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무척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새벽에 나가서 다음날 새벽에 들어오는 일이 늘 다반사였습니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보름동안 어떤 땐 거의 한달 가까이 얼굴을 못볼 때가 많았습니다.

나는 자라면서 더욱 고독하고 말 없는 아이가 되어갔습니다. 정말 외롭고 외롭고 외로웠습니다. 친엄마인 줄 알았던 사람이 실상은 계모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세상 하늘 아래 나의 피붙이라고는 아버지밖에 없는데 아버지는 나 같은 아이는 아랑곳없는 사람처럼 항상 바깥으로만 바깥으로만 나돌았으니까요. 어쩌다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이 있다해도 내게는 다정하게 말 한마디, 눈길 한번 주지 않았으니까요. 나를 완전히 다리 밑에서 줏어온 아이취급을 하며 냉랭하게 대했으니까요.

아버지도, 계모도, 의붓동생들도 내게 말을 부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루종일 가도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과 한집에 살았으되 남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지금도 나는 별로 말수가 없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좋아하지만 말을 하기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 앉아서 조용히 듣기만 하는 편입니다. 나는 생각해 봅니다. 나의 이런 성격은 어릴 때, 말을 많이 하지못하고 자라면서 형성된 것이 아닌가 하고요.

내가 한살 두살 나이가 들면서 계모의 나에 대한 구박과 학대와 멸시는 더욱 극악해지고 포악해졌습니다. 마약중독자가 점점 약의 양을 늘여야만 효과를 볼 수 있듯이 계모의 폭행은 강도가 갈수록 거세졌습니다.

나는 계모로부터 하루라도 안맞는 날이 없었습니다. 계모는 부지깽이로, 빗자루로, 방망이로, 손에 집히는대로, 닥치는대로 휘두르며 나를 때렸습니다. 나의 온몸은 성한데 없이 상처투성이, 피멍 투성이, 딱지투성이였습니다 제대로 얻어먹지를 못해서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몸은 비쩍 말라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디 피할 데도 없었고 나를 편들고 역성들어 줄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린 나는 혼자서 그 학대를 고스란히 다 견디어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날 옆집 연이가 자기 아버지가 사주었다면서 새 동화책을 들고와서 보여주었습니다. ‘콩쥐 팥쥐’라는 책이었습니다. 연이가 말했습니다.

“이 책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지? 나 어젯밤에 다 읽었는데 참 재미있었어. 빌려주고 싶지만 넌 읽을 기회가 없쟎아. 낮엔 일 해야 하고 밤엔 쓰러져 자기 바쁘고 말이야. 넌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지 않니? 내용을 얘기해 줄까?”

연이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습니다. 바로 내가 동화책 속의 콩쥐라는 것입니다. 심술맞고 악한 계모와 계모의 딸에게 구박받는 착하고 가련한 콩쥐라는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내 계모는 연이의 말대로 ‘콩쥐팥쥐’속에 나오는 전형적인 계모였습니다. 의붓자식은 갖은 구박을 하면서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만 위하고 예뻐하는.

연이가 들려주는 콩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울었습니다. 동화속의 콩쥐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내 신세였지만 그녀가 너무나 불쌍했거든요. 내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기 시작하자 연이가 말했습니다.

“울 것 없어. 은영아…..”

연이가 나의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나중에는 계모가 벌을 받게 되거든. 그리고 콩쥐는 왕자님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게 돼”

연이에게 그 얘기를 듣고 나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비록 지금은 내가 불쌍한 부엌데기 신세지만 언젠가는 잘 생기고 멋진 왕자님이 짠, 하고 나타나서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콩쥐처럼 신분상승이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 왕자님은 언제 나타 날까. 빨리 좀 나타 났으면.

그런데 연이로부터 들은 콩쥐이야기에서 참 이상한 게 있었습니다. 콩쥐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콩쥐 아버지는 무엇하는 사람이었을까. 우리 아버지처럼 집에 잘 안 들어오는 사람이었을까. 콩쥐가 그렇게 계모로부터 모진 학대와 시달림을 받는 동안 아버지라는 작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몰라. 콩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긴 없어. 한양에 짚신 팔러 갔나보지 뭐…..”

