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소유하지 않았다면, 잃어버릴 일도 없고 또한 없다고 허전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겨운 물건들을 잃어버리면 얼마나 서운하고 아쉬운가? 

주인 잃은 가방들.  여행하는 주인과 분리되었다가 영원히 헤어진 가방들은 꽉 찬 소유 물들을 품고도 주인의 신분을 알려줄 수 없었다.  항공사들은 이런 가방의 주인을 찾아 주려고 노력하다가 90일이 지나면 주인 잃은 가방으로 단정짓고 모아서 팔아 넘긴다.    

앨라바마 북동쪽에 있는 인구 1만5천의 작은 도시 Scottsboro는 애팔라치안 산맥의 끝자락이 테네시 강과 만나는 곳이다.  이 아름다운 지역에 모양과 색깔도 제 각각인 주인 잃은 가방들이 나름의 사연을 안고 찾아온다.  1970년에 이곳 사는 한 부부가 이런 가방들을 정리해서 파는 파트타임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이 이제는 대규모의 바겐 센터로 커졌다.  이런 특이한 가게는 전국에서 이곳 밖에 없다.   CNN을 포함한 주요 방송매체와 오프라 쇼까지 이곳을 소개하기도 했다. 

진귀한 보물을 찾으려고 넓은 매장에 진열된 물건들을 바쁘게 뒤적이는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나도 그 속에 섞였다.  여행객들이 가지고 다니는 품목들이 의외로 다양했다.  많은 물품들이 4만 스퀘어 피트가 넘는 건물 안을 메웠고 매일 7천 품목이 보태어진다.  60 퍼센트가 옷들이고 나머지는 카메라나 전자제품, 보석과 책 등 실로 다양했다.       

벽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던 지치고 멍이던 가방들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주인은 어느 나라 사람이었고 또한 이 가방들은 지구 어느 낯선 나라를 다녀온 걸까?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물품들은 이제는 더 이상 한 개인의 아낌을 받던 소유가 아니다.  품목별로 분류되어 가격표를 단 상품으로 약간 우울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는데 그 안쪽에 있던 스타벅스 커피숍의 향기와 묘하게 섞였다.

아직 원래의 상표가 붙어있는 새 물건서부터 낡은 물건까지, 전시된 물건들은 담담하게 체념한듯했다.  그런데 옷걸이에 걸려있던 웨딩드레스에 내 속이 찔끔했다.  그 신부는 무엇을 입고 결혼식을 치렀을까?  정신을 잃어 버린 껍데기 몸처럼 침묵을 삼키고 있던 웨딩드레스의 하얀색이 초연했다.  상표가 다양한 화장품들은 낯설었고 많은 카메라 속에 숨어있는 사진들은 궁금했다.          

진열된 장신구들에서 나는 천주교 성물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선물하려고 여럿 준비해서 여행 했나 보다.  포장된 채로였다.  잃었으니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찾을 수 있는 성물을 모두 골랐고 책도 골랐다.  남편은 새 야구모자와 CD를 찾은 후 보석을 파는 중년여자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곳에서 25년을 일한다는 그녀는 늘 색다른 물품을 보게 된다면서 전국 각처에서 심지어는 해외에서도 찾아 오는 손님들이 일년에 백만 명이 넘는단다.  정기적으로 찾아 오는 단골도 꽤 된다고 했다.  남편은 그녀가 보여준 산뜻한 디자인의 반지를 내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지역인들은 수수하고 친절했다.  매번 낯선 가방을 열고 그리고 비밀스러운 내용물을 쏟아내어 정리하며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누군가의 손떼가 묻은 물건들을 만지고 상품화 할 것들과 폐품처리 할 것들을 분류하며 여행준비를 한 주인의 정성과 사랑을 아파했을까?         

나는 여행할 때 꼭 필요한 옷 몇 가지로 간단히 가방을 산다.  그러니 가방을 체크인 할 일이 없다.  그래도 내 가방 안 주머니와 밖의 여러 곳에 이름과 주소를 적어 놓았다.  만일 우리가 헤어져도 내 가방은 나를 찾아 올 수 있다.