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침대에서 눈 뜨면 나를 맞아주는 것은 네 마리의 강아지입니다. 까맣고 똘망똘망한 눈망울 여덟개가 지긋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내가 잠을 깨는 기척이 보이면 얼른 다가와 얼굴을 핥고 빨고 야단이 나는 것입니다. 강아지들은 언제부터 내가 잠이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늦잠을 더 자고 싶지만 이 아이들 때문에 할 수 없이 일어나야 합니다.내가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과 동시에 네 마리의 강아지들도 침대에서 내려 졸졸졸 뒤를 따라 옵니다. 강아지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거실을 가로질러 뒷뜰로 나갑니다. 차고 맑고 상쾌한 공기가 얼굴을 덮칩니다.

“얘들아, 밤새 참느라고 수고들 했다. 자~ 다들 쉬 해야지!”

강아지들이 잔디밭에 오줌을 누는 사이 나는 심호흡을 합니다. 그리고 가벼운 맨손 체조를 합니다.

오줌을 다 눈 강아지들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온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음악을 트는 일입니다. 집안 가득 음악을 흐르게 하고 커피를 내립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서 신문을 집어옵니다. 신문과 커피잔을 들고 거실의 푹신한 소파에 앉습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집안. 강아지 네 마리와 나밖에 없는 집안은 여유와 자유, 그 자체입니다.

출근 시간에 쫓길 이유도 없고 아침밥을 하느라 종종 거릴 필요도 없는 오직 나만의 시간. 정말로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예전에 나는 몰랐습니다. 내가 이렇게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시간을 누릴 줄을. 내 삶에 이렇게 행복으로 충만한 순간이 있을 줄 상상조차 못해봤습니다. 왜냐면 나는 불행으로 점철된 길을 걸어왔거든요.

지난 나의 삶을 뒤돌아보건데 나는 항상 추웠고 배고팠고 슬펐고 두려웠고 아팠습니다. 힘들었고 서러웠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내게 화사하고 따뜻한 봄날은 없었습니다. 온통 검붉은 핏빛이었습니다.행복이란 것이, 편안함이란 것이, 아늑함이란 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내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치부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감히 단언하건데 나는 참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한눈 팔지 않고 나쁜 짓 하지 않고 남의 가슴 아프게 하는 짓 하지 않고 앞만 보고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 오더라구요.

가끔 ‘팔자’라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내가 만약 내 팔자라는 것에 안주하고만 있었더라면,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극복할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남의 집 아이보기로, 식모로, 그냥저냥 지내다가 나랑 비슷한 수준의 남자랑 결혼해서 지금도 넝마같이 비루하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 만약 내가 첫남편, 승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냥 거기 머물러 있었더라면 내가 아직 살아 있기나 했었을까. 그 남자의 우왁스런 손에 맞아 죽지는 않았을까.

몇달 전, 이정옥씨의 안타깝고도 슬픈 삶을 조명한 ‘털어놓기도 부끄러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꽤 긴 글이어서 이틀 밤을 꼬박 새워야 했습니다. ‘잭’이라는 악마같은 미국남자한테 끔찍한 폭력과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에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며 무척 많이 울었습니다.

여러모로 이정옥씨의 살아온 발자취는 나와 비슷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과 애정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자라면서 남의 집을 전전한 것에서부터 남편에게서 무지막지한 폭력을 당한 부분이 나랑 무척 흡사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정옥씨랑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나는 죽음을 무릅쓰고, 그러니까 남편에게 잡혀 온갖 무서운 짓을 당하면서도 탈출을 감행했고 내 아이들을 용감하게 지켜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미국에 왔고 훌륭하게 키워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꿋꿋하게 일어섰다는 것입니다. 나는 강한 엄마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 얘기하겠지만 나는 아이들 앞에서만은 한점 부끄럼없는 엄마이고 싶었습니다.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엄마. 참 고귀한 이름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엄마라는 단어입니다. 나는 엄마가 없었습니다. 사는 게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마음놓고 달려가서 푸근하게 안기고 하소연을 털어 놓을 엄마가 없었습니다. 아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내 친엄마가 아닌 계모였습니다. 나는 그녀가 내 친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왜냐면 내가 ‘엄마’라고 불렀던 최초의 여자가 바로 그녀였으니까요. 내가 눈을 뜨고 말을 배우기 시작 할 때부터 그녀가 거기에 있었기에 그녀가 당연히 내 엄마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뭔가가 이상했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하고 기묘한 느낌. 예닐곱살, 사물을 분간할 줄 알고 철이 들기 시작 할 때부터 뭔가가 다르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친엄마라면, 자기가 배 아파 낳은 친자식에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자행한 여자가 바로 그녀, 내 계모였으니까요.

