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경기도 의정부에 살았던 사람은 어쩌면 기억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정부 시내 한복판에 위치했던 다방 ‘25시’를요. 그 다방은 영업이 무척 잘 되는 곳이었습니다. 나 말고 서너 명의 레지가 더 있었습니다. 모두 나 보다 대여섯살 나이가 많은 여자들이었지요.

나는 한 달에 80만원을 월급으로 받기로 했습니다.보통 초짜들은 6,70만원밖에 못받는데 25시 다방의 주인이 인심이 후해서 그나마 그 정도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일이 익숙해지고 단골손님이 생기면 더 올려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그 다방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모두 백만원 훨씬 넘게 받는다고 했습니다. 게중 단골이 많은 여자는 2백만원 가까이도 받는답니다.

나는 다짐했습니다. 열심히, 그리고 착실하게 하리라. 그래서 나도 돈을 많이 받으리라.

25시 다방레지들도 그랬고 근처의 다른 다방에서 일 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방을 얻어 자취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돈을 아낀다면서 다방에 붙은 쪽방에서 침식을 해결하고 있는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나는 비교적 나이가 어린 편인 두 여자와 가깝게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들의 이름은 ‘순자’와 ‘명옥’이었는데 자신들의 이름이 촌스럽다며 ‘미나’와 ‘정희’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다방에 붙은 두평 정도의 작은 살림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는데 나도 거기에 합류했습니다. 그렇쟎아도 좁은 방에 나까지 들어가서 불편하기도 할 텐데 미나와 정희는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생겼다며 오히려 좋아했습니다.

둘다 깊은 산골의 형제 많은 집의 딸들이었습니다. 당시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집의 딸들이 다 그렇듯이 국민학교를 근근히 마치거나 아니면 나 처럼 중도에 그만둔 채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처녀들이었습니다.

배 고파 본 사람만이 배 고픈 이의 심정을 안다고, 자신들이 힘든 세월을 겪었기에(나 만큼은 아니지만) 그녀들은 나의 형편을 이해하고 잘 해주려고 애썼습니다, 특히 미나는 내게 더욱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25시 다방에 취직한 첫날 밤이었습니다. 낮에는 하루종일 다방에 관한 일을 배우고 늦은 밤 쪽방에 누웠을 때 나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계모의 손아귀를 피해나와 순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취직이라는 것을 하긴 했지만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랬지만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사실이 새삼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한 것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앞에 선 기분이었습니다. 혼자서 헤쳐나가야 할바다의 파도가 얼마나 높고 거칠지, 그리고 보이지 않은 바다 속은 얼마나 험하고 깊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푸우푸우, 코를 골아대며 자는 미나와 정희 옆에서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누워서 나는 두 손을 앞으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작고 힘없는 나를 보호해 달라고. 나와 항상 함께 해 달라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교회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누군지도 몰랐고 기도를 하는 방법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이 들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두손을 앞으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사회생활, 누구보다 부지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어딜 가나 부지런하고 눈치가 빨라야 귀염받는다는 것, 그것은 다년간 남의 집살이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이치였습니다.

나는 바지단과 소매를 걷어부치고 다방안으로 나갔습니다. 실내는 마악 떠오르기 시작하는 햇볕을 받아밝고 환했습니다. 엊저녁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햇볕 아래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다방 안은 말도 못하게 더럽고 지저분했습니다. 담배꽁초와 침자국들과 커피 얼룩으로 어지러웠습니다. 나는 시멘트로 된 다방 바닥에 물을 뿌리고 온갖 오물들을 깨끗하게 쓸어냈습니다. 그리고 행주를 빨아서 열 몇개나 되는 테이블을 보득보득 소리를 내며 닦았습니다. 실내가 대강 깨끗해지자 이번엔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석유곤로에다 물을 끓였습니다.선반에 있는 찻잔들을 모조리 꺼집어내어 뜨거운 물에 튀겨냈습니다. 어제 저녁에 손님들로부터 수거해 온 찻잔들을 찬물에 대충 헹구는 것을 본 때문입니다. 찻잔에는 립스틱 자국이 그냥 덕지덕지 묻어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내가 누굽니까. 어릴 때부터 청소일로, 부엌일로 머리가 굵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타고난 성격 자체가 매우 깔끔한 편이었습니다. 어지러지고 지저분한 것은 못보는 성격이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을까.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에 고개를 퍼뜩 들었습니다.

