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민 와서 적응할 때, 미국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다고 들었다.  정부에 세금을 내는 것과 죽음.  죽음에 대해서는 바로 이해했지만 세금 내는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직장을 다니면서 월급에서 어김없이 떼어나가는 여러 종류의 세금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해마다 신고해야 하는 미국의 확실한 세금제도를 겪으면서 그 말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 

국민의 권리 중 가장 큰 것이 투표하는 것이라면, 의무 중 가장 큰 것이 세금을 내는 일이다.  그래서 세금신고의 마지막 날인 4월15일은 생일보다 더 중요해져 버렸다.  그런데 요즈음 미국인들의 40퍼센트가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수입이 적은 사람들은 세금특혜를 받는다지만 고수입자들이 세금을 피하다가 IRS의 철저한 그물에 걸려서 허덕이는 뉴스에는 연민이 가지 않는다.  연방정부의 여러 부서 중에 IRS처럼 무서운, 두려움을 떠올리게 하는 부서는 없으리라. 

착한 국민인 우리는 꼬박꼬박 열심히 세금을 낸다.  사실 월급쟁이여서 어김없이 봉급에서 공제하는 세금이고 세부적인 세금 법규들이 확실해서 엉뚱한 길로 빠질 여유가 없다.  만약에 자발적으로 세금을 신고하는 방식이라면, 제대로 세금을 제 때에 낼지는 모르겠다.    

해마다 우리 집 세금신고는 똑똑한 남편이 한다.  그는 엔지니어답게 꼼꼼하게 공제받을 수 있는 항목을 나보다도 더 잘 챙긴다.  이왕 해야 하는 일, 천천히 준비해서 신고하면 좋으련만 남편은 절대 아니다.  미리 준비하는 나의 일 처리 버릇과 다른 그의 막판 습관으로 세금신고 마감날에는 우리 부부의 신경전이 극에 달한다. 

그는 1월부터 적당히 묵살하고 있다가 4월에 들어서야 슬슬 세금 서류들을 분류한다.  그리고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까지 버틸 수 있는 한 미루었다가 세금신고를 한다.  세금을 더 물어야 하는데 왜 일찍 내느냐는 남편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류는 미리 작성해 놓자고 해도 남편은 어림없다.  나이든 남자의 고집은 고목의 둥치로 단단하다.      

그래도 요즈음은 터보텍스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고 온라인으로 세금을 접수시키니 상황이 훨씬 좋아졌다.  남편은 4월 15일 자정 몇 분 전에 세금서류 작성을 끝내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우리는 시간에 쫓기며 중앙우체국으로 차를 몰곤 했다.  그땐 경찰들이 중앙우체국 앞길을 일방통행으로 바꾸고 교통을 지시했는데 놀랍게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천천히 움직이는 가관이었던 긴 대열에 끼여서 우리는 혈압 내리기 호흡을 했었다.  성조기 색깔의 모자를 쓴 우체국 직원들에게 세금서류를 전하고 돌아오며 제발 그 대열에서 탈피하자 해도 다음해에 우리는 어김없이 그 대열에 있었다.          

올해는 잔소리를 하지 않고 지난 며칠 눈으로만 남편의 거동을 따랐다.  내 시선이 따가워도 아랑곳하지 않고 골프채널 열심히 보던 남편은 오늘은 출근하지 않고 묵직하게 컴퓨터에 앉았다.  마지막 날이니 숙제 하느라 바쁘다.  그가 고역을 치르고 있지만 이런 남편을 지켜보는 나도 고역이다. 

오늘은 전국 여러 곳에서 정부가 세금을 사용하는 정책들에 불만인 사람들이 Anti-Tax Tea Party 항의 데모를 벌인다.  경영을 잘못한 사기업인 은행과 주택 융자회사를 구제하려고 쏟아 붇는 막대한 액수에 불평이 많다.  천문학적 숫자의 정부 예산책정과 지출에 대한 불만도 많다.  그리고 불황기라 힘 드는데 예산 부족으로 올라가는 지역세등 다양한 세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보통사람들이다.      

IRS는 웹사이트에서 좀 더 친절하고 부드러운 자세로 조언을 한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세금을 내는 시기를 늦추더라도 마감날까지 꼭 세금 신고를 하던지 연장신청서를 접수시키라고 한다.  제 때 신고하지 않으면 벌칙금도 가중됨을 분명하게 상기시킨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일 테지만 특히 미국에서 세금을 내는 의무는 죽음과 같이 정말로 피할 수 없는 사실임을 새삼 깨닫게 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