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독일인들이 몽고메리를 방문했다.  미 국무부의 초청으로 온 이들은 모두 독일에서 미국의 FBI 같은 법과 질서를 관할 하는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3주 동안 미국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증오 범죄의 실태와 그리고 대처하는 방안들을 살펴 보고 있다.  인종차별과 편견이 워낙 심했던 남부에 이들은 대단히 관심이 많았다. 

이들은 모두가 체코 국경 근처의 예전 동독지역 사람들이었다.  그곳에서 급증하는 과격주의자들로 고심한다는 이들을 만난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강한 커피로 잠을 깨우는 나와 달리 이들은 완전히 깨어있었다.  나는 냉철한 인상을 주는 사람들 중에서 눈빛이 조금 부드러운 남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비스킷과 그리츠를 먹으면서 우리는 독일과 미국 그리고 한국을 이야기했다.    

그가 사는 지역에는 개방과 함께 찾아온 낯선 인종과 문화를 거부해서 일어나는 증오 범죄가 늘었단다.  이번에 본 미국의 상황은 그의 안목을 넓혀 주었다.  그는 미국의 증오 범죄에는 권총이 있고 독일의 증오 범죄에는 주먹이 있다며 그곳의 상황을 축소시키며 웃었다. 

인종이나 종교 등 여러 이유로 타인이나 재물을 공격하는 증오 범죄가 많이 늘었다.  근래 앨라바마에서는 흑인보다는 오히려 동성애자들이나 히스패닉과 불체자를 상대로 한 범죄행위가 많이 늘었단다.  경기침체로 상황이 악화되니 사람들의 마음에서 너그러움은 줄어들고 매사에 날카로운 지탄이 는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증오 범죄에 관한 진상보다는 그에게서 통일된 지 20년이 된 독일의 현실을 듣고 싶었다. 

그는 독일이 통일 되기 전에는 한번도 자유 민주국인 서독을 방문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이모를 만나러 2번이나 서베를린을 방문했었지만 그와 다른 가족들은 서방세계에 대한 많은 호기심만 갖고 살았다.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배웠고 영어는 말하기 보다는 주로 읽고 쓰는 것을 배웠다.  통일이 된 후로 그는 본격적으로 영어 회화를 배웠고 이제는 러시아어는 거의 잊었단다. 

서쪽에서 불어온 민주화 바람은 사회 공산주의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의식을 쉽게 바꾸지 못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진리였다.  40년 분단의 이념과 체제의 차이가 예상보다 컸다고 했다.  통일된 지 20년이 지난 아직도 그가 사는 지역 주민의 10퍼센트 정도는 적응을 못하고 있단다.  그는 최소한 앞으로 30년이 더 지나면, 2세대가 완전히 바뀌고 나면 독일은 진정한 통일을 할 것 이라고 봤다.

40년 분단되었던 나라, 그나마 그들은 분단 동안 인도적인 차원의 가족교류가 허용되었었다.  그런데 한반도는 남과 북이 분단된 지 55년이 지났다.  가족들의 인연은 철저하게 차단되었다.  어쩌다 가끔 북쪽의 기분에 따라 남북의 가족들이 서로의 소식을 듣고 심지어 살아생전 만나보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분단가족들은 서로의 생사를 모르고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거나 또는 분단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다가 이제는 기력이 떨어진 노인들이 되었다.  그들의 후손들은 친지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남과 북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 만약에 한반도에 통일이 된다면, 그 적응의 아픔은 독일이 경험하고 있는 두 세대의 물갈이로 깨끗이 회복될까?  폐쇄된 사회에서 경직된 나름의 교육을 받고 자란 북한의 젊은 세대와 자본주의 자유의 절정을 살아가고 있는 남한의 젊은 세대의 만남을 상상하니 가슴이 무거웠다.  단일민족의식과 배타심이 강한 한국인들이다.  어쩌면 북쪽 땅에서도 증오 범죄가 일어날 지도 모른다.                 

그의 지역에 관광객을 유치하려 노력한다는 그는 훗날 내가 독일을 찾으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자기 고장을 잘 안내해 주겠다며 명함을 주었다.  이번에 독일에서 온 손님은 신선한 충동이었다.  그는 내가 평소에 잊고 지내는 모국의 현실을 재인식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