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다.

정해진 시각에 맞춰 그 집에 도착했더니 K씨와 내가 첫 번째 손님이었다. 집구경을 하면서 우리는 한동안 수다를 떨었는데 나는 수다보다도 상에 잔뜩 차려진 음식에 더 관심이 갔다. 배는 고픈데 주인이 빨리 밥 먹자는 소리를 안하는 것이다.

한참을 눈치만 보다가 더 참지 못한 나는 누구 더 올 사람있냐고 물어보았다. 식탁의 음식을 곁눈질 하면서.

그때서야 주인이 천정까지 펄쩍 뛰어오르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오오! 맙소사, 내 휴대전화!"

또다른 K씨가 오기로 했는데 집을 나서면서 전화를 하면 약도를 가르쳐주기로 했단다. 그런데 휴대전화를 한참 동안 꺼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인이 허겁지겁 전화를 켜기가 무섭게 전화벨이 요란스레 울리기 시작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K씨로부터였다.

"음식 다 해놓고 전화를 켜놓는다는 것을 깜박했네요.미안해요,미안해....여기를 어떻게 오시냐면요...."

한참 후 도착한 K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씩씩거렸다.

"동네입구에서부터 거의 한 시간 동안을 전화를 했는데 받아야 말이지. 배는 고프지, 성질은 나지, 한 번만 더 전화해 보고 안 받으면 도로 집으로 돌아 가버리려고 했는데 마침 전화를 받았지 뭐야!"

내가 말했다.

"아무리 휴대전화가 있기로서니 한 번도 안 와본 집을 찾아오면서 어떻게 약도도 받지 않고 길을 나섭니까?"

몇 년전 우리집 집들이를 할 때도 같은 일이 있었다. 상세하게 그려넣은 약도를 일일이 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일날 약도를 가지고 우리집을 찾아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느 동네까지라는 것만 대충 인지하고 차를 몰고 나와서는 동네 입구에서 전화들을 해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미리 온 손님 접대하랴, 떨어진 음식 보충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판국에 1분이 멀다하고 걸려오는 전화받아 길 가르쳐주느라 정신을 홀랑 뺐었던 걸 기억한다. 그런데 새로 이사를 간 집이나 처음 초대받아가는 집에 가 보면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 늘 보게 된다.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이 없게되고부터 생겨진 일인 것 같다.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L씨와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열 두시 쯤 L씨가 우리집으로 와서 같이 식당에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열시도 안되었는데 L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바깥이거든. 나 지금 그냥 자기네 집으로 가면 안될까?"

L씨의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우리집에 오기 전 병원에 입원한 H씨 어머니의 병문안을 잠깐 가기로 계획을 세웠단다. 그런데 병원 이름이랑 병실 홋수를 가르쳐주기로 한 H씨랑 도대체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화를 꺼놓았나봐. 수십 번 했는데도 안 받네......."

차려입고 집을 나섰으나 병원이 어딘지 모르니 낭패라는 것. 도로 집으로 들어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일요일 아침에 딱히 갈 데도 없으니 그냥 우리집으로 와야겠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어느 병원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단 말인가. 내가 기가 차서 물었더니 L씨가 우물쭈물 말했다.

"열 시경 전화하면 분명히 받을 거라고 했었거든.....이럴 줄 알았으면 엊저녁에 통화할 때 미리 알아놓는 건데..."

엊저녁에 통화까지 했으면서도 병원 이름을 알아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시간 정도 운동으로 땀을 뺀 다음 목욕하고 산뜻하게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로 했던 일요일 오전의 내 계획은 두 시간이나 일찍 온 L씨 때문에 다 망쳐졌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인지 남성 혼자서 마켓에서 장을 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의 공통점은 거의 하나같이 물품대 앞에서 휴대전화로 아내와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보, 당신이 사오라는 제품이 어떤 거였었지? 빨간 봉지에 들은 거야, 아님 파란 봉지에 든 거야?"

그럴 때마다 나는 중얼거린다.

나올 때 미리 좀 정확하게 알아가지고 나오지.....

옛날에 휴대전화 없었을 때는 모두들 어떻게 살았을까.

'휴대전화 폐인' 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긴 요즘, 나는 휴대전화가 없다. 무리에 섞이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한 발 물러나 관조하고 있는 기분도 썩 나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