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미씨 유에스 에이에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필자 소개에 나간 내 사진을 본 사이트 회원들의 문의가 폭주했다.

아는 사람같다며 한국의 어느 동네에 살았느냐, 어느 학교에 다녔냐는 문의였다.

한 여성이 물었다

자기 어릴 때 친구의 친구 하나의 이름이 이계숙이었는데 독특한 이름이라 잊어버리지 않고 늘 기억하고 있었다며 혹시 그 이계숙이가 아니냐고.

이계숙이란 이름이 독특하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또 한 사람이 물었다.

"내 여고때 짝꿍이랑 똑같이 생긴 것 같은데 혹시 본명이 이진숙씨 아니었나요?"

이진숙이 이계숙이 보다는 백번 나은 이름인데 내가 진짜 이진숙이라면 왜 이름을 바꾸었을까. 정말이지 내 이름이 이진숙이 정도만 되어도 원이 없겠다.

부모한테 백프로 감사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만은 나는 진짜 우리 부모에게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특히 나는 예쁘지 않은 이름을 준 부모가 너무나 원망스럽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안든다.

계숙이가 뭐냐, 도대체 계숙이가.

계숙이보다는 차라리 영숙이나 미숙이가 훨씬 나을 것 같다.

영숙이, 미숙이.

별로 예쁘지도 않고 흔해빠진 이름이긴 하지만 여성스럽고 순박한 느낌이 나는 이름 아닌가.

그렇지만 계숙이는 여성스럽지도, 순박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괴상하고 우스꽝스런 이름이다.

아버지 말로는 우리 이씨 집안의 돌림자인 啓자를 넣어서 짓느라 그랬단다. 그럴양이면 계은이라던지 계영이라던지 계자를 넣서라도 얼마든지 고운 이름을 지을텐데 하필이면 흔하디 흔한 淑자를 넣었을까.

옛날 우리 친구 이름중에는 말순이, 딸막이, 왈자, 쌍연이도 있었다. 또 한 아이는 이름이 하자였는데 성이 함가였다. 함하자.

그들 이름에 비하면 계숙이는 좀 양호한 건가.

이름, 하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화가 하나 있다.

한 20년도 더 된 일인가 보다.

오랫만에 사촌네 집에 놀러갔는데 마침 비가 왔다. 그래서 모두 방안에서 뒹굴거릴 수 밖에 없었다. 하릴없이 전화번호부 책을 뒤적거리며 같은 이름이 몇 개나 있나 세어가던 사촌이 희한한 걸 발견했다는 듯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이것 좀 와서 봐라. '또막죽'이란 이름이 다 있네?"

설마, 하며 모두 우르르 달려가 들여다 본 전화번호부에는 진짜로 '김 또막죽' 이란 이름이 번듯이 새겨져 있었다.

실존인물의 이름일 거다, 아닐 거다를 두고 설왕설래하던 우리는 돈 내기를 하고 그 집에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세상에! 진짜 또막죽이란 사람이 있는 거였다.

사촌이 전화를 걸어 김 또막죽이란 사람을 바꾸어 달라고 하자 어떤 남자가 "우리 어머닌데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하고 점쟎은 목소리로 되물은 것이다.

기겁을 한 사촌은 황급히 전화를 끊을 수밖에.

시민권을 받을 때 이름을 바꿀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40년을 내 분신 역할을 한 이름을 마음에 안든다고 차마 갈아치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름과 사람이 어느정도 비슷하게 어울려야 하지 않겠는가. 생긴 건 이런데 이름만 근사하게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얼마전 내 웹사이트에 이태리에서 사는 한 한국여성이 글을 올렸다.

이태리의 생활상이 눈에 보일 듯 서정적이고도 아름다운 글이었다. 마치 한 편의 기행문을 보는 듯한.

그녀의 이름 또한 한국이름이 아니라 외국이름이었다. 

나는 그녀가 아주 멋있고 우아한, 이태리라는 고장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여성일 거라고 단정지었다.

며칠 후 두 번 째 글을 올렸길래 그녀가 남긴 전자우편으로 답장을 했다.

그런데 웬걸, 돌아온 답장에 선명하게 적혀져 있는 그녀의 본명은 김순자였다, 김순자.

이국적인 이름일 때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가 느껴지던 그녀는 순자라는 이름 하나로 단박에 친근하고 푸근한 이웃으로 다가왔다.

같은 경상도 출신인 우리는 요즘 우리만 알 수 있는 경상도 말을 섞어가며 거의 매일이다시피 전자우편을 주고 받는다.

최근 본국 텔레비젼 연속극 여자 주인공들의 이름이 촌스러워지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맹순이를 비롯하여 금순이, 삼순이가 활약을 하더니 그보다는 좀 못하지만 최근에는 순애가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코믹물 류의 얘기고 청순가련녀들의 이름은 여전히 '빈' 이니 '은' 이니 '하' 자가 들어간 아름답고 고운 이름이라는 것이다.

연속극뿐만 아니라 너도나도 자녀들에게 예쁜 이름만을 골라서 붙히다보니 이제는 예쁜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너무나도 흔해졌단다.

내 올케가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데 그녀에 의하면 한 반에 예슬이만 대여섯명, 아름이만 서너 명일 때도 있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자라나는 아이들의 이름에는 우리 세대같이 자, 숙, 순, 옥, 희字가 아예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내 괴상한 이름에 한이 많은 나는 내가 쓴 소설 주인공들에게만은 은지, 미루 등 예쁜 이름만을 골라서 붙혀주며 한풀이를 했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예쁜 이름이 흔해빠진 세상이 되었다니 앞으로 쓰는 소설 주인공 이름은 영자, 영숙이로 붙혀볼까 생각하며 혼자 웃는다.

- 이계숙의 더 많은 작품은 http://kyesook.com 로 오셔서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