“벌써 일어났어? 부지런하군……”

주인남자, 그러니까 사장님이었습니다. 어제 저녁. 미나가 나를 소개시킬 때 얼핏 본. 어제 저녁,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더랬습니다. 열심히 해요, 하는 말밖엔.

“아침부터 뭘 그리 하고 있니?”

그는 나를 보고 미소지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신문이 들려있었습니다. 사십대 초반 쯤 되었다고 했습니다. 다방 근처에서 혼자 살고 있는 남자라했습니다. 한때 암흑가에서 보스로 활동하다 최근에 맘 잡고 착실하게 산다는 남자라했습니다. 이마와 눈 언저리에 가로새겨진 선명한 칼 자국이 그의 화려한 과거를 설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칼자국이 아니더라도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날카롭고도 예리한 눈매와 사십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날렵하고 가벼운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잠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았니?”

“…………”

“잠자리가 익숙하지 않아서 좀 힘들었겠구나…”

암흑가 보스였다는 사실에 잔뜩 얼어 있는 내게 사장님은 재차 물었습니다. 생긴 모습과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습니다. 그리고 따뜻했습니다.

“예에….그..그냥….”

“청소를 아주 깨끗하게 했구나. 실내가 다 훤하군….”

“…………”

“청소 다 한 것 같은데 나 커피 한 잔만 타다주겠니?”

“예에….”

대답은 했지만 커피나 프림이 어디있는지 잘 알지 못했던 나는 엉거주춤한 몸짓으로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 오른쪽 나무로 된 찬장 안에 커피랑 프림이 있을 게다”

내가 난감해 하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사장님의 목소리가 내 뒤통수로 들려왔습니다.그때 나는 느꼈습니다. 보기보다 참 자상한 남자로구나…..

나는 정성스레 커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깨끗하게 닦아 놓았던 커피잔 중 제일 새것으로 보이는 잔에 커피를 타 들고 나갔습니다. 그는 신문을 보고 있다가 내가 내민 커피잔을 받아들고 다시 눈을 신문으로 향했습니다. 내가 탄 커피가 혹시라도 그의 입에 맞지 않으면 어쩔까, 걱정하던 나는 그가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두어모금 마시는 걸보고 다시 걸레를 찾아들었습니다.

이제 유리창을 청소할 차례였습니다. 바깥으로 난 유리창은 네 개였습니다. 손자국과 기름때로 얼룩덜룩 세계 지도가 그려져 무척 더러웠습니다. 나는부옇게 막이 쳐진 유리창에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열심히 닦았습니다. 유리창 네 개를 거의 다 닦을 무렵 사장님이 내게로 다가왔습니다.그리고 물었습니다.

“은영이라고 했니?”

“예에…..”

“몇살이지?”

“스물 하나….”

“속인 나이말고 진짜 나이”

“열…열..아홉……”

“부모님은 살아계시니?”

“…………”

“이런 일은 처음이지?”

“예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여기 여자들과 함부로 휩쓸리면 안돼.”

사장님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입에 물었습니다.

“첫째는 열심히 돈을 모을 생각을 해야 돼”

“…………”

“이 바닥에서 늙을 때까지 굴러다니면서도 제 몸 하나 누일 방 한칸 없는 여자들 천지야. 네 젊음이 영원할 것 같지? 아니다. 금방이다. 젊을 때 알뜰하게 돈 모아서 나중에 이 생활 그만두고 양품점이라도 하나 차릴 생각을 해야지…..”

“예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사장님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식모나 다방레지나 천대받고 멸시받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이들어서까지 이 직업에 종사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돈을 모아 이 생활에서 빠져나가야지요.

“계를 크게 하는 부인이 있어. 내가 소개 시켜줄 테니 일단 월급 타면 계부터 들어라. 아마 다음 달에 새로 시작하는 계가 있을 거야. 알았니?”

“예에…..”

“그리고 두 번째는…..”

사장님은 허공으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했습니다.

“남자를 조심해야 해.”

