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비참한 희망
잭은 옷을 갈아 입는 정옥을 다시 한번 범했다. 그리고나서 정옥을 데리고 간 곳은 어느 가정집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웃음소리와 음악소리가 밖에까지 왁자지껄하게 들렸다.
잭과 정옥이 들어서자 술과 음식을 먹고 있던 한 패의 남녀들이 환호성을 올리며 반가와 했다.
"어이, 잭. 한국에서 색시를 데려 왔다더니 그 여자야?"
"얌전하게 생겼네"
"아무리 동양여자가 덩치가 없다지만 너무 약한 것 아냐?"
정옥을 두고 모두 한 마디씩 했다.
집주인에 의해 정옥은 잭과 함께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식당에 놓인 커다란 테이블에는 정옥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잭은 배가 고팠는지 접시를 가져다가 듬뿍듬뿍 음식을 덜었다.
정옥은 그러는 잭을 그저 쳐다 보기만 했다. 엊저녁만 해도 정옥은 먹을 것을 찾아 부엌 찬장을 뒤지기도 했었다. 지금 역시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로 배가 고팠다. 그러나 식욕이 나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차려진 그 어떤 음식에도 손이 가지지가 않았다. 아무것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테이블 중앙에는 커다란 칠면조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누워 있었다.
그랬다. 오늘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이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 리가 없는 정옥. 모두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녀는 혼자 외돌톨이 신세였다.
쭈볏쭈볏 눈치를 보며 한 쪽 구석에 옹승거리고 서 있는 정옥을 집주인 여자가 보았다. 그녀는 정옥에게 다가와 칠면조를 가리키며 뜯어 먹으라고 말했다. 정옥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를 보이자 다리를 잡고 뜯는 시늉까지 내보였다. 정옥은 어떻게 거절하는 줄을 몰라 바보처럼 웃어보였다.
집주인 여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옥은 서 있을 힘도 없었다. 음식이고 뭐고 어디든 좀 앉았으면 싶었다.
마침 뚱뚱한 흑인 여자가 정옥의 쓰러질 듯 피곤해 하는 모습을 보더니 앉은 소파에서 엉덩이를 좁혀 정옥에게 약간의 자리를 내주었다. 정옥은 염치불구하고 얼른 비어 있는 소파의 한 쪽에 앉았다.
그러는 정옥을 걱정스런 표정으로 쳐다 보며 이것저것 다시 말을 시키던 집주인 여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얼마 후 초인종 소리가 났다.
소파와 바닥에 제각기 편한 자세로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던 집주인 여자가 튕기듯이 일어나 나갔다. 곧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자그마한 체구의 동양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년의 그 여자는 곧바로 정옥에게 걸어왔다. 그리고 기진맥진해 쓰러질 듯 앉아 있는 정옥에게 말했다.
"한국에서 왔어요?"
또렷한 한국말이었다. 정옥은 퍼뜩 정신을 차려 여자를 보았다.
"아무 것도 먹지도 않고 있어 걱정이 된다는 전화를 받고 왔어요"
아아, 한국말! 한국여자!
한국을 떠나온 지 하룻동안 들어보지 못한 한국말 소리에 정옥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너무나 반가와서였다.
"한국서 언제 왔어요?"
"어저께...."
말을 채 마치지 못하고 복받치는 울음에 고개를 숙이는 정옥. 울음을 참느라 정옥의 어깨가 심하게 들썩거렸다.
여자가 물끄러미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정옥을 내려다 보았다. 여자의 손이 정옥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울지 말아요. 미국생활이 다 그렇게 한심하고 막막하고 그래요. 나도 첨에 와서 얼마나 울었던지.. 하루에도 열 두번씩 한국으로 도로 나가고 싶고 그랬다우. 그런데 정 붙이고 사니까 또 살아지더라구요"
당신은 왜 울었는데요? 당신은 왜 한국으로 도로 나가고 싶었는데요? 설마, 설마 지금 제가 당하고 있는 경우같은 때문은 아니었겠지요? 저는 무서워요. 무서워 죽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정옥은 울부짖고 싶었다.
