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식탁을 샀다.

기존 식탁은 C씨가 가져가겠다고 하길래 얼른 그러라고 했다. 산지 3년밖에 안된, 거의 새 거나 다름 없는 거라 버리기도 뭐하고 처분이 골치였는데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그런데 가져간다는 사람이 며칠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 강아지 오줌 누이러 뒷뜰에 나갈 때마다 밖에 내다놓은 식탁이 눈에 거슬렸다.

닷새 째 되던 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식탁이랑 의자를 낑낑대며 들어다가 드라이브 웨이에 내다 놓았다. 그리고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라고 쪽지를 부쳐놓았다.

몇 시간 후 나가 보니 식탁과 의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C씨가 펄펄 뛰었다. 가져간댔으면 어련히 가져 갈까 봐 그 며칠을 못참고 내다버렸냐고. 내가 대꾸했다. 나 뭐든 잘 버리는 건 온동네가 다 아는 사실인데 가져가랄 때 얼른 가져가지 왜 뜸을 들여요, 그래?

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남편이 창고를 치우면서 잔디깍는 기계, 잔디 모서리 치는 기계, 그리고 기계톱(table saw)등을 잔뜩 내놓았다. 더 이상 쓰지 않을 거니 누구 필요한 사람 있으면 주란다. P씨한테 요긴할 것 같기에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아 녹음을 남겼는데 하루가 지나도록 무소식이다. 그래서 드라이브 웨이에 쪽지 부쳐 내놓을까 하다가 K씨에게 연락했더니 다음 날 새벽에 남편까지 대동하고 가지러 왔다. K씨 남편이 물건들을 보더니 와, 아주 좋은 상표네. 와, 아직 새거나 진배 없네, 하며 좋아죽을라 했다.

나중에 P씨가 아쉬워 하길래 내가 말했다. 생전 전화 안 하는 사람이 전화해서 녹음까지 남겼는데 왜 리턴 콜을 안해요, 그래?

나는 뭐든 참 잘 버리는 사람이다. 스트레스가 쌓였다 싶으면 우선 집안부터 둘러 본다. 뭐 내다버릴 것 없나 싶어서.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다가 정 버릴 게 없으면 냉장고를 열어 본다. 먹지 않고 냉장고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음식들이나 유효기간이 가까워 오는 것들을 쓸어다가 한바탕 버린다. 그래야 속이 후련하다.

부부는 보통 반대로 만나기 마련이라 한쪽이 잘 버리면 한쪽은 꽁꽁 쌓아놓는 걸 좋아하는데 우리집은 예외다. 남편도 버리는데 선수다. 딴 건 몰라도 버리는 데는 둘이 늘 의기투합인 것이다. 적쟎게 돈을 버는 데도 우리집 살림이 항상 요모양 요꼴인 이유가 뭐든지 잘도 사고 잘도 갖다버리는 까닭이다. 나중에 필요해서 다시 구입할 망정 지금 쓰지 않으면 일단은 버리고 본다.

어릴 때부터 평생을 풍족한 산 남편은 그렇다치고 지지리궁상으로 살아온 나는 왜 아까운 걸 모르고 잘 버릴까. 필요없는 것은 버려야 집이 깨끗하다는 걸 일찍이 깨우쳐서 그럴 것이다. 실제로 뭐든 잘 버리는 사람 집은 항상 깨끗하다.

내 주위에는 버리지 못하고 물건에 치여서 사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한 남성은 얼마 전에 내가 쓴 '버리는 지혜'라는 제목의 칼럼을 오려 냉장고 문에다 부쳐놓았단다. 바늘 하나도 못버리는 부인이 오다가다 그걸 읽고 반성 좀 하라고. 그가 말했다. 집안에 온갖 잡동사니들로 넘쳐나서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니까요.

또 어떤 여성은 그 칼럼을 읽고는 유효기간이 넘은 로션 두병을 갖다버렸다고 했다. 쓰지 못하는 걸 버리는데도 아까와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라고.

그렇다. 뭐든 익숙해지는 데는 연습이 필요하듯이 버리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 아무리 하챦은 물건이라도 나름대로 사연과 추억이 깃들어 있다. 그걸 필요없다는 이유로 과감하게 없애는 게 쉬운 일인가.

나는 이제부터 물건 외의 것을 버리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내 속에 가득 찬 욕심과 이기심, 그리고 시기심을 버리는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