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친 남자 잭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잭이라 했다.

포악하고 잔인하며 알코올, 섹스 중독자인 잭.

정옥을 위해서도, 주위 사람을 위해서도 이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을 인간, 잭.

정말이지 정옥은 그 남자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의 형제로는 세 누나가 있었고 잭이 유일한 아들이자 막내였다.

잭의 아버지 역시 알코올 중독자에 노름 중독자로서 성격이 난폭한 사람이었다. 잭의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매일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늘 집중적으로 폭력을 휘둘렀기 때문에 그녀의 몸은 지금 정옥이 그런 것처럼 늘 만신창이였다.

그는 자신이 술 사마시고 노름하는데 돈을 탕진하는 것은 개의치 않으면서 가족들에게는 지독히 인색한 남자였다. 1리터짜리 우유를 사면 다시 1리터 정도의 물을 섞어 양을 늘린 다음 가족들에게 마시게 했다.

잭의 가족은 잭이 열 세 살이 될 무렵 오클라호마주에서 캘리포니아주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핑게로 학교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잭은 중학교를 채 졸업하지 못했다.

잭의 학력은 중학교 중퇴가 전부이다.

학교를 가지 않는 대신 잭은 길거리의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강도와 강간등 갖가지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미성년자였던지라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열 네 살 때는 큰 패싸움의 주동자가 되었다. 그 패싸움에서 잭은 상대 우두머리의 옆구리에 칼을 깊숙히 꽂았다. 상대는 불구가 되었고 이 일로 경찰에 잡혀간 잭은 1년 형을 선고받고 소년원에 수감되었다.

이 때부터 잭은 거의 일평생을 폭력과 범죄에 물들어 살며 감옥을 제 집처럼 드나들게 되었다.

잭의 범죄행위는 어느 한 지역에만 국한되어 저질러지는 게 아닌 전 미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 일곱 주의 감옥에서 수감된 전력이 있다.

잭의 나이 스물 때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이혼을 감행했다.

잭의 아버지는 기다렸는다는 듯 이혼 한 달만에 다른 여자와 재혼을 했고 여기에 앙심을 품은 잭은 매일이다시피 그들을 찾아가 폭언과 폭력을 퍼부었다. 참다못한 아버지의 신고로 경찰에 잡혀 간 잭은 2년 형을 살았다.

그러다가 잭의 나이 스물 세 살때.

시비 끝에 친구를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 죄의 댓가로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감옥에서 또 6년을 살았다.

잭은 나이 서른을 막 넘을 무렵 그는 미국 전역에 지점망을 갖고 있는 A은행의 한 직원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온갖 감언이설과 갖가지 기교의 섹스로 여자를 흠뻑 빠지게 만드는 기술이 있었다. 그녀 역시 예외 일수 없었다.

여자가 자신에게 깊숙히 빠진 것을 안 잭은 엄청난 액수의 은행 돈을 빼내 오게끔 조종했다. 물론 여자는 잭의 말대로 행동했다.

둘은 빼낸 돈을 가지고 멕시코로 도망치기로 했다.거기서 꿈같은 새 생활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안고서. 그러나 둘은 멕시코 국경을 넘기도 전에 뒤쫒아 온 경찰에 잡히고 말았다.

7년 형을 언도받은 잭은 악명높은 중범죄자들만 수용하는 샌프란시스코 알카츄레스 감옥에 다시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여자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은행여자는 마침 잭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녀는 몇 달후 아이를 출산하므로서 풀려 나오게 되었다.

팔팔한 나이에 다시 감옥에 갇히게 된 잭은 그의 포악한 성격을 다스리지 못해 감옥안에서도 싸움을 일삼았다. 자연히 그는 교도원들의 눈밖에 날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잭은 자신을 조롱하는 한 교도원의 복부를 걷어차 중상을 입혔다. 이 사건으로 잭은 6개월동안 불도 없는 독방에 갇히는 벌을 받아야 했다.

