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TV에서 침 튀기는 토론의 주제가 하필이면 인종문제라 유감이어서 얼른 채널을 바꾸었다.  불경기의 여파가 생활 곳곳에 영향을 주어서 우울한데 의료개혁 법안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제쳐 놓고 엉뚱하게 인종문제가 더 크게 불꽃을 튕긴다. 

날카롭고 지적인 흑인이 백악관에 들어가자 그 동안 억제되어 있던 인종문제가 본격적으로 삐쳐 나오며 코걸이 귀걸이로 그의 정책에 걸려서 볼꼴 사납더니 이제는 노골적이다.  이번에 지미 카터 전 대통령까지 인종 문제를 거론할 만큼 사태가 더욱 확대되었다.

“나 잘났네” 하는 사람들이 굵직한 사회 이슈에 인종문제를 덮어 씌워서 본질을 흩뜨리는 바람에 짜증이 났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쩌면 흑백 인종문제는 미국 사회가 피할 수 없는 가장 뜨겁고 기본적인 현실문제이다.   이번에는 피부색에 대한 좀 더 솔직한 대화와 그리고 이해와 통합의 과정을 거쳤으면 좋겠다.

지난 50년, 흑.백 인종통합에 대한 법적이나 사회적인 체제는 변화가 있었어도 사회 풍토나 사람들의 의식까지는 쉽게 바꿔지질 않았다.  우리 사회에 백인 우월주의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팽배하다.  그리고 노예에서 해방된 흑인의 후손들은 그들 나름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을 아직 겪고 있다. 

자유롭고 부러웠던 백인처럼 되려고 애 쓰다 보니 유럽식 백인들의 문화를 무조건 받아 들이면서 자신들 고유의 문화를 거부하거나 묵살하는 상황도 빚었다.  흑인들이 갈구하는 진정 동등한 사회는 늘 소원했고, 그나마 연예계나 운동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사회 어느 분야에서나 은근한 차별을 감내하고 있다.  흑인이나 백인이나 서로가 자신과 다른 피부색을 은연중에 거부하다 보니 진정한 통합은 실질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몽고메리 시민의 절반 이상이 흑인이다.  통합의 기미가 전혀 없는 이곳의 흑인교회와 백인교회에 시민들은 익숙해있다.  같은 하느님을 믿어도 서로의 문화 차이를 건너 뛰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선택이다.  민주당도  앨라바마에는 흑.백 두 그룹으로 갈라져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학교들이 인종으로 나누어 지는 상황으로 변하고 사회 곳곳에서 아직도 흑.백에 대한 경계선이 시민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그어지고 있는 점이다 .

이곳에 오래 살다 보니 자연히 인종차별에 대한 따가운 의식을 늘 느끼게 된다.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차별대우는 잘못임을 알면서도 침묵을 지키는 바람에 인종 통합이 더 더디어지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러 종파의 목회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서 대화하고 또한 관심을 가진 시민단체에서 인종차별의 철폐를 위한 의식적인 진지한 대화를 계속하니 느리지만 조금씩 개선되는 것 같다. 

미국 사회가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사회성을 인정하면서도 요즈음처럼 적나라한 흑백의 갈등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이민 와서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까지도 황당해진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기분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6.25 전쟁을 겪은 세대와 겪지 않은 세대의 세상을 보는 관점이 확연히 다른 것을 보면 이들이 겪고 있는 상처의 깊이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각자의 다른 관점에서 보면 모두가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서 인종문제가 정작 중요한 사회 이슈를 흐리지 않고 성숙한 대화로 개선되어 갔으면 좋겠다.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 중에 유독 날카로운 반응을 일으키는 이 인종에 관한 토론에 휩쓸리면서 피부색이 아니라 민주당의 바커스 상원의원이 내어 놓은 의료개혁 법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솔직하고 총체적인 침 튀기는 토론이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