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색시가 어쩌면 그렇게 예쁘게 생겼단 말이냐. 나는 같은 여자라도 그 예쁜 얼굴에 반할 것만 같더라. 그렇게 예쁜 색시를 며느리로 맞으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은데....."

어머니는 차에 오르자 마자 방금 전 선 본 아가씨 얘기를 시작하더니 30분이 가까워 오는 지금까지도 멈출 줄을 모르고 있었다.

 정우가 그 아가씨를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긴다는 걸 눈치 챈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지 정우의 마음을 돌려 하루바삐 혼사를 맺어야 겠다는 작심을 한 모양인지 한 시도 입을 다물지 않고 있는 거였다.

"여지껏 선 본 색시 중에 이번 색시가 가장 인물이 좋은 것 같더라. 학력이며 집안도 또한 빠질 데 없고. 무엇보다 나는 그 색시가 미스 오리엔트인가 뭔가 하는 미인대회에 출전한 경력이 있다는 게 제일 맘에 든다. 그런 예쁜 며느리를 얻으면 우리동네 예편네들 코가 납짝해 질텐데....생각만 해도 신이 나지않니?"

"예선에서 떨어졌다는데 그게 무슨 대단한 경력이라고 그러세요?"

잠자코 운전대만 잡고 앞만 보던 정우가 어머니의 수다가 지나치다 싶었는지 퉁명스레 한 마디했다.

"그런 유명한 미인대회에 발이라도 디밀은 게 어디냐. 아마 모르긴 해도 우리 동네 한국처녀들 중엔 그런 대횐 아마 근처도 못 갈걸. 그렇지 않수, 영감?"

청원군을 얻으려는 듯 어머니는 뒤에 앉은 아버지를 돌아보며 물었다.지금까지 가타부타 말이 없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물음에 입을 열었다.

"마음씨나 사람 됨됨이가 문제지 인물이나 조건은 혼사에 있어서 별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

아버지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어머니가 화를 벌컥 냈다.

"아니, 이 양반이....요즘 세상에 색시감의 인물이나 집안 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어요.자고로 여자란 인물이 고와야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 법이고 집안이 좋아야 가정교육도 좋은 법이야요. 당신은 그저 잠자코 계세요. 이번 혼사는 제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그나저나 몇시간을 비워놓은 식당이 잘 굴러가고 있나 몰라.얘, 아직 멀었니?"

"거의 다 왔어요."

저 멀리로 '영빈관' 이란 식당 간판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자 정우는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10년전 미국에 이민와 남의 식당에서 파 써는 일로 시작해 최근 이룩한 정우의 식당이었다.

조리사 자격증을 딴 걸 계기로 테이블 서너개로 시작한 한국 식당이 이제는 이곳 S시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식당으로 성장했다. 종업원만도 10여명,하루 매상만도 만불 가까운 대형 식당이었다.그

동안 남의 집 일을 다니던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나와서 일을 돕고 있었지만 식당은 항상 일손이 딸릴 정도였다.

정우는 10년 이민생활의 결정체인 이 식당이 항상 자랑스러웠다. 특히 남의 집 일을 다니느라 손이 거칠대로 거친 어머니가 우아한 한복을 차려입고 종업원을 지휘하는 걸 보노라면 이제야 부모님께 진정한 효됴를 하는구나 싶어 가슴이 뿌듯해 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색시감 문제로 정우의 마음이 영 편치않았다.

그동안 어렵게 살며 남한테 멸시 당해 온 걸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어머니의 며느리 욕심이 유별났기 때문이다.

S시에서 가장 큰 식당을 운영하느니만큼 도처에서 들어오는 중매가 수월찮았지만 어머니는 한사코 마다했다. '영빈관' 이란 대형 음식점 주인신분인 정우에겐 어울리지 않는 색시감들이라는 것이 어머니의 주장이었다.

적어도 정우의 신부감이 되려면 학력뿐 만 아니라 외모에서도 절대 빠지면 안된다는 게 어머니의 굽힐수 없는 소신이었다.

일주일 중 가장 바쁜 토요일 오후 시간대에 서너 시간 씩이나 식당을 비워가며 B시에 산다는 아가씨를 선보러 간 것은 그 아가씨의 미인대회 출전 경력에 혹한 어머니의 고집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우는 그 아가씨가 조금도 맘에 들지 않았다. 맘에 들기는 고사하고 불빛에서도 성형수술자국이 뚜렷한 아가씨의 인조인형 같은 얼굴에 섬뜩함까지 느꼈었다.

