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하려고 의자에서 일어나는 나를 따라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키던 나이든 진돗개의 소리 없는 대화에 후다닥 놀라 다시 의자에 풀썩 주저 앉았다.      

“우리에게는 언어가 필요 없어요.  나는 당신의 마음을 읽고 당신은 내 마음을 느끼지요.  요즈음 아주 천천히 조심스런 발자국으로 당신을 따르면서 내가 살아온 세월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길게 늘어짐을 봐요.    

아주 예전 내가 어렸을 적부터 당신은 늘 나에게 말하기를 좋아했어요.  당신의 목소리에 길들여 지면서 나는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어요.  당신은 더러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도 들려 주었지만 참 심각한 이야기도 많이 들려 주었지요.  그러면서 나는 가족의 희로애락을 함께 살게 되었고 당신은 나를 가장 믿음직한 친구이자 가족이라 했지요.  

우리는 넓은 공원의 확 터진 공간을 찾는 것을 좋아했어요.  뜨거운 햇살도 전혀 우리를 방해 하지 않았어요.  책을 읽는 당신 옆에서 나는 살랑거리던 바람과 놀았지요.  우리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잔디밭을 걷는 것을 즐겼고, 두런두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주로 당신이 이야기를 했고 나는 들었어요.  당신의 마음은 참 복잡했어요.  세상에 쉬운 일이 없음을 느꼈으니까요.

당신은 늘 바쁘게 움직였고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버릇이 있어요.  당신을 쳐다보고 따르는 나를 가볍게 따돌리고 어딘가로 며칠을 다니다 돌아오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당신은 미안하다며 한참을 나를 달랬고 사랑한다고 했어요.  그러면 당신을 원망하던 내 기분은 씻은 듯이 사라졌어요.

당신을 따르면서 나도 여러 사람들을 만났지요.  더러는 나를 좋아했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피했어요.  나는 가능한 한 더욱 당신 곁에 가까이 섰지요.  나는 그들과 당신의 대화를 듣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그러나 당신과 친구들이 나누던 우정을 질투해서 늘 소란을 피웠어요.  소리를 많이 지른 것, 미안해요. 

당신은 가끔 나를 잊어 버리기도 했어요.  아예 내가 당신을 따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이나 일에 몰두했지요.  그럴 적에 내가 가졌던 서운함을 모르고 있었어요.  그러나 나는 절대로 당신에게 내 서운한 마음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사랑은 주는 것이라 하잖아요.  그냥 당신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으니까요.

이제는 당신의 눈길만 봐도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훈련이 되어 있어요.  그리나 슬프게도 당신의 모습은 내 눈 안에 조금 흐릿해졌고 당신의 목소리도 멀찍이서 조금 혼돈을 일으켜요.  많이 움직이는 당신을 따르는 것도 이젠 벅차답니다. 

당신을 따르는 내 발자국이 조금씩 느려지자 당신은 겁을 먹어요.  요즈음 나를 보는 당신의 안타까운 눈빛이 따가워서 내 가슴이 무거워요.  우리가 헤어질 날을 두려워하는 당신을 보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들어요.  이렇게 함께 있는 순간에 행복할 수는 없는가요?  당신의 그림자로 당신 주위에 멈추면서 나는 행복해요.  사랑을 주고 또 사랑을 받음을 가슴으로 느끼거든요. 

비록 내가 예전처럼 빠르게 뛰지 못하고 또 내 걸음이 기우뚱해도, 천천히 여유롭게 움직이며 우리가 함께 있는 소중한 순간을 즐기고 싶어요.  우리 자연의 순리에 따르기로 해요.  훗날 내가 아픔이 되어서 당신의 가슴에 안기더라도, 나는 당신의 영원한 그림자로 당신을 따를 테니까요.  자 이제 미리 슬퍼하지 않기로 해요.”

녹내장으로 흐릿한 눈동자가 유난히 애처로워 가슴이 아렸다.  관절염으로 휘청대는 다리로 버티고 선 내 그림자의 머리를 두 손으로 안고 큰 목소리로 밝게 대답해 주었다.  “그래 우리 이제는 천천히 움직이자.  그리고 함께 있는 시간에 감사하자.  청소는 내일 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