그 옛날 영준 어머니가 아들을 잃은 후 땅바닥을 치고 통곡하며 울부짖듯이 정옥도 그렇게 땅바닥을 치며 울부짖고 싶었다. 그렇게해서라도 이 엄청난 현실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슴 속에 쌓인 통곡을 차마 뱉어내지는 못하고 그저 눈물만 철철 흘리며 울고 있는 정옥.
소리를 죽이며 울었는데도 정옥의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다른 방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있던 잭이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반쯤 마시다 만 술병이 들려 있었고 벌써 술에 취했는지 눈동자는 게게 풀려 있었다.
잭은 울고 있는 정옥을 한번 쓱 보더니 여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잭은 여자에게 한참동안 무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도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 쪽으로 가 버렸다.
"자, 자. 그만 울고 내 말 들어요"
여자가 정옥의 어깨를 흔들었다.
"지금 그 남자, 남편이지요?"
정옥이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신 남편 말이 내일 새벽에 누나와 어머니가 사는 아이다호 주로 떠날 거래요. 당신이 미국에 도착하는 날 밤에 술 마시고 공항으로 가다가 어느 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는구만"
" ! "
"당신 남편 차는 앞 유리만 좀 나갔을 뿐이었대요. 그래서 그 길로 무면허로 차 유리 끼워 먹고 사는 친구한테 가서 유리를 갈았대. 그런데 문제는...."
여자가 말을 하다말고 크게 한숨을 내 쉬었다.
그날 잭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던 피, 그리고 좌석에 흩어져 있던 유리파편이 교통사고 때문이었구나.....
정옥은 어젯밤 자신의 벗은 엉덩이를 날카롭게 찔러대던 차 시트의 유리파편을 생각했다.
"문제는 상대방 차가 크게 부서진거래요. 상대방에게 보험회사에서 처리할 거라고 큰 소리를 쳐 놨는데 사실은 보험이 없다네. 그리고 무엇보다 술 마시고 운전한게 켕긴다는 거야. 사고처리도 제대로 않고 떠나버려서 어쩌면 상대방이 경찰에다 신고를 했을 거고 자기 차가 수배중일지도 모르니 내일 아이다호 주로 떠나버리겠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런 줄 알라고...."
여자의 설명에 잭이 왜 그런 행색으로 공항에 나타났는지 정옥은 분명하게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을 마셨겠지. 문득 마중 갈 시간이 늦은 걸 깨닫고는 허겁지겁 운전해 공항에 오다가 사고를 낸거겠지...
자신이 나타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가슴을 졸였을 시간에 느긋하게 술이나 마시고 있었을 잭을 생각하니 정옥은 분노가 치솟았다. 그러나 어쩌랴, 정옥은 분노를 표출할 수 조차도 없는 신세였다.
여자는 다시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내 말을 잘 들어요. 보아하니 당신 남편도 당신을 편하게 살게 해줄 사람은 아닌 것 같애. 미국에 품었던 환상을 일찌감치 깨 버리는 게 좋아요. 그게 서로를 위해서도 좋아."
여자는 정옥에게 소근거리듯 말을 이었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땐 미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더랬지요. 미국에 오면 손 끝에 물 한 방울 안묻히고 편하게 살 줄 알았지. 그런데 웬걸, 오는 날부터 지금까지 남의 집 아이 돌봐 주는 일 하느라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살아요.당신의 남편이 무슨 거짓말로 당신을 미국까지 데려 왔는지 모르지만 미국에서 편안하게 살 꿈을 가지고 왔다면 일찌감치 그 꿈을 포기해요"
여자의 말이 정옥의 휑하게 빈 머리속으로 들어 와 박혔다.
편하게 살 생각은 아예 처음부터 하지 마라. 미국은 결코 편안하게 사는 나라가 아니다.....
그래, 나도 그런 꿈을 가지고 왔었지. 한국에서의 고생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호시탐탐 미국남자 만날 기회만 엿보다 잭을 만났지....미국에 오면 잘 먹고 잘 사는 줄 알고 왔었지....
