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건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이었다. 짙고 우중충한 색깔의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은 이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울긋불긋, 화사하고 밝은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들, 나비같이 가볍고 나풀나풀한 옷을 입은 사람들뿐이었다. 성질 급한 여자들은 벌써 어깨를 훤하게 드러내는 탱크탑을 입고 다니기도 했다.

박익준은 아까부터 물끄러미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화사한 봄풍경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두 눈을 창 밖으로 고정하고 있었다. 참 이상하군. 미국엔 왜 아지랑이가 없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아주 오래 전의 어느 봄날이었다. 아지랑이가 아물아물, 실처럼 하얗게 피어오르던, 오늘처럼 화창하고 따뜻한 봄날이었다. 노란 병아리 떼가 종종 걸음으로 어미닭을 따라 한가롭게 마당을 거닐며 먹이를 찾고 있던 봄날이었다.

그때 다섯살의 박익준은 마당 툇돌에 앉아 마늘을 까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의 안색은 늘 그랬듯이 그날도 어두웠다. 우울이 더께로 내려앉은 듯한 회색 빛 도는 얼굴과는 다르게 엄마는 그때 옅은 보라색의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강렬한 봄볕이 눈을 찔러 실눈을 뜨고 박익준은 엄마를 쳐다보았다. 박익준은 엄마가 입은 보라색 스웨타가 참 곱고 화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따뜻한 봄볕 아래 마늘을 까고 있는 엄마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아들. 그 모자의 모습은 그 누가 봤더라도 참 한가롭고 평화스럽다고 생각했을 풍경이었다. 그러나 박익준은 그때 감지했다. 엄마를 짓누르고 있는 예사롭지 않는 기운을. 박익준은 그 표현하지 못할 특별하고 이상한 기운에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그러나 울음을 터트릴 만한 명분이 없어 그냥 울듯말듯하면서 실눈을 뜨고 엄마를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말 한 마디 없었다. 그렇게 한 바가지의 마늘을 다 깐 엄마가 마침내 고개를 들어 박익준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엄마는 울고 있었다. 흘러내린 눈물이 얼굴을 적시고 목을 적시고 보라색 스웨터의 앞 부분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익준아……..”

엄마는 익준을 가까이 오게 했다. 쭈볏거리며 다가가자 엄마는 익준을 세차게 끌어안았다.

“익준이, 우리 익준이 엄마 없이도 살 수 있지?그치?익준인 이제 다 컸으니까….”

엄마없이도,라는 말 보다는 엄마가 앞섶이 펑 젖도록 울었다는 사실이 슬퍼서, 그리고 무서워서 익준은 아무 대답도 못했다. 용수철로 목이 만들어진 오뚜기 인형처럼 마냥 고개를 끄덕일 뿐. 마치 자신이 할 일은 고개를 끄덕이는 일 뿐이라는 듯이.

“그러면 됐다…….”

엄마는 익준을 향해 희미하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깐 마늘이 든 바가지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게 박익준이 본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익준은 바로 옆집으로 놀러나갔다가 저녁이 이슥해서야 돌아왔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친척집 결혼식에 갔던 할머니가 돌아와서 홀로 오두커니 있는 박익준을 발견하고 혀를 끌끌 차며 저녁밥을 해먹였다. 그리고 박익준은 잠이 들었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며느리를 욕하는 할머니의 쇳소리 섞인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저수지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박익준에게는 그 날 마지막으로 본 엄마라는 존재, 그 존재 자체보다는 연보라색 스웨터가 더욱 강렬하게 가슴에 남았다. 그리고 연보라색 스웨터는 박익준에게 그리움이 되었다. 연보라색 스웨타만 보면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엄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박익준은 연보라색 스웨터를 입은 여자만 보면 괜스리 가슴이 뛰는 증상이 생겼다.

선희가 어느 날 엄마가 입었던 연보라색의 스웨터를 입고 회사에 왔을 때도 물론 같았다. 쿵쿵, 하고 가슴이 뛰어서 박익준은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한참 심호흡을 해야 했다.

