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석 달 열흘 근무를 끝내고 무사히 딸이 돌아왔다.  조금 살이 빠지고 신경질적이 되어온 딸은 남부의 느긋한 정경에 심 호흡을 자주하며 미국의 자유로운 환경에 감사한다고 했다.

며칠 함께 미시시피도 다녀오고 이곳에서 오래 알던 지인들도 만났다.  틈이 나는 대로 딸은 서서히 아프간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리고 다시 바람처럼 훌쩍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딸을 보내놓고 정작 나는 한동안 아무 생각도 행동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 동안 내 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린 건지 아니면 딸이 들려준 아프간 여성들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인지 도무지 안정 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낮에는 이곳 저곳 바쁘게 돌아 다니고 밤에는 램프를 옆에 두고 바느질을 했다.  작은 조각 천을 이어 형태를 만들면서 단순하게 머리를 비우고 싶었다.  그러나 퀼트에 몰두하는 시간이 길면서 조금씩 내 혼돈의 정체가 윤곽을 들어냈다.    

카불에서 딸이 여러 번 만나서 존경하게 되었다는 한 여자가, 그녀의 뜨거운 모국사랑과 인간애에 받은 충격이었다.  그 여자 이야기를 들려주며 딸은 나를 유심히 봤다.  아마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일 것이라 했다.    

아프간에서 태어난 Razia Jan은 1970년에 미국 동부로 이민 왔다.  메사추세트의 한 소도시에서 양복점과 세탁소를 20년 이상 운영하며 어느 이민자나 다름없이 열심히 미국생활 적응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 지역의 로타리클럽 멤버로 활약하며 사회봉사에 적극적이었다. 

그런 그녀의 안정된 삶은 9.11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그녀는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웃들과 함께 손으로 담요 400장을 만들어 전달했고, 아프간으로 떠난 군인들을 위한 위문품도 모았다.  그리고 아프간 아이들을 위해서 신발 3만 켤레를 모아서 전달했다. 한 여자의 노력과 정성이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기적 같은 작은 기쁨을 주었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 모국 여자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어서 더욱이 모국의 미래를 위한 교육을 실천하고 싶은 열정으로 여러 방안을 찾았다.  그녀는 2005년에 가족과 친지들의 도움을 받으며 아프간 여자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금 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비영리단체인 Razia’s Ray of Hope Foundation을 설립했다. 

그녀의 취지에 동조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나선 미국인들과 아프간 지역인들과 함께 그녀는 마침내 카불에서 동북쪽으로 30마일 거리에 있는 지역에 폐허가 된 예전의 남학교 건물을 구할 수 있었다.

이 낡은 건물을 복구하고 지역 부모들을 설득해서 2008년 3월에 정식으로The Zabuli Education Center for Women and Girls가 문을 열었다.  현재 200명의 여자 아이들이 이곳에서 유치원부터 6학년 수준의 초등학교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

여자아이는 9살이 되면 결혼을 시킬 수 있었던 아프간 풍습에 따라 정상적인 교육보다는 집안일로 혹사당했던 아이들이 일찍 결혼해서 다시 아이를 낳으면서 험악한 삶이 번복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훗날 자신의 아이를 낳으면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마련한다는 믿음으로 온 정성을 기울이는 Razia는 작년 10월 자신의 거처를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기고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한다.

지역인들의 사회적 관습을 변화시키느라 애쓰면서 여자 아이들 교육에 열성인 그녀를 만난 것을 내 딸은 가슴과 머리에 강력한 감동으로 담아왔다.  그리고 로타리클럽 멤버인 남편더러 이 여학교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다. 

그렇잖아도 지난 달에 딸이 카불에서 보낸 포스트 카드의 사진이, 두 세계에서 태어난 여자들이 너무나 대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그 사진에 충격을 받고 나도 아프간 여자들의 현실에 대한 많은 기사들을 찾아 읽고 치를 떨던 중이었다.  아프간의 혼돈스러웠던 역사의 긴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상황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들이었다. 

‘여자들은 가정과 무덤을 위해 만들어 졌다’라는 아프간 말에는 뼈아픈 현실이 있었다.  그러나 여성의 권익 확보 없이는 아프간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이것은 아프간 여성들 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인간의 문제이다.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며 빛을 찾아 노력하는 Razia Jan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아프간은 아직도 희망이 있다.  그녀의 뜨거운 열정에 고개 숙이며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나 사는 것에만 열심이었지 남을 위하여 열성을 피우며 노력을 하지 않았음이 진심으로 부끄러웠다.  적당히 은퇴한 상태에서 적당히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나는 딸들에게도 부끄러운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