연이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습니다만 그 의문이 한동안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우리 아버지가 그랬거든요.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이 우리 아버지였었어요. 내가 밥은 잘 얻어먹는지,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지, 의붓동생들과 사이는 좋은지.

지금 생각해도 참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아버지란 사람입니다. 아무리 바깥 일로 바쁘다 해도, 새벽에 나가 밤 열두시 넘어서야 들어오느라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해도 말입니다. 새처럼 작고 연약한 자신의 자식이 그렇게 학대당하고 구박받는데도 어떻게 아버지란 사람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을까요. 딸의 손등이 동상으로 쩍쩍 갈라져 피가 철철 나는데도, 기가 죽어 표정이 항상 우울하고 어두운데도, 배를 곯아 허리를 제대로 펴지못하고 다니는데도 어떻게 아버지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을까, 어쩌면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냐, 하는 것이지요.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했던 것일까요.

아버지가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으니까, 그리고 집에 와 있는다해도 나 같은 것은 전혀 안중에 없어하는 눈치니까 계모는 마음 놓고 나를 구박하고 학대했던 것입니다.

지금, 가끔 잠 안 올 때 그 시절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 애를 써도 저절로 떠오릅니다. 생각을 지워버리려 고개를 흔들다가 와인을 한잔 하거나 독한 술을 한잔 합니다. 그리고 펑펑 웁니다. 50년 전의 일이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이 생생합니다. 서럽고 무섭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수수방관하면서 평생 지워지지 않는 어두운 기억을 내 가슴에 심어준 아버지가, 아버지가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나중에 철들고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어쩌면 아버지는 다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친엄마를 그대로 쏙 빼닮은 내가 미워서요. 동네사람들로부터 내가 엄마를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아담하고 작은 몸집에서부터 긴 목과 긴 속눈썹, 그리고 마늘쪽처럼 오똑한 코와 갸름한 계란형의 얼굴까지.

아버지는 바람을 피우고 다녔으되 나의 친엄마를 많이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엄마는 떠나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자기를 두고 떠나버린 친엄마를 미워하고 증오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엄마를 많이 닮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은 것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에게 대놓고 물어본 것은 아닙니다. 그저 내 짐작일 뿐입니다.

두번째는 아버지가 계모를 두려워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몇번 말했지만 그녀는 사납고 악독하고 거센 여자였습니다. 친정도 그런대로 잘살았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내 편을 들었다면 계모는 난리도 아니었을 겁니다. 입에 거품을 물고 미친 여자처럼 길길이 날뛰었을 겁니다. 어쩌면 줄줄이 낳은 동생들을 놔두고 집을 나가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계모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골치가 얼마나 아팠을까요. 아버지는 두번씩이나 결혼에 실패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나의 학대를 묵인하고 방조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나는 아버지의 씨에서 나온 하나의 생명입니다. 챙겨주고 사랑해 줄 의무가 있는. 그러나 아버지는 철저히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렸습니다.

내 나이 아홉살 때 우리집은 서울로 이사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인구가 많고 소비가 많은 서울에서 새로 사업을 시작하고저 했던 것입니다.

시골에서 다니는 둥 마는 둥 했던 학교였지만 서류를 떼어서 전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학 한 첫날만 학교에 발을 디뎌보고 두번 다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학교에 가는 대신 여전히 집안일을 해야했으니까요. 서울에 올라와서도 내 작은 한 몸에 지워진 집안일은 태산같이 많았습니다.

시골에서도 그랬지만 서울에 올라와서도 내가 가장 부러운 게 있었다면 학교를 제대로 다니는 아이였습니다. 아침이면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책가방이나 책보를 들고 친구들과 손을 잡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 나는 그저 안타깝고 부러운 눈으로 그 아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언제나 저렇게 마음놓고 학교에 가보나 하는 막막한 심정으로 아침 등교길에 나서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는 내 손에는 빗자루가 쥐어져 있거나 한 광주리 가득 빨래감이 들려져 있거나 설거지 거리가 하늘같이 쌓인 ‘다라이’가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학교에 가는 것은 너무나 요원한 일일까. 그 어린 마음에도 사람은 배워야 제대로 사람구실을 할 수 있을 텐데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내가 장차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뭉개뭉개 피어났습니다. 학교만 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기회는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내 나이 열한살이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계모가 나를 불러앉혔습니다.