저 여자가 오늘 웬일일까. 저런 고운 색깔의 옷을 다 입다니. 항상 우중충한 얼굴표정 만큼이나 늘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다니는 여자가 선희였다.

“오늘 입은 스웨터가 참 잘 어울려요….”

머그잔을 들고 휴게실로 가는 선희를 따라가면서 박익준이 건넨 말이었다. 그때 선희는 입술을 끌어올리며 보일듯 말듯 석연찮은 표정으로 웃었다.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는 말도 없이.

“앞으로 그렇게 고운 색깔의 옷 좀 입고 다녀요. 얼굴에 무척 잘 받네요…”

박익준이 재차 말했을 때도 선희는 그저 소리없이 미소를 짓기만 했다. 젊은 여자가 왜 항상 초상집 상주같은 옷만 입어요? 어떤 땐 꼭 드라큘라 같아 보인다니까요, 하고 말하고 싶은 걸 박익준은 애써 참았다. 농담도 사람 봐 가며 해야 하니까. 까닥 잘못하다간 봉변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그날 이후부터 박익준은 의도적으로 선희에게 접근하며 말을 부쳤다.

립스틱 색깔이 바뀌었네요? 머리 잘랐네? 오호, 선희씬 긴머리보다 짧은 머리가 잘 어울려요.….

그러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박익준이 애써 관심을 표하는데도 선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박익준이 섭섭했던 것은 그날 이후 선희가 두번 다시 그 연보라색 스웨터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희씨. 지난 번의 그 스웨터 말이예요….”

어느날 휴게실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있는 선희를 발견하고 박익준은 또 다시 접근을 시작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박익준은 선희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평범하게 살아온 것 같지 않고 뭔가 깊은 사연을 품고 있는 듯한 선희에게 그냥 색다른 호기심이 있었을 뿐이다.

“아, 그 연한 보라색 스웨터…라벤다 칼라라고 하나? 왜 그 스웨터를 다시 안 입냐고요….”

박익준이 빙글거리며 놀리듯 말하자 선희가 얼굴을 붉히며 더듬더듬 말했었다.

“친구가 생일 선물로 사주었는데……”

“생일선물이요?”

“좋아하는 색깔이 아니라 아무래도 좀 어색하고 부담스러워서요…..”

힘들고 어렵게 그 두어마디의 말을 하는 선희는 마치 숙제를 해오지 않아 선생한테 야단맞는 초등학교 학생처럼 주눅 들어있었다. 아, 이 여자는 사는 게 편안하지 않구나……

“그 스웨터 자주 좀 입도록 해요. 나를 위해서……”

그렇게 부탁했는데도 선희는 그 스웨터를 입지 않았다. 다른 데에서 입는지는 모르겠으나 직장에 입고 온 걸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때 부터였을 것이다. 선희에게 바짝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 박익준은 유심히 선희를 관찰하고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슨 말 못할 고민있는지 늘상 처연하도록 우울한 얼굴이었다. 가끔은 병자같이 퀭한 눈에 부석부석한 얼굴로 출근할 때도 있었다.

“선희씨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요”

무슨 말을 해도 표정의 변화없이 희미하게 웃기만 하던 선희였으나 가끔은 박익준의 말에 대꾸를 해주기도 했다.

“잠을 잘 못자서요……”

“젊은 여자가 왜 잠 을 못자요? 애인이 속 썩여서?”

박익준이 떠보려 하는 걸 알았는지 선희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웃음을 보이기만 했다.

색깔없는 여자다, 하고 박익준은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빨강색, 노랑색, 파란 색 등 자기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선희는 색깔이 없다. 굳이 색깔을 붙힌다면 물색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얼마동안을 박익준이 농담 비슷하게 진담 비슷하게 말을 걸고 관심을 보였는데도 선희쪽에서는 특별하게 돌아오는 게 없었다.