"그나저나 여지껏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면서? 저기 칠면조 고기를 좀 먹어 보려우? 오늘이 추수감사절이야. 한국으로 치자면 추석같은 날이지. 저 칠면조 고기 그런대로 먹을 만 해요. 먹어 볼래요?"
정옥은 여자가 이끄는대로 자리에서 비척비척거리며 일어났다. 실컷 울고나서였을까. 마음이 조금 안정된 정옥은 일단은 음식을 먹고 힘을 좀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꿈은 이미 버린지 오래였다. 어쨌든 발 디딘 미국, 여자의 말대로 정 붙이고 한번 살아 보자, 하고 정옥은 다시 자신에게 타일렀다.
또? 하는 표정으로 정옥은 잭을 쳐다 보았다.
잭은 정옥의 표정은 아랑곳 않고 바지 지퍼를 내렸다. 정옥이 그 끔찍하게 생긴 성기를 보는 게 싫어서 자기도 모르게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러나 정옥의 얼굴은 잭의 커다란 손에 의해 찍어 눌러졌다. 그 바람에 정옥의 얼굴이 열린 지퍼 사이로 삐죽이 솟아나와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잭의 성기에 직통으로 가 닿았다.
빨리, 하는 재촉의 뜻으로 잭의 손이 다시 정옥의 뒷머리를 세게 눌렀다. 잭의 빳빳한 성기가 자연히 정옥의 입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정옥은 헛구역질을 하며 그것을, 아아, 저주스러운 그것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빨고 핥았다.
정옥의 입놀림이 조금이라도 느려진다 싶으면 잭은 정옥의 긴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감아쥐고는 뒤로 잡아당겼다. 머리가죽이 홀랑 다 벗겨지는 듯한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며 정옥은 힘차게 잭의 그것을 다시 물어야 했다.
벌써 몇 번째인가.
잭의 어머니와 누나가 산다는 아이다호 주로 출발한 지 한나절.
인적이 뜸하다 싶은 산길을 만나면 잭은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정옥에게 자신의 성기를 입속에 넣을 것을 명령했다. 그의 시뻘겋게 충혈된 위협적인 눈빛에 못이겨 정옥은 처음 서너번은 두 말도 못하고 시키는대로 했다. 그러나 영하의 날씨에 히터도 고장 나 나오지 않는 차 속에서 몸을 구부려 그 짓을 해야하는 건 크나큰 고역이었다.
정옥은 한번 거부의 몸짓을 보였다가 잭으로부터 서너차례 뺨을 얻어 맞았다.
얼마나 세게 맞았던지 정옥의 뺨에는 금방 선명한 손자국이 생겼다. 정옥은 그때 너무 놀라서 울지도 못했다. 어릴 때야 아이보기를 하면서 주인으로부터 엄청 맞았다. 그러나 철들고 나서는 영준 어머니한테 외에는 그 누구에게서도 매질을 당해보지 않았던 정옥이었다. 그런데 잭한테 뺨을 세차게 맞은 것이다. 그것도 서너차례나. 추위에 꽁꽁 언 뺨을.
잭은 뺨을 맞고 얼이 빠져 있는 정옥의 얼굴을 사타구니께로 강제로 가져가게 하더니 자신의 성기를 정옥의 입속에 강제로 구겨 넣었다.
" 빨아, 이 개같은 년아. 빨란 말이야! "
그 이후로 정옥은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도 반항 한번 못하고 시키는대로 그 짓을 해야 했다.
아아, 제발 이게 꿈이었으면! 눈을 뜨면 모두 없어져 버리는 꿈이었으면!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잭의 그 미친 짓거리는 아이다호에 도착할 열 여덟 시간 동안 열 번 넘게나 계속되었다. 시애틀에서 아이다호의 윌리 지역까지는 차로 예닐곱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그러나 잭의 차가 워낙 고물이었기에 조금만 운전을 오래하면 엔진이 열이 받아 연기가 났다. 엔진에 물을 부어 식혀가며 그리고 인적 드문 길에서 정옥에게 그 미친 짓을 시켜가며 가느라 자그마치 열 여덟 시간이나 걸린 것이었다.