“내일 누가 너를 데리러 올 것이니까 짐을 싸”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계모가 차갑게 말했습니다.

“너를 데려가서 공부시켜 줄 사람이 온단 말이야”

오오, 나를 공부시킬 사람이 온다고?!나는 천정까지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나는부랴부랴 넝마같은 옷가지 몇 벌과 그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교과서와 학용품을 보자기에 쌌습니다. 너무나 기쁘고 좋았습니다. 집을 떠난다는 사실보다 이제부터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했던 것입니다. 아아, 이제 나도 공부할 수 있다. 아침이면 물동이를 들고 물 길러가는 대신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갈 수 있다!

밤이 깊었지만 마음이 마냥 설레어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벽시계가 자정을 가리키는 걸 보고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그릇에 수저 부딪치는 소리,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잠을 깼습니다.

“이제 머리가 컸으니까 밥 값을 해야하지 않겠어요?공장에라도 보내려고 했는데 몸이 너무 약해서 받아주지도 않아요. 그래서 어쩔까 했는데 마침 잘 되었어요…..”

계모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버지는 그때야 저녁을 먹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반찬 냄새가 내 코끝을 자극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줄 아시라구요…..”

아버지는 아무 대답을 안하는 듯 했습니다. 내가 누운 쪽으로 등을 등지고 앉은 계모 때문에 아버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달에 50만원이면(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돈의 가치를 현재 기준으로 표기했슴) 그 돈이 어디예요?”

계모가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계속 말 없이 밥을 먹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한마디했습니다.

“쟤가 남의 집일을 견뎌낼 수 있을까? 너무 약하쟎아”

“못견디면 어쩌라구요?쥐어패서라도 견뎌내게 만들어야지”

그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던 나는 숨을 죽이고 자는 체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집에 찾아왔습니다.

“얘야?”

아주머니는 나를 보더니 에게게, 하고 매우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너무 약하고 어리쟎아. 이렇게 약해서 제대로 일이나 하겠어?견디어내기나 하겠냐구?”

그 아주머니가 어젯밤 아버지와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계모가 얼굴 가득 비굴한 웃음을 띄우며 말했습니다.

“그래 보여도 이불 빨래는 물론, 김치 담구는 일, 간장된장 담구는 일등 못하는 게 없어요. 걸음마할 때부터 내가 시켰었거든요.일단 데려가서 일부터 시켜보세요. 정 안되면 도로 데리고 오면 되쟎아요”

아주머니가 할 수 없다는 듯 나의 손을 잡았습니다. 나는 부푼 가슴으로 아주머니의 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얘, 인사해야지. 네 엄마 아버지한테. 언제 다시 볼지도 모르는데……”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데 ? 그게 무슨 말일까? 그러나 나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어쩌면 내일부터 학교에 갈 수 있다는 부푼 마음때문에 그 어떤 말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마루에 앉아 방금 배달된 신문을 보고 있었습니다. 묵묵히 입을 다문 채요.

나는 아버지에게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아버지, 저 가요”

그제서야 아버지가 신문에서 눈을 떼고 나를 힐끗 바라보았습니다. 아무런 표정이 담기지 않은, 이웃집에서 놀러온 강아지를 쳐다 보듯 별다른 따뜻함이나 측은함이나 미안함 같은 감정은 전혀 배어있지 않은 무심한 눈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그래, 잘 가거라.

“자, 얼른 가자”

아주머니가 내 손을 이끌었습니다.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나는 대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골목길을 빠져나오다가 뒤를 한번 돌아보았습니다.아주 이른 아침이라 골목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내가 방금 떠나면서 밀고 나온 대문이 굳게 닫혀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 굳게 닫힌 대문을 보자 이상하게 슬펐습니다.

