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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탁을 내려다 보았다.

흘린 국물 자국이며 흩어진 밥알로 식탁은 매우 어지러웠다. 아는 이가 한국을 다녀오면서 갖다 준 굴비는 으스러진 머리와 앙상한 뼈 몇 개만 남기고 흔적조차 없었다. 딱 두 마리 준 것을 오늘 아침 구워 식탁에 올렸던 것이다.

이들에게, 이들 모자에게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식탁을 치우며 생각 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항상 이렇듯 당당한가.

두 마리의 굴비를 살점 하나 날 위해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워 버린 이들, 남편과 시어머니. 이들은 나를 자기의 가족으로 생각하고나 있는 것인가.

“밥이 인삼이니라. 아무리 다른 것을 먹어도 몸엔 아무 소용이 없어. 그저 밥이 최고여. 밥맛이 없더라도 억지로라도 먹어라. 먹어야 해.”

시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항상 몸이 약한 내가 마치 밥을 잘 먹지 않아 그런 것처럼 시어머니는 억지로라도 내게 밥을 먹이려 애를 썼다. 그래서 식사 때마다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었다. 한 숟갈이라도 더 내게 먹이려는 시어머니와 그것을 교묘하게 피하려는 나의 행복한 다툼이였다. 또 그것을 바라보던 남편의 흐뭇한 얼굴.

그런데.......

세 식구가 한 식탁에 앉아 본 적이 언제 였던가.

나는 접시를 개수대에 넣으며 생각했다. 생선 기름이 묻은 접시는 미끌미끌했고 나는 그래서 비누를 스펀지에 잔뜩 묻혀야 했다.

그가 구두 수선점을 오픈하고서도 우리는 아침과 저녁 식사를 항상 같이했었다. 아침 식사는 아침잠이 별로 없는 편인 시어머니가 차리는 편이었고 저녁 식사는 퇴근 시간이 남편보다 빠른 내가 늘 준비했었다.

맞아, 하고 식탁에 행주질을 하며 나는 중얼거렸다.

내가 가진 수중의 돈을 다 털어서 개업한 수선점의 수입이 신통치 않자 집에 있느니 구두에 약칠이라도 한번해서 아들 일을 도와준다며 시어머니가 남편을 따라 가게를 나가고부터 였다. 그때부터 시어머니와 남편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사롭지가 않았고 시어머니도 전 같이 나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지 않았다. 구두를 손질하는 것도 크나큰 노동이며 그것을 도와주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라 피곤하다는 것이 시어머니가 아침 식사를 차리지 않는 이유였다.

내가 일하고 있는 백화점 화장품 코너의 출근 시간은 10시였음으로 항상 늦잠에 길들어 있던 나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아침을 차리기 위해 요즈음 항상 허둥지둥해야 했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뜬 채 시계를 보면 시계 바늘은 항상 여덟 시를 넘어 있었고 후다닥 자리를 차고 일어나서 부랴부랴 쌀을 씻는다, 찌개를 끓인다, 부산을 떨어도 아침 식탁이 마련되는 건 으레 아홉 시쯤이었다. 그 때 쯤은 내가 출근 준비를 위해 샤워를 하거나 화장을 해야 했고 옷도 갈아 입어야 했다. 그러는 사이 남편과 시어머니는 자기들끼리 식탁에 앉았고 내가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와 보면 그들은 이미 가게로 가 버리고 없었다. 잔뜩 어지러진 식탁 위의 먹다 남은 음식만 남기고.

나는 갈아입은 투피스 위에 설거지물이 튕기지 않게 조심하며 설거지를 마쳤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뱃속이 쓰려 왔지만 나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 메이커에 물을 받았다. 요즘 들어선 커피 한 잔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마셔 본 적이 없다. 늘 시어머니의 입맛에 맞는 반찬을 마련하기 위해 노심초사 해야 했고 진밥을 질색하는 남편을 위해 밥물 보는데 만 몇 분을 소비해야 했으니까.

