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재미가 좋으셨어요?"

달봉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잠자코 가방이 실린 카트를 아들에게 쓱 내밀었다.

별로 이야기할 만한 기분이 아니니 잔소리말고 얼른 카트나 밀라는 무언의 뜻이었다.

빽빽히 들어찬 환영객들 틈에서 유난히도 작고 초라해 보이던 아들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달봉어머니는 썩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것은 열 시간이 넘는 긴 비행기 여행에 지쳐서도, 비행기 음식이 입에 맞지않아 두어끼를 굶은 뱃속이 쓰려서도 아니었다.

자그마치 한 달만에 보는 아들의 얼굴이 별로 반갑지가 않은 자신의 고약한 마음에 자신도 놀랐기 때문이었다.

수 백 명이 한꺼번에 몰려나오는 입국장에서 용케 자신의 어머니를 발견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오던 달봉이는 어머니의 냉랭한 모습에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뒷머리를 한 번 긁적이고는 어머니의 눈치를 슬슬보면서 카트를 밀고 앞장서서 공항밖으로 걸음을 옮겼다.어머니가 자신을 잘 뒤따라 나오나 연신 뒤를 돌아 보며 어머니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달봉어머니 역시 혼잡한 사람들 틈에서 아들을 잃어버릴까 봐 긴 치마자락을 움켜쥐고 종종걸음으로 아들을 쫒아 갔다.

한국서 생각할 땐 그렇게 원망스럽고 밉쌀스럽기만 하던 아들이었지만 미국에선 그래도 아들이 큰 기둥이었다. 이렇게 혼잡한 곳에서 길이라도 잃었다간 오도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혹시라도 아들의 뒷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까 봐 조바심하며 쫒아갔다.

달봉의 차는 공항 주차장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었다. 달봉 어머니는 힘이 좋고 걸음이 빠른 아들을 쫒아가느라 숨을 헐떡이며 짜증을 부렸다.

"차는 왜 이리 먼데다 세웠다니? 먼 데다 세우면 주차비를 깍아준다디?"

사람좋은 달봉이는 한 달만에 어머니를 보니 반가와서인지 어머니의 가시돋힌 말에도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어이그, 망할 놈. 저렇게 미련하니 밤낮 그 꼴이지......'

달봉어머니는 트럭 짐칸에 가방을 옮겨 싣는 아들을 뒤로하고 조수석 문을 열었다. 10년이 넘어 너덜너덜해진 시트카바가 눈에 먼저 들어오자 달봉어머니는 한숨부터 쉬었다.

'달수는 차도 좋더만 이게 뭐고. 이런 고물차를 타고 남사스러워서 어찌 다닌단 말인고.'

그러나 집에 가려면 차를 타야했기에 달봉어머니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트럭에 올라 탔다. 풀썩 먼지를 일으키던 낡은 시트에서 용수철이 올라오는지 엉덩이가 영 편치 않았다.

짐을 다 싣고 여전히 싱글거리며 운전석에 올라 타는 아들을 쳐다보며 달봉어머니는 기어이 한 마디 하고 말았다.

"차가 이게 뭐냐? 새 차 살 형편이 안되면 중고라도 좀 쓸만한 걸 사서 끌고 다니지"

아들은 여전히 기분좋게 웃으며 대꾸했다.

"이 차가 어때서 그래요? 지금까지 고장없이 잘만 굴러가는구만. 그리고 우리 형편에 무슨 좋은 차가 필요해요? 밤낮 일이나 다니는데.."

달봉어머니는 아들의 말이 맞다 싶어 잠자코 팔짱을 끼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차창밖 풍경으로 눈을 돌렸다.

일 년 열 두 달 가도 근사한 식당 한 번 가는 일 없이 일터와 집만 왔다갔다 하는데 좋은 차가 무슨 필요 있으랴.

따지고 보면 지난 10년동안 이 고물 트럭이 달봉의 식구를 먹여살린거나 마찬가지였다.

미국에 발을 디디자마자 이웃의 주선으로 구입한 중고차였는데 지금까지 아무탈 없이 굴러가며 달봉이 내외를 일터로, 손주들을 학교로 실어 날랐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한국엔 너도 나도 좋은 차만 타던데......'

아무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밴들밴들 놀기만 하던 달수 색시조차도 비싼 차를 운전하던 사실을 생각하고 달봉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미국와서 지금까지 남의 집 일꾼으로 다니는 달봉이 내외가 몇 년동안 애면글면하며 부은 5만불짜리 계를 탔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비행기표를 산 거였다.

직장 다니는 아들 며느리를 대신하여 셋이나 되는 손주들을 키우고 살림하느라 노인회 한번 마음놓고 못나간 어머니를 위해 한국방문을 추진한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얼마나 좋았나. 밤에 자려고 누우면 곧 만나게 될 피붙이들의 얼굴이 천장에 어른어른거렸었지'

그렇게 가슴설레며 간 한국이었다.

달봉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또 내쉬었다.

낮에는 세탁소로 밤에는 건물청소 일로 눈 코 뜰 새없이 바쁜 아들 며느리를 따라 한국가지고 나갈 선물 쇼핑을 다닐 때만 해도 달봉어머니는 그저 신이 났었다. 백화점으로 할인점으로 쫒아다니며 산 물건들을 양손에 가득 들고 나올 땐 온 세상이 내 것 같았다.

자신이 기거하는 방에 사들인 물건들이 높이 쌓일 때마다 이건 누굴 주고, 저건 누굴 주어야지 하는 계산에 잠이 다 오지 않을 지경이었었다.

'한국이 지금은 옛날하고 많이 틀려졌다해도 뭐니뭐니해도 물건은 미제가 최고지. 커피며 영양제는 미제가 제일이여. 미제보다 좋은 게 이 세상에 어디있어.'