“………”

남자라, 나는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남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경험도 없었습니다. 내가 아는 남자라곤 우리 아버지, 그리고 식모살이 하던 주인 집의 남자, 그리고 정원사 아저씨가 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장님이 말하는 ‘남자’라는 것이 내가 알던 남자와는 다른 종류, 다른 뜻이라는 걸 말투나 분위기로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네가 이 생활이 처음이라고 해서 말해주는 건데 부디 명심해라. 남자에게 쉽게 넘어가면 안돼. 온 동네남자들이 모두 네게 함부로 대하려 들고 쉽게 대하려 들 거다. 그리고 어떻게든지 한 번 해 보려고 덤벼들 거다…..”

“……….”

“쉬운 말로 너를 한번 따 먹으려고 수작을 걸 거다, 이 말이다”

갑자기 무서워져서 나는 몸을 움추렸습니다. 나를 ‘여자’로 생각한 남자들이 덤빌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나 혼자 내딛은 독립된 생활에 두려움과 기대를 가졌을 뿐. 다방이란 곳이 남자를 상대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자였습니다. 초경을 치룬 지 벌써 몇 년이나 되는. 가슴이 나오고 히프가 발달된 여자, 계집아이가 아니라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 헤프더라, 소리 안 듣게, 조신하게 행동해야 해…..”

“………….”

“이 도시는 넓은 것 같으면서도 좁아. 한번 이미지가 나빠지고 소문이 나면 그걸로 끝이야.그래서 처음부터 각별히 몸조심에 유의해야 돼”

“………..”

“이런 데로만 굴러다니다가 너의 인생을 마칠 수는 없쟎아. 착하고 얌전하게 있다가 좋은 남자 만나 시집도 가야지. 아이도 낳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지”

사장님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도 결혼이란 걸 할 수 있을까.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같이 보잘것 없고 초라한 신세인 나를 데려 갈 남자가 과연 있을까……

“너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그러는…”

내가 침을 꿀꺽 삼키며 가까스로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그러는 사장님은 왜 아직도 혼자세요?”

내 말에 그가 잠깐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옆 얼굴엔 고뇌가 가득했습니다.

“나 역시 가정을 꾸리고 싶지…..”

그가 나를 보고 보일 듯 말 듯 미소지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야 말이지. 과거에 깡패였던 남자한테 시집 올 여자가 없쟎아….”

“…………”

“은영이 네가 시집 올래?나랑 결혼 할까?”

“예에?”

사장님이 기습적으로 던진 질문이었으므로 나는 펄쩍 뛸 듯 놀랐습니다.

“네가 내 아내가 될 운명이면 나중에 어떻게서든지 될 거고……”

농담처럼 그가 말했습니다. 그래놓고 자기도 우스운지 한참 웃었습니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는 매우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그랬습니다. 내가 가진 운명의 실타래는 술술 풀리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꼬이고 헝크러지고 뒤틀립니다. 나이는 비록 나보다 스무살 가까이 많았으나 그때 그의 말대로 그와 결혼을 했더라면 내 인생의 방향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내 인생의 한 부분이 그토록 끔찍하고 무서운 일로 점철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사장님은 저녁 때 다시 돌아오겠다며 나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실내, 햇볕만이 가득한 실내에 앉아 나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제 저녁 잠자리에서 느꼈던 두려움이 나의 어깨를 안개처럼 짙게 에워쌓습니다.

남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다방 일에 내가 잘 적응해 나갈까, 하는 두려움. 사장님 말대로 내 몸 함부로 굴리지 않고 끝까지, 결혼할 때까지 깨끗하게 지켜 나갈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

당시만 해도 다방 레지는 식모와 동급으로 취급되었던 질 낮은 직업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방레지들은 모두 위에서 설명한대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국민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처녀들이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 남의 집 아이보기나 식모로 팔려갔다가 나이가 들면서 주인집을 뛰쳐나온 나 같은 사람이 첫 번째로 발을 디디는 곳이 바로 다방이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정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누가 옆에서 올바른 길로 가라고 조언이나 충고를 해주는 사람들도 없어 제멋대로 자란 여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너 나 할 것 없이 교양이나 학식이나 예절과는 거리가 먼 여자들이었습니다. 물론 여자의 정조에 대한 관념도 희박했지요. 책이라고는 ‘선데이 서울’이니 ‘주간 경향’이 전부요, 지식이라곤 그런 주간지에서 읽은 연예인들 이혼 소식밖에 없는 여자들이었습니다.