“이 세상에 가장 맛있는 것이 알맞게 끓여진 커피이고, 커피를 마시는 아침 시간과 이따끔의 늦은 밤이 내겐 가장 행복한 시간이야.”

주위 사람에게 공공연히 그렇게 말할 정도로 나는 커피 마시는 걸 좋아했었다.

2년 전 갑작스런 사고로, 정말이지 갑작스럽단 말로 표현 할 수 밖에 없는 사고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졸지에 잃고 났을 때도 커피 마시는 일만은 빠뜨리지 않았었다.

입안이 말라서 다른 아무것도 입에 댈 수 없었어도 커피만은 이상하게 맛이 있었다. 부모님의 시체를 묻고 돌아오던 날부터 일주일간은 하루 한 잔의 커피로 살았었다. 이 미국 땅에 이제 나 혼자밖에 없다는 두려움에도, 깊은 밤 잠 안 올 때 전화 한 통 걸 만한 변변한 친구 하나 없다는 것도, 내 나이가 혼기를 넘긴 서른 하나라는 것도 커피를 마시기 위해 준비를 하는 동안은 남의 일처럼 까마득히 잊을 수 있었고 내려진 커피에 적당하게 프림을 타서 한 모금 입에 대는 순간은 행복하기까지 했었다. 아아, 정녕 행복했었다.

그런데......

남편과 결혼을 하고 시어머니를 모시게 되고 잡다한 일상사가 내가 아닌 그들을 위주로 바뀌게 되자 나는 커피 마시기를 중단해야 했었다. 그들은 커피보다 인삼차니 계피차니 하는 동양차를 좋아했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커피를 질색했다.

“맛도 없고 몸에 좋지도 않은걸 무엇 하러 그리 마셔대냐. 네가 항상 얼굴에 핏기가 없고 살이 안 오르는 게 그놈의 독한 커피를 늘 상 마셔대기 때문이 아니냐?”

그러나 십 몇 년을 줄기차게 습관화되다시피 한 커피 마시기를 시어머니의 몇 마디 말로 해서 중단될 수는 없었는지라 나는 개의치 않고 아침마다 커피를 내렸고 또 그 향을 즐기면서 커피를 마셨었다. 그런데 요 근래 들어선 시어머니의 눈총이 곱지 않았다. 처음엔 진정으로 나를 생각해서거니 해서 커피를 마시는 내 뒤통수에 꽂혀 오는 시어머니의 눈길이 차라리 고맙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시어머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에 내 가슴은 철렁했다.

“지가 언제부터 서양 사람이 되었다고 매일 거르지 않고 커피를 마셔 대? 쓰디쓴 걸 아주 맛있다는 표정으로 마셔 대는 걸 보면 가소롭다니까...”

시어머니가 내 커피 마시기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걸 알아챔과 동시에 아침 준비가 내 몫이 되었음으로 사실상 커피 마시기는 중단되었다. 이렇듯 빠듯한 시간에 약을 먹듯 허겁지겁 마시지 않고는 그나마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무엇 때문인가.

내가 그들에게 잘못한 게 무엇이던가. 왜 남편과 시어머니는 급속도로 태도가 돌변한 것일까?

나는 부엌 바닥에 서서 뜨거운 커피를 조금씩 마셨다. 출근 시간까지는 20분 정도 남았음으로 아직 5분의 여유는 있었다.

나는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얼마 전까지 만해도 시어머니의 표현대로 '친딸' 처럼 살뜰히 보살펴 주고 다정하던 시어머니의 돌변한 쌀쌀함과 말은 없어도 늘 따뜻함으로 일관하던 남편의 냉담한 몸짓이 무엇 때문인지 알아내기 위해 잠깐 고심했다.

“어린 나이에 졸지에 부모를 잃어버리다니. 가엽기도 해라. 그래 생활은 뭘로 하누? 그 큰집에 혼자 산다며?...... 쯔쯔쯪..이렇게 고운 색시가 그렇게 큰 일을 당하다니 안되었구먼.”

