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머리도 띵하고 콧물도 나는 게 아무래도 몸살감기가 걸린 것 같다.

뜨거운 것을 마시면 좀 괜찮을 것 같아 커피를 내리는데 목구멍이 간질간질 하더니 기침이 연달아 터져 나온다.

신문을 보고 있던 남편이 아무래도 감기가 걸린 것 같으니 오늘은 일을 가지 않는 게 어떻겠냐고 걱정스런 눈길로 묻는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이깟 일로 직장을 쉬기엔 마음이 편치 않아 다시 일어났다.

주섬주섬 출근준비를 하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화들짝 놀란다.

"설마 일 가려고 준비하는 건 아니겠지? 감기가 다른 사람한테 금방 전염되는 것 알지? 혼자나 걸리고 말지 누구한테 옮기려고 지금 일을 간다는 거야?"

너무 놀라서 나는 들고 있던 빗을 떨어트릴 뻔 했다.

그럼 나한테 집에서 쉬라고 한 건 다른 사람한테 감기 옮길까봐였었어? 나를 걱정해서가 아니고?

괘씸하고 서운했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생각한 바를 곧이곧대로 말하는 성격을 잘 아는 때문이다.

사람이 너무 솔직하고 꾸며서 말할 줄 모르는 것도 문제이다. 가끔은 상대방의 비위도 맞춰주고 거짓말도 해야 부부관계, 나아가서는 인간간계가 윤택해지련만 그는 그걸 절대 할 줄 모른다.

얼마전 미국잡지에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남편이 부인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을 몇가지 순위에 매겨놓은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첫 번째가 아내가 자신의 옷차림에 대한 의견을 물어 오더라도 절대 느낀 바를 그대로 말하지 말 것(이를테면 아내가 이 치마를 입으니 배가 나온 것 같아 보이냐고 물을 때 설사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곧이 곧대로 대답하지 말 것등이다)

둘째가 아내의 식구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 말 것인데 설령 아내가 자기 친정식구에 대해 불평과 불만을 털어 놓더라도 그냥 듣고만 있지 절대 맞장구를 치지 말 것.

세 번째가 행여라도 아내에게 직접 돈 벌어 오라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이 먼저 가계에 도움이 되겠다며 직장생활을 하겠다 하더라도 절대 기쁜 내색을 보이지 말고 일단은 말리는 척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여성은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지금도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다고 한다.

20여년 전 한국에 있을 때 이야긴데 당시 그녀는 두 아이를 키우며 미장원을 운영하고 있었단다. 나이 어린 두 아이를 돌보며 종업원도 없이 직접 미장원을 꾸려나가는 게 늘 힘에 부치던 차에 하루는 지나가는 말로 남편에게 슬쩍 물었다.

두 가지를 병행 하다보니 어느 한가지에도 최선을 다 할 수 없으니까 우선 아이들 키울 동안만이라도 미장원을 쉬었다가 나중에 다시 열면 안되겠냐고.

그랬더니 미장원을 문 닫으면 지금 들어가는 은행 적금은 어떡하냐며 남편이 펄쩍 뛰더란다.

"적금 들어가는 것 누가 모르고 그런 말 했겠어? 그만 두라고 한다고 그만 둘 나도 아니면서 하도 힘드니까 그냥 위로라도 받으려고 한 마디 해 본 건데 진짜 속 보이더군."

빈말이라도 '그래, 그렇게 힘들면 당장 그만 둬. 미장원 문 닫는다고 금방 굶어 죽기나 하겠어?' 라고 말 해주었다면 그래도 이 남자가 나를 끔찍하게 생각은 하는구나 싶어서 더욱 열심히 일했을 거라는 그녀는 남편에게 만정이 떨어지더라고 했다.

가끔 나도 남편에게 직장을 그만 둘까보다고 슬쩍 떠 볼 때가 있다.

진짜 그만 두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사람이 마누라가 벌어 오는 돈에 얼마나 연연하는지 알고 싶은 생각에.

"알아서 하셔. 그 쇠고집에 내가 그만 두란다고 그만 둘 것도 아니고 그만 두지 말란다고 들을 것도 아니면서 묻기는 왜 물어?"

이왕이면 듣기좋게 그동안 직장다니고 살림한다고 힘들었으니 이쯤에서 그만두고 좀 쉬는 것도 좋지, 하고 말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 보면 남자들이 참 지혜롭지 못한 것 같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 말 로서라도 조금만 아내의 비위를 맞춰 주고 기쁘게 해주면 본인의 신상이 편할 텐데 말이다.

또 한 여성은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남편을 꼼짝 못하게 들이대는 단골 레퍼토리가 있다고 했다.

새 차를 산 후 이틀만에 사고가 났는데 남편이 자신이 다쳤는지의 여부보다 차의 상태를 먼저 물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란다.

그런데 막상막하인 것이 자기 죽으면 재혼 할거냐는 남편의 말에 ' 죽어 봐야 알지, 지금 어떻게 아냐 ' 고 대답한 것을 가지고 남편은 또 그녀를 공격한단다.

' 내가 죽고나면 당신이 재혼을 하던 말던 알게 뭐냐. 그냥 듣게 좋게 당신 생각만 하고 살지, 재혼은 왜 하냐고 대답했으면 좋았을 걸 ' 이라는 게 그녀 남편이 섭섭한 이유라고 했다.

내 남편에게도 똑같이 물어보았더니 이 인간 왈

"1주일만 울고나서 한국 여자 찾으러 나설란다."

아이고, 고맙기도 해라, 일 주일 씩이나 울어 주다니!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여성이라 했던가.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다치기 쉬운 것도 여성의 마음이지 싶다.

남편이 무심코 내뱉는 말 한 마디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 여성의 마음, 유리그릇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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