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차 대전 후 독일과 연합국 사이에 정전을 약속한 베르사이유 조약이 1918년 11월 11일 오전 11시에 사인되었다.  이 사건은 지금의 베테란스 데이의 유래가 되어서 해마다 11월 11일 오전 11시에 미국이 개입된 여러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참전용사들을 추모하고 그리고 퇴역군인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기념식을 가지는 전통을 갖게 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가지는 베테란스 데이 기념식이 몽고메리에서도 베테란스 병원 앞 뜰에서 해마다 열린다.  마른 잎들이 힘없이 떨어지는 사이로 힘겹게 지팡이에 의지하고 참석한 노병들을 만나면 베테란스 데이의 의미에 숙연해진다.  그리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부상 당하고 돌아온 군인들을 보면 그들의 아픔이 따갑게 내 의식을 누른다.

지금 미국에는 총 23.2 백만 명의 베테란들이 있고 이중에 1.8 백만 명이 여성들이다.  베테란인 나도 오늘은 하루 종일 여러 상념에 몰려서 스쳐 지나가듯 옷장 안쪽에 간직하고 있는 군복들을 보았다.  내 젊음의 흔적이 스며있는 전투복과 군복정장, 그리고 파티드레스.  조금 낯설어졌지만 익숙하고 편한 옷들이다.  군복정장과 파티드레스에는 작은 훈장들이 여전히 무겁게 달려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군복을 입고 겪었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은 모두 바람처럼 흩어졌고 근무지 마다 만난 동료들과 나누었던 사람과 사람의 정이 소중한 추억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군 복무하는 동안 여러 번 별거하며 고생시켰던 딸들에 대한 죄책감은 다 잊었지만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체험한 생활들은 내 삶에 풍부한 바탕이 되어있다.      

덩치 큰 미국인들 사이에서 작은 체구의 동양여자가 억척스럽게 버티며 견뎌낸 군대생활은 이제 동화 속의 이야기가 되었다.  내가 선택했던 색다른 삶에 얽힌 사연은 내 몫이었지만 영어가 서툰 이민자였던 나를 배려하고 친절하게 인도해준 좋은 사람들 덕분에 나는 당당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군에서 받았던 훈장들과 감사패들이 수북이 담겨있는 박스에 나는 군인생활하며 모아온 많은 비밀스런 이야기도 함께 보관하고 있다.

지난 주 일본에서 한 부부가 찾아 왔었다.  일본 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오쿠식장군은 34년 전에 멕스웰부대에서 1년 교육을 받았다.  소령이었던 젊은 시절 남부에 매료되었던 그는 가끔 이곳을 찾아 온다.  이번에 부인과 함께 회상여행을 온 그는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도 찾아 보았고 또 현대자동차 공장도 견학했다.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했던 그는 한국말도 잘 하고 성격도 허심탄회해서 어떤 이슈든 영어와 한국어로 시원하게 대화할 수 있어서 좋다. 

이번에 이곳에 사는 미 공군 전투기조종사인 퇴역 장군을 그에게 소개했다.   조금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태평양에서 싸웠을 사이라는 나의 소개에 두 노병은 호탕하게 웃었다.  이들이 오랜 친구처럼 자신들이 조종했던 전투기 소개부터 신상 이야기까지 즐겁게 대화를 이어가서 같은 테이블에 있던 우리들도 흐뭇했다.  이렇게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었듯이 현 시대의 군인들이 싸우고 있는 적들과도 언젠가는 평화로운 사회에서 서로 축배를 들 수 있기를 바랬다. 

올 베테란스 데이에는 특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세계 곳곳의 말썽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많은 미군병사들 생각에 좀 우울했다.  군인들에게 요즈음처럼 복합적인 역할이 요구된 적이 있었던가?  더욱이 지난 주에 텍사스, 미국땅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친 군인들 소식에 착잡했다.  국제정세가 군인들에게 주는 힘겨운 임무들과 그 후유증이 계속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이 안타까웠다. 

내 삶의 일부인 군인들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하며 자유의 땅, 미국을 위하여 나보다 먼저 군복을 입고 복무했던 군인들에 존경을 보낸다.  그리고 현재 군복무를 하고 있는 용감한 젊은이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불평 하지 않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그들에게 뜨거운 사랑과 동료의식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