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7일, 재의 수요일로 시작한 40일 간의 사순절이 이번 주말의 부활절로 끝난다.  마지막 성주일을 보내면서 떠오른 질문이 있다.  사람이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상기 시켜준 재의 수요일의 미사 후에 내 생활에서 변한 것은 무엇일까?

종교인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희생과 봉사의 생활을 추구하기로 한 나는 지난 40여 일간 무엇을 하였나?  오늘 이곳 한 토박이 친구와 커피잔을 마주잡고 우리는 같은 질문을 서로 물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이 친구는 예전에 여행사를 했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우리 가족은 그녀를 통해서 비행기 표를 구입 했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같은 학교를 다니며 연극을 함께 했다.  12학년 가을에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감독하고 주연하던 내 딸이 1막에서 열연하다가 넘어지며 무대장치를 고정시켜 놓은 벽돌에 머리를 다쳤다.  누군가가 911으로 전화했고 연극은 중단되었다.  모두의 걱정을 뒤로하고 나는 잠시 의식을 잃었던 딸을 응급실로 급히 데려갔다. 

응급실에서 서류를 채워 넣으면서 간호원이 딸의 이름을 물었다.  “안네 프랑크” 라고 얼른 대답한 딸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에 정신을 차리고 딸의 이름을 정정했다.  딸의 머리를 몇 바늘 꿰매고 병원을 나서며 어둠 속에서 안네 프랑크와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런데 다음날 이 친구가 전화를 해서 딸의 이름이 아니고 “안네가 어떠냐?” 고 물었다.  그 후부터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다.        

이 친구가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사순절 봉사를 한다고 했다.  노인 아파트에 사는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좀 독특한 분이다.  2월 중순에 다리가 부러져 고생하는 82세의 노인은 2차 대전을 겪은 근면 성실의 상징인 위대한 세대 사람이다.  자식이나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억척스럽게 생활을 꾸려왔다. 

지금도 받는 연금에서 매달 800불을 저축하며 근검한 생활을 하는 그녀의 평생 소원은 부자로 죽는 것이다.  휠체어를 밀면서 당신 자신에게 들어가는 경비를 최소한으로 아끼려고 도우미의 방문도 거절한다.  아들 딸이 아무리 말려도 아랑곳 없다.  이런 엉뚱한 구두쇠 어머니를 매일 지켜 보니 스트레스가 잔뜩 쌓였단다.    

근검하기로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을 겪은 나의 어머니도 비슷하다.  많은 자손들 키우느라 당신 자신을 위한 사치를 하지 않으신 나의 친정어머니도 검소한 버릇을 지킨다.  절약해서 모은 돈은 매달 두레마을에 보내서 봉사활동에 보탠다.  일회용 종이 냎킨도 가위로 반을 잘라서 사용하고 물질이 풍부한 미국 생활이라도 낭비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수 세기 전에 다산 정약용이 아들들에게 남긴 유산이 바로 이 ‘근 검’ 두 글자라 하더니 확실히 우리가 친정어머니들에게서 배울 점이다.             

불경기에 우리는 둘 다 다행히 경제적인 어려움은 별로 겪지 않지만 가끔 자신의 일상에서 탈퇴하고 싶은 순간들을 이야기했다.  운동으로 기분전환을 한다는 친구와 달리 나는 연극을 본다.  극 중의 인물들에 철저하게 빠져들어가서 그 속에서 다시 나를 찾는 기쁨은 신선한 뒷맛을 준다.  아직도 ‘안네 프랑크’의 근황을 묻는 친구와 함께 연극 보러 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자고 작정한 새해 초부터, 내 하루는 좀 이기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사순 시기에 희생과 봉사 보다는 오히려 내가 원하는 일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러나 물질을 탐내지 않고 인간성을 중시하는 사순절의 가르침은 제대로 지킨 것 같다. 

이번 성주간에 깨달은 것은 늘 흙의 교훈을 기억하는 겸손한 인간이 되어서 근검하며 무조건 감사하며 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