이것 봐라, 하는 생각이 박익준에게 들기 시작했다. 여자에게 보통 그 정도로 운을 떼어놓았으면 박익준이 할 일은 다 한 셈이었다. 다음은 여자가 바짝 달아서 덤벼 들 차례였다. 그러나 박익준이 몇 차례 미끼를 던졌는데도 선희는 미끼를 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박익준은 선희에게 다른 무엇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남자라는 존재보다 더 크게 선희를 잡고 있는 것. 그게 무엇일까. 박익준은 선희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바로 가족이었다는 것을, 선희를 늘 우울하게 하고 있는 멍에가 가족이었다는 것을 박익준은 알게되었다.

돈 한푼 벌어들이지 못하면서도 노름, 폭력, 협잡질등 갖은 짓을 다하고 다니는 난봉꾼 아버지와 아버지 하는 짓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말썽쟁이 남동생과 걸핏하면 손 내미는 여동생과 그리고 식당일과 세탁소일로 평생을 보내는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거의 10년 가까이 사귀고 있는 애인도 선희의 형편과 거의 비슷해서 선희의 어깨에 지워진 짐을 조금도 덜어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선희에게 측은하고 불쌍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여자에게 연민을 느끼다니. 박익준에게 여자란 단지 잠자리를 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예쁜 꽃을 보면 꺾어가지고 싶듯이 맘에 드는 여자를 보면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 뿐. 그것은 예쁜 강아지를 보면 쓰다듬어주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것 같은 맘하고 같은 것이었다. 숫컷이 암컷에게 느끼는 본능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그 중에는 사랑을 느꼈던 여자도 더러 있었지만 사랑했을 지언정 연민을 느끼지는 않았던 것이다.

박익준은 지금에야 알았다. 선희에게 느꼈던 연민의 근원은 어머니, 자신의 어머니로부터였다는 것을.

선희의 모습은 어머니와 닮았다. 여고를 졸업하자마자 난봉꾼인 아버지에게 팔려오다시피 결혼한 어머니. 자신 한 몸 희생해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친정을 일으키려했던 어머니. 그러나 사흘들이로 여자를 갈아치우는 호색한인 아버지를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하고 젊디 젊은 나이에 저수지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머니.

박익준이 기억하는 자신의 어머니는 선희처럼 그렇게 항상 침울하고 어두운 얼굴이었다. 선희처럼 말수도 없었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어머니는 죽어서라도 의사 표시를 할 용기가 있었다는 것. 저수지에 몸을 던지므로 아버지로부터 느꼈던 굴욕감을 항변했다는 것.

그러나 선희는 박익준으로부터 무시받고 멸시받았어도 저항의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다. 박익준이 함부로 굴면 굴수록 더욱 더 숙이고 들어왔다. 자존심도, 자존감도 없는 여자같았다. 시녀처럼,  입속의 혀처럼 굴었다. 그런 후 박익준이 던져주는 몇푼의 돈을 허겁지겁 받아갔다. 여자로서의 자존심보다 돈 몇푼이 더 귀했을까. 그런 선희의 모습이 참 싫었다, 박익준은. 그래서 박익준은 선희에게 더 함부로 굴었는지 모른다.

박익준이 선희에게 바란 건 순종이 아니었다. 말 한 마디에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복종이 아니었다. 박익준이 바란 건 당당함이었다. 저항이었다.

이 여자야. 부당한 대접을 받고도 바보처럼 웃지말란 말이야. 병신처럼 당하지 말고 일어 나!일어나라구! 일어나서 내 따귀를 후려 쳐!

어머니가 그렇게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는 재산을 정리해 서울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곧 새어머니를 맞아들였다. 교회전도사로 한번도 결혼한 적이 없던 여자였다. 새어머니는 박익준을 친자식처럼 사랑해 주었다. 친 어미라도 못할 그런 사랑과 관심을 박익준에게 쏟아부어 주었다. 박익준은 친 어미가 없었으되 친 어머니의 빈자리를 모르고, 애정의 결핍을 모르고 자랐다. 그러나 늘 처연한 얼굴로 대문밖을 내다보며 한숨을 쉬던 어머니는 박익준의 가슴에 그늘이 되었다.

