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받았다. 열 하루동안.
토,일요일을 끼우니 자그마치 열흘하고도 이레.
그 긴 시간을 뭐하면서 보낼 거냐고 동료들이 묻는다.
"뭐하긴. 그냥 집에 있지"
내 대답에 그들의 눈이 둥그래졌다가 하긴, 새로울 것도 없네, 하는 표정으로 바뀐다.
내가 집에 있길 좋아하는 것을 이제 그들도 아니까.
주말을 낀 공휴일을 보내고 돌아 온 동료들의 입에서 늘 나오는 첫 마디는 연휴동안 뭐했냐였었다.
내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그냥 집에 있었지"
3년을 한결같이 내 내답에 변함이 없으니까 나중엔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저희들끼리는 연휴동안 다녀온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입이 바쁘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빈말로라도 참견을 하지 않았었다. 왜냐, 별로 관심이 없으니까.
그들 눈에는 이런 내가 참 이상하게 비치는 모양이다.
이렇게 날씨 좋고 풍광 좋고 놀기 좋은 캘리포니아州에 살면서 늘 집에만 처박혀 있는다는 게.
그러나 나는 어딜 나돌아 다니는 것이 제일 싫다. 특히 나는 멀리가는 여행은 한국가는 것 빼놓고는 다 별로다.
어디를 가기 위해 계획을 짜고 짐을 싸는 일은 생각만 해도 귀찮다.
집 떠나면 고생인데 왜 여행이란 명목의 고생들을 사서 하나 싶다.
남편은 일 년에도 몇 번씩 다른 주로 출장을 간다.
매년 가을에는 디즈니 월드가 있는 플로리다주로 출장을 가는데 몇 년 전만 해도 늘 내게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묻곤 했다. 출장길에 배우자까지 동행할 수 있게 회사에서 배려를 해 준다면서.
그러나 나의 대답은 늘 '노' 였다.
이제는 그도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아예 안 따라 가려니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
집에 있는 일이다.
덕분에 내 차 마일리는 항상 낮다. 지금 타는 차는 2년 전 3월, 내 생일을 겸해 구입했는데 지금 1만 마일이 겨우 되었다.
이렇게 집에만 있는 걸 좋아하는 것은 우리 집안의 내력인 것 같다.
한국에 있는 두 동생 또한 집 밖을 나다니기 싫어하는 게 나랑 똑같단다.
동생들이 결혼한 얼마 후에 한국에 갔더니 올케들이 불평을 해댔다.
"집 귀신이예요, 집귀신. 직장 가는 일 외에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안움직여요."
집귀신이란 소리, 나도 주위로부터 많이 들었다.
집에다 엿을 부쳐 놨나, 꿀을 발라놨나, 도대체 왜 그렇게 집을 좋아 하냐고. 그놈의 집을 누가 떠메고 갈까 봐 그렇게 지키고 있냐고.
그런데 이번 휴가마저 그냥 집에서 보냈다니까 사람들이 질렸다는 표정들을 한다.
"참 별종은 별종이야. 어떻게 그 긴 세월을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에만 있누? 그럼 남편 출근하고난 빈집에서 하루종일 뭐하고 있어?"
글쎄, 그렇게 딱 집어서 말하라면 할 말이 없다.
무어라고 손꼽아서 하는 일은 없으니까. 우선 청소와 빨래등 평소때 같았으면 주말에 몰아서 한꺼번에 할 집안 일을 하고 하루에 두 번,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 그리고 인터넷도 하고 신문 보고 음악 듣고 무엇을 만들어 주섬주섬 먹기도 한다. 또한 운동도 빠지지 않고하고 가끔 낮잠도 잔다.
직장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은 우선 기분부터 널널하기 때문에 느릿느릿 움직이면서 이 모든 것을 다 한다.
누가 커피 마시자고, 밥 먹자고 불러내지 않으면 하루종일 문밖 출입을 안하는 날도 있다.
어느 때는 누가 불러내도 귀찮다. 혼자 있음의 아늑함이 깨지는 것 같아서.
그러면서도 심심하다거나 지루하다고 느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 있는 걸 못견뎌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늘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집에 사람들을 불러대는 사람들, 이것도 저것도 안되면 전화통을 붙잡고서라도 끊임없이 타인과의 교류를 해야만 자신이 살아 있음이 확인되는 사람들, 참 딱한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태어 날 때부터 혼자가 아닌가.
최근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게 된 김용옥 교수와 '칼의 노래' 의 작가 김훈 씨가 나눈 대담을 신문에서 읽었다.
그중 김훈 씨가 한 말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는 요즘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병리현상의 상당 부분이 혼자 있는 것을 즐기지 못해 일어나고 있는 거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요즈음 토굴을 지키는 스님같이 '혼자 있음'의 존엄을 즐기며 산다고 말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동병상련의 느낌이 와서 슬며시 웃었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오후, 나는 지금 혼자 집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