아이다호는 눈이 어른 키만큼 덮히는 추운 지방이었다.
히터도 나오지 않은 차에 얇은 담요 한장을 달랑 무릎에 덮고 도착한 잭의 어머니 동네는 현실과는 다르게 크리스마스 카드 속의 풍경처럼 아름다웠다.
잭은 빨간 벽돌로 나즈막하게 담을 쌓은 어느 작은 집 앞에 차를 세웠다.
잭이 정옥에게 차에서 내리게 했다. 정옥은 차에서 내리다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열 몇번의 중노동에 가까운 그 짓거리로 인해 정옥은 기진맥진해 있었다.
집안에는 사람이 없는지 내다보는 기척도 없었다.
잭은 그게 기분 나빴는지 닫았던 차문을 열어 다시 한번 소리나게 쾅 닫았다. 그러자 현관문이 열리며 키가 크고 마른, 그리고 잭과 똑같은 얼굴을 한 여자가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잭을 보고도 반가와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말 없이 문을 열고는 잭과 정옥이 실내로 들어갈 수 있게 몸을 비켜 주었다. 앞장 선 잭을 따라 정옥도 집안으로 들어갔다.
벽난로의 장작이 타고 있는 서너평 남짓한 거실안에서는 머리가 하얀 노인 하나가 실로 짠 이불을 무릎에 덮고 소파에 앉아서 들어 오는 잭과 정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잭은 자신의 옷가지와 정옥의 옷이 담긴 슈트케이스를 소리나게 거실바닥에 던져놓았다. 그리고는 노인을 향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런 씨팔 놈의 집구석 같으니라고! 아들이 왔는데 방에 있으면서 어찌 내다보지도 않아?"
노인은 잠자코 잭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잭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무슨 대단하고 장한 아들이 왔다고 내다보기까지 하니?"
정옥은 그들이 하는 말을 단 한 마디도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대충 짐작할 수는 있었다.
어머니와 누나에게까지 푸대접을 받는구나. 얼마나 개망나니였으면....
누나가 잭이 내동댕이 치다시피 내려놓은 슈트케이스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정옥에게 자기를 따라 오라는 눈짓을 했다.
정옥은 안절부절 하며 앉아 있던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누나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작은 침대 하나와 서랍장이 놓여진 방으로 정옥을 데리고 들어 갔다.
그리고 미소 띈 얼굴로 말했다.
"이 방이 너희 둘이 쓸 방이야"
잭의 누나는 새파랗게 얼어 있는 정옥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긴 한숨을 쉬면서 정옥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 본 후 말 없이 문을 닫고 나갔다.
혼자가 된 정옥은 침대에 함부로 앉기도 겁이 나서 방바닥에 주저 앉았다. 침대에 등을 기대려던 정옥은 아, 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쉬지않고 잭의 성기를 빨아대느라 움직여 댄 고개와 뒷머리가 무척 아팠기 때문이다.
침대를 기대고 앉은 정옥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게 내 운명이고 팔자인가...
어쨌든 정 부치고 살아 보려 했었다.
이왕 미국까지 온 것, 울고 한탄해 보았자 달라지는 게 있겠는가. 그래도 조금이라도 내가 마음에 있었으니까 미국까지 데리고 왔겠지. 어쨌든 결혼까지 했으니 잭은 내 남편이 아닌가, 하고 마음을 고쳐 먹고 또 고쳐먹었었다. 한국에서 생각했던대로 잘 먹고 잘 살 생각은 잭의 아파트에 발을 디디는 순간 깨진 거나 다름 없었다. 최소한 잭의 아내로 평범하게만 살아갈 수 있다면 미국에 적응하도록 노력하리라고 생각했었다.