여자들은 부모의 영향권 밖에 있었습니다. 아니, 부모들이 멀쩡히 살아 있다고 해도 딸자식이 객지에 나가 무슨 짓을 하던 개의치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설령 딸자식이 몸을 판다고 해도 돈만 많이 갖다주면 입이 찢어질 정도로 좋아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난 앞에서는 모두 그렇게 구차해지는 것입니다.

당시 다방레지들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했던 것은 함부로 몸을 굴리는 일부들 때문이었습니다. 돈 몇 푼에 아무 남자들하고 잠을 자는 레지들 때문에 모두 도매금으로 취급되었던 것입니다.

25시 다방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미나와 정희들을 포함한 다른 레지들도 남자들과 쉽게 잠을 잤습니다.

손님들은 대부분 인근 복덕방이나 안경점이나 약국이나 세탁소나 방앗간 주인남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근의 깡패도 있었고 돈 잘 버는 아내 덕분에 먹고 살 걱정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는 남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하면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눈을 굴리는 백수와 놈팽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날만 새면 우리 다방으로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커피에 생계란을 띄운 ‘모닝 커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방에서 하루종일 죽치며 바둑과 장기를 두기도 하고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거의 매일얼굴을 보니 한가족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레지들도 그들을 스스럼없이 대했고 그들 또한 레지들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엉덩이를 슬슬 쓰다듬기도 하고 슬쩍슬쩍 가슴을 건드리기도 했습니다.

셋이 누우면 꽉 차는 방에 미나가 정희가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그날은 돈 받고 손님과 외박 하는 날로 보면 되었습니다.

외박을 하는 다음 날, 미나와 정희는 항상 새벽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침 일찍 문 여는 목욕탕에라도 들렀는지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않은 채였습니다. 그녀들은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담배를 피우며 간밤을 같이 보냈던 남자들의 흉과 욕을 하기에 입이 바빴습니다.

“그 김 사장 새끼, 보기보다 얼마나 짠돌인지….”

“어느 김 사장?”

“아, 왜 저 시장 귓퉁이에서 낚시점 하는 놈….”

“오,그 놈?”

“그 놈이 2만원 준대놓고는 돈 없다고 달랑 만원 밖에 안 주지 뭐니….”

“그래, 그걸 그냥 두었어? 양복주머니를 뒤지든지 풀어놓은 시계라고 가져 오지?”

“그렇다고 어떻게 그렇게까지 해…하여튼 남자새끼들 치사한 것 알아주어야 해……”

주인아저씨의 말대로 그들은 몸을 마구 굴렸습니다. 말 그대로 돈만 몇푼 집어주면 그녀들은 외박을 나갔습니다. 이 남자, 저 남자와 자고 다니기가 예사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은조금만 시간이 남으면 화투를 쳤습니다. 돈내기 화투였습니다. 화투를 치다가 시비가 붙기도 했습니다. 서로의 머리채를 쥐고 바닥을 구르며 마구 싸웠습니다. 그녀들은 또 하나같이 담배를 피웠습니다. 하루에 한두갑을 예사로 피우는 골초들이었습니다.

그녀들은 사치 또한 심했습니다. 철철이 옷에 화장품에 구두에, 마구 사들였습니다.

적지않게 돈을 벌면서도 규모있게 관리를 못해서인지 늘 돈에 쪼달려 쩔쩔맵니다. 시골에 돈을 송금도 해야 하고 내 몸에 사치도 해야 하는 그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알뜰하게 하면 괜찮을 텐데 들어오는 돈은 생각하지 않고 펑펑 써대니 쪼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근처의 옷집이나 화장품 가게에 외상들을 주르륵 깔아놓고 있었습니다.

한 달 동안 종아리가 부르트게 서서 일해 번 돈이 월급날 저녁이면 빈털털이가 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중에는 대학생 애인을 사귀어 학비며 용돈을 대주는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대학생과 다방레지. 정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상처받을 걸 뻔히 알면서도그녀들은 무모하게 사랑에 빠지고 몸 주고 돈 주고 마음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최후에는 버림받고 자살을 시도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남자관계가 문란한 만큼 그녀들은 심심챦게 임신을 했습니다. 대부분 아버지를모르는 아이, 낳아서는 안되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열이면 열, 뒷골목 으슥하고 음습한 무허가 시술소에서 낙태를했습니다.