A시에서 누나 가족과 살다가 누나 가족이 매형의 직장을 따라 먼 곳으로 떠나 버리고나자 당장 생계가 막연하던 차에 이곳 N시에 직장이 생겨서 이사를 해 왔다는 남편이었다.그와 마주앉은 자리에서 시어머니는 내 손을 부여잡으며 진심으로 안되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남편의 얼굴에도 나를 안쓰러워 하는 표정이 역력했었다. 그 때 나는 이들 모자에게 내 피곤하고 연약한 육신을 맡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J전도사의 소개대로 그들 모자는 첫 번의 만남에서 내게 그런 생각이 들게끔 순박해 보였고 너그러워 보였었다.

열 살 때 사업을 하는 부모를 따라 이민을 와서 20여 년을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인들, 혹은 한국인이지만 미국식 사고방식을 따라 계산적이고 타산적인 사람들 틈에서 자라난 내게 그들 모자의 조금 어수룩해 보이기까지 하는 순박함에 나는 강한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그렇지 사람 하나는 진국이야. 강 선생도 이제 결혼해 가정을 가져야지. 언제까지 큰집에서 혼자 궁상이나 떨 거야? 무섭지도 않아? 부모님을 비명횡사에 잃고도 혼자 그 집에서 버텨나간다고 사람들이 강 선생더러 보통 여자가 아니래.”

나는 모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을 하고 있었다.

J전도사는 오래 전부터 내 혼담을 주선해 왔었다. 그러나 인연이 닿지 않았었던지 J전도사가 주선한 2번의 맞선은 그냥 흐지부지되고 말았었다.

“남자가 미국 온 지 10년 쯤 되었는데 아직 마땅한 직장은 없다나 봐. 지금 다니고 있는데도 임시라지 아마? 그렇지만 설마 강 선생을 굶기기나 할려구? 사람은 그저 좋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야. 시어머니 될 사람도 그렇고.”

J전도사의 부추김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들이 마음에 들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남편 될 사람도 남편 될 사람이지만 시어머니가 될 노인이 더 내 마음을 움직였다고 해야 옳겠다. 그녀는 내 허허로운 가슴을 충분히 채워 줄 것 같았다. 그녀는 너그러워 보였고 인자했고 말끝마다 나를 '친딸' 처럼 여기겠노라고 되뇌었었다.

맞선을 본지 한 달 후 우리는 내가 나가는 교회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고 남편과 시어머니는 살던 아파트를 나와 우리집으로 들어 왔다.

어항 속의 물처럼 고즈넉하던 집안에 시어머니와 남편의 출연은 크나큰 활력소였다. 남편은 쿵쿵 발자국 소리를 내며 집안을 걸어다녔고 시어머니는 매일이다시피 부엌에서 그릇 소리를 내며 음식을 만들었고 그것을 내게 먹이려고 애썼다.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배를 곯았냐. 혼자서는 입맛이 없어서 못 먹고 귀찮아서 못 먹었을 게다. 부지런히 먹어라. 먹고 살 좀 찌거라.”

나는 시어머니가 해주는 호박 부침개를, 생선찌개를, 비빔밥을 맛나게 먹으면서, 남편의 커다란 가슴에 안겨 자면서 아아, 나는 정말 결혼을 잘 했구나. 하나님! 저의 부모를 앗아간 대신 이렇듯 듬직한 남편과 좋은 시어머니를 주셨군요하며 감사했고 눈물을 흘리며 이 행복이 오래가게 해주길 기도했었다.

올 봄 남편은 임시로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

아침마다 와이셔츠에 맞추어 넥타이를 골라주며 출근준비를 도와주던 기쁨을 잃어버린 나는 무척 서운했다.그러나 남편의 속은 어떨까 싶어 일절 내색을 않고 지냈다. 그런데 석 달을 아무것도 않고 집안에서 지내던 남편이 얼마전 구두 수선점을 해보던 어떻겠냐고 내 의사를 물어 왔었다.