세월이 가면서 어머니에 대한 슬픈 기억도 점차 잊어져 갔고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이어받은 박익준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이 여자 저 여자 갈아치우며 사느라. 그러다가 선희를 통해 가슴 밑바닥에 숨어 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끄집어내졌던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서너번 자고난 후, 이번 여름까지만, 가을까지만, 겨울까지만 하던 선희와의 관계를 계속 끌어왔던 것은. 그것은 박익준 답지 못한 일이었다.

미루다니. 한번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 여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끊어내던 사람이 박익준이었다. 그러나 선희는 선희만은 그렇게 냉정하게 차마 내칠 수 없었다. 이제 생각하니 그 이유가 선희에게 오버랩되는 어머니의 모습때문이었다. 7년을 사귄 애인을 두고 자신에게 넘어 온 여자를 단지 싫증나서, 라는 이유로 버리기에는 너무 양심의 가책이 되어서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생각하니 어머니때문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선희는 떠나갔다. 말 한마디 실수하는 바람에 선희는 떠나갔다. 거의 1년동안을 참아주고 인내해 주던 여자였다. 자신이 박익준으로부터 메이드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여자였다. 그러나 막상 그 말이 박익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듣고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나보았다. 그 치욕을 참아내기 어려웠나 보았다.

별 말썽 부리지 않고 순순히 제발로 떠나가 주는 것. 박익준이 바라던 바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선희로부터 문자 메세지를 받았던 것은 지난 달이었다.

“은행 계좌 번호를 주세요…..”

딱 그 한마디였다.

그동안 잘있었냐는, 건강은 어떠하냐는 상투적인 인사도 없었다.

그러나 박익준은 알았다. 그런 인사를 하지 않음에 대한 함축된 의미를. 그런 인사를 담담하게 할 만큼 아직도 마음이 추스려지지 않은 것이다. 선희가 자신으로 인해 얼마나 아파하고 번민하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지 박익준은 짐작하고 있었다.

박익준은 은행 계좌번호를 주지 않았다. 그럴 정신이 없기도 했으나 선희가 다시 한 번 연락을 해오리라는 것을 믿었기에. 그러나 선희는 다시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대신 일 주일 후 박익준의 회사로 머니오더 만불을 부쳐왔다.짤막한 메모가 함께 들어있었다.

-이자를 드리고 싶으나 일단은 원금만 먼저 받으세요. 선희 드림-

선희가 부쳐온 만불의 머니오더는 아직도 식탁 위에 있다. 기회가 되면 다시 돌려줄 생각에. 박익준은 말 할 것이다. 나 한테서 상처 받은 값이야. 사실은 선희를 한번만 더 만나고 싶다. 사과를 할 생각이었다. 미안하다. 써니야. 너를 가지고 놀아서. 네 감정을 가지고 놀아서 정말 미안해…

그런데 그럴 기회가 있을까. 머니오더로 돈을 부쳐온 걸로 봐서 다시는 박익준에게 연락을 안 할 각오인 것 같다. 선희에게 이렇게 단호하고 모진 구석이 있구나.

할 수 없었다. 선희에게 다시 한 번 돈을 빌려갈 기회가 생기길 바랄밖에.

선희한테는 미안하지만 말썽쟁이 동생이 다시 한 번 말썽을 피우든가. 난봉꾼 아버지가 또 다른 사고를 치든가 해서 다급하게 돈 쓰일 곳이 생기길 바랄밖에 .

박익준은 자신의 비열함에 킬킬대고 웃었다. 그런식으로라도 선희를 한 번 더 만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놀라면서.

어쨌든 지금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일단 건강을 회복해 하루빨리 병원부터 나가야 한다. 그렇다. 지금 박익준은 병원에 있다. 위암이라고 했다. 3기를 지나 마악 4기로 넘어가려는 상황이라고 했다.

“아니 어떻게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나, 그래? 너 그렇게 둔한 사람이었어?”

대학동창인 유박사가 강하게 책망했을 때도 박익준은 몰랐었다. 자신의 몸 상태가 그렇게 위중한 줄을.

“위가 이렇게 망가질 정도면 어느 정도 자각 증상이 있었을 텐데?”

