 미국 안에 나랑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해 하며. 그런데 딱 세 사람의 이름이 떴다. 이계숙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야 더러 있었겠지만 같은 스펠링을 쓰는 사람은 전 미국에 단 세 사람 뿐이었던 것이다.

"거참, 난 이계숙이란 이름이 흔해빠진 이름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네....."

내가 신기해하자 남편이 이번에는 내 본래성에다 하이픈(hyphen)을 넣은 남편 성을(결혼후 본래 내 성을 버리기 싫어 하이픈을 넣어 남편 성과 같이 쓴다)검색해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오오! 달랑 한 개의 이름이 떴다. 그게 바로 나였던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와아! 이 넓디넓은 미국땅에서 나와 같은 성과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 하나뿐이라니!"

내가 감격해 어쩔 줄 모르자 남편이 '미국에서 단 하나가 아니라 아마 이 세상에서 단 하나일 것'이라고 말해 준다. 자신의 성이 희성이라 전 세계를 합쳐봐야 50명이 채 안되는데 자기의 어느 친척 하나가 이계숙이란 이름을 가진 동양여자와 또 결혼을 했으면 모를까 내 이름은 진짜 하나 뿐일 것이라는 것이다.

남편의 말이 틀리지 않다면 나는,나는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이름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은 '인터넷 검색이 일상화되면서 흔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경제,사회활동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하루에 이뤄지는 검색의 7%가 사람 이름이다. 경영진 알선업체의 80%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구직자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며 40% 누리꾼들도 연락이 끊긴 친구나 친척을 찾기 위해 검색을 이용한다'고 소개하면서 최근 태어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독특하고 특별하게 짓기위해 많은 부모들이 고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신문 기사대로라면 이 세상에서 하나 뿐인 이름을 가진 나는 벌써 50점은 따고 들어가는 셈인 게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에게는 미국식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보편화되었고 어른들도 시민권을 따면서 거의 으레껏 미국식 이름으로 바꾸는 경향이다.

그런데 한인들이 가진 미국 이름이 거의 대동소이한 것 같다.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한 지인에 따르면 남자 한인들 이름 가운데 가장 흔한 이름이 제임스 김과 데이빗 김으로 이들 이름을 컴퓨터에 입력하면 수만명이 한꺼번에 뜬단다.

그 중에는 생년월일까지 일치하는 사람도 많아서 필요한 정보를 찾는데 힘이 든다고 했다. 특히 한국인들이 밀집되어 살고 있는 LA에는 같은 동네, 같은 아파트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중요한 우편물들이 엉뚱한 주소, 엉뚱한 사람에게로 잘못 발송되는 일들이 아주 흔하단다.

정부기관 뿐 아니라 크레딧 카드회사에서도 자주 혼동을 일으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끼리 불이익을 당한다는 기사도 언뜻 신문에서 본 것 같다.

편하라고 지은 영어이름 때문에 이렇듯 불편을 겪는 일이 자꾸 생기면 독특하고 흉내내기 어려운 한국식 이름으로 도로 돌아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CBS 리얼리티 쇼인 '서바이버' 우승자인 권율 씨가 주류사회에 더욱 쉽게 각인된 것은 독창성있는 그의 한국 이름도 크게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짐작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