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메리에서 모빌로 내려가는65번 고속도로는 굴곡이 없어 좀 지루한 도로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들과 잔디 위로 간혹 한가히 흩어진 소떼들이 눈을 즐겁게 해 줄 정도이다. 그런데 모빌 가까이 가다 보면 앳모어 지역의 왼편에 우뚝 선 17층짜리 고층 건물이 하나 불쑥 보인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는 카지노 호텔이다.
남부 바이블 벨트에 사는 앨라배미안들은 도박을 반대하지만, 이곳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운영하는 카지노라 주정부도 어쩔 수 없다. 이번 주에 이 호텔에서 하루를 묵다가 근처에 있던 인디언 보호구역을 찾아가 봤다. 앨라바마의 다른 시골 정경과 전혀 다름이 없었지만 더러 반듯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있었고 그들의 조상이 어렵게 살았던 거친 환경은 불어나는 부와 함께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포치 크릭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크다란 사인 뒤의 현대식 건물은 진료소였다. 그곳 안내원이 문화센터를 찾아가 보라고 했다. 한 반 마일 정도 더 운전해서 찾아간 붉은 벽돌의 좀 허름한 옛 건물에서 한 백인 남자를 만났다. 아버지가 백인이라는 그를 자세히 보니 약간 얼굴 윤곽에 인디언인 어머니의 흔적이 보였다. 그는 올 추수감사절 파우와우 축제의 상징을 디자인했고 보호구역의 여러 일을 맡아서 해결하는 재주꾼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구수하게 인상이 좋은 부족의 역사가를 만났다. 크릭 인디언에 관심을 갖고 물었더니 그는 나를 옆의 단층 목조건물로 안내했다. 내부가 ㅁ 형으로 확 터인 건물 안은 그가 수 년간 힘들여서 모았다는 이 부족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사진들과 자료들이 사방 벽에 온통 장식되어 있었다. 빛 바랜 사진들을 따라 조상들의 삶을 연결시키며 열심히 부족의 변천사를 설명하는 그에게서 나는 크릭 인디언들의 생생한 구술 역사를 들었다. 꼭 한편의 대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미국 대륙에 정착한 것이 12,000년도 더 된다는 원주민인 이들에게 유럽인들이 도착하면서 파란만장의 사연이 시작되었다. 평화롭게 주로 앨라바마 강을 끼고 정착해서 살던 원주민들을 초기의 유럽인들이 ‘Creek’ 인디언으로 부른 것이 그만 이름이 되었단다. 최초의 유럽인인 스페인사람 데 소토가 금을 찾아 앨라바마 땅을 밟은 것은 1540년이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온 천연두등 12가지의 질병은 90퍼센트의 부족인들과 야생 생물을 파괴시키는 엄청난 결과를 몰고왔다.
그러나 1700년대는 북미에서 가장 거대한 크릭 인디언 연합국이 앨라바마와 조지아주 거의 전역에 걸쳐서 존재했단다. 포치라는 지역에 사는 크릭 인디언들은 이 크릭 국가 한 분야의 후손들이다.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려는 백인들에게 우호적 이었던 인디언들과 백인들의 접근을 반대하던 과격파 인디언들 간의 내부 갈등이 결국 1813-4년에 크릭 인디언 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연방정부군이 개입되어서 과격파 인디언들은 전멸되었다. 이 전쟁에 참여하고 훗날 미국의 7대 대통령이 된 앤드류 잭슨은 전쟁에 든 경비를 이유로 포트 잭슨 조약을 통해서 인디언 국가의 땅 2천2백만 에이커를 몰수했다. 그리고 1839년에 조지아와 앨라바마주에 살던 크릭 인디언들을 오클라호마나 아리조나의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 사건은 유명한 ‘Trail of Tears, 눈물이 지나간 자국’이라는 인디언들의 처절하게 슬펐던 대이동 실화를 남겼다.