1950년대, 나는 강이 많기로 유명한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나전칠기 장롱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잘 생기고 호방한 성격에 돈을 쓸 줄 아는 남자였습니다. 자연히 여자들이 줄줄 따랐겠지요. 넘쳐나는 여자들을 주체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람을 많이 피웠다고 합니다.

얼굴도, 목소리도 전혀 기억에 없는 나의 친엄마는 아버지의 주색잡기를 못견뎌했던 심약하고 여린 심성의 소유자였나봅니다. 아버지가 계속 바람을 피우자 엄마는 나를 임신한 채 가출했다고 합니다. 어디서 혼자 나를 낳아키우다가 내 나이 세살 때 아직도 젖먹이인 나를 아버지에게 짐짝 맡기듯이 떠맡겨놓고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나를 위해 계모를 들였다고 했습니다. 나를 키워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처녀로 아버지에게 시집온 계모는 곧 줄줄이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배다른 내 동생들입니다.

계모는 나를 무척 미워했습니다. 어린 내가 쓰러져 기절할 때까지 마구잡이로 때렸습니다. 빗자루가 부러질 정도로 때렸습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계모에 대한 기억은 딱 한가지, 오로지 내게 욕설을 퍼붓고 죽도록 때렸다는 기억뿐입니다. 때리다가 때리다가 손이 아프거나 매가 부러지거나 분에 안차면 나의 온 몸을 꼬집어 비틀었습니다. 아아, 내 여리고 약한 살을 꼬집어 비틀던 계모의 우악스런 손길을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합니다. 50년이 넘었으나 지워지않고 머릿속에 그대로 생생하게 남아 있는 너무나 끔찍하고 아픈 기억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몸은 변함없이 무척 약합니다. 5피트가 넘을까 말까한 작은 키에 몸무게는 항상 100파운드를 넘지 않습니다. 지금도 사이즈 0이나 2를 입습니다 정말이지 갓 태어난 병아리같이 연약하고 갸늘픈 나를, 어디가 그리 때릴 데가 있다고 그렇게 모질게 매질을 해댔는지 모릅니다.

나는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계모의 매를 다 맞아야 했습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늘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왜 나만 때릴까. 밑의 동생들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그냥 넘어가면서 별다른 잘못을 하지 않은 나를 왜 노상 때릴까….

그리고 계모는 걸핏하면 나를 바깥으로 쫒아내었습니다. 여름에는 그런대로 견디기가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겨울엔 얘기가 달랐습니다. 살을 에는 바람이 부는 바깥에 맨몸으로 쫒겨 난 나는 병든 짐승처럼 처마밑에서 웅크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어서 빨리 계모의 마음이 풀어지기를, 그래서 따뜻한 방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기를 학수고대 하면서.

겨울이라도 낮에는 따뜻한 햇볕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햇볕이 내리쬐는 쪽으로만 쫒아다니며 추위를 피할 수 있으니까. 밤에 쫒겨날 때는 답이 없었습니다. 맵고 독하고 날카로운 바람이 나의 온몸을 바늘로 쑤셔대는 것 처럼 공격했습니다. 꽁꽁 언 몸을 움직일 때면 뼈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습니다. 얼굴이 얼어 말도 못할 지경이 되어야 했습니다.

매를 맞는 것보다 추운 겨울밤에 쫒겨나 바깥에서 덜덜 떨어야 하는 일이 제일 두렵고 싫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겨울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추운 것은 질색입니다.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기억 한 조각이 있습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경직되고 옹숭거려지는 슬프고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아주아주 추운 겨울밤이었습니다. 개숫물을 마당에 버리면 금새 꽝꽝 얼어붙던 지독한 강추위가 몰아쳤던 날이었습니다. 마당에서 사기로 된 요강을 씻다가 깨트렸습니다. 손이 곱아서 제대로 잡지를 못했는데 내 손에서 미끄러져나간 요강이 땅에 떨어지면서 박살이나고 만 것입니다.

“이놈의 계집애는 뭘 하나 똑바로 해 내는 게 없어!”

계모가 빨래 방망이로 나를 마구 두들겨 팼습니다. 그냥 있다간 매에 못이겨 죽을 것만 같아서 맨발로 대문 밖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서럽고 무서웠지만 갈 데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처마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추위는 세상 만물을 다 얼려버리겠다는 듯 점점 맹위를 더해갔습니다.