거기서 잭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자꾸 문제거리를 만들어봤자 감옥생활하는데 힘만 드니까 앞으로는 규칙을 따르고 교도원들의 지시에 순종하기로 마음을 다스린 것이었다.

그 후로 몇년동안 잭은 주위가 놀랄 정도로 철저하게 모범수로 변신했다.

이러한 잭의 변화는 곧 상부에 보고 되었다. 그래서 7년 만기를 2년 앞두고 보호감찰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보호감찰 대상이란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사람, 앞으로는 다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거의 없는 모범수에 한해 일정동안 교도소내에서 자유를 허용하는 제도을 말한다.

보호감찰대상자들은 어느 정도 허락된 기간 안에서 바깥으로 외출 혜택도 받았다.

정해진 지역, 정해진 시간 안에서만 외출을 허용 되었지만 대신 행적지를 상세하게 밝혀야 했다.

바깥 출입을 할 수 있게 된 잭은 첫 몇 달간은 단 1분의 시간도 어기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행동했다. 그리하여 자신에 대한 감시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외출을 허락받은 잭은 두번 다시 그 감옥으로 돌아 가지 않았다.

감옥을 도망쳐 나온 잭은 각 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외항선원으로 취직했다. 외항선원들이 일하는 주요 무대는 바다 한 가운데 아니면 남의 나라이다. 그래서 경찰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잭은 운전면허증이나 소셜시큐리증 등 자신을 나타 낼만한 신분증도 없이 살았기 때문에 바다와 남의 나라가 주무대인 외항선원 자리는 특히 잭 같은 사람에게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경찰의 눈을 피해 몇 년을 바다로만 떠돌아 다니던 잭은 경찰의 수사망이 느슨해진다 싶자 다시 육지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다.

그는 육지에 살기 위해서 여자 하나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잭에게는 자신의 곁에 오래 머물러 주며 자신의 욕구를 다 받아내 줄 여자가 필요했다. 평생을 개,돼지처럼 사육해도 반항 한번 안하고 그대로 고스란히 당할 것 같은 여자. 그런 여자를 찾아야 했다.

잭은 외항선원으로 일하면서 각나라 수십명의 여자와 관계를 했었다. 그러나 잘 생긴 잭의 외모만 보고 혹했던 여자들도 단 몇 달을 견디지 못하고 다 떠나 가 버렸던 것이다.

중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남자였지만 그는 머리가 매우 좋은 남자였다.

갖가지 전기, 전자 제품은 물론 자동차까지도 한 번만 척 보면 어디가 고장인지 어떤 부속이 필요한지 단번에 알아내는 재능이 있었다.

정옥을 처음 봤을 때도 잭은 그런 느낌을 단번에 가졌다.

저렇게 바보같고 쑥맥같은 여자라면 평생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그 여자가 바로 정옥이었다.

그런 무섭고 음흉한 계획을 미소 뒤로 감춘 채 다가간 잭에게 우리의 불쌍한 정옥이 걸려들고 만 것이었다.

동양여자와의 결혼은 정옥이 처음이었다.

정옥은 잭의 다섯 번째 아내였고 네 번의 결혼에서 아이 아홉을 두고 있었다.

 

 

"야 이 계집년아. 엇다대고 노우야,노우가? 그렇게 맞고도 정신을 못차렸냐? 너 오늘 내손에 죽어 볼래?"

잭은 마시던 술병을 그대로 부엌바닥에 패대기를 쳐서 박살을 낸 후 정옥에게 달려들었다.

또 시작이구나!

이 천벌을 받을 인간아.차라리 날 죽여라 죽여! 차라리 네 놈 손에 죽어 버리는 게 낫겠다.어떻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람을 패냐?나도 이제 지긋지긋하다.나도 사람인데...정말이지, 나도 사람인데.....

