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장례식에서 고인에 대한 추도사를 통해서 더러는 아는 사실이고 대부분은 전혀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그가 생전에 채웠던 자리를 확인하는 셈이다.  한번은 그저 평범한 이웃 노인의 장례식에 갔다가 그가 젊은 시절 활발하게 뛰었던 대학 풋볼 선수였고 또한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적도 있었다.  

얼마 전에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양심이었으며 정신적인 지도자였던 그의 죽음은 비록 미국 남부에 살지만 나한테도 충격이었다.  정의의 편에 서서 늘 약한 자들을 대변하고 기도로써 감싸주었던 그는 한국의 인권과 변동이 심했던 민주주의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용감한 사제였다.  그는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길잡이였다.      

그의 인품을 직접 체험한 많은 사람들이 그가 생전에 보여준 소탈함과 사랑을 이야기 했다.  모두가 가슴이 저릿하게 감동을 주었다.  특히 법정 스님은 종교를 떠난 인간적인 추모 글을 썼다.  그 중에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라” 라는 글귀는 내 마음에 강하게 새겨졌다.

김수환 추기경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난 그의 뒷모습이 아름다움에 통감했다.  욕심 없이 순수한 열정으로 낮은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봉사했던 그는 한국의 역사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그래서 종교의 벽을 넘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래서 그가 심은 사랑의 뿌리가 모두의 가슴에 단단히 자리잡는 기적을 바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난 4일 후에 내가 존경하는 또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이 산 86년 삶의 꼭 반인, 43살을 산 아일랜드 시인이며 작가인 크리스토퍼 놀란 이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수 년 전 어떤 아일랜드 시인의 시를 통해서였다. 

그는 출생 시 산소 부족으로 뇌에 큰 손상을 입었다.  벙어리와 사지마비로 평생을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머리와 눈만 약간 움직이는 아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던 그의 부모는 그의 그림자로 그의 눈빛만 보고 그의 의도를 읽었다.  어린 그의 눈에서 총명을 읽은 어머니는 인내로 알파벳을 가르쳐 주었고 그의 아버지는 아름다운 노래와 이야기를 그에게 줄기차게 들려 주었다. 

그는 이마에 나무 작대기를 뿔처럼 달고 오랜 시간이 걸려서 스펠을 하나씩 타이핑하며 대화를 했다.  그가 타이핑할 때 그의 어머니는 늘 그의 머리를 잡아 주어야 했다.  이렇게 의사 표현을 시작한 그는 그의 가슴에 가득하게 갇혀있던 말들을 홍수처럼 쏟아 내었다.  그는 시를 썼고, 자서전을 썼으며 또한 소설을 썼다.  보통 사람보다 수 만 배의 노력으로 삶과 사랑을 노래한 그의 열정은 멀쩡한 사지를 가진 나의 게으름을 꾸짖었다.  그는 신체 장애를 극복한 인간만세를 증언했고 나는 그를 통해서 삶의 신비함을 느꼈다.  재미있는 것은 근래에 히트를 친 영화, 배트맨 다크나이트의 영국인 감독 이름이 바로 그의 이름과 같은 크리스토퍼 놀란 이다.  

며칠 사이로 세상을 떠난 두 사람.  나는 이 두 사람을 직접 만나 본 적은 없다.  평소에 그들의 글이나 뉴스를 통해서 그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이 열심히 살았던 삶의 자세와 그들이 보여준 인간애에 깊은 감동과 존경심을 가졌었다.  그들은 생전에 자신 몫의 사랑을 열심히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법정스님의 말처럼 “하느님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보여준 뒷모습은 고고하고 아름다웠다.  이제 나는 이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하면서 사순절에 이들처럼 이웃과 사랑을 나누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