하루도 안되는 시간 안에 몇 번씩이나 섹스를 원하는 잭을 정옥은 처음엔 애써 이해하려고도 했었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 오는 그 짧은 시간을 못참아 길가에 차를 세우고 카 섹스를 원하는 잭이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적이긴 했지만 ' 어쨌든 6개월이나 떨어져 있었으니 급하기도 했었겠지. 그리고 많이도 하고 싶었겠지 '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애틀을 떠나 어머니네 집에까지 오는 열 여덟 시간동안 정옥에게 강요한 짓은 분명 사람의 짓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짓을 거절한다고 정옥의 뺨까지 세차게 후려친 것이다. 그리고 몇 번이나 정옥의 고개를 찍어눌렀다 조금치의 사정도 보지않고....
잭은 운전을 하는동안도 잠시도 쉬지 않고 술을 마셔대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정옥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지 않고 있었다. 말 한 마디는 고사하고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잭은 나를 자신을 아내로 생각하고 있는 건가. 아니, 하나의 인간으로 보고나 있는건가. 자신의 더러운 배설물을 받아 낼 하수구 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미국 생활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두려움이 정옥을 파도처럼 덮쳐왔다. 그것은 숨도 크게 못쉴 만큼 큰 두려움이었다.
잭은 어머니 집에서도 거침없이 행동했다.
눈을 뜨자마자 술병을 입에 대기 시작해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놓지를 않았다. 잭이 하는 일은 딱 두 가지, 술 마시는 일, 그리고 섹스였다.
거실에 자기 어머니가 있는데도, 이웃에 살면서 거의 매일이다시피 오는 누나가 집안에 있는데도 잭은 섹스를 해야겠다는 욕구가 생기면 그런 것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대낮이건 아침이건 심지어 식사를 해야 할 시간에도 잭은 섹스를 해야 했다.
처음엔 정옥을 밑에 눕히고 자신이 올라가는 체위였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억지로 헤집은 정옥의 아랫도리는 보기에도 처참한 상태였다. 긁히고 까져서 피가 흐르고 짓물렀다. 그걸 본 잭은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아니 양심이 있다기보다 자기가 몸을 움직이는 게 귀찮아서였겠지, 정옥에게 오럴을 할 것을 강요했다.
잭은 침대에 대자로 눕고 정옥은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 일을 했다.
덩치에 따라 잭은 성기도 굵었다. 그리고 길었다. 그 성기를 입에 넣고 사정할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빨아대야 하는 작업은 고통, 바로 그 자체였다.
술을 많이 마셔댄 날은 발기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발기가 되지 않는데도 섹스에 대한 욕구는 사그러들지 않고 여전한 잭이었다. 잭은 정옥에게 그것을 일으켜 세울 것을 명령했다. 축 늘어져 있는 그것을 입에 넣어 빨고 물고 핥아서 일으켜 세우는 일은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만큼 힘들고 치욕적이었다.
고개가 너무 아파서, 부르튼 입술이 쓰라려서 거절의 몸짓이라도 보였다가는 어김없이 정옥의 몸으로 잭의 주먹질과 발길질이 날아 갔다. 불과 열흘 사이에 정옥의 온 몸은 맞아서 만신창이가 되었다. 얼굴의 몇 군데에 피멍이 들었고 입술은 터졌다. 그리고 발길질을 직통으로 당한 복부는 숨을 쉴 때마다 결렸다.
이렇게 짐승같이 당하며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자!
어느날 잭이 술을 사러 간 사이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던 정옥은 시퍼런 피멍투성이, 상처투성이인 자신을 보면서 절규하듯 부르짖었다.
죽어버리자고 작정했다.
그리고 정옥은 방안을 둘러보았다. 작은 침대와 서랍장 하나가 전부인 방안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죽는단 말인가.
먹고 죽을 만한 약도 없고 영화에서 본대로 손목을 그을 만한 도구도 없었다. 목을 맬 만한 천도 없었고 장소도 없었다.
죽기로 작정을 한 정옥이지만 그녀에겐 죽을 만한 여건조차도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잭네 어머니네서 정옥이 하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하루종일 잭한테 시달리다 하루 세끼 밥을 먹으러 부엌으로 나가는 일 밖에는.