그는 정옥의 머리채를 칭칭 손에 감아 쥐고 온 집안을 질질 끌고 다녔다. 거친 카펫에 쓸린 정옥의 두 무릎팍의 살이 헤어져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죽은 짐승 끌듯이 정옥을 끌고 온 집안을 돌아 다니던 잭은 침대에다 정옥을 패대기쳤다. 머리 가죽이 홀라당 벗겨지는 고통에 정옥은 있는대로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졌다.그 와중에 정옥의 머리통이 나무로 된 단단한 침대헤드에 쾅,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헐고 짓물러서 걸음도 제대로 걸을수 없는 정옥의 아랫도리를 헤치고 잭의 성기가 들어갔다.

정옥은 다시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저 인간을 즐겁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능한 비명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짓물러 터진 아래에 잭의 빳빳한 성기가 거칠게 들어와 박히는데는 아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비명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매일 이런식이었다.

그의 요구에 불응하다가 얻어터지고 맞는, 그런후 강제로 당하거나 해주어야 하는.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잭의 섹스에 대한 욕구는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단 하루도 아니,단 몇 시간을 건너 뛰는 법이 없었다.

떠돌아 다니면서도 일을 나갈 때는 좀 덜했지만 같이 여관에 있을 때는 하루종일 술을 퍼마시며 그 짓만 했다. 하루에도 열 번 이상 씩.

잭은 집안에 있을 때는 거의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벌거 벗은 채 술을 마시고 테레비젼을 봤다. 그러다 섹스 생각이 나면 바로 정옥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불끈 일어난 성기를 앞세우고.

기둥같이 튼튼하고 강한 두 다리 사이에 매달려 하늘로 뻗쳐 있는 잭의 성기를 볼 때마다 정옥은 그것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

저것을, 저 끔찍한 것을 잘라 버릴 수만 있다면! 그래서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각이었을 뿐이었다.정옥은 그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차라리 생각대로 해버렸으면 더 이상 비참하고 고통스런 삶은 없었을 걸.

누구를 해친다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정옥이었다. 비록 잭이 자신을 개, 돼지취급하며 온갖 학대를 했어도.

그는 정옥을 데리고 여기서 일주일, 저기서 한 달 머무는 식으로 살았다.

지붕고치는 기술자인 잭은 어딜 가도 금방 취직이 잘 되었다.

그러나 취직이 되긴 했어도 늘 일을 빼먹었고 그나마 몇 푼 받는 임금은 자기 술값 대기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니 아파트를 얻는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고 머무는 것은 언제나 싸구려 여관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관비가 밀리기 일쑤였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한 달 이상 머무르지 못했다.

낡아서 시동도 제대로 걸리지 않는 차에 옷가지와 살림도구를 싣고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는 생활을 하면서 잭이 저질렀던 행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그 중 한가지는 여관을 떠날 때는 반드시 방에 있는 텔레비젼에 물을 잔뜩 부어버리는 것이었다. 물을 잔뜩 먹은 텔레비젼은 곧 펑,소리를 내며 터지고 만다.

여관 주인이 텔레비젼 터지는 소리를 듣고 달려 갔을 때는 벌써 잭의 차는 떠난 후였다.

몇년동안 잭이 못쓰게 만들었던 여관의 텔레비젼만 수십대.

그러나 그는 잡히지 않았다. 숙박부에 기재한 주소가 모두 다 엉터리였으니 잡히지 않는 건 당연했다.

잭의 차에 달고다니는 번호판 역시 가짜였다. 그는 가짜 번호판을 여러개 차 안에 숨겨두고 필요에 따라서 바꿔 달았다.

텔레비젼 뿐인가.

여관 침대에 똥오줌을 싸갈겨 놓거나 타올을 변기에 쑤셔 넣어 변기가 막히게 하는 짓도 예사였다. 끝이 날카로운 칼을 품에 넣고 다니는 잭은 그 칼로 벽을 찍찍 그어 놓거나 이불을 갈갈이 찢어 놓기도 했다.