“아는 사람이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서 내놓게 되었다는데...... 내가 해봤음 싶지만 밑천도 없고 ......”

남편은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적이 실망이었다. 내 남편은 적어도 단순 노동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닌, 고도의 두뇌 회전을 요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그동안 해 왔던 컴퓨터 일도 사실 알고 보면 그다지 전문직이 아닌, 않는 숫자 정도나 입력시키는 하찮은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존경심을 가졌던 건 넥타이를 매고 책상 앞에 앉는다는 사실 한가지 때문이었다.

건물 청소일, 플리마켓 장사 등 거칠고 힘든 일로 생을 마감한 부모님들의 육신이 얼마나 황폐하고 피곤한 지 나는 잘 알고 있다.

10여 년을 노동일에 종사한 대가로 고작 조그만 잡화점 하나를 개업했던 부모님의 거친 손을 나는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렵사리 개업한 잡화점마저 아버지가 몰래 구입하여 쌓아 놓은 유명상표 카피 물건이 경찰에 발각되는 바람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부동산 소개업자의 말만 믿고 계약했던 가게의 위치가 전혀 손님을 끌 만한 곳이 못 되었던 것도 가게를 운영해 나가는 데 크나큰 어려움이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도 그 잡화점은 금방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놓여 있었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렇듯 힘들기만 하고 손에 쥐는 건 빈주먹뿐인 장사나 푼돈이나 만지게 되는 구두 수선점이 아닌 적어도 전문직에 드는 일이면 보수가 적어도 괜찮을 듯 싶었다.

그런 일이라면 새벽부터 밤까지 모든 시간을 할애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휴가니 보너스 같은 것도 적지만 꼬박꼬박 지불될 터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남편의 진지한 얼굴을 보는 순간 그래요, 해보세요. 하는 말을 저절로 해버리고 말았다.

“돈은 얼마나 든다고 해요? 내게 그 동안 모아 두었던 것이 조금 있어요. 그런데 구두 수선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 당신이 그걸 할 수 있겠어요?”

내 눈치만 살피던 남편의 얼굴이 신선한 내 승낙에 금방 환해졌다. 환한 남편의 얼굴을 보며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하는 한국 유행가 가사 구절을 생각해 내고 흐뭇해 졌다.

그래, 당신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난 무엇이든 해 드릴 수 있어요.

일은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남편은 바쁘게 나다니며 계약하고 물건을 인수하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덩달아 즐거워하는 건 시어머니였다.

“며느리 하나 잘 얻어서 우리 아들이 구둣방 사장님이 되는구나.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그러나 대금을 치르고, 명의 이전을 하고, 남편이 구두 수선점의 주인이 되고 나서는 시어머니의 '며느리 잘 얻어서' 란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구두수선점이 예상과는 달리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것 밖에. 그렇지만 그것은 남편이 장사라던가 고객 상대를 전혀 해보지 않았고 두어 주일 먼저 주인으로부터 전수받은 지식이 전부인 구두 수선에 대한 서투름 때문일 것이고, 점차 익숙해지면 괜찮아지리라 나는 낙관했다.

시어머니까지 나서서 돕는데 곧 괜찮아지겠지...

나는 다 마신 커피 잔을 싱크대에 넣고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왔다.

밖은 막 쏟아지기 시작한 햇살에 눈이 부셨다.

'생전 하지 않던 일을 하자니 힘이 들어서 일 거야. 가게를 운영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겠지.'

나는 차의 시동을 걸며 남편과 시어머니의 냉랭하고 서먹서먹해진 요즈음의 태도를 애써 이해하려 생각했다.

“너무 섭섭하게 생각 말아야지. 그들은 그들대로 너무 힘이 들 거야.”

오늘 저녁엔 남편과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특별식이라도 해 보는 게 좋을 거란 생각도 했다.

