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변화에 익숙하다.  더러는 쉽게, 더러는 힘들게 받아 들이지만, 일단 적응하면 자연스럽게 변화된 생활을 살아간다.  어떤 형태의 변화이든, 그것은 삶의 본질을 바꾸고 일상에 흡수된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인한 불경기 생활에는 적응하기 힘든 변화들이 많다. 

이번 주 신문에 앨라바마의 실업률이 25년 만에 높은 포인트인 9.8 퍼센트가 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몽고메리의 실업률이 작년보다 2배나 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있었다.  전국적인 여러 경기침체 상황의 여파가 내 생활 속에 여러 형태의 변화를 몰고 왔다. 

지난 몇 달, 집 가까이 있던 대형 식품점들과 업체들이 몇 이나 문을 닫았다.  그들이 문을 닫을 때 가진 폐업 세일에서 별로 필요 없는 물건들을 잔뜩 사면서 즐거움 보다는 미안함이 많았다.  반값으로 파는 포도주에 욕심난 남편이 25병을 고르는 동안, 나는 일 년 마실 커피를 집었고 여러 해 먹을 소스들을 골랐다.   

쇼핑센터의 옷 세일도 완전히 불경기 모드다.  30퍼센트 세일이 내려서 50퍼센트 세일하더니 다시 덤으로 40 퍼센트 더 깎아 주는 바람에 옷을 사게 된다.  양복을 한 벌 사면 한 벌을 무료로 준다더니 이제는 한 벌 사면 두벌을 무료로 준다는 광고에 남편도 유혹을 받는다.  이렇게 파격적인 세일에 익숙해졌다가 경기가 회복되면, 그때는 제값 주고 물건을 사지 못할 것이다.    

얼마 전에는 이웃에 있는 식당에서 한 사람 먹으면 함께 간 사람의 저녁은 무료라는 쿠폰이 와서 남편과 둘이 가서 스테이크와 랍스터로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여러 미국식당에서도 비슷한 광고를 하며 손님 끌기에 애를 쓴다.  외식을 자주하니 이런 광고에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된다.       

그런데 이 불경기가 따갑게 의식을 파고 든 것은 오늘 들린 반스앤노블 서점에서였다.  몽고메리에 하나밖에 없는 이 서점이 안타깝게도 문을 닫는다.  다른 대형 서점보다 분위기가 좋아서 즐겨 찾았는데 이번에 반쯤 텅 빈 공간을 보니 내 가슴 반쪽도 썰렁하게 비어갔다.  50퍼센트 세일한다는 사인들이 여기저기 책장 위에 외로운 허수아비처럼 꽂혀 있었다. 

몇 명의 손님들은 휑한 분위기에 남아있던 책들을 대충 보곤 서점을 떠났다.  뭔가 아쉬워서 머뭇거려도 책 표지들이 가슴에 담기지 않았다.  평소에 가졌던 포근함 보다는 슬픈 감정에 밀려서 나도 곧 밖으로 나왔다.  예전에 좋아하던 한 작은 서점이 이 대형서점이 문을 열자 한동안 버티다가 결국 문을 닫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심각한 불경기가 이 서점의 문을 닫게 한다.  완전한 de ja vu다. 

대도시 보다는 천천히 찾아온 불황이지만, 이곳 작은 남부 도시에도 불경기의 음습한 변화가 이렇게 어김없이 번져서 내 생활 깊숙이 스며 들었다.  책장조차 없어져 버린 서점의 텅 빈 공간을 보면서 가졌던 허전함은 요즈음 단짝을 잃은 남편의 얼굴에도 보인다.

몽고메리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인 일본기업은 자동차업계 불황의 타격을 많이 받았다.  구조조정을 해서 직원의 수를 반으로 감원시켰고 일주일씩 가동을 멈추기도 여러 번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본 본사에서 주재원인 일본인 사장의 직책을 없앴다. 

기러기 아빠였던 일본사장은 지난 3년 반 남편의 단짝이었다.  주말마다 남편과 골프를 쳤고 음악회나 풋볼게임을 함께 보러 다닌 죽이 맞던 친구였다.  지난 주에 가진 그의 송별회에 모인 남자들은 별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갑자기 떠나게 된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들은 말짱한 의식으로 서운해했다. 

요즈음 불경기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이 두려워서 신문 잡지를 열심히 본다.  악화된 경제상황이 바닥을 지나서 슬슬 회복기운이 보인다는 기사를 찾는다.  뒤숭숭한 세상살이에 꿈과 용기를 주는 명쾌한 기사 찾기에 오늘도 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