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스카는 늘 그림 속에 있었다.  눈 덮인 산들과 빙하, 그리고 추운 지방에 사는 야생동물들.  눈 부시게 장엄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을 자랑하는 곳.  언젠가는 한번 가 보고 싶었지만 예전에 그곳을 다녀본 남편은 알라스카 방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러다 올 봄에 뉴욕 사는 선배와 알라스카를 함께 가자고 약속했다.  우리는 두 사람 다 참 용감했다.  서로 잘 모르면서도 대학 선.후배라는 인연 하나로 12일을 둘이서 한 방을 사용하고 함께 움직이는 여행을 결정했다. 

뉴욕에서 근 30여 년을 살고 있는 선배는 완벽한 멋쟁이 뉴요커였고, 군대생활하며 떠돌아 다니며 살다가 남부에 정착한 나는 영락없는 시골뜨기였다.  서로의 살아 온 생활과 환경이 달랐듯이 우리는 각자의 문화나 철학도 참 많이 달랐다.  이번 여행은 낯선 알라스카만 발견한 것이 아니고 전혀 다른 우리 두 사람의 삶을 서로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

세계에서 찾아온 3천여 명의 관광객들과 밴쿠버에서 알라스카행 거대한 선박에 올랐을 때, 나는 앨라바마는 까마득히 잊었다.  크루즈가 처음인 우리는 배 안에서의 색다른 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우리 방의 창 밖 발코니 옆에서 출렁이던 파도 소리에 흥분했다.  특히 아침을 맞아 들이는 바다의 정경은 늘 신선했고 작은 우주인 선박 안에서 헤매고 다니던 경험도 재미있었다.

바쁜 일상에서의 탈출은 그렇게 쉽게 찾아 왔다.  아주 느긋하고 편하게 의식을 놓고, 언제나 원하는 시간에 잘 차려진 음식을 먹었고 추운 기운을 떨치고자 뜨거운 차를 자주 마셨다.  선배와 나는 매일 서로를 조금씩 알아 가면서 또한 선박이 닿았던 작은 항구도시들도 조심씩 알아갔다. 

원주민들이 부족과 직업을 알리는 상징을 거대한 원목에 조각해서 집 앞에 세웠던 토템 폴은 여러 번 뒤돌아 볼 정도로 매력적인 문화유산이었다.  그리고 강을 빼곡히 채우고 줄곧 상류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던 연어들의 움직임은 놀라운 정경이었다.  비스듬한 경사길 위의 집 옆에 있던 긴 계단들이 공중도로로 인정되어서 이름까지 붙어 있다는 설명에는 감탄을 했다. 

어부들과 골드러시를 찾아온 옛 사람들의 흔적은 곳곳에 있었다.  각 지역의 특수한 환경에 참 잘 어울리는 생활을 했던 그들의 억척스러웠던 삶의 터전은 지금은 관광지로 변해서 지역 색깔을 보탰다.  작은 기념관들에서 그들의 흔적과 원주민들의 문화를 배울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철저하게 관광객 위주의 상품화된 거리에 크루즈 선박 4대에서 쏟아져 나온 1만 여명의 관광객들이 좁은 거리에서 부딪혔다. 

천천히 북쪽으로 올라간 선박은 이틀 동안 여러 모습의 빙하 앞에 멈추어 섰다.  무거운 빙하의 일부가 부셔져 바다에 떨어짐을 보면서 내 속에 가졌던 상념도 하나씩 바다에 내려 놓았다.  차갑도록 시린 빙하와 빛과 그림자에 떨던 파도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내 딸이 다닌 존스 홉킨스나 하버드대학 이름이 붙은 빙하를 보면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역시 이곳은 미국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