그날 저녁.

나는 백화점 일을 마치고 한국 가게에 들려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더덕과 취나물 등 몇 가지 반찬거리를 샀다.

남편을 위해서는 냉동된 낙지와 멍게를 샀고, 금방 이라도 튀어 나올 듯 성장한 얼굴로 웃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장식된 여성지도 한 권 구입했다.

오늘 저녁엔 남편과 시어머니를 위해 만찬을 올리고 이불속에 엎드려 남편과 같이 잡지를 읽으리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대며 계산을 마치고 쇼핑한 물건을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문이 굳게 닫힌 채 막 지기 시작하는 석양을 등지고 묵묵히 서 있었다.

“상희야. 아직까지 맘에 드는 남자가 없니? 네 나이가 몇 살인지 알고나 있으면서 그렇게 배짱을 부리는 게냐? 아빠는 얼른 우리 상희가 시집가는 걸 보았으면 좋겠는데 너는 그렇게 태평을 부리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 할꼬?”

지금처럼 해가 뉘었뉘었 질 무렵 아버지는 항상 간이 의자를 밖에다 내어놓고 휴식을 취했다. 그러는 아버지의 어깨를 주무르는 나에게 아버지는 남에게 별다르게 빠지지 않는 외모를 가졌으면서도 변변한 남자 친구 하나 없는 나를 걱정스레 올려다보곤 했었다.

“걱정 마세요 아빠. 짚신도 짝이 있다지 않아요? 제 짝도 어디엔가 있겠죠. 아직 나타나지를 않을 뿐이지.”

아버지의 걱정에 나는 짐짓 태연한 척 목소리를 높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나직한 목소리로 나를 책망했다.

“그럼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암컷이 있고 수컷이 있으니 짝이야 다 있겠지. 그렇지만 애야, 짚신의 짝은 짚신일 수 밖에 없단다. 짚신의 짝을 구두로 맞출 순 없지 않겠니?”

아! 아버지.

나는 차 뒷트렁크에 열쇠를 꽂다 말고 망연히 서 있었다.

제가 짝을 찾았어요. 짚신이 아닌 튼튼하고 질긴 구두로 말이에요. 그런데 응당 기뻐해야 할 아버지, 그러고 엄마는 지금 어디 계시죠? 이렇듯 신선한 저녁나절이면 잔디밭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계시던 아버지, 달그락달그락 그릇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저녁 설거지를 하던 엄마는 지금 정녕 어디 계신 가요?

눈물이 차 오르며 가슴이 저려 오기 시작했다. 결혼과 함께 그 동안 거의 잊고 지냈던 부모님이 지금 갑작스레 떠오른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왜 울어. 내겐 남편이 있는데. 시어머니도 계시잖아.’

나는 애써 눈물을 씻고 서둘러 시장 봐 온 것들을 집안으로 옮겼다. 에프엠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고 나는 입었던 옷을 벗고 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은 다음 우선 쌀을 씻어 앉혔다.

벽시계를 언뜻 보니 일곱 시 십 분 전.

곧 남편과 시어머니가 돌아올 시각이었다. 나는 서둘러 낙지의 껍질을 벗기고 초고추장을 만드는 등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미국을 건너 왔어도 한국 음식을 만드는 법, 한국 풍속 등에는 매우 익숙한 나였다. 한국 남자 아니면 시집을 보내지 않겠다는 엄마가 고등학교에 내가 입학할 무렵부터 일일이 따라다니며 가르쳐 준 덕분이었다.

‘고마워 엄마. 엄마가 아니었음 지금쯤 한국 음식 만드는 것 때문에 고군분투 하고 있을 텐데........’

나는 다시 부모님 생각에 코끝이 매워 오는걸 애써 지워 버렸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 생각을 하면 뭣해? 살아 계신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더 잘 하는 게 낫지. 가만 취나물 무침에 내가 소금을 넣었던가? 이런 정신하고는....’