그가 그런 짓을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냐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잔인하고 비열한 성격의 잭은 남이 고통받고 화내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죽도록 정옥을 때려놓고 정옥이 아파서 울며 고통스러워하면 그는 혼자 히죽히죽 웃으며 즐거워했다.

잭은 담배 골초였다. 그러나 담배불을 끌 때는 반드시 정옥의 몸에다 눌러 껐다.

담배 불씨가 그대로 남은 꽁초가 생살에 비벼질 때의 그 고통과 아픔!

정옥이 죽을 듯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대면 잭의 눈에서는 야릇한 광채가 나곤 했다.

정옥의 비명 소리를 듣고 이웃에서 부른 경찰이 여관방의 문을 두드리는 때가 가끔 있었다.

잭은 문을 열기 전에 정옥의 숨통을 조이며 울음을 그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문을 열었다. 만면에 가득 웃음을 담고서.

경찰은 우선 정옥에게 이것 저것을 묻다가 정옥이 영어를 못하는 걸 인지하면 몸을 돌려 잭에게 말을 시켰다. 그러면 잭은 천연스레 말하는 것이었다.

"저 계집년이 제 마누라인데 말입쇼. 아, 다른 놈이랑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오늘 잡았지 뭡니까요? 그래서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혼을 내는 중인데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지년이 소리를 지르고 대듭니다. 누가 저 년 소리 지르는 걸 듣고 나으리들을 불렀나본데 보시다시피 아무 일 없습니다. 염려말고 돌아가십쇼."

그때 정옥이 조금만 똑똑한 여자였더라면 찾아온 경찰들에게 구조를 요청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이미 정상이 아닌 정옥이었다. 몇 년동안 잭에게 학대당하고 유린당한 정옥의 정신과 몸은 철저히 파괴되고 망가지면서 어느덧 무기력한 바보가 되고 만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몰랐다.

코 앞에서 잭이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도 정옥은 단 한 마디 항변도 못하고 멀거니 보고만 있었다. 단 한 마디만 하면, 말을 못하면 몸짓으로라도 구조요청을 했으면 도움을 받았을지도 모르는데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정옥은 그 일을 못하는 것이었다.

경찰을 바로 눈앞에 두고서도.

사실 정옥이 경찰 앞에서 단 한 마디 말을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잭이 걸핏하면 품에서 꺼내 보이는 날카로운 칼이었다.

"알겠지? 경찰이 찾아와도 넌 찍 소리 않고 가만 있는 거야? 한 마디라도 했다간 넌 그 자리서 죽을 줄 알아!"

매일 강압적인 폭력과 섹스에 시달리는 생활, 차라리 죽는게 나았을 생활이지만 죽이겠다는 잭의 위협은 섬찟했고 두려웠다.

그래서 경찰이 찾아와서 정옥에게 괜찮냐고 물어도 정옥은 고개만 끄덕끄덕할 뿐 아무대답을 못하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이야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을 일체 용납하지 않는 세상이니 잭이나 정옥이 아무 일이 없다고 진술해도 경찰은 그냥 돌아가지 않을 지도 모른다. 방을 수색해 폭력의 흔적을 찾아보거나 정옥의 몸에 난 상처만 가지고도 어떤 조취를 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30여 년전 당시 미국사회에서 여자들의 권리와 대우는 매우 열악했다. 1백년전의 한국 여성의 위치가 아주 밑바닥이었듯이 30여년 전 미국에서의 여성의 위치 역시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잭의 어머니와 누나도 정옥에 가해지는 잭의 무시무시한 폭력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해주지 않은 것이었다. 그녀들 역시 남편으로부터 많은 매를 맞고 살았으니까.

 

그 와중에도 임신이 되었다.

정옥은 몇 달간 생리가 끊겼어도 임신이라고는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워낙 몸이 약해 생리가 불규칙한데다 당시 정옥의 생활이 생리 날짜를 짚어가며 기억하고 말 경황이 아니었다.