저녁도 굶고 내복과 양말과 신발도 없이 얇은 스웨터 한 장 걸친 내 몸은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동태처럼 꽁꽁 얼어갔습니다. 곧 정신마저 몽롱해져갔습니다.

어린 나는 생각했습니다. 아, 나는 이대로 얼어 죽고 마는구나……

그때 골목길 저쪽에서 저벅저벅, 발자욱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아버지다! 혼미해져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나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다가오다가 검은 물체를 보자 발걸음을 우뚝 멈추었습니다.

“거기 누구냐?”

얼어서 제대로 움직여지지도 않는 입을 겨우 열어 내가 더듬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아…아버지….저…은.. 은…은영이예요. 아버지는 흠칫 놀라는 것 같았습니다.

“은영이?”

아버지가 내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습니다.

“너 왜 여기서 이러고 있니?”

“요…요강을 깨트렸어요……”

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나의 어깨를 감싸쥐었습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들어가니 계모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생들이 두꺼운 이불을 덮고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습니다.

추위와 겁에 질려 새파랗게 변한 내 얼굴을 계모가 심술궂은 눈으로 흘낏 쳐다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무말 하지 않고 묵묵히 옷을 벗고 아랫목 동생들 옆으로 누웠습니다. 나도 이불 한귀퉁이를 들치고 조심스레 누웠습니다. 서러움이, 서러움이 강물처럼 밀려와서 나는 이불속에서 마구 흐느껴 울었습니다.

이 세상에 나를 걱정해주고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엄마야 워낙 나를 미워하니까 그렇다치고 하물며 아버지 조차도 나를 미워하는구나, 싶은 마음에 너무너무 서러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궁금한 게 아버지는 얼어 죽기 일보 직전의 나를 봤으면서도 어떻게 엄마한테 말 한마디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한겨울에 아이를 얼려죽이려고 그래?내쫒으려거든 양말이라도 신겨서 내쫒지,라고 아버지가 한마디만 해주었어도 나는 그렇게 서럽지 않았을 겁니다.

이불 속에서 소리 안 나게 울면서 나는 다시 어렴풋이 생각했습니다. 저 여자는, 온몸이 꽁꽁 얼어 동태가 되어버린 나를 손톱만큼이라도 걱정하기보다 심술궂은 눈으로 홀겨보던 저 여자는 어쩌면 내 친엄마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그러다가 그 사실을 알아낸 사건이 생겼습니다. 예닐곱살 때로 기억합니다. 내 몸보다 몇배나 큰 광주리를 힘겹게 이고 강으로 빨래를 하러 갔습니다. 서너명의 아주머니들이 미리 와서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보더니 두어 아주머니가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혀를 쯪쯪 찼습니다.

“아이구, 우리 은영이 왔구나. 얼굴을 보니 오늘도 엄마한테 맞았구나?”

그때의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얼굴은 계모한테 맞아 피멍이 들어 있었고 팔은 꼬집힌 자국으로 푸릇푸릇 어지러웠습니다. 며칠동안 감지못한 머리는 계모한테 끄들려서 수세미같이 헝크러져 있었습니다. 얼굴은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지요.

아주머니들은 측은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 들릴락 말락하는 소리로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악하고 모진 여펜네 같으니라고. 해도 너무 하네….저렇게 약하디 약한 아이를 어디 때릴 데가 있다고 저렇게 개패듯이 패대나 그래……”

“그러게.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주구장천 패대니 저 아이가 매에 견뎌내기나 하겠나……”

나는 묵묵히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나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주머니들의 말대로 언젠가는 내가 계모의 매에 죽고 말 것이라고…

그때 아주머니들의 대화 속에서 바람처럼 내 귀를 스쳐가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바로 ‘계모’와 ‘ 친자식’ 운운하는 단어였습니다. 나는 얼른 귀를 쫑긋세웠지요.

“계모 탓할 게 뭐 있어? 뭐니뭐니 해도 지 속으로 낳은 자식을 팽개치고 나간 년이 더 나쁜 년이지….”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친자식이 아니더라도 저렇게 아이를 구박하면 나중에 벌 받지..벌 받고 말고…..”

