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올해는 죽음이 너무 가까이 다가 왔다.  평소에 고의적으로 피하던 죽음의 실체가 연거푸 내 의식을 뒤흔든 후, 나는 생활의 의욕을 조금씩 잃어버리고 있었다.  파랗게, 새 생명을 뿜어내는 나무아래 서서도 나는 그 생명의 힘찬 환성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더욱이 세상을 떠난 친구의 생전에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늘 나를 움츠리게 했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남부에서 자꾸만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강한 심장의 박동을 가진 대도시, 워싱톤 DC는 이런 나의 침체를 묵살했다.  많은 사람들에 섞여서 목적지 가진 사람처럼 빠른 속도로 복잡한 거리를 걸어 다니며 나는 나의 우울함을 조금씩 거리에 떨구었다.  혼자 다녀도 절대로 심심하지 않았다.     

시인 롱펠로우의 동상 앞에서 한동안 주춤대었다.  평소에 즐기던 그의 시 구절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 가슴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뒤죽박죽으로 도무지 분명한 윤곽이 없었다.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대성당을 찾았다.  성당 왼편에 있는 성모님의 동상 앞에 무릎을 끓었다.  한 손을 아래로 내민 그분의 손에 내 손을 얹고 평안을 구했다. 

돌아 다니다 피곤하면 도시에 흔한 미술관, 박물관에서 쉬곤 했다.  작년 4월에 문을 연 Newseum은 충분히 내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한쪽 벽으로 가지런히 전시된 전 세계 신문 1면의 톱기사를 훑으며 어지러웠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땅 위의 세상을 채우고 있었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TV의 역사를 따르니 수 백 년의 세월이 바로 눈앞에서 압축되어 갔다.  지나간 시절의 역사적인 사건들은 바로 오늘의 사건들로 연결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약간 쌀쌀한 날씨에 움츠리다 정신을 차리니 꿈틀대는 의식이 있었다.  나는 아직 살아 있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고 보고 싶은 곳들도 너무 많았다.  근사한 계획들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급해지자 자연히 내 발걸음도 빨라졌다.  이번 워싱톤DC 나들이는 내게 필요했던 삶의 의미를 찾아준 근사한 휴가였다.    

다시 따스한 남부로 돌아와서 겨울 옷들을 훌훌 벗고 의욕에 찬 하루를 맞았다.  그러나 돌아온 지 이틀째 되던 날, 나는 또 한 사람의 지인을 잃었다.  작년에 이곳에 글을 올린 적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 여자’의 남편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는 참 정정했었다.  황당하게 남편을 잃은 그의 아내를 위로하면서 나는 내 자신도 위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지인을 잃으면서 내 자신도 조금씩 죽어감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세상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세계이다.  살아 있는 동안 열심히 맹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나는 가까운 지인들을 잃으면서 더욱 분명하게 깨닫는다.  신선한 봄의 들판에 피어난 야생 꽃들에 가슴이 뭉클하며 살아 있음의 축복에 감사한다.  이제는 “…인생은 진실, 인생은 진지한 것…행동하라,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한 롱펠로우의 인생 찬가를 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