그날도 정옥은 잭의 완력에 의해 섹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랫배와 허리가 계속 끊어질 듯 아파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래에서 뭔가가 뭉클뭉클 잔뜩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정옥은 자신의 몸위에서 헐떡거리고 있는 잭을 있는 힘을 다해 밀쳐 냈다.

몸을 굽혀 아랫도리를 보던 정옥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것은 핏덩이였다.

시뻘겋고 거무죽죽한 핏덩이가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와 침대시트를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피가 질금질금 나옴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섹스를 해야 하는 잭 때문에 생리때도 관계를 수십번 했었지만 이번만은 뭔가 다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랫배와 허리가 아픈 게 심상치 않았다.

임신?

정옥의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정옥의 손에 의해 밀쳐진 잭은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다시 정옥의 몸으로 올라 오려고 했다.

정옥은 소리 쳤다.

"그만 해요! 피가, 피가 나와요!"

그러나 피가 나온다는 말 따위로 자신의 행위를 그만 둘 잭이 아니었다. 정옥의 다급한 비명에도 아랑곳없이 잭은 정옥의 몸 위로 다시 올라 갔다. 그리고 피범벅인 정옥의 아랫도리에 자신의 성기를 박아 넣었다.

입술을 깨물며 잭의 흔들리는 몸밑에 깔려 있는 정옥.

몇분이 지났을까.

잭이 끙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갔다.

정옥은 벌떡 일어나 알몸을 가릴 생각도 못한채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변기를 타고 앉았다.

아랫도리에서 피는 계속 줄줄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피 흐르는 소리가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같았다.

앉은 두 다리 사이로 변기안을 들여다 보던 정옥은 엉거주춤 일어나고야 말았다. 검붉은 피가 변기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잭, 재액!"

정신없이 잭을 부르는 것과 동시에 정옥은 목욕탕 바닥에 그냥 주저 앉았다. 정옥의 정신이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재애액~"

정옥은 안간힘을 다해 다시 한번 잭을 불렀다.

정옥이 몇번이고 다급히 부르는 소리에도 대꾸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만 있던 잭. 그는 갑자기 목욕탕안이 조용해지자 그제서야 투덜거리며 일어나 목욕탕 문을 열었다.

" ! "

잭의 눈에 먼저 보인 건 피로 흥건히 물든 목욕탕 바닥과 역시 피로 가득찬 변기안이었다.

그때서야 잭도 뭔가 큰 일이 일어난 걸 알았다. 그는 급히 옷을 꿰어 입고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정옥을 들쳐 업었다.

"유산입니다. 4개월째였어요"

젊은 백인 여자의사는 차가운 어투로 잭에게 말했다.

임신한 몸에다 밤낮없이 섹스를 해대니 태아가 견디지 못하고 사산이 되고 만 것이다.

"임신중에는 섹스를 삼가야 합니다. 특히 임신초기에는. 그건 기본상식 아닌가요? 아이가 사산된 것은 순전히 당신 책임이예요!"

의사의 눈은 잭을 힐난하고 있었다.

잭은 히죽히죽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그나저나 이런 몸으로 어떻게 아이를 가졌는지 기적이군요"

정옥은 침대에 누운채 의사와 잭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베개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아가야, 내 아가야......

정옥의 나이 서른 두 살에 가졌던 아기, 잭의 지칠줄 모른 성행위로 인해 빛도 못보고 죽어간 것이었다.

정옥이 병원에서 퇴원한 며칠 후.

잭은 정옥을 슈퍼마켓에 데리고 갔다.

이대로 두면 영양실조로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겁이 난 잭이었다. 앞으로 몇 년이고 데리고 살면서 학대를 하려면 영양실조로 죽여서는 안되겠기에.