행복한 기억이라곤 조금도 없는 집이었지만, 살가운 기억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집이었지만 어쨌든 나의 집이었습니다. 정이라곤 아예 없는 아버지와 계모와 동생들이었지만 그들을 떠난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내가 새로 가서 살게 될 집은 버스를 두번이나 갈아 타야 한다고 했습니다. 버스 안에서 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저 언제부터 학교에 갈 수 있어요? 내일부터 갈 수 있어요?”

내 말에 아주머니가 눈을 둥그렇게 떴습니다.그리고 반문했습니다.학교?

아주머니가 물었습니다.

“네 엄마가 그렇게 말하든?학교에 갈 수 있다고?”

“예. 아주머니를 따라가기만 하면 이제부터 매일 학교에 갈 수 있다고…..”

내가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교과서와 공책과 연필이 든 보따리를 만지작거리면서.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뭔가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던 것입니다.

아주머니가 기가 찬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았습니다. 눈은 차창밖을 향한 채.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미친 여펜네같으니라구. 어린애한테 거짓말 시킬 게 따로 있지…..

나는 그 아주머니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아주머니의 얼굴 표정으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그리 썩 좋은 곳은 아닌 것 같다고.

아주머니가 말했던 ‘계모의 거짓말’은 금방 탄로가 났습니다. 방이 여덟개나 되는 큰 기와집 대문 앞에서요. 아주머니가 말했었습니다.

“앞으로 네가 살 집이다. 내 말 똑똑히 잘 들어. 앞으로 넌 학교같은 건 갈 수가 없다. 주인이 시키면 시키는 일을 해야 해. 힘들다고 울거나 응석을 부리면 절대 안돼. 알았니?”

나는 그 부잣집의 식모로, 아이보기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모는 매달 돈 50만원을 받기로하고 나를 그 집으로 짐짝처럼 넘겨버렸던 것입니다. 열 한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는 노예처럼 팔려갔던 것입니다.

공부를 할 수 없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는 흐느껴 울었습니다. 학교를 갈 수 있다는 희망, 지금껏 품어왔던 크나큰 희망이 와르르, 모래성처럼 무너졌으니 울음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울면서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도 내 친아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친아버지라면 딸을 그런 식으로 쉽게 팔아넘길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가능성이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큰 아버지나 동네 아주머니의 말로 미루어봐서 아버지는 분명 나의 친아버지가 분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이해할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딸 자식이 떠나는데, 공부하러 떠나는 게 아니고 남의 집 식모로 팔려가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몸조심 하거라, 하는 당부의 말 한마디 없었을까요.

그날 밤 나는 낯선 골방에 누워 아버지란 사람을 내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지워버려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아버지를 두번 다시 보지않기로, 철저하게 잊어버리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는 몇날 며칠밤을 울었습니다. 아버지를 내 인생에서 떨쳐내기로 결심은 했지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였습니다.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울면서 나는 내 자신에게 되뇌었습니다. 이 세상에 나는 혼자다. 아버지란 사람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

아는 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낯선 곳으로 팔려가서 거칠고 힘든 노동에 하루종일 시달리다가 차갑고 구석진 골방에서 흐느껴 울던 그 어린 영혼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그때의 슬픔과 외로움과 두려움이 어제 일처럼 나를 무겁게 짓누릅니다.

아버지. 저 가요, 하고 내가 떠난다는 작별 인사를 했을 때 만약 아버지가 미안한 표정이나 안타까운 표정이라도 한번 지어주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내가 그렇게 냉담하게 돌아서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낮에는 일에 시달리며 밤에는 울면서 잠들기를 매일, 그렇게 한달이란 시간이 흘러 갔습니다. 학교에 가리라는 부푼 희망을 가득 담았던 책보는 풀어보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어느 날 심부름을 갔다오니 계모가 와 있었습니다. 계모는 나를 보더니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잘 있었니?”

그리고 놀랍게도 내 머리를,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었습니다. 내 머리를 쓰다듬다니!? 그것은 그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게 계모를 쳐다보았습니다. 계모의 표정은 아주 밝아보였습니다.

알고보았더니 내 월급을 받으러 온 것이었습니다. 호주머니에 50만원이란 돈이 두둑하게 들었으니 표정이 밝을 수밖에. 그리고 내게 친절하게 대할 수밖에요. 왜냐면 내가 앞으로 꼬박꼬박 50만원이란 돈을 매달 조달할 돈줄이었으니까요. 계모에겐 내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존재였던 것입니다.

