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커피를 끓여주고 남편은 일찍 출근을 했다.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대충 훑어 보다가 개와 집을 나섰다.  이웃에 갓 태어난 어린 양이 너무 귀엽다.  한 두 블록쯤 걸으면서 볼일을 마친 개는 몸을 획 돌려서 집으로 가잖다.  이제 사람 나이로 80살이 되어가는 개는 예전처럼 통통 튀는 정력이 모자란다.  싫고 좋음도 분명하고 힘 드는 일은 피하려고 한다.  덕분에 내 운동 시간은 짧아지고 게으름은 늘어간다. 

하루 종일 개와 나는 같이 지내며 많은 대화를 나눈다.  내 그림자인 진돗개와 내가 나누는 비밀은 완벽하게 우리 사이에 멈추어서 좋다.  봄 기운이 상쾌한 아침이라 우리는 앞 뜰에 머물렀다.  잔디 사이로 솔솔 돋아 오른 잡풀은 눈에 가시였다.  아침이 다 가는지도 모르고 가시 뽑기를 했다.  뻐근한 허리를 추스르며 일어서니 앞집 우체통을 감싸고 핀 노란 꽃이 참 예뻤다.

집안에 머물기엔 어수선한 날이었다.  연방 상원과 하원에서 떠들썩하게 거론되는 경기 부양안의 내용에 머리가 산란해졌다.  액수가 엄청나게 커서 아예 실감이 나지 않는다.  구멍 난 항아리에 물을 잔뜩 부으면 일시적으로는 채워지는 착각은 주지만 결국은 물이 빠져나가는 서글픈 해결안 같다.  새 대통령이 신임하는 잘난 사람들,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도 멀쩡한 그들이 과연 작은 사람들, 세금을 열심히 내야 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바로 세우리라는 확신이 없어진다. 

최근에 인공수정으로 기록적인 8쌍둥이를 낳은 여자의 뉴스에는 마음이 산란해 졌다.  전에 모두 인공수정으로 6명의 아이를 낳았던 이 용맹한 여자는 무직에다 미혼모이다.  내가 아이들의 출생을 선뜻 축하해 주지 못하는 마음은 현실적이다.  방 하나에 14명의 아이들과 살겠다는 이 무지한 여자의 병적인 생활태도가 그렇잖아도 부도난 켈리포니아 주 정부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 14명의 아이들에 대한 장래이다.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즐기되 정부나 남에게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 했다.  욕심과 만용을 피우는 이런 시민들 탓에 미국 경제가 지금의 곤경에 처했다.  자기 자신을 알고 능력에 맞게 처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책임 정도는 물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당연하게 손을 벌리는 그들의 처세에 기가 질린다.  그 동안 열심히 근검절약하며 살아온 나는 덩달아 피해자가 된 바람에 우울해진다.

쇼핑몰에 들러서 버터에 푹 젖은 커다란 프레첼을 두 개 샀다.  내 딸들이 즐기던 말랑한 빵을 들고 공원에 갔다.  확 터진 공간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고 싶었다.  미세한 바람에 간지러움을 느끼며 물오른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았다.  새로운 생명이 터지는 봄의 소리가 사방에서 어지러웠다.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진 연못을 활발히 누비는 오리 떼들이 평화를 주었다.  올해는 오리가족이 더 늘었다. 

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래서 사람들에 뭏혀 온 세상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 앞을 걸어간 사람은 친구를 닮았다.  프레첼을 먹으면서 내가 가진 축복을 생각해 봤다.  남편은 열심히 직장 다니며 돈을 벌어준다.  딸들은 아름답게 커서 성인들이 되었다.  주위에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가 있고 아직 팔팔한 건강이 있다.  남보다 좀 달랐던 직업 덕분에 세계 여러 나라를 구경했다.  그리고 이제는 정부로부터 어김없이 매달 퇴직연금을 받는다.  지금 하고 있는 나의 3번째 경력인 일거리는 집에서 언제나 할 수 있다.  덕분에 아름다운 날씨에 이렇게 공원에 나와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도 있다.  나는 크고 작은 축복들이 많은, 분명 행복한 삶을 산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많은 좋은 사람들을 떠 올리면서 어제와 오늘은 완연히 다름을 느낀다.  이 산뜻한 느낌으로 나는 과거를 현재로 그리고 다시 미래로 연결하며 계속 열심히 살려고 한다.  이 ‘어떤 하루’가 사실은 특별한 날이다.  바로 내 생일날이다.  미역국은 꼭 끓여서 먹으라던 친정어머니의 목소리가 공원에서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