슈퍼마켓에 가서도 정옥은 절대 한눈을 팔아서는 안되었다. 혹시라도 누군가와 하이,라도 했다간 그날은 초죽음이 되도록 맞는 날이었다. 다른 사람하고는 하이,는 커녕 눈도 마주치지 말라는 게 잭의 명령이었다.

그런데 그날 정옥은 엄마를 따라 온 서너살 쯤 되는 소년을 보게 되었다. 눈 같이 흰 피부에 바다같이 파란 눈을 가진 인형같은 소년이었다.

뱃속의 아이를 잃고 난 엄마이서일까. 정옥의 눈이 자꾸 그 소년에게로 갔다.

공교롭게도 소년과 정옥은 주차장에서 또 마주치게 되었다.

소년이 정옥을 보자 밝게 웃었다.

정옥도 그 소년에게 오른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그런데 그 모습을 옆에 있던 잭이 보고 말았다.

잭의 날카로운 주먹이 다짜고짜 정옥의 얼굴을 내리쳤다. 정옥은 주차장의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 이 쌍년아! 죽어라, 죽어!......"

쓰러진 정옥에게 잭의 주먹질과 발길질이 계속 퍼부어지자 사람들이 몰려 들었고 곧 몇몇 사람의 제지로 인해 잭의 폭력이 중단되었다.

"이 개같은 년이....."

잭은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씨근덕거리며 자신과 정옥을 에워싼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글쎄, 이 개같은 년이 오늘 또 다른 놈하고 눈을 맞추지 않겠습니까? 평소에도 이 년은 바람기가 많아 내가 늘 속을 끊였는데 오늘 여기까지 와서 바람기를 또 흘리길래 혼을 좀 냈습니다"

잭의 말에 모였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대수롭지 않은 광경을 본 듯 모두 흩어져 갔다.

소년과 소년의 엄마만이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쓰러진 정옥을 내려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핏물이 흘러드는 눈으로 그 둘의 모습을 보면서 정옥은 애써 웃어 보이려고 노력했다. 놀란 그들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정옥은 생각했다.

괜찮아요. 늘 당하는 일인데요 뭐. 걱정말고 가 보세요....

그러나 정옥은 웃을 수가 없었다. 맞은 상처가 아파서도, 흘러드는 핏물에 눈이 따가와서도 아니었다.

천사같은 아이 앞에서 짐승처럼 얻어 맞고 널부러져 있는 자신에 대한 모멸감과 굴욕감,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는 정옥의 얼굴에 가래침을 돋우어 뱉기도 했다. 그리고 정옥이 먹고 있는 밥그릇에 침을 뱉는 짓도 예사로 했다.

왼쪽 볼을 주먹으로 쳐서 턱이 돌아가면 다시 오른쪽 볼을 쳐 턱이 바로 돌아오게 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이가 네 개나 부러졌다.

힘 좋고 덩치좋은 잭은 주먹과 발로 때리다가도 분이 안풀리면 정옥을 번쩍 들어 가차없이 벽이나 방바닥에 던졌다. 40킬로도 채 되지 않는 정옥의 몸이 가랑잎처럼 공중에 떴다가 바닥으로, 벽으로 텅! 소리를 내며 세차게 부딪치며 나가 떨어진다. 그러면 정옥은 한동안 정신을 놓고 일어나지 못했다.

매에 못이겨 까무라친 것만도 수십차례였다.

매를 맞다가 깜박 정신을 놓는다 싶으면 정옥이 언제나 깨어 나는 곳은 병원이었다.

그렇게 때리면서도 정옥이 죽는 것은 싫었는지, 아니면 살인자가 되는 게 싫었는지 정옥이 정신을 잃으면 일단 병원부터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그래놓고 퇴원하는 길로 또 때리기 시작했다.

죽는 게 무섭고 두렵다가도 어떤 때 진짜 어떤때 너무 악에 받치면 정옥은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천한 목숨이 질기도 하다던가, 정옥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번번이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 잭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산 속 오두막 집에서 정옥이 쥐약을 마신 이후로 잭은 먹으면 죽을만한 극약 종류는 일체 집안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잭은 세탁할 때 쓰는 표백제까지는 치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매우 심한 매를 맞은 어느 날.