잭은 거의 밥을 먹지 않고 술로 끼니를 때웠고 식탁에 앉는 사람은 잭의 어머니와 정옥, 둘뿐이었다. 어쩌다 잭의 누나가 들러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지만 거의 두 사람만이 식탁에 앉는 때가 더 많았다.
식탁에 앉아서도 정옥은 거의 밥을 먹을 수 없었다.
퉁퉁 부은 입술 때문에,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할 짐승같은 일을 매일 당하면서도 이렇게 먹고 살겠다고 음식을 마주보고 앉았구나하는 자괴감 때문에, 그리고 따뜻한 사람 손이 간 음식들 앞에서 생각하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비탄스럽고 기막혀서였다.
또한 정옥은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웠다.
잭의 커다란 성기를 넣고 핥고 빨았었던 입에 다시 음식이 들어간다는 자체가 끔찍하고 싫었다. 그렇지만 어쩌랴. 일단은 살아야 하는 것을.
잭의 어머니는 조용하고 말이 없는 여자였다. 정옥이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정옥에게 거의 말을 시키지 않았다. 정옥에게 특별히 잘 해주지도 않았지만 정옥을 미워한다거나 적대시 하지도 않았다.
정옥이 음식을 앞에 놓고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그녀는 정옥이 눈물을 그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어쩌다가 정옥이 특정 음식을 맛있어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그 음식을 냄비채로 갖다가는 정옥의 접시에 덜어주었다. 그리고나서 정옥이 그것을 더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것이었다.
하기야 잭의 어머니도 자기 아들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하루에도 열 댓번씩 그 짓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변태적 행위야 모른다치더라도 잭의 거칠고 포악한 성격은 어머니로서 알고 있을 터였다. 아니, 정옥의 얼굴과 몸에 난 상처로도 충분히 깨닫고도 남을 것이었다.
그러나 잭의 어머니도 잭의 성질을 어떻게 말릴 수도 없는 터, 그녀는 그저 측은한 눈길로 정옥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 작고 연약한 여자야. 어쩌다가 저런 개망나니같은 놈한테 잘못 걸려들었니, 하는 안타까운 심경이 담긴 그런 눈빛이었다.
잭의 누나도 그랬다. 그녀는 정옥에게 캐티라고 자기 이름을 부르게 했다.
그녀는 누나면서도 잭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여자로서 정옥이 너무 불쌍하고 안되었는지 잭이 거실에서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 있거나 술을 사러 나가고 없을 때면 몰래 정옥의 방을 찾아와 어깨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어느날이었다.
잭은 정옥에게 자신의 성기를 또 빨아 줄 것을 요구했다.
아침부터 죽을 듯이 고개를 흔들어가며 벌써 세 번이나 사정을 시켜 놓은 후였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할 것을 요구하는데는 정옥도 화가 났다.
정옥은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나 날라온 것은 욕설과 함께 날라온 잭의 주먹이었다.
"야, 이 씨팔년아. 하라면 할 것이지 이게 어디서 거부를 해, 거불 하길?"
잭의 주먹은 정옥의 왼쪽 눈두덩이에 정통으로 날아 가 박혔다. 눈알이 빠져 나올 듯 한 아픔을 느끼며 정옥은 그대로 얼굴을 감싸쥐고 주저 앉았다.
그러나 잭은 분이 덜 풀린 듯했다. 정옥의 머리채를 감아다가 벽에 쿵쿵 소리가 나게 박아대기 시작했다. 정옥의 머리통이 마치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며 벽에 찧어졌다.
어머니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던 캐티가 벽 울리는 소리에 쫒아왔다.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에 기가 질리는 듯했다. 그냥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캐티가 정신을 차린 듯 어쩔 줄 몰라하며 고함을 질렀다.
"지금 그게 무슨 짓이니? 당장 정옥의 머리채에서 손 놓지 못해?"
그러나 누나의 고함 한 마디로 매질을 멈출 잭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쫒아오고 캐티가 잭과 같이 몸싸움을 하는 난리가 나고서야 잭은 정옥의 머리채에서 손을 놓았다.