그때 초인종 소리가 났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돌아온 것이다. 나는 양념이 잔뜩 묻은 손을 대충 닦고 서둘러 문을 열었다.

“지금 돌아오세요? 어머니, 힘드셨죠? 얼른 손 씻고 식탁에 앉으세요. 제가 오늘은 특별식을 몇 가지 했거든요. 아마 어머니가 좋아하실 거예요. 여보, 당신도 얼른 손 씻을래요? 아니, 아예 샤워부터 하는 것이 어때요? 아직 저녁이 좀 덜 되었거든요.”

내 수선스러움에 나 자신도 놀라며 굳은 표정으로 들어서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역시 그들의 얼굴은 냉담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남편은 말없이 샤워를 하려는 듯 욕실로 들어가고 시어머니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어쩌지도 못 한 채 현관에서 어정쩡하게 잠시 서 있어야 했다.

내가 이렇듯 먼저 말을 걸고 성의를 보였으면 한마디의 대꾸쯤은 해 주어야 옳지 않은가? 무엇 때문에 이들은 나를 이렇듯 무시하는 것인가? 내가 무시당해야 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서 있다가 스토브의 찌개가 끓고 있었으므로 불을 줄이기 위해 부엌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시어머니가 나를 불러 세운 것은.

“너 여기 좀 와서 앉거라.”

“............”

나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시어미 말이 말 같지 않으냐? 여기 좀 와서 앉으라고 했다.”

시어머니의 냉랭한 눈길이 내 얼굴에 와 꽂혔다. 목욕탕 쪽에선 쏴 하는 물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주춤주춤 걸어가 소파 끝에 조심스레 앉았다. 항상 편하고 따뜻함마저 느껴지던 시어머니 앞이 이렇듯 어렵고 불편해진 것은 구두 수선점을 오픈하고부터 아니, 시어머니가 남편을 따라 같이 일을 나가고 부터였다.

“도대체 무슨 심보냐?”

고개를 숙이고 손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내게 시어머니는 다짜고짜 물어 왔다.

“네?”

심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이런 말은 어릴 적 읽었던 흥부전인가 하는 책에서만 나오는 말이 아니었던가?

“일을 벌이도록 했으면 끝까지 뒤를 보아주는 것이 도리 아니냐? 잔뜩 부추켜서 일만 벌여 놓고 나 몰라라 뒤돌아 앉았으니 그게 무슨 고약한 심보란 말이냐?”

“...............”

“미국서 자랐어도 심성은 한국 여자나 마찬가지라고 중매한 사람이 그러더니 냉정하고 똑 부러지는 게 양놈들보다 더한 것 같구나 네가 지금 우리한테 하는 양이.”

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시어머니가 하는 말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 전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려 애쓰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무슨 오해가 있나 보다. 무슨 커다란 오해가 남편과 시어머니와 나 사이에 있나 보다.

“끝내 모른 척 앙큼을 떨거냐? 오냐, 내 말하마. 지금 너도 알다시피 너희 남편 구두 가게가 보통 어려운 형편이 아니다. 전주인 말로는 설비나 장치가 아무것도 필요없고 그저 기술이나 간단한 손님 접대하는 요령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 가게를 인수한 게고.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라 이것이야. 이것저것 새로 들일 장비도 많고, 다른 구두 수선점에서는 아예 구색 맞춰 신발까지 판다는데 우리 가게라고 그것을 못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 말이다. 그래서 이왕 벌려 논 일 조금만 더 신경을 써 달라고 니 남편이 네게 부탁을 했더라며? 그런데 넌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더라고 들었다.”

“어머니, 그것은....”

“이왕 푼 돈, 조금만 더 풀어서 필요한 것을 구입해 주면 지금처럼 쩔쩔매며 어려움을 겪지 않을 텐데..... 오늘 몇 사람의 손님이 온 줄 아느냐? 온종일 손님 여섯 받았다. 둘이 아침부터 나가서 지금까지 겨우 여섯의 손님을 받았단 말이다.!”