정옥은 표백제를 병째로 들이켰다. 그리고 정옥은 표백제 병에 입을 떼기도 전에 쓰러졌다.

깨어나니 병원.

그 후로 잭은 표백제까지 집안에서 치워버렸다.

어느날이었다.

그 날도 무슨 이유에선지 잭은 아침부터 정옥을 개 패듯이 패고 있었다. 정옥의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었다.

잭은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칼이 걸기적거렸는지 잠시 꺼내서는 탁자 위에 놓고 피투성이인 정옥을 뒤로하고 술을 가지러 나갔다.

쓰러져 있던 정옥의 눈에 그 칼이 들어 왔다. 정옥은 엉금엉금 기어 가 그 칼을 집어 들었다. 끝이 뾰족하고 양쪽 칼날이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이었다.

정옥은 그 칼로 자신의 가슴을 겨냥했다. 그러나 칼이 가슴에 닫기도 전에 잭의 눈에 뜨이고 말았다.

"칼을 이리 줘"

잭은 정옥에게 천천히 다가오며 나지막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가 오지 말아요! 나,나는 오늘 죽,죽을 거예요! "

정옥은 칼을 움켜 쥐고 반항했다.

그러나 정옥의 반항은 역부족이었다. 잭이 강제로 정옥의 손에서 칼을 뽑아 갔기 때문이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스치고 나간 손바닥에 쩌억, 상처가 입을 벌렸다.

얼마나 깊게 베었는지 벌려진 상처로 허연 비계가 내다 보였다. 허연 비계 사이로 피는 사정없이 흘러나와서 정옥의 온몸을 적시고 바닥을 적셨다.

잭이 몸부림치는 정옥을 이끌었다.

"이 미친년이 이제는 안하던 짓까지 하는군! 어서 가, 이년아! 어서 병원에 가자구!"

"날 내려 둬! 날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란 말이야!"

정옥은 악에 받힌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까무라쳤다.

병원으로 옮겨진 정옥은 심한 출혈때문에 네 병의 피를 수혈받아야 했고 손바닥은 열 여덟바늘이나 꽤매야 했다.

병원에 누워 있는 정옥에게 두 명의 경찰관이 들이 닥쳤다.

손바닥 상처가 이상했던지 병원에서 경찰을 불렀던 것이다.

"그 손바닥 상처는 어떻게 해서 생긴 거요?"

".........."

마침 병실로 들어오던 잭이 경찰의 물음에 냉큼 대답했다.

"저 여자가 왼손잡이거든요.왼손으로 생선을 썰다가 그만 저렇게 되었지 뭡니까? 병신같은 게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일렀건만...."

상처는 오른손이었다.

잭의 술수 높은 거짓말에 경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그 경찰들이 조금만 센스가 있었다면 진짜로 잭의 말대로 정옥이 왼손잡이인가를 시험해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영어 못하고 초라한 동양여자의 손에 난 상처에까지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나 보았다.

그들은 잭의 말에 공감하며 두 말도 않고 돌아 갔다.

경찰이 돌아가자 잭은 어깨를 으쓱하며 씨익 웃었다. 봤지?하는 득의만면한 웃음이었다.

네 년이 아무리 까불어 봤자 나는 당하지 못할 걸? 그러니 넌 앞으로도 꼼짝 없이 내 섹스 도구,폭력 도구가 되어야 한다구. 알았어?

잭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몇 년의 세월이 다시 갔고 고목에도 꽃이 피듯이 상처투성이인 정옥의 몸에서 다시 새 생명이 잉태되었다.

나중에 정옥에게 또 다른 큰 상처를 준 딸, 영이였다.-계속-

- 이계숙의 더 많은 작품은 http://kyesook.com 로 오셔서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