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에 일어난 자연재해처럼 미국 정가에 강진이 일어났다.  지난주 동부에서 순전히 인간이 일으킨 이 돗수 높은 지진에 고 케네디 상원의원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났을 것 같다.

철저한 자유 민주당원인 그가 46년이란 오랜 세월 버티고 지켰던 상원의 의자에 이제 공화당원이 앉게 되었으니 어찌 그의 피가 꺼꾸로 오르지 않았을까.  그런데 불쑥 ‘새옹지마’ 라는 말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어려서 한자시간에 배운 고사성어 중에서 아직도 가장 많이 생각하는 단어이다.  살면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늘 이 단어에서 위안을 찾았다.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 있다.  그녀에게는 80대의 나이든 아버지가 텍사스에 살고 계신다.  늘 혼자인 아버지를 걱정하던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5년 전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재혼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뉴스는 그 상대가 바로 자신보다 불과 몇 살 위의 60대 중반의 한국계 여자였다.  혼자 사는 아버지가 집 근처의 식당에 자주 들리다가 그곳에서 만났다고 했다.

차마 내 앞에서는 상대가 한국여자라는 것에 대한 불평을 못했지만 늙은 아버지의 재혼 소식에 많은 불만을 쏟아 놓았다.  그러나 자식들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그녀의 아버지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새 부인과 인사차 이곳 몽고메리 딸 집을 방문했다. 

지인의 집은 숲 속에 지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집이다.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그녀 남편의 설계로 넓은 부엌이 집안의 중심이다.  그런데 이곳을 방문한 새엄마는 한국음식이 먹고 싶어서 부엌에서 무슨 찌개를 끓였는지 퇴근하고 돌아온 이들 부부를 질색시켰다.  이 부부는 야박하게도 새엄마에게 부엌 출입을 금지시켰다.  ‘Wicked Stepmother’이라 불리는 새엄마가 일으킨 몇 가지 소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 코믹한 정황에 어정쩡하게 웃었다.

그 후 가끔 지인을 통해서 그녀의 Wicked Stepmother에 대한 여러 불평 비슷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그녀가 새엄마를 여전히 Wicked Stepmother 라 불렀지만 그 칭호에 애정이 가득해서 사연을 물었다.  그녀는 작년에 퇴직한 후 텍사스를 자주 방문하며 아버지의 근황을 살폈는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평소에 혈압도 높고 당뇨도 있던 아버지가 전혀 약을 복용하지 않게 되었고 그리고 아주 건강했다고 한다.  함께 지내면서 자세히 알아보니 새엄마가 철저하게 아버지의 건강을 관리하는데, 이 80이 넘은 백인 노인의 식단이 완전히 한국식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고기가 사라지고 생선과 채소가 늘었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매일 김칫국을 먹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건강비결이었단다.

그래서 자신도 함께 며칠 한국 음식을 먹어보니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단다.  하루는 시금치 비슷한 푸른 채소를 먹고 심한 설사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장을 청소해 주는 야생채소였다고 하더란다.  덕분에 몸도 가벼워졌고 한결 건강해진 기분이 들었다며 나한테 그런 채소를 이곳에서도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오히려 그녀에게 새엄마에게 물어서 나에게도 그런 채소를 좀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음날 나도 남편의 혈압을 내리기 위한다며 생선을 굽고 김칫국을 끓였다.  여태껏 한번도 남편을 위해서 김칫국을 끓여 본적이 없었다.  남편은 솔깃해서 먹어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구운 덩어리 고기를 찾았다.  자기는 “행복하게 좋아하는 음식 먹고 살고 싶다” 고 했다.   

한국인 새엄마를 좋아하게 된 이 지인처럼, 공화당이 매사추세츠에 말뚝을 박고 오바마 정부의 인기 없는 정책에 발동을 건 이번 상황을 오히려 정치인들이 좋아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보통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이익집단이 아니라 진정 국민을 위한 경제나 의료개혁 정책을 마련한다면 이번 사태는 단연 ‘새옹지마’ 일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