이것이었구나. 그 동안 시어머니와 남편의 태도가 돌변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갑자기 눈앞에 비닐이 벗겨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두어 달 전 남편은 말했었다. 다른 구두 수선 점에서는 신발 같은 걸 갖다 팔고 있으니 자기도 그렇게 했으면 좋을 것 같고 손님이 기다릴 때 앉는 소파도 좀 더 질 좋은 것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새로운 장비도 몇 대 더 구입했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나는 남편의 말은 그리 심각하게 듣지 않았었다.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인 구두수선 점인데 장비만 거창하게 들여놓으면 무얼 하나, 우선 서투른 구두 수선일부터 완벽하게 익혀 놓고 그런 것을 장만해도 늦지 않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는 수중에 돈이 없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보상금이 차 보험 회사로부터 나왔지만 그것은 아주 미미한 금액이었다. 왜냐하면 아버지 쪽의 과실이 큰 차 사고였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운영하던 가게를 아는 사람을 통해 처분하긴 했지만 그 동안 아버지가 장사랍시고 이곳 저곳 깔아 놓은 외상이 상당해서 가게 처분한 돈은 그것을 갚기에도 급급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갚아 나가야 할 집 값등 각종 페이먼트도 수월 치 않았다.

내가 남편을 위해 구두 수선점을 오픈 하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믿었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내 수중의 돈이란 돈은 다 털어 넣었었다. 내가 백화점을 다니며 버는 돈은 지금 우리 생활비 대기에도 빠듯한 형편이었다. 정말이지 단돈 오천 달라도 만들 수 없는 지금의 형편이었다. 그래서 남편의 장비 운운하는 소리에 나는 모른 척 지나쳤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이들 모자에겐 이렇듯 섭섭했나 보았다.

나는 차라리 안도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런 이유라면 얼마든지 내 사정을 설명해 보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사실은 그게 아니 예요. 제가 모른 척 한 것이 아니고 제게 그만한 장비를 구입할 만한 여유가 없는 형편이거든요. 왜냐하면......”

“변명은 듣기 싫다. 나는 그래도 너란 아이를 믿고, 며느리로 받아들였는데 그래서 여태껏 친딸처럼 여겨 왔었는데 너는 혼자서 뒷궁리만 하고 있었구나. 부부란 게 무어냐?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는 것이 부부 아니냐?”

“너무하세요. 어머니......”

“뭐라고? 너무하다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였기에 너무하단 소릴 지금 하는 게냐? 아이고, 졸지에 천 애 고아가 된걸 불쌍하게 여겨 살뜰히 보살폈더니 이제와서 시어미를 이겨 먹으려 드는구나! 말해라.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냐? 아홉 시, 열 시까지 자라고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아침밥 해 대령해 놓고 기다린 게 나다. 그뿐이냐? 혼자있던 살림에 혹시 생활비 많이 들어간다 소리할까 봐 배곯아 가며 먹는 것도 아껴 가며 알뜰살뜰 살림살이 챙겨 주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가 너무하다니... 신식 며느리가 시어미를 이렇듯 기막히게 할 줄은 몰랐구나!”

“어머니!”

시어머니는 소파 바닥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 오는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 내 앞에 일어나고 있는지 수습할 기력조차 없어진 것 같았다.

나는 그저 내 앞에서 꺼이꺼이 울고 있는 헝클어진 모습의 작은 노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언제 나타났는지 러닝 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남편이 모습을 보였다.

그의 젖은 머리에선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여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머니가 글쎄.....”

“닥쳐!”

남편이 무서운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여...여보!”

“앙큼한 년.”

지금 내뱉은 욕은 내게 하는 것인가?