아주머니들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다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 작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그때 나는 내 눈을 가리고 있던 두터운 비늘이 벗겨져 나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왜 그리 계모가 나를 미워했는지, 왜 나를 죽도록 때렸는지. 얼음이 꽁꽁 어는 바깥에 왜 나를 장시간 세워두고 집안으로 못들어오게 했는지. 왜 나만 온갖 궂은 집안 일을 하게 했는지. 왜 나만 밥을 주지 않고 굶겼는지 그때서야 이유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나 그 누구에게도 물어 볼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던, 그저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 있었던 사실을 그 아주머니들의 대화 속에서 자명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엄마라는 단어는 내게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나를 버려두고 자신의 살 길을 찾아 훨훨 떠나버린 엄마였지만 얼굴은 물론 목소리조차도 들어보지 못한 엄마였지만 늘 보고 싶었고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보고 싶은 만큼 미움도 함께 했습니다. 나를 버리고 간 엄마 덕분에 계모한테 온갖 모진 구박과 학대를 받아야 했으니까요. 엄마가 나를 버리고 가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평생을 내가 가지고 있던 물음표였습니다. 아마 다른 것은 몰라도 공부는 좀 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했습니다. 내 나이 여덟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긴 했으나 학교에 가는 날 보다 못가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집안 일을 해야했으니까요.

바로 우리 옆집에 연이라는 내 동갑내기 아이가 살았습니다. 그 아이는 사 형제 중 유일한 딸이었습니다. 외동딸인 만큼 부모나 형제들의 갖은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붉고 푸른 리본으로 머리를 땋고 깨끗하고 예쁜 옷을 입고 아침에 등교하는 연이를 나는 아프고 부러운 마음으로 늘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학교에 가는 대신 나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루 중에 내가 끝내야 할 일이 항상 산더미 같았습니다. 방 세개와 마루를 청소해야 했고 설거지를 해야 했으며 집에서 십리나 떨어진 강으로 가서 식구들이 벗어 놓은 옷을 빨아와야 했습니다. 동네 우물에 가서 두팔이 떨어지도록 무겁게 물을 길어와야 했고 밥을 해야했습니다. 잠시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계모는 집에 있는 여자였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잘 벌었으므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명색이 ‘살림하는 여자’였던 것입니다. 동네의 다른 엄마들같이 밭일이며 논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 몸단장에만 치중할 뿐 집안 일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집안일은 모두 내게 시켰습니다. 위에 열거한 일 외에도 한달에 한번 이불 호청 풀 먹여 바느질 하는 일까지. 하다 못해 간장, 된장 담그는 일까지도 모두 다 내 차지였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때 배운 간장, 된장 담그는 법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직장 다닐땐 바빠서 못했으나 요즘 집에서 쉬게되면서부터는 직접 담구어 먹습니다. 내가 만든 간장, 된장 맛은 기가 막히다는 칭찬을 듣는답니다. 계모 덕분이라면 계모 덕분입니다.

나중에 내게는 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여덟살이 될 때까지 나는 언니의 존재를 전혀 몰랐었습니다.

어느 날 큰 아버지가 우리집에 오셨습니다. 그때 계모와 동생들은 출타하고 나 혼자서 힘들게 집안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큰 아버지가 마루를 닦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면서 말했습니다.

“네게 세살 많은 언니가 있었단다.”

나는 마루 닦던 손을 멈추고 멍하니 큰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누구도 내게 언니의 존재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았었더랬습니다. 그런데 내게 언니가 있었다니!

“지금까지 살아있었으면 열한살이 되었겠구나……..”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호적을 뒤져본 적있습니다. 큰 아버지의 말이 맞았습니다. 나보다 세살 위인 언니가 있었는데 사망으로 처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엄마가 나를 임신한 채 가출했을 때 이미 언니가 있었던 것입니다. 엄마는 언니를 아버지 집에 남겨 놓고 떠났었던 것입니다.

엄마가 자기를 버리고 떠났다는 것을 그 어린 것이, 세살밖에 안된 그 어린 것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생전 울지 않고 혼자서 잘 놀아 ‘순둥이’라는 말을 늘상 듣던 언니는 엄마가 떠나고 나자 불에 덴 듯이 울기 시작했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달래도 듣지 않고 밤낮없이 울어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니는 엄마가 떠난 후 아무 것도 먹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동네 아줌마들이 불쌍하다고 앞다투어 미음을 쑤어다 먹이고 젖을 얻어다 입에다 흘려넣어주어도 도리질을 할 뿐 삼키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울기만 하면서 위태롭게 한달 정도 목숨줄을 이어가던 언니가 어느 날 아침 숨을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언니는 눈을 감지 못하고 죽었는데 모기소리처럼 가느다란 목소리로 마지막 남긴 말은 ‘엄마’라는 말이었답니다. 큰 아버지가 손바닥으로 눈을 쓸어서 애써 감기려 해도 눈이 감겨지지가 않더랍니다. 그렇게 언니는 ‘엄마’를 부르면서 눈을 뜨고 죽었다고 했습니다.