“너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말 잘 듣고 일 잘 한다고 주인이 칭찬하더라?”

“…………”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그렇게 잘 해야 된다, 알았지?”

“…………”

“지금처럼만 잘 하면 일년 후 월급을 좀 더 올려주겠대”

“………….”

그렇게 계모는 매달 초에 내가 사는 부잣집을 방문해서 내 월급을 가로채 갔습니다. 나는 빨래와 청소, 시장 보기와 음식만들기등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중노동에 혹사당했지만 단 돈 일전 한장 구경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딱히 내가 돈을 쓸일이 없긴 했어요. 주인 아이들이 입다가 버린 헌옷을 주워입었고 머리는 길면 대충 가위로 잘라 고무줄로 묶고 다녔습니다. 밥은 주인집에서 먹었으니 돈을 쓸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일에 파묻혀 7,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참 다행스러웠던 것은 같이 일 하던 언니가 내게 참 다정하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언니의 이름은 정순이라 했습니다. 그 언니도 부모를 일찍 잃고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그 집으로 팔려온 신세였습니다. 고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과부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아버지가 있으되 천애 고아나 다름 없는 신세인 나를 정순언니는 많이 불쌍하게 여겼습니다. 누룽지를 긁었다가 주기도 하고 시장가서 군것질 거리를 몰래 사다 감추었다가 주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 언니를 참 많이 의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정순 언니가 짐을 주섬주섬 싸기 시작했습니다. 시집을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골 어느 노총각과 선을 보았는데 그 총각이 정순언니를 아주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정순이 언니를 데려다가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은영아. 나 없더라도 잘 살아. 건강하고……”

언니는 그렇게 훌쩍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루 아침에 갑자기 정순 언니가 없어져버리고 말자 정순언니가 하던 모든 집안 일이 내 차지가 되었습니다. 나는 새벽부터 자정까지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집안 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다름질을 하다가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지듯 쓰러져서 얼굴을 데이기도 했고 코피를 몇번이나 쏟았습니다. 계모는 여전히 매달 내 월급을 받으러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만 일에 쫓긴 나는 계모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못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어느날 내 월급을 받으러 왔던 계모가 마침 시장을 보러가던 나와 대문에서 딱 마주쳤습니다. 내 얼굴이 너무 야위고 못쓰게 된 걸 알아챘는지 계모가 혀를 쯪쯪 찼습니다.그리고 물었습니다.

“아픈 데는 없니?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다 싶으면 약을 지어 먹어. 그래야 계속 일을 하지……”

그것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아파서 일을 못하게 될까 봐 그래서, 내 월급이 조금이라도 깎일까 봐, 그래서 자기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돈이 줄어들까 봐 염려스워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서러움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습니다. 일에 지쳐 내가 쓰러져 죽는다해도 내 죽음을 슬퍼해줄 사람이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구나. 나의 죽음으로 돈을 가져가지 못할까 봐 아쉬워하는 사람만 있구나……

내 월급을 받아들고 희희낙락하며 나가는 계모의 뒷통수를 보며 나는 그때 결심했습니다. 아무런 보람도 없고 계모 좋은 일만 계속 시키는 식모란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겠다고. 계모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쳐야겠다고.

당시 그 집에는 나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고 불쌍하게 여겨 주는 정원사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그길로 나는 정원사 아저씨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저씨. 이제 저도 생각을 달리해야 겠어요. 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있고 싶지가 않아요. 아저씨도 아시겠지만 제 월급은 제 엄마가 다 가로채 가요. 여기서는 죽을 때까지 돈 한푼을 못만져 볼 것 같아서 떠나야 겠어요….”