나는 나를 노려보는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네가 나를 남편으로 진정 생각 한다면 내가 이렇게 가게 일로 힘들어 하는데 그처럼 모른 척하지 않을 꺼야. 넌 나를 네 집을 지켜 주는 파수꾼 정도로, 내 어머니를 충실한 가정부쯤으로 취급해 왔어!”

“여보, 무슨 말을 그렇게......”

“앙큼 떨지마! 내가 저번에 사정했지? 이왕 돈들인 일, 조금만 더 투자를 하라고.... 그때 내 말을 들어주었으면 지금 가게가 이렇게 고전을 하지는 않아....”

“그...그게...돈이 없어요.진짜예요. 가진 돈은 모두다 드린 거예요. 없어요. 진짜 없어요....”

나는 울면서  없어요,를 되풀이 했다.

결국 돈 때문이었구나!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하게 비워져 오는 것을 깨달으며 나는 비틀비틀 일어났다. 냉수라도 한 잔 마시고 정신을 차려야 할 터였다. 정신을 차리고 은행통장을 꺼내 보여서 진짜 내게 남은 돈이 없다는 걸 남편과 시어머니께 보여줘야 할 터였다.

“어딜 가는 거야?”

남편이 내 팔을 확 잡아챘다. 잡힌 팔이 아프게 저려왔다.

“왜 이러는 거예요? 왜, 왜 날 못살게 구는 거예요?”

울음과 함께 고함이 터져 나왔다. 나는 남편에게 잡힌 팔을 뿌리쳤다.

“돈이 없다지 않았어요! 없다고요! 통장을 보여줘야 믿겠어요? 당신은 나와 결혼한 거예요? 아님 내가 가진 알량한 재산과 결혼한 거예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남편의 주먹이 내 얼굴을 쳤기 때문이다.

“건방진 년이 어디다 악을 써?”

남편의 시큰대는 숨소리가 쓰러진 내 몸 바로 위에서 들려왔다.

“얘, 말로 해라. 손질은 왜 하냐? 약하디 약한 것 다치기나 하면 어쩌려고....”

북새통에 침착해져서 울기를 그친 시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려 왔다.

찝찔한 피와 눈물이 내 입 속으로 흘러들어 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냥 쓰러져 있었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그냥 땅속으로 잦아들었으면....

나는 강하게 바랬다.

“얘, 너 시장하겠다. 우선 밥이나 먹어라.”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하는 말을 나는 쓰러진 채로 꿈결처럼 들었다.

“일으켜서 좀 씻겨 주세요.”

무뚝뚝한 남편의 목소리 역시 꿈결처럼 들려 왔다.

“관둬라. 한 대 얻어 맞았다고 죽기야 하겠냐. 나는 네 아버지한테 밤낮으로 맞고 살았어도 지금까지 건강하기만 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어오르는 년은 그저 매가 최고야. 제 부모한테서 나온 보상금이 제법 있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가 보구나. 이렇듯 집만 덩그러니 있는 빈털털이인 줄 알았으면 아예 처음부터 말았지. 그것 봐라, 내가 처음부터 더 알아보고 혼인을 하자고 말렸지 않니? 건방진 년 같으니..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대학까지 마친 잘 난 내 아들을 넘봤다니. 우리가 속은 게야. 중매쟁이한테 손해 배상을 해야겠다.....”

“듣겠어요.”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계집년이 팔자가 사나워서 부모를 한 날 한 시에 잡아먹고 이제 서방 신세까지 쪽박을 차게 하려고 드니... 나 원 참 기가 차서. 뒷돈 대 줄 능력도 없으면서 일을 벌리라고 부추키긴 왜 부추겨?”

“제가 한다고 나섰어요.”

“어쨌든...그나저나 앞으로 어쩐다냐? 적자 투성이인 구두 가게를 열어 놓을 수도 없고 닫을 수도 없고....”

“잘 되겠죠....”

웅얼거림으로 멀어지는 모자의 목소리에서 나는 무너지는 소리를 같이 들었다.

그 동안 곱게 쌓아 왔던 희망과 꿈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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