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각기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들이 같은 목적으로 만나고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과정은 아름다운 인간의 생활이라 믿는다.  이 과정에서 만나고 헤어짐은 사필귀정일 테지만 지난 주에 일어난, 한 주에 두 명의 지인을 잃어 버린 일이 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매주 화요일 아침에 모이는 시민단체인 ‘원 몽고메리’ 클럽의 멤버 두 명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은 수술 후의 부작용으로, 다른 한 사람은 그냥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삶을 사랑하고 세상사에 활발히 개입했던 이 두 사람은 많은 면에서 철저히 달랐으나 세상을 향한 근본적인 생활자세는 너무나 닮았었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서 변화를 기다리지 않고, 옳다고 믿는 변화를 위해서 맹렬히 뛰었던 사람들이었다.

키가 컸지만 절대로 싱겁지 않았던 백인여자 바바라는 뛰어난 바느질 솜씨를 가졌다.  어떤 조각천이라도 그녀의 손을 통해서 아름다운 작품으로 되살아 나곤 했다.  내가 예전에 한국에서 가져온 비단 천을 그녀에게 준 적이 있는데, 그녀는 여러 색깔의 천을 배합해서 예술화시킨 화사한 기모노 스타일의 겉옷으로 입고 모임에 와서 모두를 감탄시켰다. 

그녀는 3년 전에 생존율이 불과 10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는 췌장암을 극복한 암 승리자이다.  힘든 투병 중에도 늘 밝고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살아 있음을 감사했다.  몽고메리 공립교육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바바라는 공립교육 환경의 개선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에 열심히 참여했으며 옛 환경의 보존과 지역사회의 개선을 위해 많은 시간을 헌신했다.

이번에 작은 수술을 받은 후 그 부작용으로 생긴 내출혈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그녀와는 달리 프레드릭은 아무런 사전경고나 알려진 병이 없었다.  그는 환경 개선과 청소년 선도에 앞장서며 정상적인 활동을 하던 50대 초의 흑인 남자였다. 

그는 몽고메리의 진정한 민권 운동가였다.  빈곤한 저소득층 주택가 중심에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가난한 흑인들의 환경개선과 인종과 제도차별을 탈피하는 사회를 구현하느라 연방, 주, 시의 업무 기관을 오랫동안 들락이며 몸으로 부딪혔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노력이었지만 그는 꾸준한 집념으로 목적을 향해 줄곧 달렸다.  그는 분명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옛말을 믿었다.

예전에 군에 복무하며 독일에서 근무한 적이 있던 그는 아침 회의장에 들어서면서 독일계 멤버에게 늘 독일어로 인사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 모임에서는 특히 그의 칼칼한 목소리의 독일어 인사가 귀에 아렸다.  지역사회에 애착심이 강했고, 몽고메리 시민들의 인권옹호에 적극적이었던 바바라와 프레드릭이 비운 자리를 보며 인간의 삶과 그 한계에 좀 쓸쓸해졌다. 

요즈음은 우리가 지극히 관심 갖고 열성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동등한 민권과 사회 환경이 신기루로 느껴지기도 한다.  부끄럽게도 최근에 몽고메리 교육감의 채용을 통해서 다시 추하게 표면화 되었듯이 흑백 인종문제가 이곳에서는 아직도 모든 이슈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삶과 죽음이, 그 시작과 끝이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졸지에 두 명의 지인을 떠나 보내고 뒤에 남은 사람들은 숙연해있다.  언제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 모르는 우리 자신의 뒷모습을 두려워함이다.  그러나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노력하는 삶은 진정 보람 진 삶임을 새삼 깨닫는다.  오늘은 같은 목적을 위해서 함께 열심히 노력하던 지인들을 갑자기 잃은 아픔이 커서 좀 기운이 빠진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