“글쎄…. 소화가 좀 안되긴 했었지만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하도 많이 받아서 그런 줄 알았지….”

박익준이 남의 일처럼 무심하게 말하자 유박사가 혀를 끌끌 찼다.

“여자 때문은 아니고?”

유박사는 서둘렀다.

“당장 입원해. 일단 수술을 해보자구……”

수술을 하자는 말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병원에 들어와 있은지 벌써 두달이었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다. 위의 반 이상을 잘라냈다고 했다. 퇴원해 경과를 봐가며 통원치료를 하라는 유박사의 말을 일축하고 박익준은 당분간 병원에서 있기로 했다.집에 가보았자 자신을 간호해 줄 사람도 없으니까.
”다른 데로 전이만 안 되면 회생가능성은 충분한데 말이야….”

어쨌든 박익준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대학 동창 서너명이 모인 술자리에서 소화가 잘 안되고 명치끝에 둔탁한 느낌이 있다는 박익준의 말을 흘려듣지 않은 유박사 덕분이었다. 유박사는 의사답게 그 말을 흘려듣지 않고 예약을 잡아두었으니 꼭 와서 위 내시경 검사를 해보라는 이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이런 경우를 하늘이 도왔다고 해야 하나. 만약 유박사가 전화로 그런 연락을 해왔다면 박익준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메일은 거역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순순하고 얌전히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았던 것이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매일 방문객들로 축제분위기였다.

대학동창들, 전 직장, 현 직장 동료및 상사들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박익준이 일을 봐주었던 고객들로 병실은 매일 떠들썩하게 붐비었다. 화분이, 꽃이, 건강 음료스 박스가 넘쳐나서 처치가 곤란할 지경이었다.박익준은 매일 손님을 맞느라 낮잠 한번 잘 여유조차 없었다.

“방문객 금지를 하던지 이거 전혀 요양을 취할 수 없겠구만. 어이, 친구. 환자면 환자답게 아픈 척이라도 좀 해야 왔던 사람들이 얼른 돌아갈 거 아냐”

그렇게 돗대기시장처럼 사람들로 끓어넘치던 박익준의 병실이었다. 그러나 그 떠들썩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날이 감에 따라 방문객이 하나둘씩 감소하기 시작하더니 두달이 되어가는 지금은 아예 발길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며칠에 한두명,어떤 땐 일주일에 한두명일 때도 있었다. 아, 그래도 한명 있다.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려주는 방문객이. 바로 진아였다. 진아는 박익준이 처음 검사를 시작하는 날은 물론이고 수술을 받던 날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거의 매일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병실에 들러주고 있었다.

“야, 네 여자 고르는 솜씨는 알아주지만 어디가서 저런 퀸카를 물었냐? ”

처음엔 진아의 화려한 생김새와 옷차림새만 보고 그렇고 그런 여자려니 짐작을 했는지 눈도 안맞추며 냉담하게 굴던 유박사였다. 그러나 지극정성으로 박익준의 병실에 와 주는 진아의 모습에 감탄했는지 마음에 없는 소리, 허튼 소리는 일절 하지 않는 유박사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러나, 그러나 박익준은 알았다. 진아의 그런 순애보가 얼마 가지 않아 중단될 거라는 것을. 왜냐면 진아의 행동은 자연스런 것이 아니라 애써 노력하고 있는 거니까.

사람의 관계는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박익준은 예전부터 터득하고 있었다. 음식 싫은 것은 개나 주면 되지만 사람 싫은 것은 어찌할 수 없다는 말처럼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해 보려고 백번 노력한다고 좋아지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해 보려고 갖은 용을 써도 안 된다. 사람관계는 노력한다고 해서 안되다는 것을 박익준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 정 떨어진 여자 다시 정을 부쳐보려고 갖은 노력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싫어졌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상대방도 이쪽에서 노력을 하는 걸 눈치채고 말았다.