정옥은 왼쪽 눈과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며 젖은 걸레같이 바닥에 그대로 널부러졌다.
"아으으으....."
짐승의 울음소리가 저럴까. 정옥의 가슴 밑바닥에서 처절한 통곡이 쏟아져 나왔다.
"씨팔년이 아침부터 성질을 건드려, 건들길....코리안 암캐 같은 년이...."
잭은 쓰러져 울고 있는 정옥을 쓱 한번 쳐다보고는 방을 나가버렸다.
정옥은 울고 또 울었다.
눈과 머리에 난 상처의 아픔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암울한 팔자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캐티는 정옥이 울게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한참 후 제풀에 울음을 그친 정옥을 캐티가 일으켜 앉혔다.
캐티는 정옥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
그녀의 눈에 정옥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 그리고 자기 동생이지만 자기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데 대한 분노가 나타나 있었다.
"정옥"
캐티의 두 손이 성한데 없이 찢어지고 깨진 정옥의 얼굴을 보듬어 쥐었다.
"잭은 섹스 중독자야. 걔는 하루에 스무 번, 서른 번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놈이야. 한 대라도 덜 맞으려면 그냥 순순히 요구를 들어 주어라. 네가 거부한다고 해서 안할 놈이 아니라는 건 네가 잘 알고 있지 않니. 네 상처투성이의 몸 정말 어쩌면 좋니? 진짜 딱해서 볼수가 없구나"
"........."
"너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니?"
".........."
정옥이 자기의 말을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캐티는 정옥의 몸에 약을 발라주며 계속 주저리주저리 지껄였다. 그렇게라도 해서라도 자기 동생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작태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려는 것 같이.
"처음부터 모르진 않았겠지? 하긴 그 사실을 감쪽같이 숨기고 감언이설로 꼬셔대는데 안넘어갈 여자가 없겠지. 그 사실을 알고도 붙어 있을 여자가 없을테니까 철저히 숨겼겠지......"
결혼 후 몇 번 가졌던 잭과의 섹스.
미국대사관에서 돌아온 다음날 호텔에서 가졌던 섹스가 첫 번째였다 .
그때 정옥은 잭이 서둘러 끝낸 것 같은 느낌과 자신이 원하는 그 무언가의 행위를 일부러 억제하고 하지 않는 것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무언가를 감추는 것 같았던 석연찮았던 몸짓....
그 다음 셋방으로 짐을 옮긴 후 있었던 오럴 섹스. 거의 10분이나 해주었는데도 뭔가 아쉬워하고 부족해 하는 듯한.
그 며칠 후 정옥은 잭에게 가슴을 물어 뜯겼었다.
그때 정옥이 알아차렸어야 했다. 잭이 보통사람과 틀리다는 것을. 그에게 내포된 그 광폭성을.
그러나 바보스럽게 착하기만 한 정옥은 전혀 낌새조차 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게 미국엔 왜 따라 들어왔어,그래. 이런 험한 꼴 매일 당하려고 들어왔니? 저런 개만도 못한 놈을 뭐가 좋다고......"
정옥의 나이 스물 아홉 살.
어릴 때부터 눈치밥을 먹으며 서럽게 서럽게 살아온 삶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정옥에게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착하고 참한 신랑만나 아들 딸 낳고 잘 살아야지,하는 희망이었다.
신랑 공경하고 존경하며 오손도손 살겠다는 희망, 자식한테만은 자기가 겪은 고생을 물려주지 않고 번듯하게 잘 키워보겠다는 희망, 그런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살았었다. 어쩌면 전혀 실현 가능성이 전무한 희망일지라도 그런 희망이 있다는 게 정옥에겐 희망이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제 정옥에게 남은 희망은 없었다. 앞날에 걸어 볼 희망이라곤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까지로 봐서 정옥의 일생은 잭의 배설물을 분출시키기 위한 도구 역할만 하다 끝날 판이었다.
끔찍하고 지긋지긋한 섹스 행위를 한 번이라도 덜 당하는 게 유일한 희망이라면 희망일까.
그것은 너무도 슬프고 비참한 희망이었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