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다시 14살이 된다면, 나는 무엇이 제일 하고 싶을까? 14세인 플로리다 주에서 온 소녀 Alexis Thompson이 지난 주 이곳에서 열렸던 나비스타 LPGA클래식에 등장했다는 소식에 불쑥 이런 질문이 머리에 떠올랐다.
아마추어 선수로 참여권을 따내면서 그녀의 나이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틀 동안 골프장 곳곳에서 만난 지인들은 모두 이 14살이 몰아 온 돌풍에 흥분해 있었다. 그녀는 첫날부터 좋은 성적을 거두며 각광을 받았고 대회 이틀째는 다른 4명의 톱 프로들과 공동 1위로 마치는 등, 단연 올 클래식의 신데렐라로 부상했다.
유명한 미셀 위의 게임을 보러 골프장에 들렀다가 오히려 이 14살 선수가 일으킨 회오리 바람을 탔다. 14살 이라는 대문짝 만한 글자와 신문 한 면을 다 채운 그녀의 사진에서는 전혀 14살의 미숙함을 보지 못했지만 막상 그린에 선 그녀는 영락없는 사춘기의 소녀였다. 긴 팔 다리를 너풀대며 걷던 그녀를 보며 왠지 빨강머리 앤을 연상했다. 막강한 이름과 경력의 프로들과 섞여서 당당하게 골프채를 휘두르던 당돌함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옆에 선 남편과 우리의 14살 적 기억을 힘들게 떠올리며 우리는 서로 피식 웃었다.
14살. 풋풋하고 싱싱한 나이.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변하는 성장기이다. 까마득한 예전에 나도 14살이었던 적이 있었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얌전한 교복을 입고 여학교를 다녔다. 한 개인으로 보다는 거대한 단체의 일부로, 독창성 개발 보다는 절대복종을 배운 시절이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복잡한 버스에 밀치고 당기며 시달렸던 기억과 제대로 닫히지 않은 시내버스 문에 매달렸던 차장 언니가 달리는 버스에서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 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루 종일 5-60명 교우들과 한 교실에서 복닥거렸고 다시 만원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흐느적거렸다.
하지만 가랑잎이 굴러가던 소리에도 민감해서 까르르 웃었던 철부지였다. 그리고 물질보다는 정신의 중요성을 배운 것이 생각난다. 책을 통한 레슨뿐만 아니라 철저했던 학교의 윤리 도덕 교육과 집안 어른들, 그 당시의 건전한 슬로건이 많았던 사회 환경이 우리의 하루를 통제했던 탓이었다.
친구들과 만나도 14살 여자아이들은 별로 갈 곳이 많지 않았다. 과외 활동도 별로 없었고, 모두 비슷한 학교생활과 취미생활을 했다. TV가 없었고 영화관을 함부로 갈 수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세계의 명작과 릴케와 하이네의 시에 몰두해서 감동하고 흥분하던 시기였다. 작품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 보다는 낯선 문화와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렸던, 그렇게 미지의 세계를 동경했다.
심야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 친구들과 좋아하는 곡을 신청하길 좋아했고 예쁜 편지지에 아름다운 시를 열심히 끄적거려서 주고 받았다. 남자친구? 그런 것은 그림에 전혀 없었다. 14살의 나는 비록 우물 안 개구리였지만 밤잠을 설치며 삶의 의미를 찾아 고민했고 풍선처럼 부푼 상상력을 타고 우물 밖의 세상을 찾아 다니는 꿈을 꾸었었다.
독일작가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과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의 스토리를 뜨겁게 사랑했었다. 그리고 그 책들을 번역한 전혜린씨를 좋아했었다. 번역판이 아닌 원어로 읽고 싶어서 독일어를 전공했고 훗날 딸아이가 태어나자 자유롭게 살라고 ‘생의 한 가운데’의 주인공 이름을 붙여 주기도 했다. 그러니 나의 14살 시절도 내 삶에 특별한 흔적을 남긴 셈이다.
눈 앞에서 14살 소녀가 신나게 골프채를 휘두르며 세계 무대에서 그녀의 꿈을 펼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예전14살 단발머리 시절의 내 꿈을 기억하고 씁쓸했다. 그 꿈은 여전히 내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슬프게도 그 꿈에서 나는 참 많은 이탈을 했고 현실에 타협 하면서 살아왔다.
나를14살의 소녀로 과거여행을 보냈던 이 14살의 골프계의 돌풍은 선전을 했다. 그녀는 올 LPGA 클래식의 우승자인 멕시코의 오초아 선수에 불과 12포인트 차이로 27등의 기록으로 마쳤다. LPGA의 미래로 인식된 그녀는 이번 대회에서 이미 많은 팬을 확보했다.
만약 내가 다시 14살이 된다면, 나는 무엇이 제일 하고 싶을까? 재미있는 질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