“노력하지 말아요. 싫으면 그냥 싫다고 얘기 해요”

이혼한 후 한 1년 정도 방황하다 만났던 여자였었다. 결혼까지도 생각했었던. 그러나 지고지순하고 착하다고 믿었던 여자가 세번의 중절수술 경험까지 있던 문란하고 방탕하던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말았다. 결혼하자는 약속을 하고 여자의 부모의 집까지 몇번 찾아간 후였으므로 그 사실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이별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박익준은 노력했었다. 처음 여자를 만났던 그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여자를 사랑하기 위해. 그러나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지금 진아는 박익준에게 흥미를 잃고 있었다. 위암 3기로 수술을 한다해도 회생을 장담할 수 없다는 유박사의 말을 듣는 순간 벌써 진아의 마음은 박익준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을 박익준은 알았다. 매일 병실에 오면서도 머리 속으로 어떻게 서로 상처를 주지 않고 받지 않고 헤어질까 별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박익준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어쨌든 노력하고 있었다. 잃은 흥미를 다시 만회시켜 보려고. 예전의 불같은 감정을 다시 복원시켜보려고. 진아의 그런 태도에 대해 박익준은 그저 담담했다. 전혀 섭섭하다거나 괘씸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참 진아답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진아는 여러모로 보나 자기랑 닮은 데가 있었다. 한번 마음이 돌아서면, 상대가 귀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두번 다시 고려해볼 생각을 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박익준이 선희에게 그랬던 것 처럼 진아도 자신에게 선뜻 이별을 고하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다.

박익준은 진아의 노력이 가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노력이 얼마나 갈까. 진아가 떠나가는 건 시간 문제라고 박익준은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들른 진아가 말했다. 한국에 갈 일이 생겼다고. 할머니의 병환이 위독해서 한국에 들어가야 한다고. 돌아오기는 하겠지만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르겠다고.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박익준은 놀라지 않았다. 단지 이별의 시간이 좀 빠르다고만 생각했을 뿐.

지금 진아는 박익준에게 오고 있을 것이다. 박익준은 20분 전 쯤에 진아의 전화를 받았다. 공항으로 나가기 전 서둘러서 잠깐 들러 얼굴을 보고 떠나겠다고 했다. 아니, 시간이 촉박하면 안 와도 돼,하고 박익준은 말했다. 촉박한 시간을 핑게로 들르지 못하고 가겠다고 해도 어쩔수 없는 일이니까. 그러나 진아는 굳이 얼굴을 보고가겠다고 했고 아파트를 떠나면서 전화를 했다. 그게 바로 20분 전이었다.

박익준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면도를 하기위해서였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진아의 모습이었다. 초췌하고 구질구질한 얼굴을 보여주기 싫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걸음을 떼려던 박익준은 흘러내린 바지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 했다. 좀전에 간호원이 주사를 놓은후 환자복 바지의 허리끈을 제대로 묶어주지 않은 때문이었다. 아무런 제동장치 없는 바지는 빈자루처럼 스르르 흘러내려 박익준의 발목에 가서 걸렸다.

박익준은 물끄러미 자신을 내려다 보았다. 짜놓은 오이지같이 쭈글쭈글한 모습으로 처진 자신의 성기가 거기 있었다. 한 때 꿋꿋하고 힘찬 위용을 자랑하던 물건이었다. 여자들을 자지러지게 하고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울게도 하던.

내가 너를 다시 예전처럼 써먹었을 수 있을까. 박익준은 우울하게 자신의 물건을 만져보았다. 다시 쓸 수 없다고 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별로 아쉽거나 애닯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참 이상했다.

그저 담담했다. 평생 도를 닦아 어떠한 세상사의 일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미동하지 않는 고승처럼 박익준은 마냥 편안한 마음이었다.

예쁘고 섹시한 여자와 데이트를 하고 같이 잠을 자는 일이 인생의 최고 순위였던 박익준이었다. 일에 대한 성취감보다도, 부(富)에 대한 욕심보다도, 여자를 쟁취하는 데 대한 욕망이 누구보다 컸던 박익준이었다. 그런데 곶감같이 쭈그러든 자신의 물건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거였다. 절망스런 생각이 들지 않는 거였다.

