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C아줌마를 만난 건 95년도 무렵이었다.

외로운 미국생활에 혼자 방황할 무렵에 구세주같이 만난 사람이 C아줌마였다.

아줌마와 그녀의 남편과 그리고 나는 같은 동향이라는 이유 하나로 급속도로 친해졌다.

C아줌마는 15년전 남편과 가족이민을 온 사람으로 틴 에이저인 아들과 딸을 키우며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미국에서 15년을 살았지만 여전히한국적인 푸근하고 넉넉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아줌마는 나를 친동생처럼 여기며 나의 고민과 방황을 이해해 주려 애썼다.
차로 30여분 거리인 아줌마 집을 나는 일주일에도 몇 번 씩 드나들며 정을 나누었다.

아줌마의 남편은 약간은 괴팍스런 성격의 소유자였다.

미국에서 15년을 살면서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하나 없었다.

괴팍하고 별난 성격으로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성격때문이었다.그러나 어쩐 일인지 나에게만은 예외로 나를 자기 집안 식구같이 잘 대해주었다.

그러나 가끔 나와도 의견충돌을 일으키곤 했는데 이유는 아줌마 남편의 타 인종에 대한 가치관이 나와 틀린 때문이었다.

미국 온 지 10여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아침저녁을 한국식으로 먹어야 직성이 풀리고 노래도 꼭 한국가요만 들을 정도로 한국식 사고방식에 푹 젖어사는 그는 '어쩔수 없이 미국에 와서 살지만 자식들의 배우자는 반드시 한국인어야만 한다' 는 완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백인은 백인끼리,흑인은 흑인끼리,동양인은 동양인끼리 결혼해야지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허울좋은 명목아래 이리저리 섞이게 되면 정체성의 혼란이 오고 나아가서는 가족관계에 까지 영향이 미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의 결혼관에는 타인종들을 무시하고 배척하는 심리가 깔려있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시청의 고급 공무원으로 일 하다 이민왔다는 그는 특히 흑인이나 히스패닉 계통의 인종들을 싫어했다.

백인이야 워낙 우수한 민족이니까 조금 봐 줄만 하지만 흑인이나 히스패닉 인들은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고 무식한 열등민족이라는 것이다.

자기 직장의 경우만 보더라도 직장생활 10년 밖에 안된 자기도 벌써 집을 사고 은행에 많은 저축이 있는데 흑인이나 히스패닉인들은 아직까지 아파트에 월세로 살면서 월급만 받았다 하면 먹고 춤추고 놀기부터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 하나님이 내리신 고귀한 생명체이니 차별하고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내 주장과 미국의 범죄자중 흑인이나 히스패닉 계통의 비율이 얼마나 높은 지 아느냐는 아줌마 남편의 주장이 때때로 맞부딪치기가 수차례, 그러나 그러한 주장들이 우리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절실하지 않는 문제였으므로 주장은 그냥 주장으로 끝이 나기 일쑤였고 우리는 여전히 친하게 잘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아줌마와 식탁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뒤꼍에서 수확한 야채들을 갖다 주러 형님네 갔다온 아줌마의 남편의 얼굴이 희희낙락이었다.

"흥, 내 그럴줄 알았다.지 새끼들 공부 잘 한다고 자랑,자랑 할 때 내 알아봤다니까! 공부만 잘 하면 뭐해 기껏 멕시코 놈하고 놀아나는 주제에!"

C아줌마 남편의 형에게는 스무살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두 딸이 있었다.

아줌마네보다 십여년을 먼저 이민와 옷장사로 많은 돈을 벌어 지금은 큰 사업체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는데 돈이 많은 만큼 자식들에게도 많은 투자를 해서 두 딸 다 이 지역의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 딸들이 다음달 초 지아버지 생일잔치에 그동안 사귄 애인들을 소개시킨다고 한다는데 공교롭게도 둘 다 히스패닉 계통 남자라는 것이다.

