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함께 모여서 뜨개질하자는 날이라던 6월 둘째 토요일, 이곳에도 이 모임이 있었다. 이 행사는 2005년에 중부에 사는 Danielle Landes가 혼자서 뜨개질을 하며 외로움을 느끼고 착안했다.  함께 모여서 뜨개질하며 활기찬 생활을 하자고 시작한 움직임에 동참하는 지역이 해마다 늘었다.  세계 여러 나라와 미국의 많은 도시로 확산된 올해의 행사에 몽고메리도 가담했다.  신나게도 퀼트나 물레 돌리는 사람들도 모두 이 모임에 초대받았다. 

민속학을 공부하고 남부의 민간설화를 모으는 한 토박이 친구가 취미로 물레를 돌리고 뜨개질을 한다.  이번에 이 친구가 앞장서서 몽고메리의 모임을 주선해서 그녀를 응원하려고 퀼트 하는 한인 여성들 몇 명과 함께 참석했다.  올드 앨라바마 타운에 있는 전 세기의 목조 건물에 하나 둘 모인 사람들은 끼리끼리 여기저기 의자에 둘러 앉아서 소곤대며 각자 가져온 뜨개질이나 퀼트를 하고 물레를 돌렸다.  조금 천천히, 느긋하게 살아가는 여유 있는 아름다운 모습들 이었다.    

마침 이 움직임은 유엔이 지정한 자연섬유의 해에 맞추어서 일어나서 세계에서 가장 긴 스카프를 짜는데 참여할 기회도 있었다.  각 지역 사람들이 조금씩 뜨개질한 것이 10월에 뉴욕에서 다 연결된다고 한다.  뜨개질은 나이든 사람들의 취미생활이 아니라 아무나 즐길 수 있는 유행성 취미이다.  어린 여자아이들 세 명이 둘러 앉아서 뜨개질을 배우며 스카프를 만들던 모습이 귀여웠다. 

특히 한인여성 퀼트들 옆에서 바느질을 하던 중년의 여자는 한 성당의 퀼트 모임 회원이라고 했다.  20명의 여자들이 매주 함께 모여서 무릎 덮을 작은 담요나 목칼라 등 다양한 퀼트 제품을 만든다고 한다.  그들은 만든 작품을 병원이나 양로원, 암 센터의 환자들에게 기증한다.  자신들의 취미생활을 사회로 환원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알게 되니 내 작품에 욕심을 부리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밝은 램프 옆에서 퀼트를 하는 버릇이 든 나는 실내가 환하게 밝지 않아서 퀼트 하는 것은 포기했다.  몰려오는 검은 구름에 하늘이 내려 앉던 밖의 날씨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돌아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작품에 감탄하다가 토박이 친구들과 둘러 앉아서 최근에 일어나는 몽고메리 소식을 나누었다. 

뜨개질을 하면서 명상도 하고 스트레스도 해결한다는 한 친구가 이렇게 모여 앉아서 주말을 보내니 너무 좋다며 밝게 웃었다.  이 토박이 친구의 소박한 기쁨이 며칠 전에 되찾은 옛 친구가 보낸 포스트 카드를 생각나게 했다.  다시 읽으려고 집어 든 책갈피에 외로움이 응어리진 포스트카드가 숨어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녀를 잊고 있었다.  긴 생머리에 눈 웃음이 정겨웠던 그녀는 20대 초에 4식구의 가장이 되었다.  청춘을 포기했고 자신의 삶보다는 가족의 삶을 살아야 했었다. 

안개 자욱한 밀라노의 아침.  방랑자라는 느낌으로 호텔방에 앉아 있던 친구.  창 밖으로 바쁘게 지나가는 전차를 보며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해 하던 40대의 그녀가 보낸 엽서는 1996년 소인이 찍혀 있었다.  굵직한 필체처럼 개성이 강하던 그녀는 가끔씩 그렇게 그녀의 외로움을 전해오곤 했다.  그때 그녀가 본 전차는 어디로 갔을까? 

어린 시절 러시아 시인 푸쉬킨을 좋아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던 그의 시 구절은 나를 늘 삶의 한가운데 서게 했다.  그의 시는 환경에 충실하고 내일에 희망을 심도록 고무했다.  그러나 힘들었던 이민생활 속에 스며들었던 외로움은 둔한 아픔으로 아직 가슴에 남아있다.  불쑥 예전처럼 무겁게 쏟아지는 빗속을 걷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의자에 앉아서 “세라비…” 라 중얼거린 것은 나이 탓 일터이다.       

더욱이 외로움에서 탈피하고 서로 의지하며 뜨개질하자는 날, 나는 편하게 다독여 주는 마음 통하는 친구들 옆에서 옛 친구를 그리워했다.  낯선 도시의 호텔에서 창밖에 지나가던 전철에 자신을 실어 보내고 싶었던 그 친구의 오늘은 이곳 친구들에 둘러 쌓여서 마냥 편안한 나처럼 편안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