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선데이에는 해마다 재미있는 두 행사가 있다.  운동에는 별로인 친구들과 모여서 가지는 ‘Naked Ladies Tea Party’와 뒤따라 남편의 로타리 클럽 멤버들이 수퍼 보울 함께 보려고 모여서 가지는 ‘Chili Cookout’이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칠리를 만들어 슬로우 쿠크에 넣어 놓고 나는 집안을 다니면서 나한테 큰 옷들을 챙겼다.  몇 년 전부터 토박이 친구들과 각자가 입다가 지루한 옷들이나 별로 입지 않는 옷들을 갖고 모여서 서로 교환하는 티파티를 한다.  올해는 불경기이니 다른 소품들도 가져 오자고 해서 사용하지 않는 핸드백도 몇 개 꺼냈다.  모두가 골라가고 남은 옷들은 학대 받은 여성을 위한 은신처에 기부한다.

우리는 금붕어들이 펄쩍이는 작은 연못 뒤로 대나무와 아이비가 숲을 이루며 자연스런 울타리를 만든 뒤 뜰을 가진 한 친구의 집에 모였다.  그리고 연못 주변의 테이블과 긴 나무의자에 각자가 가지고 온 물건들을 펼쳤다.  다양한 옷들과 스카프, 신발, 핸드백, 책들을 곳곳에 전시하니 꼭 야드 세일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었다.  서로에게 어울리는 옷들을 골라주고 입고 나오면 몇 개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을 터뜨리며 소란을 피웠다.  그리고 차를 마시며 익살스런 친구들이 풀어내는 이야기에 웃음을 멈추질 못했다.  남부여자들은 우아하게 나이를 먹는다는데 그 우아함은 실로 여러 형태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뜻이 맞는 중년여자들의 모임에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잊고 놀다가 남편의 독촉전화를 두 번이나 받고서야 일어났다. 

남편의 로타리 클럽 멤버들은 수퍼보울 게임 전에 모여서 각자가 만들어온 칠리를 경쟁하는 관습이 있다.  오래 전에 나는 점잖은 회원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내가 요리한 칠리를 열심히 홍보했다.  그때는 모두가 심사관이었다.  텍사스에서 몇 년 살았던 나는 나름대로 칠리를 잘 만든다.  재료를 잔뜩 넣고 매운 고추를 조금 넣어서 은근히 요리한 내 칠리는 약간 매콤하나 부드럽고 감칠맛이 있다.  체면상 내 칠리를 먹어준 사람들 덕분에 그때 나는 가장 맛있는 칠리, 매운 칠리, 먹음직한 칠리 등 상을 모조리 휩쓸었다.

내 극성은 로타리 클럽 멤버들 사이에 한동안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무안했다는 남편은 수퍼 선데이에 다시는 칠리를 만들지 못하게 했다.  그 후로 나는 다른 스낵거리를 가지고 가서 남의 칠리를 먹었다.  하지만 올해는 새벽에 골프 치러 나간 남편 몰래 다시 칠리를 만들었다. 

똑똑한 남편은 옛 기억을 쉽게 잊지 않았다.  그래서 칠리 콘테스트가 열리는 시간보다 한 30분 늦게 우리가 도착하도록 머리를 썼다.  하지만 아무도 계획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칠리를 들고 도착했을 때는 아직도 심사관들이 칠리를 맛보며 심사를 하던 중이었다.  늦었지만 내 것도 포함되었다.  내가 홍보하지 않아도 이번에는 남편 덕분에 저절로 광고가 된 셈이었다.  모두 15 팟의 칠리들이 판정을 기다렸다. 

나는 낯익은 지인들과 해후하며 수퍼보울의 뜨거운 열기를 조금 나누어 받았다.  풋볼이 종교인 남부이다.  특히 어번 대학과 앨라바마 대학 출신 선수들이 두 팀에 한 명씩 있어서 이번 게임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았다.  자신이 응원하는 대학출신 선수가 있는 팀을 응원하느라 모두들 열성을 피웠다.

드디어 심판이 끝났다.  한 심사관이 커다란 벽 보드에 우승한 칠리3팟을 공표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나의 칠리가 3등을 했다.  상품으로 받은 예쁜 선물 포장을 여니 그 속에서 16oz의 커다란 소화제병 Pepto-Bismol이 나와서 모두 한바탕 웃었다.  소화제를 앞에 두고 나는 여러 사람들이 만든 칠리를 맛있게 먹었다. 

막상 게임이 시작되자 우리는 커다란 스크린 앞에 둘러 앉았다. 올해의 수퍼보울은 정말 재미있는 한판이었다.  옆에서 쏟아내는 환호소리와 벌떡 일어나 춤을 추는 지인들이 정겨웠다.  이런 것이 바로 사람사는 모습이다.  나는 올해도 두 번이나 훈훈한 사람들의 정을 즐긴 진정한 수퍼 선데이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