그쪽 세계에 발을 디딘지 두어달도 되지 않아 다방레지 생활이라는 게 자칫 잘못하면 금방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지기 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나 치명적인 독을 감춘 독버섯처럼 처녀들을 유혹하는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지요. 그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각별한 절제와 조심이 필요했습니다.

나쁜 일에는 금방 쉽게 휩쓸리게 됩니다. 까딱 잘못하다간 파도에 휩쓸리듯 그녀들의 방탕하고 사치스런 생활에 휩쓸리게 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나쁜 쪽으로 빠지는 길은 쉽고도 넓었습니다만 나는 그 길을 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그녀들과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그 나이 되도록 그 누구도 내게 인간이 가야 할 올바른 길에 대해,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에 말해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25시 다방 에 일하던 첫 날, 사장님만이 간단하게 두어마디 충고를 해주었을 뿐입니다.

나는 사장님의 말대로 일단 돈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돈 모으는 방법은 정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을 받고 남자와 잠을 잔다는 것은 여자로서 아주 치욕적이고 수치스런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남자 경험이 없는 숫처녀였습니다. 당시 내 나이 열아홉살. 꽃으로치면 마악 봉오리를 피우기 시작하는 나이였습니다.

앞 편에서도 잠깐 설명했듯이 나의 친엄마는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습니다. 고맙게도 내가 친엄마의 생김새를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렇게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꾸미는 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누구도 내 외모에 대한 칭찬을 해주지 않아서였습니다.

내가 때를 벗기 시작한 것은 다방일을 시작한지 몇 달이 지나서였습니다. 싸구려일 망정 내 몸에 맞는 옷도 사 입고 얼굴에 크림이라도 바르고 립스틱이라도 바르게 되니 나의 감추어진 미모가 조금씩 빛을 발했던 것입니다.

키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나는 버들가지처럼 낭창하고 가는 허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내 허리 사이즈는 20인치입니다. 당시는 더 가늘고 약했지요. 내 팔 다리와 목은 길었고 얼굴도 계란형이었습니다. 속눈썹은 길었고 코는 오똑했으며 입술은 반달같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얌전하고 조용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죽으며 살아서인지 말수가 적었고 함부로 나대지 않았습니다. 누가 봐도 현숙하고 조신한 여자였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나의 대한 이야기가 의정부 시내에 퍼져나갔습니다.나를 보러 일부러 우리 다방에 와 보는 남자들까지 생겨났습니다. 더구나 내가 절대로 아무 남자나 따라나서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나자 나의 줏가는 더욱 올라갔습니다.

어느 날 나는 정희로부터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쌀집 아저씨가 사장님께 2백만원을 제시하면서 나를 데리고 나가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2백만원이면 아주아주 큰 돈이었습니다. 하루종일 엉덩이 한번 부칠 새 없이 정신없이 커피배달을 해도 백만원 남짓버는 게 당시 우리 레지들의 현실이었지요.

쌀집 아저씨가 내게 바로 그런 제의를 하지 않고 사장님을 통한 이유는 사장님이 무서워서라고 했습니다. 암흑가에서 손을 씻었다고는 하나 그때까지도 그 도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사장님 몰래 나를 데리고 나갔다가 나중에 어떤 경을 칠지 모르니까 미리 사장님한테 허락을 받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장님이 , 사장님이 뭐라고 하던가요?”

내가 초조해하며 물었습니다. 정희가 대답했습니다.

“단호하게 거절하더라. 은영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하면서”

나는 후유,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야, 네 몸값이 점점 더 올라간다?그러다가 천만원까지 올라가겠다야”

미나가 말했습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아무 놈에게나 내 처녀를 주지말고 버팅기는 건데….”

“일단 은영이가 예쁘쟎아. 저 허리 좀 봐, 그리고 저 윤기 나는 피부 좀 보라구”

“그러게 사내들이 환장할 요건은 골고루 갖추었다니까…그러니까 그렇게들 목을 매지…”

“그나저나 왜 사장님은 자기가 나서서 거절을 할까? 좋든 싫든 은영이한테 먼저 물어 봐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러게. 자기가 은영이 오빠야, 애인이야…”

“글쎄, 그게 좀 그렇네.혹시 사장님이 은영이를 좋아하는 것 아닐까?”

미나와 정희는 찧고 까불었습니다.