정원사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진즉 그랬어야지……”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자기가 알기로는 다방레지 일이 편하고 식모보다는 월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시내에 나가면 직업소개소가 많이 있어. 거기 가서 알아보면 될 거야…”

정원사 아저씨의 말이 귀에 솔깃하게 들어왔습니다. 가끔 시장에 가다보면 화장을 곱게 하고 머리를 뽀글뽀글 볶은 나 또래의 여자들이 예쁜 꽃무늬 보자기에 싼 커피포트랑 커피잔을 들고 커피배달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고 동경을 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하루종일 부엌에 서서 찬물에 손 담그는 일 보다는 예쁜 옷 차려입고 여기저기로 훨훨 돌아다니면서 커피배달을 하는 일이 재미있고 멋있어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 다방레지로 취직을 해야겠다.나는 결심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습니다. 며칠 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시장에 갔다가 옆집에서 식모로 일하던 순이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나 보다 두살 많은 순이 역시 어릴 때부터 남의 집살이로만 굴러다니던 아이였습니다. 동병상련의 처지라 가끔 대문 밖에서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던 아이였는데 갑자기 보이지를 않아 내심 걱정을 하던 차였습니다.

“어머나. 너 살아있었구나. 인사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버려서 많이 걱정했었어. 지금 어느 집에서 일 하니?”

내가 반가와하며 말하자 순이는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 너 아직도 그 집에서 일 하니?”

“으응. 다른 직장을 찾고 싶어도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아서 말이야. 그렇지만 지금 다른 일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는 중이야”

“그으래?”

순이가 마악 사춘기를 지나 봉긋 솟기시작하는 내 가슴이랑 허리를 쓰윽 보더니 말했습니다.

“나 지금 뭐하는 줄 아니? 다방에 다녀”

“다아방?”

“그럼. 일이 얼마나 수월하고 재밌는데. 월급도 무척 많단다”

“…………”

나는 부러운 마음으로 순이를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감히 실행을 옮기지 못하고 있는 일을 벌써 과감하게 하고 있는 순이가 참 대단해 보이고 멋있어 보였습니다.

“일년 열두달 가도 휴일 한번 안 주는 식모 일과는 달리 한 달에 한 번 놀 수도 있단다. 오늘이 노는 날이야. 친구랑 만나 놀다가 지금 헤어지고 자취방으로 가는 길이야. 예쁜 옷도 사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구경도 했지. 월급받은 걸로 말이야”

순이가 손에 쥔 올망졸망한 비닐봉지를 들어보였습니다. 모두 내게는 꿈만 같은 이야기, 그러나 내가 간절히 소망해 마지않던 이야기였습니다.내가 부러워하는 표정을 보이자 순이가 말했습니다.

“그 집에서 그만 나와. 너 같은 인물이면 취직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어..어떻게…어떻게 취직을 해?”

내가 용기를 내어 물었습니다. 내 물음에 순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직업소개소 있쟎아. 아무 직업소개소에 들어가서 다방에서 일 하고 싶다고 하면 돼. 그러면 적당한 곳을 소개해 줄 거야.나도 직업소개소를 통해 취직한 거야”

정원사 아저씨 말이 맞았습니다 직업소개소를 찾아가기만 하면 신천지가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순이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내 나이 벌써 열아홉이었습니다. 이제 시집갈 밑천도 슬슬 준비를 해야할 나이가 된 것입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한 돈을 계모한테 송두리째 다 빼앗겼지만 그때까지는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나였습니다. 그러나 사춘기를 지나게 되니까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화장품도 사고 싶었고 예쁜 옷도 사고 싶었습니다. 미장원에가서 머리도 하고 싶었습니다. 몸치장에 대해 눈을 슬슬 뜨기 시작할 나이였던 것입니다.

나는 그날 밤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집을 나가기로. 그리고 다방에 취직하기로.

계모한테는, 아버지한테는 그만하면 자식으로서 할 도리는 다했다 싶었습니다. 7,8년동안 혹사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다 갖다바쳤으니 이제 내 살길을 찾아가도 죄 될 건 없겠다, 싶었습니다.

며칠 후 나는 직업소개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의정부 시내에 있는 ‘25시 다방’에 월급 외에 침식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미성년이라 유흥업소에서 일을 할 수 없었지만 스물 한살로 나이를 속이고 취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다방에서 내 인생에 지울 수 없는 남자 , 내 첫 남편인 승준씨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집을 나온 후 처음으로 승준씨를 소개시키려 아버지를 찾아갔다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