그 당시 연방정부에 우호적이었던 포치에 살던 작은 수의 인디언들은 연방정부를 도운 그들의 협조를 인정받아서 땅을 조금 부여 받고 계속 살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원주민들은 흑인들과 같이 백인들로부터 심한 차별대우를 받았고 극심한 생활난을 겪으면서 근근이 연명했다. 소수민족으로 크릭 인디언 문화와 전통을 지키며 살던 이들은 오랫동안 연방정부나 주 정부의 정책에서 잊혀진, 버림받은 종족이었다
1900년대 초에 등록된 포치 크릭 인디언들은 단 150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들은 북부에서 내려온 성공회 선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고 종교를 소개받았다. 민권운동이 흑인들보다 먼저 1947년에 이곳에서 시작되었단다. 인디언 아이들을 교육시키지 않으려고 스쿨버스를 보내주지 않는 카운티 교육청에 항의해서 스쿨보이컷을 하면서 이들은 권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결국 카운티에서 1949년에 인디언보호구역내에 작은 학교를 지어서 별도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단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경제적 환경을 개선하려는 여러 활동을 조직적으로 실행했으며 앤드류 잭슨과의 불법적인 포트 잭슨 조약으로 연방정부에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한 많은 노력도 했다. 그리고 연방정부에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제출한 신청서가 결실을 맺어서 마침내 1984년 8월 11일에 이들은 존재하는 ‘인디언 부족’으로 인정을 받았다. 앨라바마의 유일한 인디언 부족으로 부족인들 사이에서 선출된 9명의 위원회가 주위 5 카운티에 흩어져 있는 부족을 자치제도로 운영한다. 앨라바마 내에 존재하는 그들 나름의 작은 인디언 나라가 된 셈이다.
현재 이들은 몽고메리 근교의 2곳과 앳모어에 있는 보유지에서 카지노장을 운영한다. 150년 이상을 미운 오리들로 구박을 받던 크릭 인디언들이 지금은 앳모어 지역의 최대 고용주가 되어서 지역 경제 활성에 앞장을 섰다. 완전히 격세지감이다. 연방정부로부터 예전에 잘못된 조약으로 빼앗긴 땅값으로 나오는 돈과 카지노 사업으로 자체적인 경제력이 막강해 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부족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으면 그 혜택을 누리게 되기 때문에 부족 원이 되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은 늘어나는 혼합인종 사회에서 철저히 혈통을 따진다. 부모중의 한 사람이 인디언이면 그 자식은 50퍼센트의 인디언 피를 가졌어도 100퍼센트 인디언 피를 가진 사람들과 동등한 신분이 된다. 하지만 한 세대 더 타민족과 섞이어서 25퍼센트만 인디언 피를 갖게 되는 후손은 크릭 인디언으로서의 자격을 잃는다. 이것은 배우자의 가족과 연결되면서 그 퍼센트는 더욱 세밀하게 나누어진다.
내가 만난 한 남자는 부모 한 사람이 인디언이어서 그는 50퍼센트 인디언이었다. 그의 부인도 같은 상황이라 50 퍼센트 인디언인데 그들의 자녀들은 19/32 퍼센트의 인디언들로 인정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의 아이들이 타민족과 결혼할 경우에는 그 자손들은 인디언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게 되기 때문에 배우자 선택은 그들 집안의 중요한 이슈가 되어 있단다. 아무튼 이 자치지역 에서는 혈통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건이었다.
또 한가지 흥미로웠던 사실은 이들이 거의 대부분 스코티시-아이리쉬의 성을 갖고 있는 사실이었다. 원래 원주민들은 성이 없었다. 보통 이름에 살고 있는 지역을 붙여서 부르곤 했단다. 많이 들어온 유럽인들 중에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사람들과 관습이 많이 비슷했던 탓에 그들의 성을 많이 따랐단다.
더욱이 모든 소유물이 여자의 명의로 되어있던 모계사회였던 인디언 관습도 영향을 끼쳤다. 경제력이 있는 인디언 여자들과 결혼한 개척자들은 인디언들과 교역하기 좋은 여건에서 대부분 크게 성공하곤 했었다. 그래서 교역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또 자연히 미국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인디언 사회도 부계사회로 바뀌면서 모두들 성을 가지게 되었단다.
그리고 1791년에 포치 지역으로 이주해 온 크릭 인디언은 16 가족이었단다. 그들끼리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또 사촌끼리도 결혼을 하면서 번식했으니 현재 부족인으로 등록되어있는 3천여 명은 모두 이 16가족의 후손들로 연결된 사람들이다. 그들 말처럼 사촌과 키스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었던 셈이다. 이곳 남부 앨라바마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인디언은 한 천명 정도 되고 나머지 부족인들은 뉴욕이나 오클라호마등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일년에 한번, 추수감사절에 이틀 동안 벌리는 거대한 파우와우는 이렇게 각처에 흩어져 사는 부족인들이 재회해서 막강한 전통 문화유산을 즐기고 또 그것을 후대에 물려주는 문화축제인 셈이다.
잃어버린 인디언 전설을 찾아갔던 나는 오히려 발전하는 살아있는 전설까지 생생하게 느끼고 왔다. 앨라바마 원주민들이 보여줄 전통 문화유산은 근래 이민자인 우리에게도 소중한 행사라 우리도 보러 가자고 남편을 설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