얼굴도 못 본 달수색시 선물까지 골고루 챙기며 달봉어머니는 행복하고 또 행복했다.

피 같은 돈을 자신의 한국방문을 위해 아낌없이 헐어쓰는 아들 며느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그 미안함도 10년 만에 만날 피붙이들에 대한 반가움과 기쁨으로 가리워져 버렸다.

그렇게 근 한달을 북새통을 떨며 고대하다 나간 한국이었다.

그런데.

달봉어머니는 눈을 뜨고 차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는체하며 차 유리에다 이마를 박았다.

자칫하면 아들에게 눈물이라도 보일 것 같았다.

우직하고 순박하지만 눈치도 빠른 아들은 벌써 어머니의 이상한 낌새를 조금은 알아차린 것 같았다. 이것저것 한국소식을 물어볼 만한데 아무 말 없이 그저 앞만보고 운전만 할 뿐이었다.

'내가 미쳤지. 지나가는 개도 안물어갈 그런 거지같은 것을 사느라 그렇게 많은 돈을 써댔으니...'

'거지같은 것들' 이란 달봉어머니의 언니가 한 말이었다.

한국의 언니집에 도착해서 십 년동안 몰라보게 장성한 조카 달수와 처음보는 달수색시의 절을 받은 후 선물이라고 자랑스럽게 꺼내 펼쳐놓았더니 언니가 내뱉은 말이었다.

"이런 거지같은 것을 뭐하러 이렇게 잔뜩 사 오니, 무겁기만 하게. 저런 것들은 남대문 도깨비시 장에 가면 널리고 널렸어."

너무 놀라고 무안해 입을 다물지 못하는 달봉어머니에게 언니는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이런 봉지커피, 한국에선 요즘 아무도 안 마신다. 모두 원두커피를 직접 갈아서 마시지. 그리고 저런 이름 없는 향수를 누가 쓴다고. 지난 추석때 선물로 들어온 고급향수가 아직도 지천인데..얘는 아직도 옛날 생각만 하고 있나벼. 한국이 얼마나 변했는데 지금."

정말 한국은 눈이 팽팽 돌 지경으로 변한 건 사실이었다.

10년 전 자신이 있을 땐 보도 듣도 못한,아니 미국에서 10년을 살면서도 생전 구경도 못하던 요란하고 화려하고 희한한 것들이 한국에는 곳곳에 넘쳐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달봉어머니가 가장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들 며느리가 한 달은 뼈 빠지게 일해야 겨우 손에 쥘만한 돈이 언니네 식구들한테는 옷 한 벌이나 핸드백 한 개 값으로 없어지는 일이었다.

"이게 그 유명한 A표 구두고 B표 핸드백이야. 넌 이런 명품 구경이나 해 봤니?"

언니는 알아보지도 못할 꼬부랑 글씨로 새겨진 물건들을 가득 늘어놓고 자랑했다.

자신은 어머니 날이나 생일이라야 겨우 한번 가 볼 수 있는 비싼 식당을 언니네 가족들은 제집 드나들 듯이 하고 있는 일도 달봉이 어머니 머리로는 도대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몇 십 년을 농사일로 겨우겨우 연명하다 신도시가 들어서며 하루아침에 올라버린 땅값으로 벼락부자가 된 건 이해한다쳐도 그 씀씀이는 상상도 못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에 비교하면 달봉이의 처지는 너무도 한심하기 짝이 없어 한국에 머무는 한 달 내내 그녀의 심사가 편치 않았었다.

"어머니!...."

애써 숨긴다고 숨겼는데 눈치 빠른 아들은 어머니가 울고 있는 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아들의 오른 손이 어머니의 손을 보듬어 잡았다.

"미안해요 어머니. 내가 너무 못나서..."

달봉어머니는 터져 나오는 오열을 참으며 아들의 손을 마주 잡았다.

"아니다. 나는 네가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구나. 달수네는 아무 일을 않고도 그렇게 떵떵거리며 잘만 살던데 너와 네 처는 밤낮없이 고생만 해야하니.. 너와 네 처가 너무 불쌍해서..."

"고생은요. 다 할만하니까 하는데. 걱정마세요 어머니. 저는 언젠가는 꼭 잘 살 거예요. 지금처럼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우선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하쟎아요"

그랬다.

달봉이는 우선 몸과 마음이 다 건강했다. 그리고 성실했고 착했고 정직했다.

한 달 동안 지켜본 달수는 예전의 순박하고 착하던 달수가 아니었다.

돈은 지천으로 쌓여있었지만 그 돈으로 인해 부모와는 물론 형제들과 그리고 아내와도 불화하고 있었고 돈으로 쫒는 향락에 중독돼 몸과 마음도 황폐화 되어 가고 있는 게 눈으로도 보였다.

거기 비하면 내 아들 달봉이는 얼마나 대견한가. 또 어머니인 자신을 얼마나 끔찍히 생각하는지...

여기까지 생각하자 달봉어머니는 부쩍 힘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 더 이상 언니네를 부러워하지 말자. 여기 세상에 둘도 없는 우리 아들이 떡하니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누구나 오고 싶어하는 미국에 살고 있지 않은가.'

달봉 어머니는 결심했다.

이제는 한국꿈 그만 꾸어야지...미국에서 정 부치고 살아야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달봉어머니는 아들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아들은 조금 전에 공항에서 본 작고 초라한 아들이 아니었다.

태산처럼 크고 듬직한, 달수같은 놈은 열 명을 준다해도 바꾸지 않을 믿음직한 남자 하나가 열심히 앞만 보고 운전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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