'어머니를 어떻게 설득하나...'

차들로 넘쳐나는 식당 파킹랏에 차를 대며 정우는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메인 주방장이 자리를 비운 것 답게 식당은 줄을 이은 손님의 주문을 소화시키지 못해 모두 쩔쩔매고 있었다.

정우는 얼른 어머니 아버지께 식당내를 부탁하고 주방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양복 웃저고리를 벗었다.

"사장님이 안계셔서 그런지 괜히 어수선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것 같았어요."

별로 예쁘진 않지만 항상 웃는 얼굴이라 손님들에 인기인 윤지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얼른 다가와 정우의 양복을 받아 걸었다.

무심코 윤지에게 양복을 건네주던 정우는 문득 윤지의 웃는 얼굴에서 가느다란 슬픔을 발견했다.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깃든 슬픔....

여지껏 윤지에게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슬픔이었다.

정우는 주방으로 들어가는 것 도 잊은 채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다.

'그렇다면 혹시 윤지도!"

숨가쁘게 바쁜 하루 일과가 끝난 식당안은 적막과 고요만이 감돌고 있었다.

정우는 앞치마를 벗는 것도 잊은 채 계산대에 기대 멍하니 서 있었다.

아까 낮에 본 미인대회 출신 아가씨의 화려한 얼굴과 윤지의 귀엽고 수수한 얼굴이 정우의 눈 앞에 오버랩 되어 왔다.

정부 아파트에서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산다는 윤지.

정우가 윤지를 은근히 마음에 두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소박하고 착한 마음씨를 알면서부터였다.

정우가 지금까지 보아온 바로는 윤지는 항상 명랑하고 손님들과 동료에 친절했으며 4,5년동안 결근 한 번 않할 정도로 성실한 생활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윤지 역시 정우를 좋게 생각하고 있는 눈치였는데 그런 느낌 쯤은 정우도 알고 있었다.

사십을 넘기지 않으려 이리저리 선을 보러 다니는 정우에게 웨이츄레스 신분상 차마 표현은 못하고 속만 끊이고 있다는 것을 정우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우는 어머니의 완강한 반대를 막을 자신이 없었다.

S시의 가장 큰 식당주인이라는 걸 훈장처럼 빛나게 생각하는 어머니께 일개 웨이츄레스 출신의 여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어머니는 머리를 싸매고 드러 누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정우는 무엇보다 어머니가 두려웠다.

'휴우, 장가고 뭐고 다 집어 치워 버릴까?'

정우는 다시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였다.

열쇠 비트는 소리와 함께 식당 문이 열린 것은.

들어 선 사람은 오늘 하루 매상을 챙긴 어머니를 먼저 집에 데려다 주러 간 아버지였다.

"웬일이세요,아버지? 저도 곧 들어가려던 참이었는데...."

아버지는 천천히 걸어 와 정우의 어깨에 손을 놓았다.

"결혼 문제 때문에 힘들쟈?"

"예에,그게 좀......"

아버지는 정우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결혼이란 외모나 조건만 보고 하는게 아니다. 너랑 한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인 만큼 네 마음에 드는 여자와 하는 거야......"

누가 그걸 모릅니까,아버지....

정우는 속으로 대답했다.

누가 그걸 모르냐구요....

아버지는 그런 정우를 한번 흘낏 쳐다본 다음 결심하듯 입을 열었다. 

"윤지가 어떠냐? 내가 보기엔 윤지만큼 너랑 잘 어울리는 색시감이 또 없을 것 같은데..."

"!"

"네 어머니의 반대 쯤은 내가 맡아 해결해 주마. 언제 날을 잡아 윤지에게 청혼을 하는 게 어떻겠니?"

아아! 아버지!

정우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얼싸 안았다.

아버지 또한 윤지를 며느리감으로 점찍고 있었으며 윤지와 정우가 은근히 좋아하고 있다는 것 또한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늘 과묵 하기만 한 아버지가 오늘만큼은 태산만큼 위대해 보여 정우는 뜨겁게 뜨겁게 아버지를 얼싸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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