형보다 늦게 미국 온 관계로 형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야 했던 아줌마 남편은 형네를 무척 미워하고 시기하고 있었다.

자기들보다 돈 좀 많다고,영어를 좀 더 잘 한다고, 자기 식구들을 알게 모르게 무시하고 깔본다는 것이 C아줌마 남편의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형 앞에서 자기들도 기를 좀 펴게 돈이라도 좀 왕창 벌렸으면 좋으련만 어떻게 하다보니 직장생활로 들어선 아줌마네는 지금까지 생활이 확 펴지지가 않았다.

아이들이라도 기대만큼 공부를 좀 잘해주면 아이들을 가지고라도 큰 소리라도 칠 수 있었을텐데 그도 저도 아니었고 그와는 반대로 형네는 갈수록 사업이 승승장구에다 아이들까지 공부를 잘해 유명대학에 척 들어가니 아줌마의 남편이 심사가 꼬일대로 꼬인 모양이었다.

형네 가족에게서 어디 꼬투리 잡을 데가 없나 눈에 불을 켜는 판인데 이게 웬 떡이랴 싶은 것 같이 아줌마 남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돈이고 사업이고 다 필요 없어. 자식농사를 잘 지어야지. 형님 내외가 아주 울상이더구먼.내 손을 잡고 이일을 어쩌면 좋겠냐고 하소연을 하더군.이번 생일잔치를 호텔을 빌려 크게 치를려고 했는데 딸들이 멕시코 남자들을 데리고 오면 남 부끄러워서 어떻게 하냐며 아무래도 취소해야 겠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미리 계획된 생일잔치를 취소하면 어떡 해요?"

아줌마가 안타깝다는 듯 한마디 거들자 남편은 화를 벌컥 내며 목소리를 높혔다.

"최소하지 않으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뭐 하는 놈인지도 모를 멕시코 놈을 생일잔치에 불렀다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거야? 형님이 이 지역에서 나름대로 덕망이 있고 프라이드가 있는 사람인데 그 더러운 소문들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걔네들이 언제 그 사람들과 결혼이라도 한대요? 어디까지나 남자친구들이라는데.. 사윗감도 아닌데 그 난리를 칠 건 뭐가 있수? 요즘 아이들치고 타 인종들 안 사귀는 아이들이 어디 있다고....여긴 미국인데..."

"시끄러! 에미가 돼 갖고 한다는 소리하곤... 당신 얘들 단속 잘 해! 아예 처음부터 못을 박아 놓으라구! 아예 다른 나라 종자들을 쳐다 보지도 말라고 말이야! 백인도 싫어! 타 민족인들을 더더욱 싫고! 죽어도 한국사람이어야 해! 한국 사람하고 사귀지 않으려면 아예 데이트 조차 할 생각을 하지도 말라고 해!"

"한국인 인구라고 만명도 채 되지 않는 이 조그만 동네에서 어떻게 한국 처녀 총각들을 찾아 데이트를 할 거라고 그래요? 그리고 지 마음에 맞는 떡이 있나, 아무리 같은 한국사 람이래도 집안도 맞고,성격도 맞아야지.무조건 한국 사람하고만 이라고 못을 박아놓으면 어쩐대? 째보, 곰보라도 한국 사람이기만 하면 허락할 건가?"

"차라리 째보,곰보가 나아! 한국 사람이기만 하면....!"

아줌마와 그 남편의 언쟁을 들으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이 집안에 아이들 때문에 큰일이 일어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제 갓 틴에이저 대열에 들어선 이 집 아들 딸들이 서서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의 말을 좇아 얌전하게 공부만 하고 친구들을 사겨도 한국아이들 아니면 일본,중국아이들을 사귀어 왔지만 이제 곧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 연애도 할텐데, 지금까지 그랬던 것 처럼 아버지의 말을 들을까 하는 걱정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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