나는 사장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깨끗하게 내 몸을 지키고 값싸게 내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몇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고 법점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나자 더 이상 내게 찝쩍대는 남자들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사장님의 든든하 보호막아래 착실하게 다방레지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곗돈을 차곡차곡 부었습니다.

그즈음 우리 다방에 매일 오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아주 잘 생긴 남자였습니다. 키가 1미터 80센치에 달했고 서늘한 이마와 오뚝한 콧날을 가진, 귀티가 줄줄 흐르는 남자였습니다. 나이는 나보다 서너살 많을까, 그는 매일 같은 시각에 우리 다방에 들렀습니다. 말도 없었어요. 묵묵히 앉아 있다가 갔습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요. 늘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봐서 막일 하는 사람같지는 않았습니다.

나를 비롯한 우리 레지들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어 갔습니다.

“우리 셋에게 관심이 있어서 매일 오는 것 같은데 설마 나는 아닐 테고….”

미나가 말했습니다.

“야야, 혓물 켜지 마라.보면 모르니?여기 은영이한테 관심이 있어 오는 남자일 거다”

커피를 타는 아주머니가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 말에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오오, 저렇게 잘 생긴 남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다고?

그러나 나는 감히 그 남자에게 아는 체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들어오면 미나와 정희를 비롯한 다른 레지들이 앞다투어 달려나가 커피 주문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랑 눈이 마주치면 나는 그저 가볍게 목례만 하고 멀리서 지켜만 볼 뿐. 다른 레지가 일손이 바쁘면 내가 그의 커피를 갖다줄 때도 있었습니다만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냥 그랬습니다.

그렇게 날이 가고 달이 갔습니다. 그날은 내가 감기몸살이 아주 심하게 난 날이었습니다. 나는 일을 못하고 방에 누워있었습니다. 저녁 무렵 미나가 호들갑스럽게 뛰어들어왔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약봉지가 들려있었습니다.

“야야, 윤수일이야. 윤수일이 왔다 갔어!”

그 남자는 우리사이에서 윤수일로 통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 ‘윤수일’과 비슷하게 생긴 얼굴과 분위기를 가진 남자였기 때문입니다.그 윤수일이 나를 찾더라는 것입니다. 아파서 일을 못하고 누워있다고 하니 아주 실망스런 표정을 짓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걱정스레 묻더라는 겁니다.

“많이 아파요?어디가 아파요?”

단순한 감기몸살이라고 하자 시켜놓은 커피도 마시지 않은 채 바람처럼 급하게 나가더랍니다. 얼마 후 그가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손에 든 약봉지를 내밀더라는 것입니다.

“은영씨가 아프면 안 돼요. 부디 얼른 일어나라고 전해 줘요…..”

남의 관심을 받는 다는 것, 그렇게 달콤하고 황홀한 기분인지 몰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는 혼자였습니다. 모든 걸 혼자 견디어야 했고 슬퍼도, 눈물이 나도 혼자 감수해야 했습니다. 아프다해도 내 이마를 짚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잡초처럼, 그 누구의 관심이나 애정을 받아보지 못하고 자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프다고 약을 사다주는 사람이 있다니!

나는 그 약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빈 약봉지를 서랍 깊숙하게 간직했습니다. 타인으로 받은 첫 관심의 징표인 약봉지를 차마 내버릴 수 없어서였습니다.

그의 약 덕분인지 아니면 푹 쉬어선지 하룻만에 감기몸살이 다 나아 다음날 일을 나갔습니다. 저녁 무렵 그가 늘 들리는 시간이 되자 나는 안절부절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고맙다는 표현을 해야 하나… 나는 아직 그 남자의 이름조차, 나이조차 모르는데….

하루가 더디가고 저녁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다방 출입문을 밀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느 때처럼 늘상 앉는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나는 얼른 주방에다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그 커피값은 내 앞으로 달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커피가 나왔습니다. 나는 커피잔을 쟁반에 받쳐들고 그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가슴이 후들거렸지만 애써 침착하려 심호흡을 했습니다.

“일전에 고마왔어요….”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몇달을 매일같이 우리다방에 왔어도 단 한번도 가까이서 얼굴을 대한 적이 없는 남자였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그는 더욱 조각같이 잘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덕분에 몸살이 금방 나았어요….”

“다행입니다…..”

“저…저는 그쪽의 이름도 모르는데….”

“윤승준입니다.….”

나의 첫 남자이자 첫 남편이었던 윤승준.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