“어린 자식을 그런 식으로 죽어 가게 한 네 엄마라는 여잔 천벌을 받을 게다”

큰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엄마가 그런 식으로 가출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살아 있을지도 모를 언니였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척 좋은 친구가 되었을 텐데. 참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내 엄마는 좀 특별한 여자였나 봅니다. 감히 남편 곁을 떠나갈 생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당시엔 모든 남편들이, 아버지들이 그랬습니다. 술타령으로 날밤을 새웠고 집안이나 자식을 돌보지 않고 무능했습니다. 바람을 피웠고 노름을 했으며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엄마들은 자식의 앞날을 생각하면서 인고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그런 엄마들과는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아버지의 주색잡기를 견뎌내지 않고 과감하게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났습니다. 어쩌면 옆에서 엄마를 가만두지 않고 들쑤석거려서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탐스럽고 예쁜 꽃이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듯 유난히 예쁜 엄마를 주위에서 가만두지 않았을 겁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은 우리 엄마의 이미지는 예쁜 여자였습니다. 참 예뻤답니다, 우리 엄마는. 버들가지처럼 낭창하고 가는 허리에다 목이 길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특히 한복을 입고 있으면 꼭 한 마리의 학 같이 고운 자태였다는 것입니다. 얼굴은 갸름한 계란형이었고 앵두같이 붉은 입술에 성냥개비를 두어개 올려놓아도 떨어지지 않을 긴 속눈썹을 가진 여자였답니다.

엄마가 아버지한테 시집올 때 인근 마을에서도 구경을 올 정도라고 했습니다. 절세미인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려고 앞다투어 사람들이 몰려왔다는 것입니다.

엄마가 무척 예쁜 여자였다는 얘기를 들은 후부터는 시장에서도, 길에서도 예쁜 여자만 보면 혹시 저 여자가 우리 엄마가 아닐까, 하고 한동안 뒤를 쫒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예쁜 여자만 보면 기웃거리며 얼굴을 살펴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전혀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 우리 엄마가 아닐까, 우리 엄마가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하고 나도 모르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참 슬프고도 안타까운 버릇입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입니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더욱 더 엄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을 떼놓고 발걸음이 떨어졌을까, 하는 궁금증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의 심정을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엄마라는 자리를 그렇게 헌신짝처럼 벗어던져도 되는지. 우리 엄마에게는 엄마란 자리가 그렇게 가치가 없었던 자리였었던가 봅니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자식을 지키는 것은 본능이었습니다. 누가 시켜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야 어떻게 되던 상관없이 내 자식만은 다치지 않게 잘 보호하고 싶은 본능이 항상 앞서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앞에서 잠깐 소개 했듯이 내겐 네 마리의 강아지가 있습니다. 장성해 떠나간 자식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귀여운 아이들입니다. 비록 짐승이지만 내게는 더할 수 없이 소중합니다. 네 마리의 강아지 중 한 마리가 밥만 좀 덜 먹는 것 같아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걱정이 되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닭고기 국물을 준다, 우유를 덥혀준다, 차도를 보일 때까지 갖은 정성을 기울입니다.

강아지가 조금 아파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어떻게 엄마가 되어 눈도 못뜨는 어린 자식을 둘씩이나 떼어내 버리고 떠나갈 수 있었을까…….

다 키운 딸을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보낸 적 있습니다. 정말이지 내 평생 그렇게 가슴 아프고 충격적인 일은 또 없습니다.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몇달 동안 잠을 거의 못잤습니다.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떠나간 딸 아이 말고도 세 아이가 옆에 있었지만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땅이 꺼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야 할 의미와 가치를 잃고 거의 몇년을 죽음같이 깊고 칙칙한 우울증에 허우적거려야 했습니다.

자식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고 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목숨과 바꿀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남편이 주색잡기에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천륜을 그렇게 쉽게 끊어낼 수 있었을까. 엄마의 가슴에는 모정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을까.

참 궁금합니다. 엄마는 들었을까요. 자기가 버린 자식인 언니가 눈도 못감고 죽었다는 소식을. 죽으면서도 엄마를 찾았다는 사실을. 자기가 버린 자식인 내가 계모의 온갖 학대를 받으면서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엄마는 들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