헛웃음을 지으며 박익준은 바지를 추켜 끈으로 고추매었다. 그리고 그는 화장실로 가 불을 켰다. 주황색 불빛 밑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추어졌다. 수술 전이나 후나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은, 여전히 변함 없는 것 같은 잘 생긴 외모였다. 오랫동안 햇볕을 보지않아 조금 핼쓱해진 것 같을 뿐.

하루만 면도를 하지 않아도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는 수염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같아 박익준은 대견스럽게 그것을 쓰다듬었다.

진아로부터 전화가 온 건 박익준이 면도를 다 마쳤을 무렵이었다. 전화기의 액정 화면에 진아의 이름이 떴을 때 박익준은 짐작했다. 흐흠, 못오겠다는 전화로군.

박익준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익준씨 어떡해, 미안해서 어떡해………”

진아는 어린애같이 징징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클래스를 같이 들었던 여자애가 나 한국가기 전에 꼭 한번 얼굴을 보고 싶대..그런데 그 얘가 만나자는 장소가 익준씨 병원과는 정 반대 방향이야….”

난 괜찮아. 너 맘 편한대로 해, 하고 박익준은 감정이 담기지 않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아를 못본다고 해서 별로 섭섭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 두달 동안 거의 매일 보았으므로. 그러나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공항가서 전화나 한번 더 해 줘라…….”

박익준이 말했다.

“고마워, 익준씨. 이해해 줘서. 나 가능한 한 빨리 돌아올께….”
”그래……”

“정말 나 가기 싫어. 아유. 정(情)도 없는 할머니가 왜 갑자기 나를 보고 싶어 한대?”

박익준은 진아의 말을 믿지 않았다. 강한 부정은 긍정의 표현이라는 말처럼 애써 강조하려는 말은 무조건 반대로 들으면 된다. 자신은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할머니가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들어가야 한다는 그 말, 그 말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은 할머니의 병환을 핑게로 얼른 박익준을 떠나가고 싶다는 말이다.

“그래. 조심해서 가….”

조.심.해.서. 갔.다. 와. 라는 말을 하지 않는 박익준.

박익준은 전화를 끊고 텔레비젼을 틀었다. 원래 텔레비젼을 잘 보지 않는 박익준이었다. 그러나 지금 박익준은 그 어떠한 사람의 목소리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면 기계음으로 된 사람의 목소리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두 달만에 처음 틀어보는 텔레비젼에서는 기상예보가 방영되고 있었다. 임신이라도 했는지 배가 유독 부른 여자가 오늘 날씨 그리고 내일 날씨, 일주일의 날씨를 예보하고 있었다.

박익준은 텔레비젼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화면을 응시했다. 마치 그것밖에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배부른 여자가 들어 있는 화면으로 진아의 모습이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바로 어저께 보았던 모습이었다. 몸에 쫘악 달라붙는 짙은 핑크 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진아는 여전히 탐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어깨까지 내려와 굽실대는 숱많은 머리카락사이로 보이던 하얀 목덜미에 박익준은 욕망이 생겼다. 문만 잠그면 바깥이랑 완전히 차단되는 병실이었다.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섹스를 나눌 수 있는 여건이었다. 그러나 박익준은 진아를 안지 않았다. 팔에 주매달린 링거병 줄 때문에서가 아니었다. 웬지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아서였다. 깨끗하지가 않았다. 뭔가가 미진했다. 진아는 여전히 조잘거리고 여전히 까불고 예전과 변함없이 행동하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막 같은 게 쳐져있다는 것을 박익준은 느꼈다. 얇고 투명해서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막. 그러나 손으로 만져보면 비닐처럼 튼튼하고 질긴 막.

잘 가라. 진아야.

박익준은 마음속으로 진아에게 이별의 인사를 했다. 그는 텔레비젼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계기로 진지하게 자신 삶을 한번 반추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십년을 넘게 살면서 자신에 대해,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자신이 사귀었던 여자에 대해 뒤돌아 보고 반성해 볼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창 밖은 푸르런 봄이었고 사십 몇살의 남자는 자신이 살아 온 인생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